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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일지4] 걷고 또 걷고...

14일 대장정 네번째 날의 행진,
대야 농민회에서 보령까지 왔습니다.
영진상 강의를 들으신 분의 소개로 하루밤 묶어가게 된 곳이죠.

오늘은 처음부터 긴장된 분위기로 시작했습니다.
40키로를 하루에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도부(지도를 보고 우리의 길을 알려주는 사람들, 대략, 영진상과 현과 민과 몽사와 추장과 곰)는 지도를 들추고 머리를 맡대고 내일 가야 할 길을 체크했습니다.
산을 넘어 넘어 갈 것이냐, 21번 국도를 타고 쭉 갈 것이냐!
21번 국도를 쭉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모두 약간 긴장된 모습이었죠.
더구나 그 전날 이미 컴배트 팀은 가장 넘기 힘들다던 3일째 고비를 넘고 있었거든요.
(다리를 내밀고 손을 내밀고 심지어 누구는 배를 내밀고 침을 맞았죠. 종민님의 생맥산에 이어 침이 여럿 살렸습니다)

# 아침 7시 반: 멀고 먼 행진 시작

약간 습했지만, 그다지 푹푹 찌진 않았죠.
산과 풀이 많은 곳이라서 그런지, 더워도 금방 상쾌한 바람이 땀을 식혀줍니다.
오늘의 길잡이는 늘 그렇듯, 만세와 현민. 깃대는 현민과 성국. 길을 지켜주고 선두의 보조를 정하는 건 영진상과 곰. 선전선동은 몽사. 이렇게 되었죠.
오늘은 모두들 “걷기”가 어떤 것인지 절실하게 느끼는 날이 될 게 분명했습니다.
시작부터 속도가 무척 빨랐습니다. 50분 걷고 10분 쉬는 규칙도 오늘은 적용되지 않거든요.
시간이 아니라 거리로 쉬는 시간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지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차선 도로가 사차선으로 바뀌면 쉽니다”
--;; 그러나 아무리 가도 가도 사차선은 나올 생각을 않더군요.
이런 상태에선 도저히 생각을 할 수도, 구호와 노래에 집중하기도 힘듭니다.
더구나 보령가는 국도는 왜 이리도 꾸불꾸불하고, 오르막길이 많고, 또 온통 시멘트로 발라져 있는 것일까요?
꾸불꾸불하면 앞 사람과 적절한 간격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오르막길은 정말 숨이 찹니다. 아무리 완만한 오르막길이라고 해도, 종아리에 힘을 빡 주고 걸어야 하죠. ^^
흙바닥으로 가면 물집이 별로 잡히지 않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돌과 흙, 무엇보다 듬성듬성난 풀들이 완충작용을 해주거든요. (오늘 걸은 대부분이 발바닥에 커다란 물집이 잡혔어요.) 아스팔트는 대개 논 바로 옆까지 말려 내려가듯 덮혀져 있어서 도저히 어찌할 바가 없었죠.,
아침이라서 조금은 조용하게 걸었죠. 물론 쉴 때마다 외치는 구호는 여전했지만요.

# 대략 11시: 불교 세미나팀원들이 도착!
오르막길을 열심히 오르고 있을 때였어요.
많이 보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봉고로 한 차가 지나가더니, 곧 붉은 옷을 입은 불교셈나팀과 상봉했습니다.
(아... 우리는 불교팀과 만나면 잠시라도 쉬게 해줄 줄 알았죠... 켁!)
불교팀은 완벽한 대오를 갖추고 와서 바로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그래도 행진대열이 늘어나니 힘이 번쩍 나기 시작했습니다.
걸을 때는 함께 걷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 사람의 발을 보고 걷고, 주변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서 소리를 내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대한 지치지 않은 듯이 걸어야 하고, 적절한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구호를 하거나 노래를 하는 경우는 언덕을 올라 갈 때 깡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지쳤다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민가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는 편이 힘이 납니다.

# 대략 12시 : 우리의 돌땡이 지도부, 홧팅!

큰읿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해지기 전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진상이 서두로서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죠.
거의 1시간엔 6키로 정도를 걷는 강행군이었죠.
사람들의 “언제쉬어요.” “얼마나 남았어요”
보채는 소리에도 굳건히 속도와 거리를 지켜냈습니다.
그것도 안정봉을 휘드르며 길을 잡아 주면서 말이죠.
어쩌면 그렇게 미동도 없이 빨리 걷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어요.
“마음으로 걷는 거 아니야, 마음으로” 영진상은 결국 몸살에 걸렸습니다. ㅜㅜ;

만세는 계속해서 지도를 붙잡고 다녔습니다.
현민이와 성국이가 깃발을 들고 만세와 의논을 했죠.
계속해서 차 안의 채운 언니와도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도 걸어가면서 동시에 앞으로 걸어갈 길을 동시에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걷는 것 만으로도 구호조차 못할 만큼 힘든 순간이 자주 찾아오거든요.
우리의 지도부는 걸어가면서 먼저 달려가 길 알아보고, 찻길에서 건너주고, 대오 정리해 주고 정말 힘을 필요로 하는 일들을 했죠.
그러니 잠시 있었던 데쟈뷰 현상 정도는 “죄송합니다!” 하지 않아도, 이미 온마음으로 이해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었죠. 더구나 차가 씽씽 달리는 차도로 친구들을 인도하지 않으려는 마음씀 때문이었는 걸요.
아시다시피, 삼일간은 너무나 순탄했고, 심지어 지름길을 발견하기도 했잖겠습니까!
“조직이 시키면 우리는 한다”는 우리처럼 이쁜 지도부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바꾸어서 외쳐야 합니다. “지도부가 뻥쳐도 우리는 한다”-;;

우리의 선동대장 몽사는 전감과 마이크를 서로 차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동대장만큼 힘이 필요한 일도 드믑니다. 노래를 하면 가사 불러 줘야 하고, 구호 생각해야 하고, 간격이 떨어지면 격려하면서 대오 정리해야 하죠.
그러나 그보다 더 훌륭한 건, 노래, 구호, 침묵, 독창, 파도타기 등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것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할은 지도부 만큼이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특히 오르막길을 갈 때 노래와 구호를 하는 투쟁의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을 이끄는 우리의 지도부(지도를 보는 부) 홧팅!

대략 12시 30 : 고전학교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다.

