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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5
    친구
  2. 2008/07/19
    붙잡기
  3. 2008/07/09
    관계의 함정
  4. 2008/07/04
    불편하기 때문에 외면했던 기억,(2)
  5. 2008/06/28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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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내기
  7. 2008/06/25
    잊는 것
  8. 2008/06/24
    진골과 성골

친구

 

'친구'가 뭔지 생각해본다.

 

 

나는 엄청나게 넓은 인간 관계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수와 아주 깊고 깊은 인간 관계를 맺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늘 주변에 어느 정도의 친구가 있었고,

그 안에 조금 더 친한 친구가 있었고,

뭐, 만나서 밥먹고 차마시고 쇼핑하고 수다떨고 이 정도의 일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로, 뭐 힘들면 하소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뭐 그런 관계.

 

 

학창시절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친구'라는 존재가 늘 옆에 있었기 때문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친구'

 

 

대학다닐 때부터는 '친구'라고 하기엔 좀 그런 '동기'와 '선후배들'을 갖게 되었다.

 

이 때부터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조금씩 여러모로 멀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워낙 바쁜 척,

여기 저기 일하러 다니던 때라

그리고, 그게 제 1순위였던 때라

 

'친구'들이 연락하면 난 늘 바빴고,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점점 '친구'들이 나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뜸해졌다.

 

 

그러다가 정말 연락을 안한 지 정말정말 정말 오래됐다는 것을,

그리고 좀 '외롭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가 먼저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고,

열심히 만나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 왜그러냐. 갑자기. 곧 결혼하냐.

주변에 애들 보면, 꼭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한테 연락하기 시작하더라.'

 

 

충격이었다.

 

아, 내가 그런 존재였나?

 

 

나름, 의리파인 내 '친구'들은, 한 때 나도 잘 붙어다녔던 그 '친구'들은

참 잘지낸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그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고,

내가 모르는 '대화'가 시작됐다.

 

요즘 그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할말이 없다.

 

최근 몇 년 만에 우리 8명이 모두 모였다.

단체 사진도 찍었다.

물놀이도 갔다.

 

그런데 나는 씁쓸했다.

 

나는, '친구'라는 존재로 존재했지만, '나'라는 존재는 거기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이기에 거기 있었다.

 

'나'는 없었다.

 

 

 

'친구'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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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기

 

 

 

 

 

모르겠어요.

왜 그러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아직도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자꾸 옛날 기억을 뒤적이고,

옛날 감정을 떠올리고,

이미 잊혀진 기억들 한올 한올 다 끄집어내서 이어붙이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군데 군데 떨어져나간 그 것들은

아무리 다시 붙이려고 해도 붙지를 않고,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하고, 간과해버렸던 것들의 실체는

여전히 숨어서 나를 답답하게 해요.

 

 

 

있는지조차 몰랐던

흔적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저는 안타까워해요.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요.

흔적만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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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함정

 

 

이를테면 이런거다.

 

우리가 '정식'으로 '사귄다'라고 한 그 순간부터

일종의 '암묵적 약속 혹은 규칙'이 생기게 된다.

 

뭐 대충 이런거다.

 

-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말 것.

(물론 사랑에 빠져서도, 같이 자서도 안된다.)

- 중요한 순간 함께 있어 줄 것.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눈다.)

- 서로에게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물을 것.

- 누구를 만나는지, 오늘 하루 스케줄은 무엇인지 이야기할 것.

- 쉬는 날에는 '당연히' 함께 시간을 보낼 것.

- 자기 전에 꼭 전화해서 잘자라고 이야기할 것.

-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반드시 의논할 것.

 

 

 

정말 일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함께 하고, 나누게 되는 것이다.

'사귄다'는 것은.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가고,

그건 분명 어느 면에서는 아주 행복한 일이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발을 잘못 디디면

서로의 일상을 지배하려고 하게된다.

 

관계의 함정.

 

 

 

서로를 존중하고 독립성을 보장하되

적당한 구속력과 관심을 동시에 보이는 것,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이에서

발을 헛디디는 순간,

혹은 손을 놔버리는 순간,

 

관계는 끝이 난다.

 

 

함께 한다는 것.

그건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결혼'은 이런 줄타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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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기 때문에 외면했던 기억,

 

대학 2학년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S선배의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의 작업을 도와주는 또 다른, 나보다 12학번이나 높은 대 선배, K가 있었다.

 

 

정말 더운 여름이었고,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테스트 촬영 차, 학교로 모여들었다.

 

 

나는

단대 앞, 입구에 걸터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내 옆에는 S선배가 서있었다.

 

그리고, 곧, 한 손에 음료수, 한 손에 담배를 든 선배 K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우리는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내 앞에 서있던 선배 K가 내 쪽으로 몸을 붙였는데 - 아주,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선배의 '거기'가 내 무릎에 닿았고,

그 선배는 스치듯 그것을 가볍게 문질렀다가 몸을 뺐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그 선배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몸짓이 실수가 아니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배는,

너무나 상냥하고, 사람좋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정말 '좋은' 선배였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그럴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다.

