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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위로가 되는 말

 

 ( adventre 曰 ),  "그런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우리의 잘못도 많구요.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각종 제약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요. 더구나 지금은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라는 시대적 제약도 있지요. 이번 선거로 너무 많이 실망들 안했으면 합니다. 실망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면 우리 운동은 그만큼 더 후퇴를 하게 되겠지요."

 

 

위로가 되는 글

 

(절망하는 이들에게 드리는 새해인사 中), "그래서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허탈하고 막막하고 불안하다는 것, 뭔가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감정이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점이다. 다만 이 감정이 연말 연시 바쁜 일상 속에 봄눈 녹듯 사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5년동안 이 감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구경꾼이기를 거부하자.

절망하는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당신의 그 절망감이 현실을 바꿀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건 역설도 말장난도 아니다. 진실이다."

 

 

 

그리고....

 

 

 

 

우연찮게 베토벤의 "합창" 공연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오늘 공연을 통해 알게 된 건데, 베토벤의 "합창"은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의 1951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실황연주가 가장 으뜸으로 쳐진다고 한다.

 

그 연주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재개를 축원하려고 1951년 7월 29일 열렸다.

푸르트뱅글러 독일의 모든 극장이 폐쇄되기 직전인 1944년 여름에 그 장소에서 마지막 지휘를 했었다. 그 이듬해 여름에 바이로이트 극장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손상을 입었고, 미군은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과 함께 이 극장을 위락시설로 징발했다. 그리하여 이 극장은 바그너家가 연례 페스티발을 재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기까지 미군들이 사용할 때 말고는 어둠속에 묻혀 있었다. 푸르트뱅글러는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세운 이 극장의 재헌당식이라는 막중한 무대의 지휘자로 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연주는 1942년 히틀러의 생일을 기념해 열렸던 음악회에서 연주된 그것(위의 동영상)과 분명 같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임에도 불구, 아주 상이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1942년의 연주는 암울한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합창 악장조차도 낙원을 그리는 비전보다는 진노의 날의 예감을 드러낸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바이로이트의 연주는 비극을 극복한 즐거운 축하 의식의 기분에 젖어 있다. 위대한 우주의 힘들이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 해석에서 늘 그러듯이 서로를 지배하고자 충돌하고 있지만 이 연주에서 이제 갈등은 햇빛으로 가득 차 있다.

1942년의 실황 연주가 임박한 대환란을 암시하는 고뇌에 찬 외침이라면, 바이로이트에서 연주한 9번은 푸르트뱅글러가 이 작품을 위안과 갱생과 정신적인 치유의 선언서로 묘사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1951년 폐허가 된 독일 땅에서 바이로이트 합창단과 함께 부른 합창 교향곡은 정말로 ‘환희의 송가’라 불릴 만 했다. 울림은 컸으며, 둥글고 유장했다. 고난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찬연한 소리 앞에서 무릎을 끓고, 두 손을 모아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일이었다. 이에 비하면 1942년 녹음은 마치 「교향곡 5번 운명」을 듣고 있는 것 아니냐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격렬했다. 내면에 침잠했던 분노를 내뿜는 듯, 그래서 너무나도 위풍 당당한 직선적인 소리-‘고난의 송가’. 이를 재치 있게 비유하면, ‘고난을 넘어 환희의 소리’ 바로 「합창」이 되는 셈인데, 진정, 그의 개인사처럼 그의 「합창」이 인류의 합창이 된 것이다.  

 


어쩌면 오늘 나에게 "합창"은 1942년의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징조를 읽어내는 이들도 많다. 전혀 사실무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고 그렇게 두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51년 버전의 "합창" 역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결코 쉽지 않지만, 결단코 불가능하지는 않겠기에, 이는 '믿음'이라기보다 일종의 '역사'이자 '과학'이겠기에,)

그래서 오늘의 공연은 역시 큰 위로가 되었다.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195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공연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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