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정책에 저항하는 영국 대학생들

수업료 정책에 저항하는 영국 대학생들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 등록금 인상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데, 이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갈등의 양상이나 쟁점이 변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과거엔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학생회의 관행화된 1년 사업의 시발을 알렸다면 20대 인구의 절반 가량이 대학생인 지금은 등록금의 문제가 그야말로 ‘국민적’인 사안이 되어 학생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원인 제공자인 정부까지 나서서 각 대학에 등록금 인상을 자제하라는 나름의 ‘협박’까지 하고 있으니 등록금 문제가 가히 폭발력 있는 사안이 되기는 한 모양이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이었던 영국에서도 지난 90년대 말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부담시키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 학생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에서는 현재 수업료의 상한선을 1년에 3천 파운드로 제한하고 있는데, 오는 2009년에 이 상한선이 재조정되면 수업료가 2~3 배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이공계열 과정은 1년에 1만 파운드까지 인상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수업료 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학생들은 대학에 다니기 위해 매번 빚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저항도 일어나고 있다. 사회주의 성향의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Education Not For Sale) 그룹은 단지 수업료 인상에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료 자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데, 교육은 가진 자들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이를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tax the rich!) 무상교육을 실시하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부가 학생들에게 생활보조금까지 지급할 것을 촉구한다.

 

실제로 이 그룹의 50여 명의 학생들은 작년 10월 말에 캠브리지 대학 강의실을 하루동안 점거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이 글 후반부 참조). 이들의 주장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무상교육 뿐만 아니라 대학의 시장화와 사유화에 저항하기 위해 강사. 대학직원들과 연대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단 캠브리지 대학 뿐만 아니라 서식스 대학에서도 80여 명의 학생들이 작년 11월에 대학 도서관을 점거하고 도서관 개방시간 연장, 강사와의 면담시간 확대, 직원들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수업료 인상 철회 등을 주장했다. 현재 서식스 대학은 법률비용을 2만 파운드까지 써가며 점거에 참여한 학생들을 고발한 상태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런던시내에서 5,000명이 참여한(그들 스스로 규모가 작다고 표현했다) 전국 집회를 열고 대중적인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개별 대학마다 갈등의 양상이 도드라지지 않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등록금 인하’ 가 아니라 ‘학자금대출 무이자’ 운동을 펼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허나 이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주장으로 등록금 인상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음으로써 대학측에서 주장하는 등록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용인해주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설사 대출받은 학자금의 이자가 없거나 낮아진다 하더라도 등록금이 계속 올라 갚아야 할 원금이 높아지면 그때는 어쩔 셈인가.

 

현재 각 대학은 등록금 인상으로 학생들에게만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 교직원을 확대함으로써 교직원들에게까지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대학은 교원확보율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2~3년 단위의 비정규 교원을 늘리는 편법을 쓰고 있으며, 시간강사 문제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또한 행정직의 외주화를 통해 노동유연화를 확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가와 연계한 편중된 국고지원, 대학의 기업화, 교육개방, 등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은 제반 교육비용을 고스란히 교육주체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제 등록금 문제는 단지 ‘돈’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대학 재편’의 문제이며,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주체’들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사태의 원인은 외면하고 이자나 깎아달라는 식의 청원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공허하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보편적인 무상교육을 실시하라는, 더 나아가 대학의 사유화와 직원의 용역화에 반대하며 대학노동자들과 연대하자는 영국 학생들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뜻깊다.


 

관련 기사


서식스 대학의 마녀사냥

http://www.free-education.org.uk/?p=307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캠브리지 학생들의 점거

http://www.free-education.org.uk/?p=243



 

[성명서]

우리는 왜 점거를 하게 되었는가?

- 수업료 인상에 항의하며 점거에 임하는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의 성명


수업료 인상을 중단하라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무상교육을 실시하라

모든 학생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라


우리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캠브리지대 모임은 앨리슨 리차드 부총장에게 수업료 인상 시도를 중지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2006년 10월 24일 오후 6시부터 시지윅 강의실을 점거하기로 하였다.

이미 학생들은 1년에 3천 파운드의 수업료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부총장은 2009년에 수업료 상한선이 재조정되면 수업료를 크게 인상해야함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캠브리지 같은 엘리트 대학은 1년에 1만 파운드까지 수업료를 올리려고 할 것이다.

대부분 학생들의 재정상황은 비참한데, 많은 학생들이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으며 이는 학업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 3천 파운드의 수업료 정책은 무수한 젊은 노동계급 학생에게 고등교육 접근을 어렵게 하고 실제로 수천명의 학생들을 단념시키기까지 하면서 영국 교육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대학 지원자 중 3.7%, 즉 1만 5천명 이상이 입학을 포기했는데, 이는 코번트리 대학 전체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수업료 상한선을 인상하는 것은 교육제도의 엘리트적 속성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교육은 권리이며, 능력있는 부모를 둔 자들의 특권이 아니다. 교육은 완벽하게 재정지원이 되어야 하고,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되어야 하며,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모임은 진정으로 공정하고 무상인 교육제도를 위한 재정지원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서 그들의 부와 재산을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과 기타 공공서비스에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돈이 없어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정부의 거짓말을 깨부술 수 있는 유일한 요구이다.

우리는 공교육을 지키고 다른 공공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화에 저항하기 위해 학생과 노동자, 특히 강사와 학교직원들과 단결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학교 용역을 외주화 · 사유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대학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모든 대학노동자들과 연대한다.

우리는 전국학생연합(National Union of Students)이 수업료 반대 행동에 나선 것을 환영하며, 10월 29일 런던에서 있을 전국집회에 참여하도록 학생 활동가들에게 요청했다.

또한 우리는 1년에 한 차례의 집회로는 수업료를 저지하고 시장화를 뒤집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제도를 쟁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학생 활동가들로 하여금 각자의 캠퍼스에서 수업료에 반대하는 직접 행동을 펼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캠브리지나 이 근처에 거주한다면 시지윅 강의실로 와서 대토론회에 참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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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7:12 2008/02/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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