워낙 먼길에 약간의 실수가 겹쳐지니 엄청난 속도로 걸었고, 쉬는 시간도 없었거든요. 결국 우리의 지도부 영진상은 몇명을 골라, 점심 먹는 곳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그때만이라고 타라고 하셨어요.
도착하니, 불교 셈나의 점심식사 준비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습니다.
김밥과, 음료수와 호도과자와 과일 모두 모두 감사히 먹었습니다!
(실은 그 전에도 쉬는 시간마다 채운의 버라이어티한 간식을 끊임없이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 금강의 노래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를 금강 앞에서 선보였습니다.
그 노래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점점 가사가 늘어나 벌써 5절이 덧붙여졌답니다.
가사도 멋지고, 행진할 때 리듬도 맞고, 배우기 쉽고, 외우기 쉽고, 가사를 붙이기도 좋아서 정말 훌륭한 노래입니다. 곧, 뜰 것 같습니다. ^^


1시 30부터: 자기 자신과의 투쟁, 속력이 빠른 행진이 시작되다.

중간 중간 차를 얻어탄 사람도 아마 오늘이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힘든 코스였죠.
추장의 말처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했습니다.
근육통은 기본이고 물집이 잡히고 몸살까지 걸린 사람도 있죠.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마 금방 나을 겁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완주이건 아니건 모두 정말 열심히 걸었다는 것이죠
40 키로미터를 함께 걸어 보령에 도착한 거죠! 그것도 해가 있을 때.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분명한 일이었지만, 혼자였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걷는 것이 상당이 불편하게 되었지만요. (오늘은 또 어케 걷는다~!)

6시: 황해숙 박문호 선생님 방문
황해숙 선생님께서 호화판 저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전복죽은 맑은 국물에 전복을 30마리나 넣은 것이었죠.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우리 호강했습니다.
곰숙씨는 “아니, 이렇게 잘 먹어서 투쟁이 되겠어요?” 하셨습니다. 오.. 특히 잡곡 넣은 누릉지에 수많은 반찬들... 피곤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도 재윤이가 놀러왔죠. 재윤이는 정말 말을 잘합니다. 이를테면
“추워? 내가 안 춥게 해 줄게. 춥다고 생각하면 정말 춥고, 안 춥다고 생각하면 안 추운 거야” ^^; 정말이지 박문호 선생님의 따님이라 아니할 수 없죠. ^^

7시40분: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자.
지식인과 실천이라는 문제로 성환선배가 써온 길을 읽고 토론회를 시작했습니다.다들 너무 지친 탓에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죠.
성환선배의 글은 “지식과 윤리”라는 주제로 ‘공부’가 단지 글자로 책 읽는 것만이 아님을, 자기를 넘어서고, 삶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지식인에게 ‘현장’이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했는데요. 몰라서라기 보단, 여전히 ‘공부’가 어떤 경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 있진 못한 것 같습니다.
새만금이 새만금에만 대추리가 대추리에만 공부가 공부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선인들의 ‘공부’에 대한 의미가 전해 지지 못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문제건 그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제기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문제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죠.
그 외에도 박문호 선생님의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볼 때, 인문학적인 경우와는 달리, 어떤 점에 중점을 두게 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인문과학에서 자기를 버리고 비우는 일이 바로 자기극복이라면, 자연과학에서는 오히려 어떤 지식들을 쌓아가는 과정이 어떤 천리를 깨닫는 일이 된다고 하셨죠.
새만금의 이야기를 하면서 강한 말과 울림이 있는 말은 삶 속에서 나오고, 소수자되기의 중요한 것은 공감의 능력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추장님은 요즘 관심을 가진 테크노트라트 문제를 ‘사회과학 지식인’의 탄생과정과 관련해섬 말씀하셨는데요. 골자는 이제 지식인은 그 자체로 권력이 되었다는 것이죠. --;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가 저물어갔습니다.
오늘은 많이 힘든 날인 만큼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걷으면서 질문한다는 것에 대해.
걷는 데 집중하면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하면 걷는 데 집중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언제건 생각하지 않을 때 조차 강하게 우리를 붙드는
단순하고 강한 질문을 갖고 있는 것이겠죠.
그건 아마 이렇게 걷고, 새만금이나 농민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질문을 더 강렬하게 서로 다듬고 교차시켜 가는 것이겠죠.
어디에서나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질문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가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연구실에서 수고하는 홈키파와 에프킬라님들도 화이팅.
홈키파가 바로 콤배트고 에프킬라가 바로 콤배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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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딸기소녀, 소수자-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걷는다

또 하루의 태양이 떠오른다. 책상 앞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따사로운 봄햇살에 어느새 살결도 제법 그을린 듯. 그러나 내리 쪼이는 햇살에 익어가는 것은 살결만이 아닐 것이다. 햇살 차곡차곡 담아 곡식이 영글고, 걸으면서 던지는 우리들의 질문 또한 농익어가겠지.
 
대장정 3일째. 오늘 하루도 힘찬 결의로 시작했지만, 그간 쌓인 피로는 슬슬 우리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발을 절룩이는 사람도 있고 숨이 가빠오는 사람도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아스팔트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왜 걷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곤 한다. 오직 이 길을 다 걸어야 오늘 하루 몸을 누일 곳에 도착하겠지라는 생각뿐. 
 

그러다 옆의 친구가 외치는 구호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다.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한미 FTA 반대, 투쟁!” 또 다른 친구들은 노래를 불러 기운을 북돋는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 빨간 자전거가 직접 곡과 가사를 지은 대장정의 주제곡이다.
 
거기에 ‘민중시인’ 고추장이 새로운 가사를 덧붙여 어느덧 가사가 10절에 이르렀다. “새만금에 둑을 터라~백합조개도 함께 외친다” “산을 헐어 바다 메우는 죽음의 행진 당장 멈춰라~” “만물 죽이는 자본이냐~만물 하나된 생명이냐~” 여럿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축 쳐졌던 발걸음에도 다시 힘이 붙는다. 함께 걷는 친구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해답을 찾는 건 각자의 몫이라 해도, 함께 품었던 질문을 잊지 않는 것,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함께 걷는 친구들 덕분이다.
 
