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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아 주겠다”…검찰청사서 수갑 “추방”

돈 받아 주겠다”…검찰청사서 수갑 “추방”

[한겨레 2005-04-11 09:03]  


[한겨레] 파키스탄인 무하마드 사르다(36)는 지난해 6월 공업용 재봉틀에 왼손 넷째손가락을 찔렸다. 근육이 크게 상해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큰 부상이었다. 그가 일하던 경기도 의정부 ㅇ섬유 사장은 산재 처리는커녕 덜렁 800만원만 합의금으로 준 채 그를 내쫓았다. 퇴직금도 주지 않았다.
1999년 ‘코리안 드림’을 안고 입국한 그는 이 회사에서 거의 날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했다. 회사에서 쫓겨난 그는 다친 손가락 때문에 다른 곳에 취직도 못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간절했다. 하지만 그가 매달 보내는 100만원으로 살아가는 부모님과 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 그리고 아내와 4명의 자식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받은 합의금은 갑자기 뇌를 다친 딸의 치료비로 대부분 들어갔다. 그러나 딸은 죽고 말았다. 그는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퇴직금이라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외국인 노동자 단체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런 노력 끝에 올 1월 말 체불임금 확인원을 받아냈다. 740만원의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증명서였다.

그러나 체불임금 건이 검찰로 이첩되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의정부지검의 중재를 통해 1일 사업주로부터 640만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퇴직금을 받아들고 환한 얼굴로 지검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나 검찰 직원과 파견나와 있던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불러세웠다. “당신은 불법체류자라서 여기서 나갈 수 없습니다.” 그의 손에는 곧바로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외국인노동자 보호소로 옮겨졌다. 추방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검찰로부터 체불된 퇴직금을 받아주겠으니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역시 한국은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갖고 검찰청사로 갔기 때문이다. 추방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비극적인 결말에 외국인 노동자 관련 단체들도 당황했다. “아무리 불법체류자라도 권리 구제를 받기 위해서 검찰에 온 외국인 노동자를 이렇게 냉혹하게 처리해서야 되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최근 사르다를 면회한 노동인권회관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한분수 상담국장은 “검찰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어떤 외국인 노동자가 권리 구제를 요청할 수 있겠느냐”고 한국의 낮은 인권의식을 비판했다. 그는 “사르다는 현재 빨리 풀려나서 다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사르다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노동부의 안이한 대처와 사업주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고용행태 때문이다. 현재 불법체류자들은 권리 구제를 받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사업주들은 밀린임금을 요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거나 실제로 신고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중국인이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사장의 집을 방문했다가 사장이 불법체류자로 신고하는 바람에 강제출국됐다. 또 같은 달 필리핀 이주노동자 2명이 퇴직금을 받기 위해 수원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을 냈다가 지방노동사무소가 출입국관리소에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해 강제 출국당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단체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사법 당국으로 가지 않고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외국인 노동자가 밀린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노동부에 진정을 하고, 노동부는 진정 이후 조사를 벌인 뒤 체불임금 확인원을 떼어 준다. 이후 노동부는 이 사건을 검찰의 손으로 넘긴다. 사실상 추방과 체불임금 해결을 맞바꾸고 있는 제도인 것이다. 이형섭 기자 ublee@hani.co.kr>sublee@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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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 단속보다 더 중요한 인권

[한겨레 2005-04-10 20:21]  

[한겨레] 최근 파키스탄인 이주노동자가 밀린 퇴직금을 받기 위해 검찰에 갔다가 퇴직금을 받은 직후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비록 체불 임금을 해결해주려 불렀지만, 법적 체류 기한을 넘긴 사실을 알면서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는 게 검찰 쪽의 말이다. 법에 정한 대로 집행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이 노동자를 체포한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체불 임금을 해결해줬으니, 성의를 보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보호라는 법 정신을 생각할 때 이런 대응은 가혹하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권리를 구제받고 추방되거나, 추방을 피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이래서는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 지원 인권단체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개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권단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의 이주노동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이주노동자들이 소매치기나 도난 신고를 위해 경찰서에 찾아가도 합법 체류자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전에는 자유롭게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던 이주노동자들이 경찰서 가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단속에 걸려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된 이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정부는 체불 임금과 산재로 피해를 당한 불법 체류 외국인에게 출국을 유예해주거나 ‘보호’를 일시 해제해주는 조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증인까지 세워야 하는 등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아무리 ‘불법체류’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숨죽이고 지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고도 문명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정부는 별 실적도 거두지 못하면서 인권탄압만 유발하는 이주노동자 내몰기를 중단해야 한다. 인권보호보다 불법체류 단속이 우선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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