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가 낳은 폐해-미국

미국에서 일제고사의 악영향을 다룬 또 다른 한편의 글입니다. 미국에서는 고위험 평가(high-stakes testing) 라 해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수학 시험을 보게 한 뒤 그 성적에 따라 진급/유급/탈락, 졸업 여부를 판가름합니다. 그리고 교원 인사와도 연계하고 학교에 재정상의 인센티브/불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제고사와 같은 셈이죠.

 

요점은 간단합니다. 일제고사 탓에 교육과정이 왜곡되고(시험에 대비하느라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과목은 대폭 축소됨), 교수법이 강의중심과 암기위주로 이뤄지고, 시험문제를 개발하고 채점하고 통계처리해주는 기업이 떼돈을 벌고 있다는 겁니다.

 

성적 조작 사건이 계속 번지자 당국에서는 채점 시스템을 손본다고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계속 시험을 본다면 현재 시험문제내고 채점해서 보고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름들으면 알만한 사교육업체에 하청을 줄지도 모를 일이죠. 지금도 사교육업체에 세금지원해주면서 자율형 사립고나 국제중학교 설립허가해주는 마당에 시험 채점하고 보고하라는 업무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암울한 미래죠.

 

아래 글은 일제고사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리씽킹 스쿨> (www.rethinkingschools.org)이란 잡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저자는 지난 2007년 전교조가 주최한 교원평가 토론회에 초청되어 발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기 말고도 페어테스트 www.fairtest.org 란 곳에 가보면 관련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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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암울한 미래

- 시험에 지배당한 교육


<리씽킹 스쿨> 2008 봄호


웨인 우



우리는 죽어라 시험을 보고 있다. 『표준화된 정신: 미국 시험문화의 비싼 대가 그리고 우리는 이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저자인 피터 삭스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아이들과 성인들 할 것 없이 학교안팎에서 해마다 6억 번의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이는 NCLB가 통과된 2002년 이전에 벌어진 일이다.


민간 연구소인 에듀케이션 섹터의 보고에 의하면 오직 NCLB에 의해서만 일 년에 4천 5백만 번의 고위험(high-stakes) 표준화 학력평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NCLB가 요구하는 규정을 완전히 실시하지 않는 주(州)라 하더라도 연방정부의 지침에 따라 새로 1천 1백만 번의 읽기와 수학시험을 치러야 하며, 과학시험이 추가된다면 1천 1백만 번의 시험이 더해지게 된다.


어째서 이러한 암울한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의심할 바 없다. 1983년 레이건 정부 시절 발간된 『위기의 국가: 긴요한 교육개혁』보고서는 향후 25년 동안 교육정책의 궤도역할을 했다. 그 보고서는 미국에 만연한 질낮은 교육을 국가안보의 위협과 동일시하며 경종을 울렸다. 보고서가 발표된 지 일 년도 채 안 돼 45개 주에서 교육위원회가 설치되었고, 26개 주에서는 졸업요건을 강화했다. 1994년이 되면 45개 주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연방정부가 실시하는 고위험 표준화 학력평가를 향한 행진은 조지 H.W.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부시가 주지사들과 함께 개최한 교육정상회의는 '미국 2000 계획'(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학교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의 토대가 된다. 이러한 평가중심 정책은 레이건과 부시정부에서 탄생되었지만 이는 언제나 초당파적 지지를 받았다. 클린턴과 고어 정부도 부시정부가 세워놓은 목표에 따라 '강한 성취수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강한 성취수준에 맞게 전국적인 평가체제를 추구하였다. 2000년이 되면 아이오와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의무적 시험을 실시하게 된다. 2008년 현재 NCLB에 따라 공립 초중고 학생들이 한 해 동안 총 6천 5백만 번의 고위험 표준화 학력평가를 치르게 된다.


문제는 학력평가가 교육을 죽인다는 점이다. 학력평가는 교육과정을 왜곡시키고 교수법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일부 사기업만 배를 불리게 한다.

'전국 교육평가 공공정책 위원회' National Board on Educational Testing and Public Policy 가 2003년 실시한 전국 조사에 따르면 고위험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주(州)에서 응답자의 43%가 시험과목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비슷하게 '교육정책센터' Center on Education Policy(CEP) 가 2006년에 실시한 전국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학구(school district)의 71%가 NCLB가 강제하는 학력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읽기와 수학 수업시간을 늘리느라 최소 한 과목 이상을 없앴다고 한다. 콜로라도의 어느 공립학교 교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학구에서는 읽기, 쓰기, 수학에 집중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결과, 과학과 사회 과목은 가르치지 않아요."


학력평가 찬성자들은 시험과목에 대한 시간투자에 박수를 보낼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그렇게 시간이 늘어난 시간은 결국은 손해일 뿐이다. 학력평가 탓에 교육과정은 제로섬 게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학과 국어 시간이 늘어난 만큼 다른 과목 시간은 축소되었다. 교육정책센터의 2007년 연구에 의하면 NCLB 때문에 사회과목 시간은 주당 76분, 과학은 75분, 음악 미술은 57분, 휴식시간은 45분, 체육은 40분이 줄었다.


