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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을 보니, 강신준 교수의 번역으로 <자본> 제2권과 제3권이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씁쓸하다. 다음 글은 2008년 6월, 위의 그 <자본> 제1권이 나왔을 때 쓴 글이다. 원글을 조금 고치고 없던 말을 덧붙였다.
1. 오래전부터 떠돌던 이야기, "이론과 실천" 출판사에서 나온 <자본>이 새로 나온다는 얘기가 비로소 실현됐다. 출판사는 "도서출판 길"이고, 이번 번역판에서는 번역자의 이름이 강신준 교수로 바뀌었다. 1987년에 나온 "이론과 실천"판 <자본>도 강교수가 번역했지만 당시 사정상 이름을 숨겨야 했는데,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거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책값이 엄청 비싸졌다. <자본> 제1권은 두 분책으로 나왔는데, 각각 값이 3만5천원, 3만원이다.)
주로 통용되는 번역, 즉 김수행 교수가 옮긴 "비봉출판사"판 <자본론>이 있는데 왜 또 나오는 거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이번에 새로 번역판을 낸 강교수가 잘 설명해 두었다.
한편 한글 번역본은 현재 국내에 2개가 존재한다. 최초의 번역본에 해당하는 이론과실천의 <자본>과, <자본>에 채워진 족쇄가 풀린 뒤에 출판된 김수행의 <자본론>('비봉출판사'판)이 그것이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간 경제대국에서 인류지성사의 거의 최상급 고전 반열에 들어 있는 <자본>의 번역본이 겨우 2개뿐이라는 점도 초라하지만, 전자가 불완전한 익명의 것인데다 그나마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하나만 남아 있는 후자도 영어본을 대본으로 한 중역본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서글픈 문화적 현주소를 그대로 보게 된다. 이제 늦게나마 MEW판을 대본으로 하는 제대로 된 번역본의 출판에는 개인적으로 오래된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홀가분함이 들어 있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낙후성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옮긴이의 말", 33쪽)
솔직히 이 대목을 보고서 쓴웃음이 나왔다. 결국 번역자인 강교수 스스로도, 이번 번역본의 의의를 고작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낙후성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것에서 찾는단 얘기구나.
2. 그렇다. 나는 강교수가 밝힌 위 "재번역의 변"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는 여기서 지나치게 "오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그의 "변"이 부족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강교수의 표현을 빌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낙후성"은 단순히 독일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을 대본으로 한 중역重譯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개선"됐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본 번역본으로 중역본을 대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절실한 과제다. 여기엔 조금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점에서 강신준 교수의 이번 재번역은 그 자체로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한국사회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연구)는, 적어도 강신준 교수가 처음 <자본>의 번역에 손을 댔을 20여년 전과 아주 많이 달라졌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그 중에서도 <자본>을 위시한 마르크스의 "경제학"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이번 "도서출판 길"판의 <자본>에 붙여둔 번역자의 "해제"와 "옮긴이의 말"을 두고 봤을 때, 강신준 교수는 그와 같은 새로운--아니 사실은 그다지 새롭다고 볼 일도 아니다. 내가 이 게시판 다른 글에서도 몇번 언급한 연구성과들은 이미 적어도 1970년대부터 쌓여온 것이다--연구성과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는 것 같다.
