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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방글’ 방글라데시 어린이가 속울음 운 까닭은?

‘방글방글’ 방글라데시 어린이가 속울음 운 까닭은?
[한겨레 2005-05-04 20:42]  



[한겨레] 불법체류 부모따라 귀국, 친구에 ‘안녕’ 입도 못떼
출발선에 선 나지아(13·부천 심원초등학교 5학년)의 두 다리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땅’하는 총소리와 함께 나지아는 힘껏 내달렸다. 한국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운동회’인 탓인지 얼굴 표정이 진지했다. 눈에 스친 한국의 하늘은 더없이 파랬다.
4일 운동회가 열린 경기도 부천시 심원초등학교에서 만난 나지아는 한국 아이들과 똑같이 조잘대고 깔깔댔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그는 5년 전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다. 하지만 아버지 뚜뜰(37)의 비자 기한이 지난달 4일 만료됐고, 어머니 나즈마(35)는 지난해 12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그의 가족은 19일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간다. 나지아는 “부모님이 단속이 심해 돌아간다고 했다”며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는 게 제일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그의 첫번째 운동회는 ‘눈물’ 속에서 지나갔다. 2000년 초 한국에 온 나지아는 몇 달 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녕하세요’가 할 줄 아는 한국말의 전부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그를 ‘아프리카’ ‘검둥이’라고 놀려댔다. 그는 “마음이 무척 아팠고, 매일같이 울었다”며 “어떤 때는 귀를 막거나 애써 못 들은 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기짱’ 열세살 나지아
마지막 운동회날도 달리기 1등 “친구야! 미안!”

그러나 학교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머리가 총명했던 그는 서너 달 만에 한국말을 조금씩 익히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생겼다. 수업 준비물을 빠뜨린 친구들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3학년쯤 돼서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그는 3학년 때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이 병문안을 온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들이 이방인인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생일잔치에도 초대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까 나지아도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말했다.

지금 나지아는 성격이 밝고 활달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짱’이다. 올해는 반 친구들의 추천으로 부반장까지 맡았다. 반 친구 41명 중 25표나 얻었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해 10월을 가장 힘든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두어 달이나 병원에 입원했고,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새벽 1~2시까지 일을 해야 해, 세살짜리 여동생을 그가 돌봐야 했다. 곰팡이가 피고 비가 새는 반지하방을 거의 1년마다 이사를 다녀야했던 점도 어린 그에겐 잊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날 그의 어버이는 운동회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야근조로 일해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렵다. 어머니는 요즘 불법체류자 단속이 부쩍 심해져 문밖 출입을 할 수 없다. 그는 “얼마 전 이웃에 살던 방글라데시 삼촌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잡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삼촌들을 왜 잡아가는 거죠?”라고 물었다. 그래서 바깥 심부름을 도맡아 하게 됐다.



그는 곧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울음도 나올 것 같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라 혼자서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망설이고 있다. 그는 “운동회날은 기쁜 날인데 나 때문에 기분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이번 주는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나중에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통역사가 돼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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