성적이 낮은 학생과 비백인 학생들은 특히나 이런 교육과정의 왜곡에 민감하다. 2006년 교육정책센터 보고서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주의 일부 학구에서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읽기/수학 보충수업을 받게끔 하여 이 학생들은 자신의 교육과정에서 과학과 사회 과목은 아예 제외시켜야만 했다. 또한 동 보고서에서는 대부분 비백인 학생들이 모여 있는 빈곤층 학구의 97%가 읽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정책을 도입했다고 한다. 부유층, 백인들이 모여 있는 학구중에 비슷한 정책을 도입한 비율이 55~59%에 이른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NCLB가 강제하는 고위험 학력평가체제는 빈곤층, 비백인 학생들의 교육경험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제한적이고 부실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고위험 평가 시대에 제로섬 교육과정의 논리란 단순하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 특히 성적이 낮은 학교에선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는 아이들에게 사회와 역사, 과학, 체육, 음악, 미술을 배울 기회를 축소하고, 사회․문화․환경 정의 문제를 외면하게끔 만든다는 점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그나마 고위험 평가체제 아래서 가르치는 과목들은 고위험 평가가 교사들로 하여금 나쁜 교수법을 사용하여 의미 없는 내용을 가르치게끔 함으로서 거의 황폐화되고 있다. 예컨대 2003년 실시된 전국 조사에 따르면 고위험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주에서는 교사의 76%가, 저위험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주에서는 교사의 63%가 교사중심 수업, 교재의 기계적 암기, 강의가 증가되었다고 보고되었다.

메사추세츠의 어느 국어교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알다시피 우리는 학생들에게 쓰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형식을 따라오는 방법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건 마치 아이들이 숫자에 맞춰 색을 칠하는 것과 같죠."


고위험 평가가 모든 교사들에게 어떻게 악영향을 미치는지도 화가 나지만 신임교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특히나 절망적이다. 뉴욕시립대학의 아서 코스티건 부교수(교육학)는 평가체제가 신임교사의 첫 해 수업에 영향을 주며, 이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과 자신의 실천에 나쁜 영향을 주고, 교사들은 어마어마한 시험의 양과 그 압박에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했다.

코스티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숱한 교사들이 "자신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정말 현실같은 시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그들은 "시험이 요구하는 교육과정과 교사 자신의 실천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험 문화는 비백인 젊은 교사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뉴욕주립대학의 제인 에이지 교수는 사범대학을 갓 졸업한 아프리카계 여교사의 사례를 연구했다. 이 여교사는 다양한 문화를 가르치고, 비백인 학생들의 성공을 돕고, 학교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를 품고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고위험 평가의 강한 압력에 직면하여 이 젊은 여교사는 시험에 대비하느라 능동적이고 평등주의적이었던 자신의 목표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게 바로 고위험 평가체제의 실제 비극이다. 신임교사로서의 첫 해는 수많은 업무를 담당해야 하고 또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될 수 있는 교사의 상을 잡아나가야 하는 불확실한 시기이다.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계발시켜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떻게 아이들을 잘 가르칠 것인가 하는 감수성이 미처 계발되기도 전에 이를 무디게 함으로써 시험은 신임교사들의 열망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한편 우리가 죽어라 시험을 치르는 동안 사기업은 우리의 고통의 대가로 수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NCLB의 강제에 따라 주가 더 많이 시험을 보면 볼수록 이익은 특정 기업에 흘러들어간다. 보스턴에 있는 에듀벤처 사(社)는 기업들에게 시장동향에 뒤처지지 않게 해주고,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평가하며, 고객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자료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데, 2006년 미국에서 시험, 시험대비 교재 등을 통해 벌어들인 총수익이 23억 달러에 이른다.


에듀벤처는 2005-2006학기동안 NCLB와 관련된 시험 개발, 인쇄, 실시, 분석, 보고에 관한 시장 규모가 5억 1천 7백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익금의 90%는 Pearson Educational Measurement, CTB/McGraw-Hill, Harcourt Assessment Inc. and Riverside Publishing, Educational Testing Service 와 같은 소수의 기업에 집중된다.


돈과 이윤이 넘쳐나고 교육시장이 팽창하는 가운데 두 가지 단순한 사실이 잊혀지고 있다. 일부 거대기업이 교육과정 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와 학구는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시험중심의 교과서, 시험대비 교재, 강의 프로그램에 점차 의존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시험을 통해 미국의 교육과정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이들 기업에 흘러들어가는 돈은 바로 세금이다. 공립학교에 배당되어야 할 돈이 사기업의 금고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평등과 책무성을 이유로 교육에 대한 통제권이 기업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교사들은 매일매일 수업에 들어가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교실과 학교는 점차 우울한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으며, 고위험 평가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능력을 망쳐놓고 있다. 그러는 동안 양당의 정치인들과 NCLB의 지지자들은 병든 교육의 치유책으로 고위험 평가를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그 치유책이란 게 우리는 죽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험은 공립학교의 소중한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시험이 교육과정의 생명을 앗아갔다. 시험은 나쁜 교육을 촉진시킨다. 시험이 교육을 죽이기 전에 시험을 죽여야 할 때다.

원문 보기

http://www.rethinkingschools.org/archive/22_03/dyst223.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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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16:14 2009/0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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