가장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현재 마르크스의 경제학에 대한 (문헌적) 연구에 있어 최첨단을 달리는 집단이 바로 마르크스-엥겔스저작집(MEGA)의 편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거나 MEGA를 통한 성과를 직접 누릴 수 있는 독일어권 학자들이다. 이들의 연구와 논의를 통해 특히 최근들어 제기되고 있는 흥미로운 논점들이 있다. 예컨대 원저자인 마르크스와 동료이자 독자, 서평자이자 유고의 편집자인 엥겔스 사이의 관계 문제가 있고, 또 오랜 기간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의 발전의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은 데는 여러가지 피치못할 사정도 있지만, 그런 사정들이, 영원히 그런 문제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면죄부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MEGA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에 출판된 <자본>의 다양한 판본들뿐만 아니라 엥겔스의 편집대상이 되었던 또는 편집대상에조차 끼지 못했던 마르크스 자신의 원고들을 출판하는 것 또한 단순히 "학술적인 문제", 또는 "훈고학적 집착"이라고 한정짓거나 폄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보면, "옮긴이의 말"(32-3쪽)에 나와 있는 강교수의 MEGA에 대한 인식은 아주 실망스럽다. 그는 여기서 MEGA의 의의를 축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그릇된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 물론 내가 MEW판이 아닌 MEGA판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오늘 한국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다만 나는, MEGA의 출간으로 "독일어 원문"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아주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정본"으로 여겨졌던 MEW판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현상황에 대한 강교수의 인식이 지극히 안일하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다. 하기에, 결국 MEW판으로 번역을 하더라도, 이런 사정과 문제들에 대해 정확히 인식을 하고서 번역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사이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강교수는 한참 "오버"도 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옮긴이의 말"에서 그가 쓴 것과는 달리, "독일어 원본"을 대본으로 삼았다고 해서 그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어 원본"을 대본으로 택함으로써 그저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을 따름이며, 그의 번역이 진정으로 "제대로 된" 것인지 여부는 오로지 실제 번역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을 뿐이고, 또 그 판단 또한 결코 그의 몫은 아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독일어 원본"을 대본으로 삼았다는 게 장점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큰 장점이 되지는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이 둘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3. 이번 강신준 번역 <자본>에서 뭣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책의 첫머리에 붙인 "해제"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사족"일 뿐만 아니라 "오버"다. 혹시 "도서출판 길"에서 개정판을 낸다면 이 부분은 그냥 들어내 버리는 게 나을 정도다. 왜 그런가?
이 "해제"는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비유로 시작한다. 강교수는 여기서 <자본>을 거대한 놀이동산에 비유하면서, 처음 가보는 복잡한 놀이동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안내도"가 필요하듯이 난해하기로 이름난 저작인 <자본>을 별다른 낭패없이 보기 위해서는 놀이동산의 안내도와 같은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해제"가 그런 길잡이 노릇을 해줄 것이란 얘긴데... 이건 전혀 엉뚱한 유비다. 그래, 강교수 말대로 <자본>을 놀이동산에 비유해 보자. 놀이동산의 "길잡이" 즉 "지도"에 해당하는 것은 강교수의 "해제"가 아니라 <자본>에 달린 "목차"다. 오히려 그의 "해제"는, 이런 비유 속에서는, 이를테면 그 놀이동산을 먼저 가본 사람이 쓴 "관람기"에 해당한다고 하는 게 차라리 옳다.
관람기--그것도 아주 어수룩한 관람기가 바로 강교수의 "해제"다. 이 "해제"는, "해제"라는 그 성격에 맞지 않게 독자에게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841년 마르크스는 철학 연구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점>을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1쪽) --->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르크스는 예나Jena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강교수는 위 구절의 바로 앞 대목에서 마르크스가 본Bonn대학에서 베를린Berlin대학으로 옮겼다는 말만 함으로써,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마르크스가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이해할 만한 충분한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 두 사람은 ... '서로의 머릿속을 바꾸어 앉아도 될 만큼' 각자의 분신 역할을 수행하였다." (12쪽) ---> 이미 위에서도 말한 대로, 적어도 <자본>과 관련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아주 달랐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잘 몰랐으며, 마르크스가 자신의 원고를 엥겔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게 가정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이라는 레닌주의적/스탈린주의적 교조가 설 땅은, 적어도 이론의 영역에서는, 이젠 없다.
"... 그 무렵 영국은 ... 경제학의 본거지였다." (12쪽) ---> 마르크스가 <자본>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영국은 "경제학의 본거지"가 아니라 당시 가장 발달한 산업국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도 실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경제학"은 영국뿐만 아니라 16-17세기 유럽 전역에서 각 지역의 색깔을 반영하면서 발생하고 있었다.물론 마르크스가 바로 이와 같은 "산업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발달한 "영국의 (정치)경제학"을 자신의 직접적인 이론적 개입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사실이지만, 위 언급엔 오해의 소지가 작지 않다. 실제 <자본>을 읽다 보면, 또는 <요강>이나 다른 경제학 연구노트들을 읽다보면, 마르크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학자들도 적지 않게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 및 준사실 관계의 왜곡만큼이나 의심스러운 것은 강교수의 연구자로서의 자질이다. 적어도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학자가, "경제학"을 "돈을 버는 것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문"(17쪽)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 아닌가! 사실 이런 규정은 물신화와 피상성의 극치를 달리는 오늘날의 주류경제학자들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번다"라는 표현 대신에 그들은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의 효율성 극대화를 꾀한다"라는 식의 표현을 선호할 것인데, 하지만 이게 단순히 표현의 문제는 아니다.)
