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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5
    seeking the truth
  2. 2008/10/05
    시민의 불복종

seeking the truth

 

 

1. 

누구나 나름대로의 가족사와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의 가족사는 유난히 왜곡된 것이 많았고 그만큼 이야기도 많았다.

 

스물이 되던 해,

나는 서로 다른 진실들 사이에서 꽤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뭐, 워낙 단순하기도 하고,

낙천적이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거다란 주의기도 해서일까,

가려진 진실들과 그 안에 보이는 추한 것들, 그리고 배신감과 실망감에서 비롯된 상처는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진실을 파헤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나는 그걸 그냥 묻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더 이상 그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나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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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거에 대한 집착,

가려진 진실들에 대한 호기심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서일까.

 

두 줄로 된 영화의 대략적인 설명글만 보고서

영화를 보고 싶단 욕구가 치솟았다.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3.

오래된 과거, 묻혀진 과거의 진실에 대해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 나라의 '친일파'가 생각났다.

그들은 과거의 행적들이 부끄럽긴 할까?

 

 

4.

정말이지 너무나도 재기발랄, 자유로운 형식들-

20년 전 영화란 걸 감안하면

그냥 웃게 된다.

 

5.

마지막 장면 너무 좋았다.

거친 입자.

테러가 계속 되면서 나무를 베어 자신이 숨을 나무 집을 만들어 숨던 주인공이

빼꼼 눈만 내밀고 쳐다보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나무 가지 사이에 숨어 적개심과 두려움 가득한,

하지만 도적적인 눈빛을 보이는데

그 느낌이 너무 너무 좋았다.

 

설마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이어지는 격한 분노의 표출.

거친 마무리.

 

아우. 좋다.

 

6.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여전히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다큐멘터리도 몇 편 찍은 듯하다.

대부분 영어 자료라 정독하진 못했지만-

구할 수 있다면

그녀가 쓴 책을 읽어보고 싶다.

 

7.

안자 로스무스

 

8.

미운오리새끼를 보면서도

자꾸 자극이 되었는데 이 영화도 그랬다.

 

9.

해보고 싶은 작업.

할 수 있을까?

 

10.

더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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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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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있다.

법에 대한 지나친 존경심이 빚는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결과를 당신은 일단의 병사들에게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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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다한 사람들이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실질적으로 그것들을 종식시키기 위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손들이라고 자처하면서도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가만히 앉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또 실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유의 문제마저 자유무역의 문제 뒷전으로 미루어버리고,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차분히 당일의 물품 시세표와 멕시코로부터 온 최근의 전쟁소식을 읽다가는

필시 그것들 위에 엎드려 잠이나 자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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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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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질서와 시민정부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비열함에 경의를 표하고

그것을 지지하게 되고 만다.

처음 죄를 지을 때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지만 곧 무관심하게 된다.

부도덕은 무도덕이 되고 마는데, 그것도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 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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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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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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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 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이다.

중국의 철인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볼만큼 현명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나는 마침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빗 소로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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