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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6
    고찰하는 게이밍
    퍼플렉싱

고찰하는 게이밍

고찰하는 게이밍. 이것은 탐구적인 게이밍, 질문하는 게이밍, 알고자 하는 게이밍으로 불러도 좋다. 이것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에서 의도하는 플레이 방식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핵심은 게임을 통해 어떠한 것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로서 고찰하는 게이밍을 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인내심이 있다면, 아무 게임이나 실행하고 10분간의 화면 상의 픽셀 정보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물론 이것은 그 게임의 디자이너가 의도하는 게이밍의 방식이 아닐 뿐더러, 99%의 플레이어에게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때문에 애초에 게임의 플레이에 고찰하는 게이밍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거나, 고찰하는 게이밍을 의도한 게임이어야 한다.

 

픽셀 정보의 변화 말고도 우리 삶에는 고찰할 것이 많다. 왜 하늘은 파란 것인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정치인들은 왜 말만 하는 것처럼 보일까,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주제의 가치를 다루는 게 아니니, '이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따윈 쓸모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일단 거두어주길 바란다.

 

고찰하는 게이밍은 우리가 고찰할 것들에 대한 고찰을 도와주는 게이밍이다. 고찰하는 게이밍은 알고 싶어하는 것을 알려줄 수도 있지만, 알고 싶은 것을 아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처럼 결론이 없는 (최소한 아직 알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주제도 고찰하는 게이밍에서 허용된다. 결과가 아니라 고찰의 과정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찰하는 게이밍의 한 예를 써보았다. 바로 '세계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는 게임이다.

 

"어떠한 일련의 법칙으로 생성되고 유지되며 소멸하는 세계가 있다. 플레이어는 그 속을 탐험하면서, 그 세계의 본질에 대해 하나씩 알아나간다. 마치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밝혀내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수립했으며, 철학자들이 존재를 생각한 것처럼. 그리고 플레이어는 본질을 알아낼 때마다 그 본질을 이용해 세계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마치 핵폭탄을 만들고, 순간 이동 장치를 만드는 것처럼.

그리고 최종적으로 플레이어가 세계의 모든 본질을 꿰뚫으면, 그는 세계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

 이과대학 입학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예에서, 플레이어는 세계를 탐구한다. 그 탐구의 목적은 세계를 구하는 것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도 아닌 세계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다. 그런데, 이 예에는 앞서 말한 세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달리 '세계의 모든 본질과 세계의 조작'이라는 결론이 있다. 이것은 플레이어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위한 게임 내의 장치로 이 게이밍의 핵심은 아니다. 마치 영화 <올드보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의 딸이란 것이 아니라, 그에 투영된 복수의 잔인함인 것처럼 말이다. 플레이어도 우리도 아직 실제 세계의 본질에 대한 결론이 없다는 것을 안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결론을 이끌어낸 추론의 과정, 즉 '고찰'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찰하는 게이밍은 고찰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이밍이다.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우리 일생에 있어 중요한 일이고, 즉시 결론을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다. (설사 그 결론이 틀리거나 잘 알려진 것과 다르다 해도) 바꿔 말하면, 고찰하는 게이밍은 실제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찰의 훈련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고찰하는 게이밍은 손가락의 빠른 움직임이나 반응 속도같은 신체적인 능력보다는, 깊고 넓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이밍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특정한 장르를 개척하거나 게임의 본질을 꿰뚫을 수는 없다. 이것은 단지 장르나 소재에 관계없이 많게 혹은 적게 들어갈 수 있는 게이밍의 정신이다. 본능으로 점철된 혼란스러운 전장 한복판에 작은 비율로 들어갈 수도 있고, 바둑처럼 게임 자체를 점철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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