강교수의 자질에 대한 의심은, "추상"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극에 달한다. 그는 추상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무지개를 이해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한다. 실제의 무지개는 서로 다른 무수한 색깔을 갖지만 우리는 흔히 무지개가 7가지 색깔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강교수에 따르면, "무한한 다양성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일정한 범위로 국한시켜 단순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상의 존재가 7가지 색깔인 것이다. 이렇게 단순화하는 과정을 추상화라고 하는데, 마르크스는 현실의 경제를 먼저 그런 방법으로 압축하였다. (19쪽)
결국 이 말에 따르면, <추상(화)=상상>이 된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강교수는 무지개는 무한개의 색깔을 갖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7가지 색깔"은 "상상의 존재"라고 말한다. 적어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무지개는 무한개의 색깔을 가지며, 우리는 그 색깔들을 '7가지 색깔'로 단순화시켜 이해한다." 무지개가 무한개의 색깔을 갖는다고 해서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이 상상의 산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지개 속에서 정확히 "빨강"을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분명 "빨강"은 거기에 있다. 우리가 수직선에서 정확히 "1"을 찍을 수는 없지만, 거기에 "1"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실은 바로 이렇기 때문에 "무지개"는 "추상"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별 시사점을 주지 못한다. 적어도 강교수가 말하는 방식으로는 말이다. 즉 무지개에 "빨강"이라는 색깔은 분명히 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체적인 "노동들" 중에는 우리가 하나의 추상적 개념으로서 이해하는 "노동"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위와 같은 예를 통해, 그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강교수가 추상에 대해 마르크스가 비판하고 있는 리카도와 유사한 이해방식을 구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건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 있겠지만, 이 맥락에선 깊이 이야기할 게 못 된다. 그냥 넘어간다.)
위와 같은 설명은 한편으로 보면,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강교수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잘못된 비유와 설명은 어려운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아니, 더 나쁘게는, 위와 같은 "쉬운 비유"를 통해 어려운 개념을 이해했다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다. 뭔가를 설명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좀 더 잘 뜯어보면(특히 위 "무지개" 비유에 이은 "산꼭데기" 비유에까지 이르면), 강교수의 설명은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 내지는 "스탈린주의"에서 정식화된 변증법적 유물론 이론에 아주 가까워 보인다. 아주 심각한 정도로 "업데이트"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 짧은 "해제"에서도 문제가 되는 대목은 부지기수이지만, 이제 하나만 더 지적하고 그만 두겠다. 강신준 교수는 "<자본>의 현재성"을 다루는 대목에서, <자본>은 미완성의 저작이기 때문에 "열린" 저작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완결되지 못한 저작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아직도 '진행 중'인 저작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그것은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변화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28쪽)
말은 좋다. 하지만 정말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만 아니라 얼토당토 않은 정당화다. 어떤 저작이 "완성되지 못했다"라는 건, 기본적으로, 결코 미덕이 아니다. <자본>의 경우 그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자본>이 미완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보면, <자본>이 열린 저작이라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반대로 <자본>이 열린 저작인 것은, 그것이 미완성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의 완성을 계속해서 늦추면서까지 (이미 그 일반적인 초고는 완성해 놓고서도)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발달은 좀 더 정확하고 포괄적으로 그리고 좀 더 온전한 방식으로 반영하려고, 그리고 기존 버전의 내용을 수정/보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미하엘 크래트케(Michael Kraetke)와 같은 논자들에 의해 단순히 선언적으로가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의 원고를 통해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다(예컨대, <요강> 집필 150주년을 기념해 나온 Karl Marx’s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150 years later (edited by Marcello Musto, London: Routledge, 2008)에 실린 그의 논문을 보라).
