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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9
    영원의아이
    anonion
  2. 2010/04/18
    수박
    anonion
  3. 200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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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onion
  4. 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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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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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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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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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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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8/09
    2008/08/09
    anonion
  10. 2008/08/04
    2008/08/04
    anonion

영원의아이

오프닝은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가장 그래픽한 비판이다.

십대 초반 아이들의 표정처럼 슬픈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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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위기는 1회와 마지막회에 온다.

따라서 대부분의 회는 

작은 위기 뒤에 얻은 작은 평온으로 구성될 수 있다.

마지막 회에서 조금 더 큰 변화가 닥치고, 

드라마는 불안을 남기고 끝난다. 

그 불안은 내용의 불안은 아니다.

하숙생이 바뀌어도 하숙집은 분명 별로 달라지지 않은 새로운 일상을 구축할 것이다.

드라마가 남긴 불안은 형식적인 불안, 곧 드라마 장르를 의심하게 하는 불안이다. 

 

"벤야민의 용어로 말하자면, 두 가지 시간은 각각 역사주의의 시간과 지금 이 순간(Jetztseit)의 시간에 해당한다. 고전적 내러티브가 두 가지 시간을 어떻게 결합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뭔가 일어나고, 다시 뭔가 일어난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뒤바꾸겠다고 위협 내지 약속하는 다른 무언가가 일어난다. 이것은 역사를 읽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도 이런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한동안 일들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러다가 위기, 붕괴, 혁명 같은 것이 일어난다. 정상적 조건은 연속성, 이따금씩 단절점이 찍혀 있는 연속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사회관계들의 재생산이 모두 생산 시점에서 매일 아니 매시간 진행되는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변화들의 체계이며, 자본주의의 페리페테이아는 일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된다. 벤야민은 말하기를, “만사가 그대로”라는 사실이 바로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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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쇼와가요대전집2004의 이유없는 살인과

해프닝2008의 이유없는 자살

 

영화들은 아무렇든 이유가 없지는 않다는 통찰 위에 있지만,

영화의 상상력으로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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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매우 괴롭거나 매우 지겨울 때

내면이 생겨나고,

일기가 쓰고 싶어진다.

요새 일기라는 것이 쓰고 싶어졌다. 

한때 소설이라는 것이 쓰고 싶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소설이 일기와 다른 점은

디테일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일기든 소설이든

활성화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실은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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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계급격차가 심화될수록

사회적 통합의 수단으로

스포츠와 연예인이 부각된다.

상층과 하층이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이제 별로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연예인의 보편적 호소력이

그 퇴행성에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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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통영에서 여객선으로 한시간 정도 달려서 비진도에 도착했다.

불타는 주황색, 난데 없는 분홍색, 두툼하고 거친 청백색.

일몰의 풍경은  

대상없는 안타까움과 이유없는 가슴벅참 따위의

강력한 정서를 환기시킨다.  

 

풍경화나 풍경 사진에서 색이 진부해지는 것은 정지해 있기 때문이다.

풍경 속 색의 매력은 순간순간 바뀐다는 데에 있다.

반면에, 정물화의 색은 정지해 있지만 진부해지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세잔.

 

운동과 정지의 여부가 색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일몰 동영상이 일몰 사진보다 좋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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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5

중고등학생들이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7차교육과정이 있었다.  

국어 교과서에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실렸고,  

사회 교과서에서는 사회적 참여를 중요한 가치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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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시스터즈"1973

 

한 영화가 현실의 일부를 화면에 들여와 

그간의 영화들의 쓰레기와 뒤섞는다면,

한 영화비평은 영화의 일부를 글에 들여와

그간의 영화비평들의 쓰레기와 뒤섞는다.

오래된 상부구조일수록 내용은 점점 빈약해진다.  

 

그래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음에 걸린다.

전기기사로 변장하고 전봇대에 매달려 길가에 버려진 소파를 지켜보는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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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그런 일에 발을 들인 이유를

아무리 듣기 좋게 갖다붙여봐도

결국 돈욕심이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죄없는 가족을 흡혈귀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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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과학하는 마음 2" :

1. 인간과 원숭이가 다르지 않다는 냉소적 설교와 그래도 인간은 위로하고 위로 받는 동물이라는 따뜻한 설교. 상호보완적인. 자연과학 연구자 공동체가 아니라 인문과학 공동체였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다소 장르적이라고 할까.  병원 공동체라면, 의사와 환자는 다르지 않다는 설교를, 경찰 공동체라면, 경찰이나 범죄자가 다르지 않다는 설교를 하면서 역시 정서적 유대의 의미를 환기할 수 있을 터.

2. 일본문화에는 성적인 계몽을 내세워 성적인 일탈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 "인류학 입문"에서  "노다메 칸타빌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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