하루를 꼬박 걸어 드디어 군산시 대야면에 도착했다. 농민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분들은 한미 FTA에 반대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다는 우리들을 며칠이고 손꼽아 기다리셨단다. “서울에서 온 젊은이들, 그리도 고마워”라고 손수 쓰신 글을 나눠주시는 분, 아무 것도 준비 못해 미안하다며 수건 세 장을 수줍게 건네시는 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농약을 거의 쓰지 않고 키웠다는 쌀을 선물하신 분... 그분들 이마에 짙게 패인 주름살만큼이나 깊은 정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가만히 놔둬도 더 이상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농촌을 왜 기어코 죽이려고만 하는 건지..” 한 농민분의 탄식이다. 개발독재 이래로 산업화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농민들은 이제 한미 FTA로 다시 한 번 결정적인 희생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 측(미국국제무역위원회, USITC)의 발표로도 FTA로 인한 한국의 농업생산량 감소는 최대 44%에 이를 것이라 한다. 물론 정부는 농업을 포기하는 대신 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거라고 장담한다. 그나마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겠지만. 하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60줄의 농민들이 과연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얻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우리를 눈멀게 해온 경제성장률 몇 %, 국민총생산 몇 만 불이라는 추상적 수치들. 그러나 그런 수치들은 우리네 삶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 수치가 누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누구의 주머니를 불렸는지, 그렇게 늘어난 수치로 과연 우리 삶의 질이 높아졌는지, 그리하여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행복해졌는지... 그렇기에 이제 소수자들이 말하고 있다. 나의 삶과는 무관한, 아니 심지어 내 삶을 희생시키고 파괴하는 '전체'의 이익이란 단지 허상에 불과함을 폭로하고 있다.
 
물길이 끊겨 썩어가는 갯벌 위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는 새만금의 조개가,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겹겹이 둘러친 철조망 안에서 앙상하게 여위어가는 대추리의 보리가, 단지 최소한의 활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한강다리를 온몸 굴려 건너야 했던 중증장애인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국민'총생산량을 키워가면서도 정작 '국민'은커녕 인간으로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리고 이곳 대야면의 농민들이...
 
이 목소리들은 여럿이면서 또 하나다. 자신들 생존도 위태로운 마당에 새만금 방조제로 갯벌을 잃은 계화도 어민들을 걱정하고 저 멀리 대추리 농민들 일을 제 일처럼 분노하는 이곳 농민들에게서, 모든 소수자들이 서로 친구임을 배운다. FTA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선물이라고 했던 한 농민활동가의 말씀도 이런 뜻이었다. 한미 FTA라는 재앙이 이 여러 흐름들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이제 머지않아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이 여러 개의 목소리들이 서로를 증폭시켜 큰 함성을 이루리라. 그래서 우린 걷는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곳곳에서 웅성이는 소수자-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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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남녘 들판 가득 찬 탄식…&quot;차라리 죽어야&quot;

발바닥에 느껴졌던 갯벌의 감촉을 기억하며, 백합 조개들의 마지막 몸부림에 눈물 흘렸던 한 어민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우리는 오늘도 걸어 나갔다. 내딛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은, 매 걸음에는 우리가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약속들, 내내 안고 가야할 고민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농민이 써 준 글 ‘서울 젊은이들, 고마워’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서 다다른 곳은 군산시 대야면 접산리. 마을의 지형이 꼭 나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나부뫼’라는 이름이 한자어로 바뀌면서 ‘접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곳 쌀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며, 농민 회관 앞 계단에 걸터앉아 우리를 반겨 주시던 농민 분들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온다며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계시던 농민 분들은 ‘서울에서 온 젊은이들, 그리도 고마워’라는 제목을 달아 손수 쓰신 글을 나누어주셨고, 생각하고 계신 것들에 대해 생생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한미 FTA라는 건 추상적인 지표와 막연한 환상으로 가득 찬 무언가가 아니라,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그분들의 일상을 헤집어 놓을 실제적인 위협이었다. 가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농약을 거의 쓰지 않으신다던 분, “이제 더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텐데, 왜 그렇게 기어코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하시던 분, 지난 해 여의도에서 항의하다가 맞아서 팔과 다리를 다치셨다던 분, 그런 그 농민 분들의 삶에 대한 위협 말이다.

차라리 죽어야 한다고,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는 말은 결코 접산에서 처음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부안 대추리 집회에서도 그랬고, 계화도 어민들에게서도 그랬다.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을 강요당하며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이 사람들의 심정만큼 처절한 것이 있을까.

FTA는 우리가 받은 하나의 선물

한편 접산리의 농민 활동가 한 분은, 이 FTA라는 것을 하나의 선물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해주는 선물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이 싸움의 길 위에서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엮음으로써 다양한 삶들의 권리를 지켜낼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나 재앙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심지어 선물이라 표현될 정도로 모두의 삶을 진실하고 굳건하게 만들어 줄 싸움의 길.

   
 

접산리 농민 분들의 고민들 속에서 그 희망을 본다. 그분들의 걱정은 자신의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계화도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녀. 조개를 못 캐잖어. 이제 갯벌이 썩어나가서 고약한 냄새가 엄청나게 날거야.” 논밭에 씨 뿌리고 거두는 것이나 갯벌에서 조개 캐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며 어민들의 처지를 걱정하셨다.

대추리 주민들의 삶이 군화 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것에 분노하시며 며칠 후에 있을 집회에도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접산리 농민 분들의 목소리는, 그 사건들이 저 멀리서 일어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문제임을, 모두 함께 싸워서 이들의 삶을 지켜내야 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농민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던 든든함은, 바로 첫째 날 부안에서 진행된 대추리 촛불시위에서 보았던 희망의 느낌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농사지은 쌀 조금 줄테니 가져가”

하루 종일 걷느라 지쳤을 테니, 내일 또 걸으려면 일찍 자야 할 테니 어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시면서 농민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다가오셔서 쑥스럽게 웃으시며 말씀을 꺼내셨다. 지으신 쌀을 조금 주고 싶다고.

그 분은, 브랜드가 붙어 값이 비싸지는 것도 아니지만 가능한 한 농약을 적게 써서 농사짓는다고, 한 톨이라도 우리 쌀 먹는 사람은 복 받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었다. 아무 것도 준비를 못해 미안하다며 수건 세 개를 건네주시는 분도 계셨다.

   
 

일 년 내내 일해도 소출이 넉넉하지 않으니 돈을 거의 못쓰고, 가끔 있는 술자리에서도 늘 사람 수대로 나누어 계산한다던 한 농민 분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분들의 마음 쓰심이 더욱 고맙고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결코 계산될 수 없는 이 정성과 넉넉함이, 삶의 모든 것들을 자본으로 환산시키려는 어처구니없는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도록 열심히 싸워야겠다.

