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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7일(제1호) 시각장애인에게도 교육권을!

 

<시각장애인에게도 교육권을!!>

 

-대구대학교 장애인교육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파링.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여러분은 누구나 초등학교 사회 책에서 보았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동등한 기본적인 권리를 갖는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권리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요구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므로 외면하거나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냐며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애인의 교육권 특히 고등교육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소수의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상에 불구한 생각이라고 인식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온 권리의 평등원칙에 근거 했을 때 비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데 비해 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은 그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평등이다. 장애인들도 대학에 가면 되지 그걸 가지고 평등이니 불평등이니 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장애인들이 대학에 갈 수 있는데도 괜히 대학에 가지 않으면서 고등 교육권을 이야기 하고 있겠는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대학에서 특별 전형을 실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이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학교에 장애학생을 무작정 입학하게 하는 것은 마치 밥 없는 밥그릇처럼 허울뿐인 제도가 아닌가?

  장애인들도 대학에 진학해서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해서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고, 부모, 형제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대학에 올 권리가 있고 그래 많은 장애인들이 대학으로 오고 있다.

  그러나 많은 장애인들이 입학은 했으되 졸업을 하지 못하고 ‘대학 중퇴’라는 상처를 안은 채, 집에서 혹은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의 고등 교육권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몰라도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가 반드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비교적 사실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초, 중, 고 12년 동안 특수학교를 충실히 다닌 그야말로 특수 장애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을 일컬어 장애인이라 호칭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체험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특수학교는 나 같은 장애인만 모인 그리고 우리 같은 장애인에게 맞추어져 외부와 고립된 시설과 같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 곳에서는 없는 것이 별로 없었고 혹시 있다 하더라도 비교 대상이 없었으니 뭐가 있는지 없는지 잘 파악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에 올 때 나는 아무 걱정 없는 천하태평이었다. ‘대구대학교’에 대해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특수교육의 메카라는 멋진 별명과 내가 다닌 특수학교와 설립 재단이 같다는 일종의 연대감 비슷한 것 뿐 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그리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듯,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 즉 13학년이 되었다.

  제일 먼저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것은 면접을 보기 위해 학교를 찾아 갔을 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서명 운동을 받던 선배들의 모습이었다. 같은 과 친구가 시각장애인인데 책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책이 없느냐고 물어 봤더니, 그나마 장애 학생이 많이 다니는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과 전공 서적은 대부분 제작되어 있지만, 다른 전공 책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내가 들어야 하는 전공 책은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입생 ‘새터’에서 만난 어떤 선배의 말에 나는 실로 큰 충격을 받고 좌절했었는데, 선배의 말에 의하면 내 전공인 특수교육과의 교과서조차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설마 설마 했던 것이 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고 난 후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혼자서 가고 싶은 교실을 마음껏 찾아다니던 내가 학교가 좀 넓어지다 보니 옆에 친구가 없으면 수업도 혼자 들으러 갈 수 없는 바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왜 장애인이라 불리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물론 불편한 것들도 많이 발견했지만 다른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어떤 시각장애인 선생님은 정보 통신 공학을 복수 전공하신 분이다. 그야말로 전국에 몇 안되는 시각장애인 컴퓨터 전공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 선생님은 컴퓨터를 공부한 것을 후회 하신다고 했다. 변변한 교과서도 학습도우미도 없었던 선생님은 그림과 기호가 난무하는 컴퓨터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전공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왜? 우리는 컴퓨터를 전공할 수 없는가? 우리는 교과서가 있고 도와줄 친구가 있는 특수교육과와 사회복지과에만 진학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시간표를 짤 때 같이 수업을 들을 사람이 있는가를 신경 써야 했고, 교재를 워드 작업 맡긴 것이 시험 치기 전에 파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했다. 또 과제를 작성할 때, 인용할 자료가 없어 힘들어 했고, 칠판에 또닥또닥 분필 움직이는 소리의 내용이 무엇일까를 궁금해 했다.

다른 아이들이 정신없이 몰입하는 자막 영화 보는 시간에 나만 혼자 그 쉬운 영어를 알아 듣지 못해 멀뚱멀뚱 강의실 천정만 쳐다보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고, 내 친구는 입구에서부터 강의실 문을 하나하나 세며 복도를 헤매어야 했다.

