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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월 살롱모임 때 낭독한 구절

여성의 발전과 자유와 독립은 여성 스스로, 자기 자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여성 자신을 성적 상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주장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타인의 권리를 거부하라. 즉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임신을 거부하라. 신, 국가, 사회, 남편, 가족 등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라. 그리고 삶을 소박하게, 그러면서도 깊고 풍요롭게 만들라. 복잡다단한 삶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려 애쓰고, 여론이나 대중적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투표권이 아닌 바로 이런 노력으로 여성은 해방되고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었던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여성은 참된 사랑과 평화와 조화를 이루고, 신성한 불을 일으키며, 생명을 부여하고, 자유로운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는 세력이다.

- 에마 골드만, 「여성 참정권Woman’s Suffrage」, 1914년

 

-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선구자들' 중에서

 

 

너는 왜 그렇게 두려워하니? 애인과 친구 들은 내가 갑자기 낯선 사람처럼 보일 때마다 내게 물었다. 나는 애인과 친구에게 말을 하려 하지 않았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한다고 그들이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간단한 일, 이를테면 직업을 구한다든가, 걔들 입장에서는 내가 신청만 하면 쉽게 받으리라고 확신한 장학금이나 상을 신청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자격이란 그들이 아니라 우리처럼 느끼는 문제라고 나는 말하곤 했다. 너는 네가 권리가 있고, 세상에 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생각이 워낙에 너의 본질적인 일부라서 나 같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테고. 너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을 가지지는 못한 사람을 너는 모를 거야. 나는 내가 아는 사실을 갖가지 방식으로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내가 얼마나 두려운지를, 나 자신이 얼마나 부정된다고 느끼는지를 분명히 납득시킬 수 없었다. 나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세상에 사는 동성애자이고, 가난뱅이를 경멸하는 세상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 내가 산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 그런 세상도 있음을 믿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어떤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가령 절망 같은 것은 절대로 충분하게 분석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절망은 직접 살아 봐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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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가부장제 탓이라고, 빈곤과 사회적 멸시는 아버지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나도 종종 내 성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한 채 내 계급적 배경 가운데 남들과 기꺼이 공유하고 싶은 것들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레즈비언이자 노동계급에서 탈출한 사람으로서 나의 삶이 가부장제에 의해 구성된 것처럼 행세하고 싶었다. 아니면 정반대로, 가난했던 성장기가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무시한 채 근친상간으로 인해 여성이자 레즈비언으로서 내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해서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삶에서 문제가 된 모든 것을 단순 명쾌하게 가부장제나 근친상간의 탓으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고 존재조차 부인되는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 탓으로 돌리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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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화의 정치학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레즈비언·페미니스트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여전히 수많은 배제와 공포가 존재하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는지를 검토해 보면 이 신화의 힘은 한층 더 뚜렷해진다.

나는 가난하고 혐오스러운 아이이자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의 희생자로 자라났으며, 고통을 겪는다고 사람이 고귀해지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고통은 사람을 파괴한다. 파괴나 자기혐오, 평생을 따라다니는 무력감에 저항하려면, 경멸받는 데 익숙해지기를 거부하고, 간단한 말로 무시되는 그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인간으로, 흠이 있고 보통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보통이 아니다.

 

- 같은 책, 1장_ 도로시 앨리슨, '계급의 문제' 중에서

 

(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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