국익이라는 거대한 환상에 맞서 하나하나의 삶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 치열한 고민들을 몸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기 위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걸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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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일지 3일차] 그림일기를 비롯한 사진들~

1. 쉬는 시간

 

디디와 소야가, 오늘 사진을 찍었답니다.
지금 농민회 사무실에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어요.
자 생중계, 시작됩니다! 뚜둥!!

 

 

2. 이너뷰~

지금 이 사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겠죠?

이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전감 다큐메너리 -_-;

 

 

3. 길 위에서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
우리 승리 하리라!

이 노래가 지금 몇절째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무려 뚜구두구두구두구

11절!

켜허!

 

 

4. 오늘의 늬우스 1탄


 
 
5. 오늘의 늬우스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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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산책가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어요~!

 

 
 
오늘은 더 늘어났지 뭐야.

어제 같이 산책을 나갔던 친구가 행진하러 내려가면
그새 행진하고 돌아온 친구가 올라오고...

대학로에서도
컴배트와 함께 소리치고 있습니다.


김강이 구호를 넣어주고
현식이가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디디가 각 잡아주고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대학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트레비스도 함께 갔어요.

우리 홈키퍼들의 밝고 힘찬 얼굴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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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일지3]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

장정일기 3일차 [길 위에서]

 

5월 13일 토요일

 

 0.

  새벽 네시, 디디, 소야, 지원 서울 출발

  일곱시 정각 대야농민회 도착. 방울토마토 한박스와 초코바 무더기랑 선크림 등등 선물을 한아름 들고 감~

  다들 아침 준비로 부산한 중이었는데, 검게 탄 얼굴이 싱그러웠음.

  몇명은 방안에서 새로 피켓을 쓰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방 정리, 짐 옮기느라 정신없었고,

  서서히 숙소 앞에 나와서 대오를 정비하기 시작함.

  둥그렇게 모여서 가벼운 아침체조와 구호로 출발!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한미 FTA 반대한다, 투쟁!!"

 

 1.

  날씨는 화창, 바람 한점 없었음.

  지도를 든 만세가 선두, 그 뒤로 깃발을 든 성국과 현민, 그리고 영진 법사가 광선검 들고 주변을 통제함.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우리는 그저 룰루랄라 신났지만,

  지영과 희선의 절뚝거림에 약간은 불안했다.

  오십분의 행진 후 10분간 첫 휴식

  천천히 따라오던 간식 공급대는 휴식 때마다 미니호떡, 오이, 토마토, 오렌지, 초코바, 초코파이 등등을 무한대로 공급함.

  종영오빠와 세진언니에게 감사!

  감독님도 열심히 뛰어다니시며 컴배트팀을 촬영하심. 인터뷰까지 꼼꼼이 챙기셨는데, 나중에 정말 괜찮은 작품이 나올듯 기대됨.

  

  휴식이 끝날때마다 구호와 노래로 흥을 돋구웠는데

  김강이 만든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가 얼마나 훌륭한 노래인지 새삼 실감.

  새만금과 군산을 지나는 동안 이 노래는 9절까지 불어남

  게다가 오늘도 하루종일 고추장은 가사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음(연구실 풍경에 사진 확인 하시라~두둥)

  그동안 컴배트의 여정과 배움이 다음의 가사에 절절이 담겨있음

 

 "새만금에 둑을 터라~ 백합조개도 함께 외친다~"

 "산을 헐어 바다 메우는~ 죽음의 행진 당장 멈춰라~"

 "개발의 망령 몰아내고~ 생명들에게 활짝 웃음을~"

 "만물 죽이는 자본이냐~ 만물 하나된 생명이냐~"

 "에프티에이 몰아내고~ 생명권을 지켜내자~"

 

 민중시인 고추장의 작사활동은 10절에서 벽에 부딪혔는데,

 "땅을 뒤엎은 농민들은~ 투쟁의 씨앗 뿌우리이네에~" 에서

 "뿌우리이네에~"부분이 어색하다는 중론!!

 함께 이 부분을 해결해보셈~

 

 2.

  어느덧 11시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배고픔을 호소하기 시작,

  그린비 식구들을 실은 자동차가 도착하자 모두 환호!

  그러나 차에서 그린비 식구들은 빈손이었고, 너무 실망한 대중들 분노를 8자 구호로 표현

  "배고파서 못걷겠다 간식을 공수하라"

  물론 그린비는 빈손이 아니었으며, 폭도들에게 초코파이 하나씩을 물려 점심시간까지 진정시킴.

  12시, 금성철새조망대에서 그린비가 준비한 럭셔리한 도시락을 맛나게 먹음! 감사함다~^-^

  밥을 먹고 함께 모여 영진 법사가 어제 쓴 글에 대해 들었음.

  차라리 재앙이 닥쳤으면 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있는 새만금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이 무거운 시대에 유쾌함을 잃지 않고 싸우기 위해서는 훨씬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함.

  다시 행진.

  시간이 지날 수록 몸은 무거워지고, 다들 지치기 시작함.

  그러나 여기에 질세랴~ 몽사의 선창으로 울랄라, 텔레비젼 구호를 비롯한 오만가지 구호를 외치고

  한 사람씩 나서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

  꼼짝도 못할 것 같았는데, 노래만 부르면 다들 기운이 또 나는 게 신기했음.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

  계속 힘겨워하던 희선이 결국 차에 오름.

  금강 하구둑을 지나는 데, 서천지역 민노당 활동가 한 분이 동참했음.

  함께 숙소까지 행진.

 

 3.

  숙소 앞에 모여 간단히 그동안 여정에 대한 소회를 나눔.

  세진 언니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음.

  "소수자 되기를 할수록 더 많은 친구를 만난다!"

  소수자가 된다는 것, 내가 소수자임을 안다는 것은

  내가 만물들과 함께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몸으로 깨닫는 것이고

  그 길에선 언제나 더 많은 친구를 만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공감했다.

  저녁 시간은 박문호, 황해숙 선생님과 함께 했다.

 숯불갈비, 부추김치, 우엉, 영양밥, 육개장 등등 푸짐한 음식,

 법성계과 물리학을 통해 배우는 "휴머니즘을 넘어선 공생"의 지식으로

 우리의 배와 머리를 둘 다 빵빵하게 불려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아, 몇 마디의 애교로 언니 오빠들을 쓰러뜨린 "재연"이에게도 고마움!^^

 

 마지막은 서천 농민분들과 함께 했다.

 개발로 인한 끔찍한 환경 파괴를 지켜보면서도,

 주민들이 갖는 현실적인 기대감을 무시할 수도 없는,

 지역 활동가 분들의 고충에 대해서 들었다.

