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06/06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06
    농삿일을 시작하며(1)
  2. 2005/06/06
    [서평]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1)

농삿일을 시작하며

 국민학교 때 우리집은 지방 소도시의 야산 아랫자락에 자리잡은 마당이 넓은 한옥집이었다. 주인집인 우리 식구들이 살던 본채는 기와를 얹은 한옥집이었고 담을 따라 'ㄱ'자 모양으로 꽤 넓은 화단이 있었다. 화단의 한쪽끝은  시멘트로 만든 아랫채가 있어 세를 놓았다.

 

 화단에는 꽤 큰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그리고 감나무가 있어서 여름엔 무화과 가을에는 시디신 석류랑 달디단 감 (사실은 좀 떫었다)을 맛볼 수 있었다. 화단 한켠에는 사철나무가 있어서 여름에 그 나무그늘에다가 빨간색 고무 다라이를 갖다 놓고 지하수를 퍼서 채워놓으면 바로 수영장이 되곤 했었다.

 

 그 때 어머니는 찬물에다 담궈 놓은 수박을 가져다 주셨고, 수박을 먹고 화단에 씨를 뱉어 놓으면 신기하게 며칠 뒤면 싹이 나 있었다. 할 일이 없을 때 나무 밑 낙옆을 헤집어 공벌레(손을 대면 몸을 둥글게 말기 때문에 우리끼리 부르던 이름)랑 지렁이를 잡았다. 가끔은 땅강아지가 나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매년 담가에 호박이며 박을 심으시곤 했고, 고학년이 된 나는 콩이랑 상추, 배추를 심었다. (뭐 심기만 했다) 어느날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와보니 콩이 하나도 없고 저녁에 콩밥이 나와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또 금방 잊어먹는 나이이기도 했던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아파트나 양옥집에 사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고 그래서 놀러도 많이 갔었다. 나중에 소원대로 양옥에서만 살게 됐고 우리가 이사간 1년 후 원래 살던집에서 연탄가스 때문에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 때 이사가길 잘했다고 하셨다. 또 나중 집이 땅값도 더 많이 올랐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옥집만한 집도 또 없을 것만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평]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인류 역사 최대의 실험

 

 과거에는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계화, 화학화, 대형화가 필수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쿠바는 소규모 가족농 중심의 유기농업이 생산성도 더 높고 당연하지만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지도 않으며 건강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과거 쿠바는 소위 근대화된 방식 (즉 대규모 농장에서 기계와 화학비료, 농약을 사용하는)으로 재배한 사탕수수와 감귤류를 수출하고 식량, 석유, 농기계, 화학비료를 수입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등 동구권의 몰락과 더욱 강화된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수입원과 수출선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농산물의 생산과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생산한 농산물을 (인구의 80%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로 운반할 수도 없었다. 상점의 선반은 텅 비어버렸다. 암시장에서 팔리는 달걀 30개의 가격이 한달치 월급과 맞먹었다. 많은 국민들이 굶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해외로 도망치기도 했다.

 

 경제위기를 맞은 쿠바의 선택은 미국이 기대하던 '피델과의 이별'이 아니었다.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흙을 살리는 유기농법, 직거래 중심의 유통개혁, 육식에서 채식으로의 전환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과 달리 굶어 죽은 사람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식량자급률은 95퍼센트(2002년)를 달성했다.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던 빵과 고기 중심의 식생활은 감자, 고구마와 채소 중심으로 바뀌었다. 농산물은 먼저 가정과 커뮤니티 내에서 소비된다. 수입할 수 없는 의약품을 대신해 허브가 재배되고 있다. 의사들은 근대의학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요법과 대안의료를 재평가해 받아들이고 있다. 아바나에서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거리를 누비고, 바이오매스와 태양전지같은 자연친화적에너지가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아바나시는 도시 중심부에 7백 헥타르에 이르는 거대한 녹지 구역을 만들고 있다. 쿠바를 위해 시작됐던 실험은 세계를 위한 실험이 되고 있다.

 

 책을 덮고 드는 생각은 과연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200만의 아바나도 거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인구 1000만이 넘는 초거대 도시 서울에서 도시농업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전환은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하게 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무궤짝을 놓고 야채를 재배할 수는 없을까? 빌라 옥상에 폐타이어를 놓고 흙을 담은 뒤에 자식놈과 함께 콩을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상상력의 봉쇄를 풀고 보면 의외로 답은 가까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만원/요시다 타로/들녘/200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