 

나의 직감을 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그건 너무나 불편했다.

 

그래서 외면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가끔, 아주 가끔

1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선배지만,

아주 가끔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그 날 일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실수였을까?

내가 잘못 느낀걸까?

의도적이었을까?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동복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 날,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아침 자율학습을 건너뛰었고,

1교시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다.

 

여느때처럼,

철도길을 건너, 지름길인 주택가 사이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였다.

 

내 앞에서

어떤 남자가 빠르게 뛰어오더니

한 쪽 손을 내 교복 자켓 안으로 집어 넣어

나의 한 쪽 가슴을 굉장히 세게 쥐더니,

곧바로 달려가 버렸다.

 

나는, 그 남자를 쫓아갈 생각도,

소리를 지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심장이 쿵쿵쿵쿵 뛰었고,

어쨌든 나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그 날 하루 종일,

그 남자가 쥐었던 나의 한쪽 가슴이 계속 아리고 아팠다.

 

하지만, 난

아무한테도 그 날 오전 일을 말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처럼 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편하기 때문에

외면해버렸던 여러 사건들.

 

하지만, 그것들은

온전히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선

어떤 것이든 조그만 계기만 생기면 그 틈을 비집고 나온다.

 

 

 

밤 늦게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수만가지 사건들,

때로는 두려워하고,

때로는 혼자 상황극을 만들어

대처법을 시뮬레이션 해보며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그리고, 대문 앞에 다다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무사귀환'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집에 들어간다.

 

 

불편한 기억들은,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게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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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었을 때의 행복감, 설렘, 기쁨, 기대

 

 

 

그리고 그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의 지루함, 짜증, 곤욕, 귀찮음, 난처함

 

 

 

시작과 끝의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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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기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을 많이 의식하는 나는,

참,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 번 더 고민하고 신경쓰고

그렇게 나를 한 번 씻어내고, 포장해야만 드러낼 수가 있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당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당신을 보여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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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는 것

시간이 지나면,

'사건'은 점점 희미해지고,

조금씩 잊혀져간다.

 

그러다, 문득 어떠한 계기로 그 '사건'을 기억해내고 다시 후벼파기 시작하면,

그 '사건'을 잊어버렸다는 것, 그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우연히,(정말로 우연히)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6년 전, 나와 그와 그녀가 저질렀던 끔찍한 실수를 다시 떠올려버렸다.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그 모든 게 뒤죽박죽 엉켜버렸던,

하지만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묻어버린, 

2002년 무더운 여름의 끈적끈적하고 눅눅했던 그  '사건'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고,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떠올릴때마다 아프다.

 

잊었지만,

그걸 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잊고 지냈다는 이유로 또 상처를 내는,

 

하지만, 너무 오래되서,

너무 희미해져버려서,

그 사건의 '본질'에 다시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만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다.

그 '사건'은.

 

 

 

그와, 그녀와, 나는-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문을 열어버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다시 생각할 여지도 없이 굉장히 명확하고 단순한 '사건'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문제는,

이제 시간이 너무 흘러

그것이 정말 그랬는지, 그랬을지도 모르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거다.

그리고 이제와서 다시 그 '사건'을 끄집어내서 캐물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만, 그 과거의 '사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또, 그냥 이렇게 묻어버려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이런 과정을 6년 동안 몇 번을 반복한 것 같다.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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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골과 성골

 

 

어렸을 때 읽던 동화책부터 학교 수업시간에 봤던 역사책까지

인물들의 출신 성분은 꽤 종종 문제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공식화된 계급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나란 사람도 이 사회 안에서 어떤 맥락에서는 일정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고,

그런 나의 위치를 가름하는 기준들이 있다.

그 기준들은 내 입장에서는, 핏줄같은 거라기보다는 나의 어떤 '경험'과 '고민'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튼 이것들은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들은 내가 맺어가는 관계와 나의 행동에 있어 어떤 벽을 만들기도 한다.

 

경계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면, 많은 위치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텐데,

그 많은 위치들 사이사이에는 경계선이 아닌,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벽을 만드는 건 내 자신일 수도 있지만,

그 벽 앞에서 때로 나는 매우 초라해지고, 때론 타인에게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

 

 

가끔 나는 무언가를 판단하는데 있어 상당히 많은 부분을 내 경험에 의존하는데

'경험'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걸까 하는 고민이 늘 뒤따른다.

 

내가 경험한 것은 모두 '진실'일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 아닐까?

 

많은 것들이 상대적이라고 믿고 있지만,

지나친 상대적 잣대는 너무나 위태롭다.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였을까.

 

나의 위치의 기준.

경험.

고유한 경험이 갖는 가치.

 

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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