 지식인들이 서울에서 지방을 공부하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직접 지방에 와서 활동하기를 바란다는 그분들의 제안,

 "좋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 필요한 실정이라는 그 분들의 말씀이

 안타까웠다.

 

 4.

 한미 FTA, 대추리, 모든 소수자의 문제들이 하나로 엮이는 것 처럼

 우리의 질문들과, 그에 대한 대답 또한 어쩌면 하나로 엮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박문호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처음 발상했을 때가, 바로 깨다름에 이르른 때다."라고.

 

 우리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걷기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걷기 시작할 때만 대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것.

  

 박문호 선생님 강의 중에서 하나 더. 법성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비는 만물을 이롭게 하기 위해 허공에 가득하지만,

  중생은 자기 그릇 만큼만 받아간다."

 

 만물을 이롭게 하기 위해 허공에 가득한 비를 모두가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그 흐름을 단절하는 자본을 거부하는 것.

 

 우리는 내일도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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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18일 물 한모금 없이 버텼을 백합, 눈물난다

두 번째 날. 계화도에서 출발한다. 이곳은 새만금 문제의 중심이다. 여기에 서면 초원처럼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다. 물이 들고 나고. 어민들의 삶도 저곳에서 그처럼 들고 났으리라. 지난 밤 주민들은 저 바다를 이야기했다.

자식 젖 물리려는 듯 몰려오던 바닷물

단지 삶의 터전으로서 바다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곳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저들은 바다에서 자신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자들을 보았다. 사람의 입이 없지만 충분히 말하고 있다. 밀물 때면 저 바다 쪽에서 갯골로 마치 자식에게 젖이라도 물리려는 태세로 바닷물이 밀려온다.

   
 
지난달 22일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다. 그야말로 바닷물의 드나듬을 막아 버린 거다. 이걸 무슨 능력쯤으로 여기는 자들도 있다. 함께 있던 우리를 안내한 주민 고은식 씨는 이제 갯벌이 아니란다. 하기야 바다를 잃은 마당에 무슨 면목으로 그것이 갯벌일 수 있겠는가.

8년 관록의 부녀회장님은 며칠 전 이야기를 했다. 물길이 막힌 지 18일 만에 비가 내렸다. 수줍게 내린 비에도 갯벌은 난리가 났다. 평소 같으면 숨구멍만 보였을 백합이 아예 입을 벌리고 바깥으로 몸을 드러냈다. 더구나 벌로 치면 여왕벌 격인 ‘쿠리’가 갯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저게 사라지면 번식이 그치겠지.

‘쿠리’ 네가 사라지면 번식도 끝이겠구나

주민들은 그냥 조개를 주웠다. 그걸 보고 있던 부녀회장님은 가슴이 너무 아팠단다. 18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그냥 버텼을 녀석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저 놈들이 저렇게 사라지면 백합은 이곳에서 영영 끝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또 가슴 아프다.

고은식 씨는 말한다. 어민들이 나서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갯벌에 사는 저들이 가장 절실하게 반대할 거라고. 눈물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차라리 끝을 보고 싶단다. 바다가 뭔가 하길 바란다. 그것은 분명 재앙이지만 그래서 진실을 보여준다. 그래야만 새만금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불행한 희망이다.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올라있는 배. 힘없이 널 부러진 어구들. 바다에 나갈리 없는 부표들. 폐허가 된 농촌을 보는 듯 하다. 나는 어릴 적 뱃고동 소리에 새벽잠을 깨곤 했다. 집에서 바다까지 5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가의 생기와 어부들의 기운을 안다. 포구에서 고기를 푸는 소리. 새벽 어판장의 불야성.

고기 풀러나간 남편 새벽밥 해 가는 아주머니. 계화도 어부가 바다에 고기잡이 나가고 싶단다. 아주머니는 갯벌에서 조개 하러 가겠단다. 이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요구인가. 그런데 정부는 그들의 바다를 없애 버렸다. 개발 이야기하면서 어부의 일을 뺏은 자들이다.

오질 않을 미래 들먹이며 현재를 탈취한 자들

오지도 않을 미래를 들먹이며 현재를 탈취하고 그것을 자꾸 과거로 만들어버린다. 거짓 미래를 통해서 실제 미래가 사라지는 것을 이곳에서 본다. 갯벌에서는 생명들이 사투를 벌이는데 뭍에서는 지방 선거 현수막으로 난리다. 모두 새만금 개발은 자신이 적격이란다. 저 거대한 생명을 죽이는 데 자신이 최대 수완가라는 말일 테다. 코메디다.

새만금을 벗어났다. 계화도 저쪽 편인 군산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새만금을 절대 벗어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전북 어디라도 새만금 개발의 진동은 있기에. 아니 실은 새만금은 벌써 지역을 벗어났다. 그것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부를 앞세운 자본은 이제 생명 자체를 위협한다. 지칠 줄도 모른다.

아마 우리의 걸음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동진강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행진의 속도를 내니 걷는 게 느껴진다. 근육이 조금씩 뭉칠수록 걸음은 차분해진다. 걸음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만경강을 지났다.

오랜 동안 새만금에 물을 붓고 흙을 토한 두 물줄기가 아닌가. 동진강이나 만경강은 여전히 평온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슬프다. 입이 막힌 채 흙을 토하고 물을 쏟아내면 결과는 뻔 하다. 거스를 수밖에. 강은 범람할 것이다.

강은 범람할 것이다

   
 
군산에 도착해서 농민 한 분과 이야기했다. 얼마 전 대추리 다녀왔단다. 농사 지어본 사람은 다 안다고 말했다. 자기 손수 모내기 한 논에다 시멘트 쏟아 부으면 뉜들 눈 돌아가지 않겠냐고.

거대 자본은 국가이익이나 개발 운운하면서 어민과 농민뿐만 아니라 저 자연 모두의 생명권을 박탈한다. 전체 발전을 위해서 불가피한 거라고 위협한다. 새만금도 불가피하고, 대추리 미군기지도 불가피하고, 한미FTA도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어쩜 그렇게 꼭 필요한 일만 할까. 이런 불가피성은 아무래도 저들에게 돌려 줘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저 위협을 이제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뉜들 죽고 싶겠는가. 이제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할 것 같다. 이건 최소한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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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잘못 출제된 시험지에 답하지 않기 위해, 걸으면서 묻는다

이주하는 몸이 공명한다

‘한미 FTA 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수유+너머 대장정 이틀째, 우리는 숱한 갯생물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계화도 갯벌에서부터 동진강을 지나 군산을 향했다.


