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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 학인들, 거리로 나서다(김강)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자들은 어제부터 "한미 FTA 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새만금 방조제와 대추리 미군기지이전, 한미FTA협상으로 위협받고 있는 모든 소수자들을 위해 길거리에서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지요.
(관련기사:[프레시안]"우리는 한미 FTA에 반대하며 걷습니다")

 

우리의 동료들을 어제 새만금으로 내려보내고 나서 남은 회원들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원래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 점심과 저녁 산책을 활용해서 FTA와 대추리에 대한 선전전을 종로와 대학로에서 진행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몇몇 회원들이 모여서 상자를 잘라 피켓을 만들고 구호를 준비해서 대학로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출발하기전 연구소 맞은편 종묘 담벼락에서 한 컷!



 

우리의 웃음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 주었으면...



 

우리의 구호는 "평화의 땅 대추리를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자!"였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시민들에게도...


 

 


인도를 걸어가는 시민들에게도 대추리의 아픔이 더 알려지도록...



 

걸으면서 우리는 외칩니다. "대추리는 농민의 땅, 군사지기 왠말이냐!"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구호도 외쳐주시고, 파이팅도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주장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



 

대추리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함께 웃으며 "내일도 산책가자"를 외칩니다. 우리의 공부가 신체성을 얻기 위하여, 공부와 실천이 분리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걸으면서 묻고, 권력과 자본에 저항하는 모든 소수자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선전전을 우리만 하기는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이렇게 흥겹고 신나는 일을 대추리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한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마다, 횡단보도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대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호를 외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대추리 지킴이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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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일지2] 5월11일, 해창갯벌에서 계화도


 

아침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모두들 기상.

6시 40분까지 아침 식사를 완료했습니다.

모두들 상기된 얼굴로 모여앉아, 노래와 구호를 외우고,

곧 근처 해창갯벌로 출발했습니다. 

해창갯벌에는 죽어가는 생명과, 우리가 저지른 참상을

지켜보는 듯한 장승과 솟대가 서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출정식에는, 서울대 김세균선생님이 아침 첫차로 서울에서 내려오셔서 축사를 해주시며,

저희를 배웅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창갯벌에서 출발, 계화도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약 20키로. 힘차게 걸어 이내 계화도에 도착했습니다. 계화도는 부안에 있는 간척지이면서, 또 새만금 방조제사업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땅입니다. 그 땅은 그나마 남아있는 방조제와 바다로 연결되는 문이 가까운 곳이라 오염이 가장 덜할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계화도 갯벌의 모습 역시 처참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갯벌 곳곳에서 간간히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건 이미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가 아니었죠. 동네 주민 두엇이 혹시나 해서 조개를 캐러나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그곳 주민들은 방조제 공사 이후, 닥쳐올 온갖 재앙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방조제 바깥쪽 해수면이 더 높아서, 하루라도 비가 오면 하루종일 양수기로 비를 퍼내야 한다는데, 여름 홍수철엔 과연 어떨까요. 소수자들은 그 재앙을 피해가기도 힘들 것입니다. 새만금 방조제 사업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버렸다를 반복하면서, 가상적 괴물이 현실이 된 사건입니다. 게다가, 부안의 아름답기로 유명한 변산반도의 온갖 산들의 뒷통수를 깍아서 새만금 방조제 사업은 그렇게 계속되었답니다. 새만금 방조제 사업은 결국, 바다와 갯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곧 죽어버린 갯벌에서 심한 냄새가 시작될 때, 혹은 홍수나 또 다른 재앙이 와서 돌이킬 수 없을 때 그들은 개발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계화도 갯벌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회의 백팔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까지 걸었습니다.

계화도의 넓은 갯벌에서 나와, 계화도에 있는 산에 올랐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서 계화도의 간척지와, 그 위에서도 잘 보이지도 않는 방조제의 끝을 가늠해보았습니다.