이상의 내용으로부터 미뤄보더라도, 강교수의 "해제"는 놀이동산의 "안내도"라기보다는 (좋게 말하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기"에 지나지 않으며, 이 관람기는 해당 놀이동산을 제대로 즐기는 데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많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4. 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해제"와 "옮긴이의 말"을 가진 <자본>의 새판을 읽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그래도, 저간의 사정을 고려해볼 때, 이런 고민은 무척 "행복한 고민"에 속하는 게 아닌가 한다. ㅎㅎ
(2008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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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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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강신준 역 '자본'을 읽지 않았고, '자본'도 잘 모르지만 강신준교수가 노조와 관계하면서(산별노조 건설 관련) 이야기했던 임금 관련 얘기는 제가 봐도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잘 들 좀 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의 실천에 관계하는 학자나 이론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잘 했으면 좋겠는데요. 쩝부가 정보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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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공부하러 갔다고 하면서 싸움만 할려고 한다.
몸은 갔지만 디지털의 영혼은 이곳의 인파이터가?
"국부론(산업혁명의 기원은 인간을 위한 문명인가?)"은 언제 번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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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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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교수는 학계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원리를 왜곡시키는 사람으로 유명하지요. 저런 분이 자본은 번역한다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부가 정보
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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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강신준교수의 번역본이 새로 나왔어요? 그분 참 부지런하군요. 하지만 난, 그분이 왜 자꾸 맑스를 걸고(아니면 끼고) 넘어지려고 하는지 유감천만이에요....부가 정보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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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님, 리우스님, 간만에 뵙습니다. ㅅㅅㅅ님은 처음 뵙고,불씨님은 지난번에 이어 또다시 난해한(^^) 덧글을 남겨주셨네요. 모두들 반갑습니다^^
강신준 교수의 임금론은 예전에 특히 노조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ㅅㅅㅅ 님이나 리우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강교수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까지 안좋은 줄은 몰랐네요. 물론 그렇다고 그가 마르크스를 끼고 도는 것 자체를 뭐라할 수는 없겠죠. 다만 자그마치 2008년에 와서 <자본(론)>이 (사실은 좀 뜬금없이) 새로 번역되는 마당에, 그것이 예전의 번역에 비해 크게 나아질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하니 좀 힘이 빠질 뿐입니다.
참고로 불씨님, <국부론>은 이미 번역이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엔 김수행 교수의 번역판이 비봉출판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새로 나왔답니다. 참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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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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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박종철출판사에서도 번역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어찌 되었는지...오타 지적 하나^^;
드러내버리는 -> 들어내 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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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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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근데 그게 "오타"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맞춤법 공부좀 따로 해야겠단 생각이 점점 더 듭니다 ^^;;;
핑퐁님의 지적을 반영하면서, 설명이 부족한 부분에 한대목 더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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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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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어제 서점에 가서 해제와 서문을 읽었습니다....저도 웃었죠^^*
특히 MEW는 보급용, MEGA는 학술용이어서 굳이 후자를 번역하기 보다는 전자를 번역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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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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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도 혹시 MEW판 아닙니까?왜 혁명은 MAGA보다 MEW에서 일어나는가?
메니페스토는 독일노동자 이지만
리볼루션은 러시아 였다.
MAGA와 MEW는 신국부론 번역의 해제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참 대영박물관에서 깝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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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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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심 기대하기로는 MEGA를 저본 삼은 번역본이 나오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군요(아...... 결국 독일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제가 전해 듣거나, 읽기로는 가까운(?) 일본에서는 맑스와 엥겔스의 "메울 수 없는 차이"에 관해 일찍부터 연구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한국에서도 틀림없이 (EM님을 포함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들이 있는데 왜 원전 번역에는 그런 사항들이 반영되지 않는 걸까요(EM님께서 번역이 아닌 [해제]와 [옮긴이의 말]을 두고 포스팅을 하신 거니까 이건 좀 앞서 간 질문이 될 수도 있겠네요(^-^;))? 혹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시다가 읽게 되면, 번역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바쁘지 않으시다면!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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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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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보지 못했던 축구를 한게임 보아야 할 것 같다.잉글랜드 축구는 롱킥 롱패스의 축구이다.
독일축구는 조직축구이다.
잉글랜드의 축구는 위기와 기회로서의 전통적인 찬스와 역공세의 전략축구이다.