걷기 위해 묻고 묻기 위해 걷는다지만, 어제의 늦은 세미나와 오늘의 긴 행진 일정이 종아리 근육을 경직시킨다. 책상 앞에 붙박혀 있던 몸이 투정하기 시작한다. 책으로부터 떠난 몸의 떨림이 ‘시설’에서 떠난 장애인의 몸과 공명하고, ‘고향’을 떠난 이주노동자들의 몸과 공명한다. 책상은 나의 ‘시설’이었고, 나의 ‘고향’이었다. 이동할 수 있는 것은 권리이기 전에 능력임을 깨닫는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는 백합과 쿠리의 이주 능력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자 갯벌은 생명을 잃고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렸다.

한미FTA 협상을 고집하는 정부는 ‘개방’의 필요성을 말한다. 사기다. 그것은 진정 개방이 아니라 폐쇄이다. 한미FTA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가능성을 막아 버리고, 소비자들이 몸에 좋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 버리며, 뻔하고 재미없는 할리우드 영화 말고 참신한 스타일에 현실적인 삶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영화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가능성, 보다 싼값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 교육이 부의 상속 수단이 되지 않고 배움과 기회의 공간으로 될 가능성, 무엇보다 전쟁의 공포에 떨지 않고 맘 편하게 살 가능성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자본의 폐쇄회로에 가둬버리는 한미FTA는 새만금 물막이공사가 갯생물들의 생명을 빼앗듯이 우리의 생명을 스러지게 할 것이다.

만물은 하나다. 다시, 하나가 만물이다.

앞에서 걷고 있는 민이의 새파란 머리에서 여러 가지 표정이 읽힌다. 지난 5월 4일 대추리에 들어갔다가 전경한테 붙잡혔었다. 왠지 자꾸 눈물이 나와 엉엉 울었더니 전경이 “정말 미안해요” 하며 풀어주더라는 얘기가 다시 생각난다. 어제 해창 갯벌에서 백팔배를 하며, 민이의 눈물이 약함의 표현이 아님을 알았다.

전투경찰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가? 민이의 눈물은 군홧발에 짓밟힌 벼의 아픔에 공명한 눈물이었고, 50년 세월을 바쳐 일군 농토를 빼앗긴 대추리 농민들의 아픔에 공명한 눈물이었으며, 남의 나라 전쟁기지를 위해 제 나라 제 또래 젊은이에게 진압봉을 휘두르게 만든 권력자의 약함에 공명한 눈물이었다.

만물의 아픔에 공명할 때 눈물은 강함의 표현이 된다. 천성산 도룡뇽을 통해 다른 생명과 자연의 아픔에 공명한 지율 스님은 홀몸으로 국가권력을 떨게 하지 않았는가?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은 정치인들의 숱한 ‘제스처’가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들과 함께 하겠다는 불제자의 오롯한 실천이었다.

권력과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분명 ‘미친짓’이었다. 도룡뇽의 생명을 위해 2조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시키다니, 개발주의자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지율스님의 그 광적인 몸짓은 무수한 과거와 무수한 미래의 생명들과 교감하는 언어였다. 우리는 지금 다수(결)의 논리 속에 억눌린 그 소수자의 언어를 찾기 위해 걷는다.

Be the Minor! Be the Multitude! 소수이면서 어떻게 복수일 수 있을까? 우리는 저 멀리 프랑스 68혁명의 철학자가 던진 이 화두를 지금 한국사회에서 풀려고 한다. 다수(결)의 논리는 결국 하나를 지향한다. 월드컵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 것이다. 그 하나의 열광 속에서 월드컵 공인구에 잠재된 소들의 주검과, 그 소들의 사료용 옥수수와, 그 옥수수를 위해 파괴된 아마존의 밀림과, 소가죽을 꿰매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의 짓무른 손가락들은 망각될 것이다. 정부는 월드컵의 열광을 틈타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할 것이고, 대추리의 땅에서 농민들을 몰아낼 것이다. 그게 다수의 논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월드컵 공인구 하나에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고통 받는 무수한 소수자들을 찾을 것이고, 그 복수의 소수자들과 함께 대추리를 지켜내고 한미FTA를 막아낼 것이다.

잘못된 시험지에는 답하지 않겠다

뒤에서 발갛게 익은 볼로 예쁜 표정을 만들며 걷고 있는 희선이는 지금 연구실에 두고 온 대추리의 보리를 생각하고 있을 게다. 출발할 때 보니 한 포기는 말라가고 있었고, 또 한포기는 이삭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 대추리 싸움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다수(결)의 논리와 대결해야 할 것이다. 진짜 적은 군대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결정 논리이다. 미군기지 확장의 상업적 이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평택상인연합회의 목소리가 대추리 농민들의 목소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 저번 경주 방폐장부지 선정 때처럼. 목숨을 건 보상 열망에 경쟁의 불을 붙이는 이 끔찍한 다수결의 논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던가. 아주 못된 부자 친구 놈이 있었는데, 하교길에 나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에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초겨울의 살얼음판 연못을 제일 먼저 건너간 사람한테 500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아, 나는 그 상금을 탔고, 며칠간 심하게 앓았다.

그 철없는 부자 친구놈이 정부 요직에 들어간 걸까?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방사능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개발이익을 챙겨야겠다는 주민들의 수동적 욕망에 불을 지피는 정부는 음흉한 어린애 같다. 그 가당치도 않은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다. 그건 공정한 경쟁도, 스릴 있는 모험도 아닌, 철없는 악덕일 뿐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때 그 못된 친구놈에게 하지 못한 말을 지금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지태 대추리 이장님의 입을 빌려 하겠다.

“잘못 출제된 시험지에 답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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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자본과 생명이 싸운 격전지에서 출발한다

‘연구공간 수유 + 너머’는 ‘FTA 반대, 대추리에 평화를, 새만금에 생명을’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30여 km를 ‘걸으며 질문하기’를 한다. 5월 11일 전북 부안에서 시작해 5월 22일 서울에 이르는 열이틀의 기록을 <레디앙>이 매일 전한다. <편집자 주>

1. 말뚝 망둥어, 백합, 고동, 갯지렁이 그리고 진흙, 서해바다, 매봉산...

