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2007/05/10 15:23

 

2005년 3월, 처음 싸이질을 시작할 때.


메뉴에 '프로필'이란 게 있어서, 난 거기에 프로필을 써야만 하는 줄 알았나보다...

우연히 싸이 미니홈피를 뒤져기다, 그때 쓴 나의 프로필을 발견했다...

이 프로필을 쓰던 때는, 그닥 우울하지 않았나보다...


[세상에 나올 때]

30여년 전,

목포 자그마한 전세방(월셋방이었을 수도 있다)에서

쌍둥이같이 닮고도 귀여운 딸과 아들, 그리고 무심한 남편과

나름대로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던 울 어머니...

구강포가 훤히 펼쳐진 강진군 바닷가 마을에 있는

남편의 부모님 집에 가서

흐릿한 나를 낳으셨다...

그러나, 나를 낳으신 이후로도 죽~

울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시장통에서 주워왔다고 주장하신다.


[정규교육을 받기 전까지]

난 다시 포대기로 싸매진 채

목포로 옮겨져,

주워온 아이치고는 나름대로

엄마, 아빠, 언니,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만2살때 할아버지에게 "나는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운운하는 삶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온 집안의 비웃음을 한몸에 샀고,

만3살때 국민학교 선생인 사촌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바람에

집안으로부터는 '영특한 아이'라는 총애를,

사촌언니 반 아이들에게는 '4살 주제에 비교당하게 만드는 느자구없는 아이'라는 시기를 한 몸에 받았고,

만4살때 홀로 장흥에 있는 외갓집에서 강진에 있는 할아버지집으로 독자적인 이동에 성공함으로써, 이에 감격한 할아버지는 목포에 계신 나의 부모님에게 감동이 묻어나는 편지를 쓰시기도 한다.

또한 어린 시절 틈틈히 할아버지에게 화투짝으로 노는 방법을 터득하여, 목포 집에서 그 기계를 이용하여 노련하게 기술을 선보임으로써 동네 어르신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한다.


[국민학교]

언니, 오빠가 학교에 다니자 나도 그곳에 가고싶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언니랑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식'이라는 게 열린다는 속보를 입수했다.

난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입학식 구경에 나섰다.

난 당시 만 5살하고도 석달을 살아낸 연륜있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저 구경만 시켜주자고 데리고 나섰으나,

난 줄을 서겠다고 떼를 썼고,

급기야 오빠 1학년 담임선생이 또 1학년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아낸 엄마는 안면을 이용해 나를 그 반 뒷줄에 세워두었다.

나의 국민학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 원해서 들어간 학교이건만, 난 매일 울었다.

아직 덜 배운 것이 시험에 나왔다고 울었고(이를테면 부등호 표시 따위들,,,)

난 하기 싫은 '무용'이라는 어색한 것들을 시키길래 울었고,

선생님이 만들어오라고 한 걸레를 잊고 안 가져갔기에 울었고,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울었다.

그 뿐인가, 공기놀이 하다가 지는 해를 보고 울었고,

우리 집 개 '똘만이'가 내가 밥을 퍼넣어준 개밥그릇을 뒤엎는 것이 괘씸해서 울었다.

그런 방자함으로 점철된 목포생활은

군화발이 남도를 짓밟던 1980년에 마무리되었다.

나는 어엿한 광주시 국민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새 아파트단지 옆에 있던 그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경험하도 했다. 이를테면 대야에 흙퍼나르기, 운동장에서 돌 고르기 따위들.

그곳에서 나는 운다는 것이 무척 쪽팔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울어야 할때 울지 않고 눈을 치켜뜬 덕에 나서 처음으로 싸대기를 맞기도 했더랬다.

그러다가 당당하게, 졸업생의 절반이 넘도록 받는 그 귀한 상장까지 몇 장 챙겨 꽃다발 목에 걸고 '졸업생'의 반열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중학교 이후]

역시,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선

기억 몇 자락이 아니라

나에 대한 처절하고 정밀한, 그리고 에~ 또

깊이있는 '돌아보기'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서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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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0 15:23 2007/05/10 15:23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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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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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선배의 글빨은...^^
  2. 2007/05/19 21:0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역시 누나의 글빨은...^^
    말빨에 필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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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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