숙소인 ‘갯벌나눔터 그레’ (바로옆엔 생합다방이 있어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또 이내 부안터미널 근처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문제를 자기것으로 생각한 부안시민들 몇몇이서 벌써 7일째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핵폐기장 반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부안시민들은 평택 미군기지가 이미 평택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소수자의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물은 분명 하나일텐데, 자본은 만물로 하여금 서로를 적대하게하고, 항상 대립하게 만들지요. 우리가 만물과 하나되는 것에 앞서, 만물을 적대시하게 만드는 무수한 것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들로부터 질문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읽는 분들은 오늘이겠군요.)은 꽤나 먼 여정입니다. 계화도에서 나와, 김제시를 거쳐 대야면까지 걷는 멀고 힘든 길입니다. 중간에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구간을 제외하고도 35-40키로 정도의 거리입니다. 어제 걸은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백팔배와 등산으로 모두들 힘들거에요. 컴배트 팀에게 응원해주시고, 홈키파와 에프키라 팀도 파이팅 해주시길 ^^

그럼 내일 보고를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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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일지1] 5월 10일, 부안 생태문화활력소


오후 네시 반

옛 마포초교 장소인 생태문화활력소에 들어왔습니다.

생태문화활력소의 고길섭선생님께서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편하게 지내고 갈 것 같습니다.

 

일찌감치 온 고전학교팀은 해창갯벌과 방조제를 이미 둘러본 후이고,

수송전단팀도 5시 즈음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시간동안 같이 했던 이들은 29명이었구요!)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김풍기선생님의 간단한 고전강의를 들었습니다.

만물과 하나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강의였고

뒤이은 허철희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서, 만물과 하나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다시 던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철희선생님이 찍은 사진을 통해

무수한 생명이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는 그 갯벌이

새만금 공사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됐습니다.

 

비단 새만금 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너무 많은 곳에서 똑같은 논리로

다양한 생명이 죽어가고 많은 소수자가 숨죽여한다니....

 

우리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이지만, 내일 행진을 시작하게 되면

아마도 더 큰 질문들이 꼬리를 물겠지요.

 

곧 마지막 후발대팀이 도착합니다.

마지막 팀이 오면 환영해주고.

이 곳, 아름다운 부안에서 첫 날 잘 자겠습니다.

 

아직은 모두들 평온하고도 약간은 들뜬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만물과 하나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내일로 가겠습니다.

내일, 행진 첫 날입니다.

 

멀리서 응원해주세요.

'만물이 하나인가'는 질문이지만

우리는 하나, 코뮨임은 분명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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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

<한미FTA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

 

: 생명의 권리를 묻기 위한 대장정 - 걸으면서 질문하기
- 위기에 빠진 생명, 그 권리를 묻는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추장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자들은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천리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특히 한미FTA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생명의 권리, 삶의 권리를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걸으면서 묻고, 물으면서 걸어가기. 거짓 비전과 약속으로 희생된 저 새만금의 갯벌,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기반을 내놓게 된 농민들, 비정규노동자들, 예술가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자신의 대지를 잃은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 그리고 단지 시민이 되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야 하는 장애인들, 노동만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 이 모든 대중들, 이 모든 소수자들이 싸우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배우고자 합니다. 배우기 위해 걷고, 싸우기 위해 걷겠습니다. 이 모든 소수자들, 이 모든 대중들의 형상이 바로 우리 자신의 형상임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또한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천리 길을 힘차게 걷겠습니다.

 

 

1. 우리는 한미FTA에 반대하기 위해 걷습니다
 
우리는 ‘한미FTA’에 반대합니다. ‘한미FTA’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두 나라 경제를 통합시키는 협정이며, 나아가 우리 삶의 미국적 재편을 요구하는 협정입니다. 우리는 ‘한미FTA’가 경제적 재앙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 전체에 재앙을 몰고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래할’ 한미FTA가 우리 안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오지 않은 FTA의 재앙을 이미 체험하고 있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바다로 통하는 새만금의 마지막 숨구멍에 콘크리트가 부어지던 날, 평택의 대추리 들판이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던 날, 생명을 건 농성에도 대꾸 없는 시청 앞에서 중증 장애인들이 삭발하던 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곁의 많은 이들이 쓰러져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정부가 말하는 ‘이익’이라는 것에 대해 이제 분명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지역개발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갯벌의 생명들을 죽였습니다. 자유무역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농민들에게 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기업경쟁력을 위해, 좋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노동을 유연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했습니다. 복지 예산이 없기에 불가피하다며 장애인을 짐짝처럼 시설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산업상의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험한 일을 맡기고도 그들의 법적·경제적 권리는 부인했습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정부에게 이제는 묻고자 합니다. 이미 주검이 된 갯벌의 생명들, 삶의 터전을 잃은 어부와 농부들, 전체 노동자의 반을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 단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싸워야만 하는 장애인들, 산업적 필요성만 인정받을 뿐 정치적 사회적 필요성은 거부당한 이주노동자들. ‘불가피하다’며  배제해버린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전체’는 누구이며, 그 이익은 누구의 ‘이익’인지 답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미’ FTA  상황 속에 존재하는 소수자들의 이름으로, 그리고 ‘도래할’ FTA 상황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자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노무현 정부에 따져 묻기 위해 걷습니다.


