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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5
    밀어내기
  2. 2009/02/25
    통로
  3. 2008/10/05
    seeking the truth
  4. 2008/09/26
    상처와 대면하기
  5. 2008/09/12
    외로움
  6. 2008/09/03
    막막함
  7. 2008/09/03
    이유?(2)
  8. 2008/09/02
    나는 어디쯤?
  9. 2008/08/23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10. 2008/08/18
    첫사랑

밀어내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다.

 

나름의 경계를 만들고 그 이상은 다가가지도, 들어오게하지도 않고

밀쳐내고 있는 것만 같다.

 

두려운 것 같다.

 

더 가까워지는 것.

더 많이 나를 보여주는 것.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것만 신경쓰일 뿐이다.

 

시선들이 어렵고, 부담스럽고, 두렵고, 피하고만 싶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어렵다.

 

입이 쉬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대인관계가 엉망이다.

 

everything is messed up.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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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답답한 한숨만 뿜어져 나온다.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20대의 끝. 지금은 다른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나의 욕망을 끌어안는데 주력하자고, 먹고 사는 것은 아주 조금만 뒤로 미뤄두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지만, 나의 욕망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마저도, 무엇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지 알아채는 것마저도 힘이 드는 일인 것 같다. 조금씩, 욕심보다 진실한 욕망을 따라가다보면, 이 긴 통로의 끝이 조금은 확실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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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ing the truth

 

 

1. 

누구나 나름대로의 가족사와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의 가족사는 유난히 왜곡된 것이 많았고 그만큼 이야기도 많았다.

 

스물이 되던 해,

나는 서로 다른 진실들 사이에서 꽤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뭐, 워낙 단순하기도 하고,

낙천적이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거다란 주의기도 해서일까,

가려진 진실들과 그 안에 보이는 추한 것들, 그리고 배신감과 실망감에서 비롯된 상처는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진실을 파헤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나는 그걸 그냥 묻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더 이상 그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나는 살고 있다.

 

 

 

더 걸         더 걸

 

2.

과거에 대한 집착,

가려진 진실들에 대한 호기심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서일까.

 

두 줄로 된 영화의 대략적인 설명글만 보고서

영화를 보고 싶단 욕구가 치솟았다.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3.

오래된 과거, 묻혀진 과거의 진실에 대해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 나라의 '친일파'가 생각났다.

그들은 과거의 행적들이 부끄럽긴 할까?

 

 

4.

정말이지 너무나도 재기발랄, 자유로운 형식들-

20년 전 영화란 걸 감안하면

그냥 웃게 된다.

 

5.

마지막 장면 너무 좋았다.

거친 입자.

테러가 계속 되면서 나무를 베어 자신이 숨을 나무 집을 만들어 숨던 주인공이

빼꼼 눈만 내밀고 쳐다보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나무 가지 사이에 숨어 적개심과 두려움 가득한,

하지만 도적적인 눈빛을 보이는데

그 느낌이 너무 너무 좋았다.

 

설마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이어지는 격한 분노의 표출.

거친 마무리.

 

아우. 좋다.

 

6.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여전히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다큐멘터리도 몇 편 찍은 듯하다.

대부분 영어 자료라 정독하진 못했지만-

구할 수 있다면

그녀가 쓴 책을 읽어보고 싶다.

 

7.

안자 로스무스

 

8.

미운오리새끼를 보면서도

자꾸 자극이 되었는데 이 영화도 그랬다.

 

9.

해보고 싶은 작업.

할 수 있을까?

 

10.

더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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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대면하기

 

1. 엄마, 아빠의 이혼 후, 죽 아빠와 살던 나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와 엄마의 남편, 그 둘 사이에 있는 아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가 꽤나 많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엄마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사춘기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당시, 엄마와 나는 매일 매일을 서로 원수처럼 대하며 지냈고,

엄마는 화가 나면 늘 나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자꾸 그러면 돌려 보내버린다고. 아빠랑 가서 살라고.

 

그 말은 내 기억에 한 스물 하나 둘? 이 때까지 남아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당시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 말은 큰 상처가 되었다.

 

아무데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느낌.

이미 버림받았다는 느낌. 쓸모없다는 느낌.

 

나이가 들고 엄마와 관계가 회복되고, 엄마를 나름 이해할 수 있게 된 후에도

엄마가 나에게 종종 했던 그 말은 꽤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는데,

그 상처가 지워지기 시작했던 것은 내 기억에,

 

엄마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인 후였던 것 같다.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완벽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언제나 옳은 판단을 내리긴 어려운 것이다.

 

지금 내가 그렇듯.

 

우리의 서투름은 상대방을 다치게도 하고 상처주기도 하는 것처럼.

엄마도 그 때 서툴렀다고.

그렇게 이해한 후부터 더 이상 그건 상처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누군가가 행한 잘못때문에 상처받았을 때,

그 행위와 내가 받은 상처에만 집중하는 것은 안된단 생각이 드는거다.

 

 

물론, 모든 걸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때문에 자신을 학대하고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2.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는거다.

 

 

어린 아이가 떼쓰듯,

당신의 상처를 알아달라고, 왜 나에게 상처를 줬냐고,

왜 더 나를 사랑하지 않았냐고 외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당신의 언니가 이야기했든

왜 당신은 이 세상에서 오직 당신 하나만 상처받고 외로운, 버려진 영혼인냥 슬퍼하는가.