새만금 갯벌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운 곳이었다고 한다. 갯지렁이가 꾸물거리고, 하늘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큰 눈을 가진 말뚝 망둥어가 튀어 오르고, 짱뚱어들이 설쳐대고 농게가 어기적거리며 다니는 곳. 갯벌에 뽕뽕 뚫린 구멍마다 생명의 집이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는 새만금엔 바다 조개의 80%가 와서 산란을 하곤 했다. 8,000년 동안 유지되어 온 거대한 생명공동체, 그것이 새만금 갯벌이다. 백합은 백이면 백 모두 제각각 다른 모양을 갖고 있어서 이름이 백합이다. 인간에게도 똑같은 삶이 하나도 없듯이 백합도 그렇고 갯벌의 수많은 생명도 그렇다. 그러나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금, 우리는 이 다채로운 삶들을 과거형으로만 기억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2. 조용하고 강한 싸움이 있다

   
 
대장정 첫날. 우리는 새만금 갯벌을 맨발로 걸었다. 부드러운 진흙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발바닥에 느껴지는 고통은 육체적이었다. 진흙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굳어진 진흙엔 종류를 헤아릴 길 없는 생물들이 화석처럼 죽어서 박혀 있었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동들은 물길을 따라 먼 길을 이동해 왔건만 물길을 따른 장사행렬이 되어 버렸다. 고동의 시체 주변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작고 둥근 소용돌이가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백합은 허연 속살을 쩍 드러내며 말라 버렸고 맛은 칼처럼 갯벌에 박혀 굳어 버렸다. 우리는 갯벌이 아니라 무덤 위를 걷고 있었다.

주저앉아 귀를 대니 톡톡톡 톡톡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억 개의 생물이 내는 소리였다. 우리는 땅에 귀를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지만 수없이 다양한 생물이 내는 그 소리가 한번 들리기 시작하자 점점 커지고 나중엔 가슴에 가득 차 텅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갯벌이 ‘죽뻘’이 되어간다고 쉽게 말하지 말자.

아직 갯벌은 죽지 않았고 갯벌이 생명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외침도 죽지 않았다. 단지, 개발의 속도만큼 포기도 빨랐던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만물이 말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듣지 못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본과 생명이 싸우고 있었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화려한 것에 속고, 돈이 되는 것에만 반응하고, 글자만을 믿고,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3. 반면, 시끄러운 개발의 폭력이 있다

   
 
아무리 걸어가도 새만금 방조제는 보이지 않았다. 새만금 갯벌은 너무나 커서 육안으로는 전체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만금을 둘러보곤 최첨단 과학이다, 친환경 개발이다 떠들썩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 과학과 개발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 근원하는 것일까? 새만금 방조제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발의 망령은 움직이고 있다. 갯벌을 한번도 진정으로 걸어보지 않은 자가, 어민들의 생활엔 한번도 귀 기울여 보지 않은 자가, 간척사업계획을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새만금 갯벌은 숫자와 통계와 지식으로는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새만금 갯벌에 가서 서 보라. 발바닥 하나 만큼의 규모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이 산다. 새만금 갯벌은 풍성한 심연을 가지고 있다. 결코 지도로는 표시할 수 없는. 새만금 갯벌은 숫자화된 역사로는 결코 포착되지 않는 풍부한 삶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갯사람들의 삶처럼.

그러나 자본의 욕망은 생물과 어민들의 삶을 빨아먹으며 유지된다. 전라도에서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선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새만금 사업을 얼마나 총천연색 미래로 포장하는가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부안버스터미널에는 5.31선거 포스터가 붙어있다. 새만금을 관광단지로 만들겠다는 선전문구가 화려하다. 이처럼 개발자본은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느니 자기 부상열차를 만들겠다느니 하는 거짓 선전으로 어민들의 욕망을 자극해 유지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정치논리에 의해 공사를 중단할 수 없게 되었을 뿐, 단순히 경제적으로 생각해 볼 때도 이득이 없다. 농업용지 사용하는 것은 농지가 놀고 있는 현 농촌 상황에서 경제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농업용지가 되려면 20-30년이 필요하다. 공업용지도 마찬가지이다.

개발자본은 만물이 만물과 싸우도록 만든다. 주변의 산을 깎아 새만금 갯벌을 막는 짓을 하고 있다. 산이 갯벌을 죽게 하고, 만물이 만물을 죽게 하고,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싸우게 하는 방식. 그래서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방식. 그 자본의 폭력을 오늘 새만금에서 봤고 5월 4일 대추리에서 봤고, 매일의 FTA 논의에서 본다.

그러나 오늘 걸으면서 느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는 것은 자본만이 아님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새만금의 갯생물이, 대추리의 벌판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생명의 행동은 자본의 폭력과 다르다는 것을.

그것은 아스팔트길의 딱딱함과 흙길의 부드러움의 차이이고, 동그랗게 자라는 생명들과 직선으로 뻗은 도로의 차이이다. 부드럽고 둥글고 다양한 생명의 논리가 조용하지만 훨씬 강하다. 인간들에게 살점이 뜯긴 산과 죽어가는 갯벌을 품기 위해 투쟁중인 바다처럼.

4. 예민한 귀와 똑똑히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걷는다

새만금의 생물이 죽은 곳, 그리고 삼보일배가 시작된 곳에서 우리의 질문이 시작됐다. 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오늘 아침, 장승들이 우리의 대오가 되어 주었고, 조개와 갯벌이 우리의 신발이 되어 주었다. 하늘과 바람이 우리의 목소리였고 우리의 머리였다. 버려진 생명을 하늘로 올려 땅이 하늘임을 하늘이 땅임을 보여주는 솟대도 함께였다.

   
 
그곳에서 3배를 올렸다.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생명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일배, 반생명적 가치를 내쫓기 위해 일배, 모든 생명적 가치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일배. 그리고 우리의 몸이 시작되는 새만금 갯벌에서 맨발로 108배를 올렸다.