2. 우리 모두가 함께 싸우기 위해 걷습니다
 
처음에는 물과 흙과 바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의 조개와 천성산의 도롱뇽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늙은 농부와 어부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비정규직, 여성, 청년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투쟁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걷습니다. 각자 처해 있는 삶의 구체적 상황이 다르고, 각자 지키고 싶은 삶의 내용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 파괴된 이유를 다른 이의 삶이 파괴된 자리에서도 발견합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싸우지만, 내 친구가 싸우는 자리 또한 내 자리임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로 걸어갑니다.  홈 패인 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삶이 불안정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농민이며, 생명을 위협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이들과 만나기 위해,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걷겠습니다.


3. 지식인들이 대중적 신체성을 갖도록 촉구하기 위해 걷습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지표와 통계 수치들로 대중의 구체적 삶을 표현하는 지식에 반대합니다. 새만금 갯벌의 가치를 거기에 세워질 공장의 가치로 표현하고, 쌀시장 개방으로 유랑하게 될 농민들의 수를 도시에 새로 생길 서비스직의 수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GDP 몇 % 성장으로 대중들의 삶 전체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합니다.

우리는 대중을 훈계하는 지식인, 대중에 대해 연민을 갖는 지식인 모두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지식인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식인 스스로가 대중일 때뿐임을 압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대중이며 소수자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또 우리 스스로 대중이자 소수자가 되기 위해 걷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우리 스스로가 함께 먹을 밥을 짓듯이, 우리 정신의 대중적 신체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이 무기가 될 수 있도록, 그만큼 단단해지기 위해 길을 걷겠습니다. 


4. 우리는 생명의 권리, 삶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걷습니다
 
‘한미FTA’ 반대 투쟁을 전개하면서, 우리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 우리 자신의 삶, 대중의 삶, 나아가 생명 전체가 큰 문제에 직면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보건과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 농민층의 대대적 붕괴, 노동 조건의 불안정성, 문화적 자생력의 상실, 유전자조작식품이나 환경파괴로 인한 생명의 위협... 한미 FTA는 우리들의 삶 하나하나를 구체적인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생존과 생활, 생명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투쟁은 우리 자신의 생명력을 확보하고 수호하기 위한 것, ‘생명권’과 ‘삶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만금 갯벌의 생명체들과 함께 생존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고,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계속 살려는 평택 주민들과 함께 삶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삶의 기반을 위협받는 농민들, 예술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강제 추방의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사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태적 다양성을 지키는 투쟁을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투쟁으로, 나아가 삶의 다양성을 지키는 투쟁으로 이해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생명에 웃음을, 우리 삶에 대안을 찾기 위해 걷겠습니다.


5. 늦지 않기 위해, 부끄럽지 않기 위해 걷습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금, 우리의 행진은 너무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대추리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군대의 투입이 자행된 지금, 우리의 행진은 한 발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한미FTA 협정문 초안이 이미 작성되었다고 하는 지금, 우리의 행진은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걷겠습니다.