 

 

그래서,

처음 당신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벽을 쳐버릴 뻔도 했다.

 

왜 좀 더 당신 주변을 보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좀 더 일찍 대화를 시도하지 못했는지,

왜 좀 더 일찍 소리치지 못했는지 그것이 답답했던 거다.

이 영화를 못찍으면 죽어버리겠다는 각오를 할 때까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전까지 왜 당신은 당신 가족들과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그것이 안타깝고 답답했다.

 

 

3.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직접 부딪히고, 찾아가는 당신의 모습을 따라가며

나는 당신의 용기에 어찌됐든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당신의 가족 앞에서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리고 또 작품을 완성해나가며 다시 한 번 당신의 상처와 대면해야 했을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아주 많이 무겁고 아팠다.

 

 

 

4. 궁금하다.

상처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드러내고난 후,

그 상처가 얼마나 치유가 되었는지.

 

그리고 상처와의 대면은 얼마나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게 궁금하다.

 

 

나도,

지금 그 사람을 찾아가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으면

주기적으로 스물스물 삐져나오는 그 기억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것일까.

 

 

미운오리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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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그 어느 때보다 큰,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엄청난

 

상실감을 경험하고 난 후

 

아직까지 감정이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냥 외롭고

자꾸 눈물이 난다.

 

그럴 필요 없는데

이상하게 감정 체계가 고장이 나버린 것 같다.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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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

아무 것도 없는 새하얀 종이판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막막해보인다.

 

이걸 까만 점들로 채워야 하는데,

점들이 합쳐지질 않는다.

 

막막함에,

 

#1을 일단 적어본다.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사막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그 옛날 이집트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세웠다지.

 

 

하지만 나의 #1은 피라미드처럼 위대하지도, 나의 막막함을 달래주지도 못하는구나.

 

 

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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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너는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물일 뿐이다.

 

그것은 너의 장점이나 너의 단점에 대해 알고 모르고와는 별도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모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뭐, 그렇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너와 대화하는 것, 너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불편하고 또 불편하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그것을 충분히 감추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냥 솔직하게 내뿜을만큼,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자꾸 감추려고 하는데 삐죽 삐죽 튀어나오는 거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인간적으로 정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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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살자고 생각했었드랬다.

 

뭐, 지금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역시 지금 내가 어디 즈음에 발 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가 발 딛고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맞는지,

지금 내가 제대로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 맞는지.

 

천천히 가자고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여전히 천천히, 천천히를 되뇌이며 가도 되는 나이인건지,

 

여전히 가시적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괜찮아, 천천히." 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막연한 불안함이 또 빼꼼 고개를 들이민다.

 

 

9월이라 그런가보다.

 

길을 걷다가

문득 달을 헤아려 보는데, 이제 2008년이 네 달 밖에 남지 않은거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네 달은 지나온 여덞 달보다 훨씬 빨리 지나갈 것이고,

그러면,

2009년이 된다.

 

 

그리고

나는 당장 내년에 무엇을 해야 할 지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갖고 있지 못하다.

 

내 시간을 갖자고 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되는 나를 둘러싼 시간의 굴레.

 

 

나는 도대체 어디메쯤 있는걸까.

나, 아직도 희뿌연 먼지 속을 부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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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모든 것이 불안한 시기인가 보다.

 

 

모두 사방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 열심히 헤매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조금씩 어긋나는 궤도 안에서

언제까지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그 질문에 마음이 오래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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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나의 첫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건,

 

"누구나 첫사랑을 떠올리며 아련하고 설렌다. 그것은 청춘만의 특권이다"는

어떤 기사에 실린 문장 때문이다.

 

 

아련하고 설렌다.....

 

첫사랑이 뭘까?란 질문이 먼저 든다.

 

첫사랑은 뭘까?

첫 연애일까?

첫 키스일까?

 

 

아무래도 나한테는 그런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아련하고 설레는 기억은,

그것이 '사랑'일거라고 전혀 고민해보지도, '사랑'을 꿈꿔보지도 않았던 어떤 관계에 대한 기억이다.

 

우리는 그저 친한 친구였지만

문자 요금이 전화 요금보다 많이 나올 정도로 많은 문자 메세지를 주고 받았고,

 

우리는 그저 친한 친구였지만

욕지거리로 시작하는 그 친구의 모닝콜에 나는 꽤나 기분좋게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그저 친한 친구였지만

 

그 친구가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무척이나 속상했고,

그 친구가 군대를 간다고 했을 때는 더더욱이나 아쉬웠다.

 

그 때 우리는 손을 스치지도,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함께 있는 것이 편하고 좋고,

괜한 농담을 던지고, 별 것 아닌 문자를 수 백통 주고받았던 것이,

헤어짐이 못내 아쉽고 섭섭했던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연애 감정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첫 연애 상대는 그 친구가 아니었고,

나의 첫 키스 상대도 그 친구가 아니었지만,

 

언제나 가슴 아련하고 설레는 기억 안에는 그 친구가 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그 옛날 서툴렀던 나의 감정들을 떠올리곤

오랜만의 가슴 설레임에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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