인간들이 죽음을 명령한 곳에서 우리의 질문을 시작하겠다고. 이미 죽은 듯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발견하겠다고. 고통 받는 소수자들을 통해서 고통이 아닌 생명의 지혜를 배우겠다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 세상이다. 허무맹랑한 사기극과 심리전이 판을 쳐 똑똑히 보고 똑똑히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삶을 지키고 창조하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도 지쳐, 누군가 죽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재앙이 일어나야 새만금이 살 거라고 탄식처럼 말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걷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걷는다. 우리는 인간을 혹은 나를 막는 것이 아니라, 생명전체를 막는 것을 또렷이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걷는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것들과 함께인지 들을 예민한 귀를 갖기 위해서 걷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다른 존재와 하나라고 느끼는 것은 갯벌 저 깊은 심연보다 얼마나 가슴 아픈 어둠인가, 그러나 동시에 지금이라도 우리가 새만금임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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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5월 11일 불량소녀, 생명의 땅 새만금을 걷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한미FTA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생명의 권리를 묻기 위한 대장정 - 걸으면서 질문하기'를 내걸고 10일부터 22일까지 부안에서 새만금, 평택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장정이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대장정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소식을 연재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아침 일찍 기상! 아침을 먹고 햇창갯벌로 향했다. 장승과 솟대들이 나부끼는 그 곳, 제 자신이 자연임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오만방자한 인간들 때문에 이제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가는 그 땅에서 우리는 행진을 시작한다. 굳어버린 진흙에 화석처럼 박힌 채 죽어 있는 무수한 생물들. 으아악! 갯벌은 무덤으로 변하고 있었다. 죽합, 백합, 그리고 이름 모를 무수한 조개들, 소라들이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죽음을 지켜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팠다. ㅠㅠ

 

한때는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삐져나오는 부드러운 진흙이 수억의 생명체를 품고 있었겠지.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동들이 물길을 따라 머언 길을 이동했을 거야. 갯지렁이가 꼬물거리고, 커다란 눈의 말뚝 망둥어는 기운차게 튀어 오르고, 삐뚤삐뚤 농게들이 만드는 조그만 구멍들이 가득한.


 

“바다 조개의 80%가 새만금에 와서 산란을 했었대. ”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나우시카가 나지막하게 말한다.


 

“새만금은 8000년 동안 수많은 생명이 살던 공동체였다구.”


 

“칫, 누가 워킹 네이바 아니랄까봐-_-”


 

“백합이 왜 백합인 줄 알아? 백이면 백 모두가 제각각이어서 그렇게 부른다는 거야.”


 

윽. 눈물나올 것 같았다. 인간에게 똑같은 삶이 하나도 없듯이, 백합도, 갯벌을 채우며 공생하던 수많은 생명도 그렇다. 그 무수한 삶 중에 불필요한 삶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금, 허연 속살을 쩍 드러낸 채 살해당한 저 백합. 칼날처럼 갯벌에 박혀 굳어버린 맛조개들. 인간은 어쩌다가 이 모든 생명들을 죽이면서 몸집만 키우는 비대한 괴물이 되었을까. 펄럭이는 현수막에 기가 막힌다. ‘친환경 개발’이라니!


 

“저런 무식한 소리를 해대다니 [미래소년 코난]도 못 보고 자란 거 아냐?”


 

나의 투덜거림에 파김치 오라버니 왈.


 

“전라도에서 선거에 당선되려면 어째야하는지 알아?”


 

“웅?”


 

“새만금 사업을 누구보다도 환타스틱하게 포장하는 거래. 지역 발전시킨다! 이제 우리도 잘 산다! 뭐 이런거지.”


 

한숨. 하긴, 부안에서 반대했던 핵폐기물처리장을 경주가 지역개발논리로 받아들이자 주요 일간지는 “경주 시민들의 위대한 선택” 운운했지. 일년에 지원금 얼마, 방사능 폐기물 반입 수수료 얼마라는 식으로 선전될 때, 방사능의 무서움은 감수 할만 한 것이 되나보다. 놀랍다. 70년대의 개발 신화가 파이를 키운다며 우리 농촌을, 공돌이 공순이들을 희생시켰듯이, 개발자본 또한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느니 자기 부상열차를 만들겠다느니 하며 어민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정치논리에 의해 공사를 중단할 수 없게 되었을 뿐, 경제적으로만 생각해 볼 때도 이득이 없다. 농업용지 사용이라니, 지금 농촌에서 농지가 놀고 있는 거 모르나? 게다가 그 땅이 정상적인 농업용지가 되려면 20-30년이 필요하다. 공업용지라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발전의 망령에 꽁꽁 붙들려 있다는 거다. 모든 것을 죽이며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자본의 논리를 스스로의 욕망으로 불러오고, 그렇게 모든 생명을 살해하는 긴 자살의 행렬에 동참한다. 다채로운 삶들을 엄청난 탐욕으로 먹어치우는 개발이라는 괴물이 된다. 주변의 산을 깎아 갯벌을 막는다. 산이 갯벌을 죽게 하고, 만물이 만물을 죽게 하고, 생명들이 와글거리며 살고 있던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싸우게 하며 모두를 죽인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폐허다. 그 괴물의 폭력을 오늘 새만금에서 봤고 5월 4일 대추리에서 봤고, 매일의 FTA 논의에서 본다.


 

주저앉아 땅에 귀를 대자 톡톡톡 톡톡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억개의 생물이 내는 소리였다. 우리는 땅에 귀를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지만 수없이 다양한 생물이 내는 그 소리가 한번 들리기 시작하자 점점 커지고 나중엔 가슴에 가득 차 텅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우아! 아직 갯벌은 죽지 않았잖아! 그리고, 갯벌을 죽일 수 없다는, 갯벌이 생명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외침도 죽지 않았다.


 

단지 개발의 속도만큼 포기도 빨랐던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만물은 말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듣지 못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본과 생명이 싸우고 있었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화려한 것에 속고, 돈이 되는 것에만 반응하고, 글자만을 믿고,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회의 백팔배를 올렸다.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생명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일배, 반생명적 가치를 내쫓기 위해 일배, 모든 생명적 가치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일배. 맨발로 108배를 올렸다. 인간들이 죽음을 명령한 곳에서 우리의 질문을 시작하겠다고. 이미 죽은 듯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발견하겠다고. 고통 받는 소수자들을 통해서 고통이 아닌 생명의 지혜를 배우겠다고.


 

저녁 식사 후엔 부안 터미널 근처의 집회에 참석.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자기 것으로 생각한 부안시민들 몇몇이서 벌써 7일째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핵 폐기장 반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부안시민들은 평택 미군기지가 이미 평택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는 거다. 모든 소수자의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만물을 죽이고, 서로 싸우게 하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아주 미세한 눈을, 아주 민감한 귀를 가져야 한다. 그 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소수자고, 만물이 소수자라는 것.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무수한 나를, 무수한 우리를, 함께 함으로서만 지속되는 삶을 만나리라는 것. 행진 첫날부터 이런 공력 높은 깨달음에 도달한 불량소녀의 일기 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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