  학기가 끝날 때쯤 그때까지의 강의 내용을 평가하는 것조차도 나는 혼자서 할 수 없어 친구에게 부탁하고는 그걸 다 읽어 달라고 하기 번거롭고 미안해서 대충 아무렇게나 점수를 주고 말곤 했었다. 강의 평가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성적을 아예 조회해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것이 어디 나만의 경험, 나만의 생각이겠는가? 이것은 지금까지 학교를 다녔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모든 시각장애인 학생의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어떤 것들이 부족하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지원되어야 할지 생각해 보자.

  먼저 교재 문제이다. 현재 대구대학교 도서관에는 70만권이 넘는 도서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70만 장서는 시각장애인 학생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물론, 이 모든 책을 시각장애인 학생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지금 당장 필요한 교과서라도 제대로 제공된다면 한결 공부하기에 편해 질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학기 초에 필요한 교재를 타이핑하도록 맡길 수 있지만, 책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일단 책 없이 수업을 들어야 하고 과제를 하거나 수업 진도를 따라 가기가 매우 곤란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시각장애인 학생이 소속되어 있는 과나 부 복수 전공을 많이 하는 전공의 교과서를 미리 파악하여 전자 도서화 하여 놓는다면 많은 시각장애인 학생이 학기 초에 부담 없이 편리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우미 문제이다.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장애학생 학습 도우미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장애학생이 도우미할 학생을 지정하여 신청하는 방식이라 좋은 점도 있지만, 혼자서 주로 수업을 듣는 학생의 경우 신청하고 싶어도 같은 수업에 아는 사람이 없거나 혹은 수업마다 같이 듣는 사람이 모두 달라 수업 중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시각장애인 학생이 수업을 혼자 들을 경우 강의실로 이동하거나 수업 시간에 상황보조나 활동보조를 해 줄 수 있는 도우미를 학교에서 연결해 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 학생이 과제를 수행할 때 도서관에 있는 책을 참고 하기 어렵거나 완성된 과제를 보기 좋게 편집하고 맞춤법을 수정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 학생의 경우 룸메이트를 기숙사 입사생 중에서만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동이나 생활 여러 측면에서 기존에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나 친한 친구가 필요할 경우가 있는데 그 학생이 기숙사에 입사할 조건이 되지 않으면 룸메이트로 지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동이나 생활면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한 시각장애인 학생의 경우 상호 협의 하에 룸메이트를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저시력 학생들의 경우 강의실 번호를 알리는 글씨가 너무 작거나 위쪽에 부착되어 있어 강의실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건의 했을 때 미관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큰 글씨를 강의실 문 한중간에 붙일 수는 없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는데 미관 보다는 수업을 듣는 학생의 편의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다른 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보조 용구는 학교에 약간 비치되어 있는 실정이지만, 저시력 학생을 위한 CCTV나 확대경이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그리고 브레일 한소네나 노트북 등의 수업에 꼭 필요한 보조 기기의 수량도 무척 부족한 실정이라 입학 초에 아무런 보조기기 없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많다.

  그리고 학교 컴퓨터실의 컴퓨터에는 스크린 리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이용하기 힘든데 컴퓨터 수업을 수강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화면을 읽을 수 있도록 스크린 리더를 컴퓨터에 설치하기 위해서 개인이 별도로 이야기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각 단대 컴퓨터실마다 한 두대 정도의 컴퓨터에 스크린 리더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 홈페이지는 시각장애인 학생이 접근하기에 무척 불편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데 컴퓨터를 일정 정도 다룰 줄 아는 시각장애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학교 홈페이지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현재 여러 관공서나 몇몇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는 이러한 형식의 홈페이지를 운영하여 시각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홈페이지의 다른 부분에도 물론 접근하기 힘들지만, 수업 평가와 같은 중요한 내용을 시각장애인 혼자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이다.

  그 외에도 사범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단대에는 점자로 강의실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자판기나 기타 시설물에도 점자 표시가 누락되어 있고, 학교에 설치된 현금 인출기를 시각장애인 학생 혼자서 이용할 수 없는 터치스크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시각장애인 학생이 학교생활을 하기에 무척 불편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인 고등 교육권이라는 큰 타이틀 속에는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포함 되어야 하겠지만 시각장애인 학생 당사자로서 내가 느끼고 있는 문제점들,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을 우리학교의 상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후배들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주변의 차별적인 환경들을 하나하나 변화 시켜 가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와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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