독일축구는 끊임없는 스파르타의 전략적 메카니즘의 11명의 축구이다.
아직도 어느팀이 우세한지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것은 소련의 단 한번의 전술축구가 인상에 남는다.
패자는 진실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진실엔 리그전이 없다 녹다운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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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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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독일어 '정본'에서 번역을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여러 독일어 판본과 영어/일어 등의 번역본을 함께 참고하여 번역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이미 좋은 번역본이 있는데 공동의 '개선' 작업이 못된 것 같아 아쉽네요. 단순히 중역이라는 비판은 좀 그렇습니다. 쩝.부가 정보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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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 ||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래저래 여차저차 해서 알게 됐는데, men님과 제가 원래 서로 알던 사이라는 것. (-_-) 맞죠? ^^ 이 블로그가 EM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만큼, 사사로운 말씀을 지나치게 많이 드리면 EM이란 녀석이 기분이 안 좋을 테니 "아는척"은 이정도로 해두겠습니다. 암튼 정말 반갑습니다! ^^흐.. 그러게요,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MEW는 보급용, MEGA는 학술용이란 소리는 정말 처음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MEW도 학술용이라고 해야겠지요. <자본>의 경우엔 단행본으로 따로 나온 것이 또 있을테니, 보급용이라면 그게 보급용에 해당하겠지요.. 암튼 우스운 구분입니다.
무한한 연습 || 반갑슴다^^ 제 생각엔 단순히 <자본>만 번역한다면 MEW로 하나 MEGA로 하나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아요. 만약 번역이 MEGA판으로 된다면, 당연히 MEGA 중에서 경제학 파트인 "씨리즈 2"가 전부 다 번역이 돼야 진정한 의미가 있겠죠. 노력을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선 일어나기 아주 어려운 일이네요. ㅠㅠ
하지만 별차이가 없다는 건 <자본> 1권에나 해당되는 말이고... (사실 여기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차이 문제도 그다지 크다고 볼 필요가 없겠죠. 물론 엥겔스가 추가한 몇몇 부분이 좀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요.) 진짜 문제는 2권과 3권입니다. 강신준 교수가 2권과 3권을 번역할 때 그저 구태의연하게 MEW판만 참조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못할 짓을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번역의 경우엔... 솔직히 특별히 잘못된 부분이 있겠나 싶어요. 좋은 점을 하나 찾자면,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조금 의미가 왜곡된 부분--저는 이게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만--이 원래대로 바로잡히는 효과는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지요.
정말이지.. 독일어 원본으로 번역을 한다는 건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독일은 철학자의 나라 아닙니까. 마르크스의 독일어 저작이 영어로 옮겨졌을 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단순히 "문체"가 왜곡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원문의 "철학"이 사라져버리는 효과 같은 것일 겁니다. 영어판을 대본으로 삼은 중역에서 뭔가 문제를 삼자면 바로 이런 것이 가장 심각한 것일테죠.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독일어 원본으로, 그것도 기존의 번역이 있는데도 굳이 새로 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 바로잡히길 기대하는 게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과연 강신준 교수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바로 이런 점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저는 강교수의 번역의 의의가 "독일어 원문을 대본으로 삼았다"는 것 이상이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뭐... 뚜껑을 열어봐야겠죠? ^^ (사실은 "조금" 열어봤는데.. 아직은 별로...ㅎ)
(아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에 대해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아주아주 크다, 둘 사이엔 심연이 놓여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누군가를--즉 엥겔스를--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 나아가 지난 세기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쉽게 집어들 엄두가 안 나네요-_-;;;)
Heesang || 여기서 보니까 색다르네요 ^^
그러게요. 어차피 뒤늦은 번역인 만큼, 번역자가 이용가능한 여러 판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나은 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적어도 제가 읽어본 "해제"나 "옮긴이의 말"만 봐서는 옮긴이가 그랬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이렇게 보면, 위 글에서도 암시했듯이, 강교수의 번역은 김수행 교수의 번역에 비해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다시 한 번 "공동의 개선작업"이 아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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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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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시겠지만, MEGA 연구의 필요성은 맑스와 엥겔스의 차이 부각보다도, 맑스 내부의 갈등(특히 '자본' 1권, 가치 및 추상노동과 관련해서)을 드러내는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인리시의 연구성과도 승인 혹은 재평가될 수 있을 것 같구요. 강신준 선생이 기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MEW '자본'을 번역했으면 좋았을텐데,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군요. 근데 먼 곳에서도 새 책을 잘 받아보시네요. 배송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부럽습니다~부가 정보
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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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판 자본은 일본에서는 신일본출판사에서 죄다 번역했심다. 아주 십여년 가까이 작업했다나봐요?총 5권+1(주석).