새만금 1억2천 만평. 그것은 세계 간척사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 자신의 무지와 수치의 넓이입니다. 평택에 만들어질 미군기지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우리 자부심이 아닌 부끄러움의 규모가 될 것입니다. 한미FTA의 유래 없는 전면성과 강도는 이후 미국의 모든 FTA 협상에 시금석이 될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전세계적 재난의 물꼬를 터준 우리가 두고두고 지고 가야할 바윗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부끄러움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바로 지금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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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투쟁선언

소수자 투쟁 선언

고추장


지금 곳곳에서 권력과 자본에 의한 삶의 파괴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새만금에서는 바다로 통하는 마지막 숨구멍에 콘크리트를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평택의 대추리, 어린 싹들에게 흘러가는 들의 농수로에도 콘크리트가 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제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이,

그들은 새벽에 몰려온 공수부대처럼 곳곳에서 생명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에선 바다만이 거센 물결로 저항하고 있고,

대추리에선 늙은 농부들만이 들판에 드러누워 농성하고 있습니다.


농촌의 포기된 농지들은 처음부터 거대 농지조성이라는 새만금 개발의 위선을 고발했습니다. 갯벌의 조개들은 제 자신의 주검으로서, 정부의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위선을 고발했습니다. 단지 권력과 자본이 들이민 계산기에 눈을 맞춘 우리만이 그것을 애써 외면해왔을 뿐입니다. 이제 계산기는 말합니다. 그 동안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계산기는 아마 다음에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 땅을 그냥 놀리기보다 공장이라도 세우자고. 그럼 또 얼마가 이익이라고. 또 모릅니다. 모두가 꺼려하는 유해 사업장을 그리 보내면 안전하고 이익도 생기고, 일석이조 아니냐고.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그곳에 있는 건 바다뿐인데.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가 물러났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에 외국 군대가 진주하고 있느냐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용산 대신 평택에 450만평의 세계 최대의 미지상군 해외기지가 건설됩니다. 우리는 이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용산의 미군기지는 주한미군의 기지였지만, 평택의 미군기지는 동북아 미군의 기지로 계획된 것입니다.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가 커지고 유연성이 증대되는 만큼 우리도 안전해진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 바보입니다. 평택기지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동북아의 모든 분쟁들이 우리 자신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동북아 물류의 허브 노릇을 하겠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한반도는 동북아 미군의 허브 노릇을 할 겁니다.


마침내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점령군의 본대가 당신 앞에 왔습니다.

한미 FTA.

정부가 급작스레 선언하기 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규모를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한 재앙 앞에서

우리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정부의 계산기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하려는 것은 우리 삶을 통째로 건,

미국과의 전면적인 ‘경제통합협정’입니다.

농산물, 의료서비스, 교육, 에너지, 금융, 투자, 지적재산, 공공서비스, 노동, 환경...


지금까지는 물과 흙, 바람만이 소수자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뻘의 게와 조개, 철새들만이 소수자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만이 소수자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여성과 장애인, 청년들만이 소수자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이 소수잡니다.


지금 세계는 온 몸을 뒤척이고 있습니다.

반전, 반자본, 반미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고용법에 맞서 싸웠고,

미국에서는 수백만의 이민자들이 이민법에 맞서 싸웁니다.

새로운 고용법, 새로운 이민법, 새로운 군사기지, 새로운 무역협상.

이 모든 것들이 따로 보인다면 당신은 바보입니다.

아마 FTA는 그런 바보들을 위한 지옥선이 될 겁니다.


당신의 삶을 당신의 대표자에게 더 이상 맡겨놓지 마십시오.

대의기구들은 당신을 더 이상 대의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미국이 세계를 대의하며,

어떻게 기업이 농촌을 대의하며,

어떻게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대의하며,

어떻게 자국노동자가 이주노동자를 대의하며,

어떻게 스스로를 정상인으로 간주하는 자가 장애인을 대의하며,

어떻게 남성이 여성을, 장년이 청년을 대의합니까.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중요한 정책들이 밀실에서

그렇게 결정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서 있는 그 곳에서 싸우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서 있는 그곳에서 싸우십시오.

물과 흙, 바람이 싸우는 곳에서,

뻘의 조개와 들판의 곡식이 싸우는 그곳에서,

농민과 노동자, 청년, 여성, 장애인, 학생, 예술인이 싸우는 그곳에서,

만물이 소수자로서 투쟁하는 그곳에서,

당신도 싸우십시오.


Be the multitude! Be the minor!

지금 당장 대중이 되십시오.

우리의 능력만큼이 우리의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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