메가 자본을 왜 번역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썰들이 있지요.
뭐 리우스도 리우스 나름대로 메가판이랑 뮤랑 뭐 다 이유가 있어서 나온 걸로 생각해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 참 집요하게 그 작업을 했드라고요. 저도 그 책 나온다고 광고한 때부터 그렇게 구하고자 했으나 못구하다가, 한화로 약 오십만원 쯤 할텐데(무지 비싸쟎아요...?), 무려 꽁짜로 구했다는 건 거의 남다른 혜택이나 은혜를 입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디요? 참고: 리우스에게는 진보불 초보좌파가 구해줬습니다... 것두 꽁짜로.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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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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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별 || 좋은 지적이십니다. 말씀하신 것에 비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의 차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니, 둘의 차이라는 문제도, 무조건적으로 "둘이 다르다"라고 하기보다는, 마르크스 자신의 지적발달 내지는 내적갈등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배송비는 무료입니다. 메일 드렸습니다만, 요새 제가--또!--한국에 있어서요;;;)리우스 || 그 신일본출판사 버전은 예전에 제게도 제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던 것 같은데 안 했슴다. 그땐 단순히 돈이 없어서 그랬던 거 같은데...ㅎㅎ 혹시 초보좌파님께 한벌 더 남아있지는 않으신지... (-_-;)
앞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만약 <자본>만을 번역한다면, MEW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MEGA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이미 2008년이 되어버린 한국의 상황에서는, "원전에 기반을 둔 <자본> 번역"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도 굳이 <자본>"만" 번역하겠다면, 위에서 찬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득불 MEW판을 이용하더라도, 이런 모든 정황을 고려한 "기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얼마전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사회사연구소(MEGA 편찬과 관련이 깊은)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일본인들의 집요함은 알아주더군요.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나라의 정문길 선생도 집요함에 있어선 일본인들과 동급으로 취급되더라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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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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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동산" 안가도 될것 같습니더이번주 부터 장마라고 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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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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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W 어떻게 읽어요?? 메브가 아니고 메바라고 읽는 것 같은뎅. 왜죠< 독어도 werke 인가 그렇던데. 왜 메바냐규... 잘못들은 거냐규...요< ㅋㅋ 뮤라고 읽는 게 참 귀엽다능... 호호홍부가 정보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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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좋죠? ㅎㅎ 독일어로 하면 각각 "엠, 에, 붸"임다. BMW도 그래서 "베엠붸"죠;;부가 정보
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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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님 반갑습니다. 참 재기발랄한 분이신 거 같아요. 또 오겠습니다.^^;부가 정보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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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 ㅍㅎㅎ!! 지금까지 불씨님 덧글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말씀임다 ㅋㅋ장마를 핑계로, 놀이동산보다는 <자본> 읽기를!
아.. 그러나 촛불도 있고 파업도 있네요!
푸하 || 재밌게 보신 것 같아 저도 기분 좋습니다. 앞으로 종종 들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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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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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marius.net/bbs/view.php?id=www_bb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972&PHPSESSID=f8d281577e068d58c75ba6026b48250b 강유원 님의 게시판에 이번 번역에 관한 저간의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글이 있네요. 재미있는 것은 달린 코멘트 중에 EM님의 글이 링크되어 있습니다.^^;부가 정보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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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MEGA는 왜 메가라구 읽냐규... 왜애...... ㅇ<-< 엠에게아라고 읽으라규 뮤만 무시하지 말라규ㅜㅜㅜㅜㅜ부가 정보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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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hm || 정보 고맙습니다. 그렇네요. 이 글이 링크돼 있군요. ^^앙겔부처 || MEW와 MEGA의 차이는, IMF와 OPEC의 차이와 같지 않을까요.. (-_-)
부처님이 너무 다혈질이신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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