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나들이

2006/10/09 20:54

참 오랜만에 조계사에서 종각을 지나 청계천 거쳐 을지로까지 걸었다.

긴 거리는 아닌데,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고 풍경이 참 낯설었다.

찻집에 앉아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사람들.

건물밖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서 수다떠는 사람들.

종각역은 바뀌어있다. 서점 주변에 나무계단을 만들어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일과시간의 청계천도 여유로웠다. 사람이 많진 않았다.

을지로 골목으로 접어드니 빼곡한 건물과 지나다니는 오토바이, 사람들...

예전에는 무척 많이 걸어다녔던 것 같다.

거의 매일같이 집에갈 때는 명륜동에서 창경궁까지, 또는 종로까지 걸어다녔다.

어떤 때는 집이 있는 아현동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1991년이었던가, 10월31일에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자고 종로 레코드가게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그날은 술도 안마셨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길로 내쳐 우이동 계곡까지 걸어갔다. 밤11시쯤 시작된 걷기는 새벽 3시가 넘어서 그쳤던 것 같다.

 

'시내'

요즘은 시내라는 개념이 없어진 듯 하다.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든 불야성이고, 번쩍거리는 술집과 쇼핑몰들이 들어서서 번화가가 따로 없다.

예전엔 "어디가냐?"라 물으면 "시내!"라고 대답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의 첫 시내나들이는 중학교 1학년때였다.

나까지 다섯, 똘똘 뭉쳐다니던 철없는 계집애들이 첫 시내나들이에 나섰다.

엄마한테 애들이랑 시내 놀러가기로 했다고 하자, 가지 마라고 할 줄 알았던 우리 엄마는 내 동전지갑에 5백원짜리 지폐를 넣어주시며 맛있는 거 먹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하셨다.

 

그때 광주에서 시내는 어김없이 딱 '충장로' 한 곳이었다.

내 또래 아이들은 시내에 나가면 가는 코스가 거의 정해져있었다.

충장로 초입에 있는 우다방(우체국 앞이 약속장소로 애용돼서 광주사람들은 모두 우체국 앞을 우다방이라 불렀다)에서 만나고,

목화가든에서 돈까스를 먹고, 나라서적이나 삼복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지금에 비하면 동네 편의점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볼 게 많았던 백화점을 돌아다니고, 충장로를 하릴없이 오락가락 걷다가, 지치면 궁전제과에서 팥빙수를 먹는 식이다.

그 모든게 다 충장로에 있었다. 우다방에서 시작된 충장로는 1가, 2가, 3가를 거쳐 화니백화점까지 가면 얼추 구경거리가 끝났다.

 

그때 우리 다섯은 아마도 삼양백화점에 가서 플라스틱 반지를 샀던 것 같다.

"우리 사랑 영원히~"라는 식의 닭살스러운 글귀를 새겨서 나눠 끼고, 평생을 함께할 듯한 우정을 다짐했던가. 빨간색 뭉툭한 반지...

그게 나의 첫 시내나들이였다.

 

나를 뺀 네명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살까. 가끔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다 다른학교로 갈렸지만, 변치말자던 우정은 나름대로 오래 갔다.

 

내 친구 홍숙이. 공부를 제법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참 착했는데, 지지리 궁상이라 할만큼 가난했던 친구다. 보건전문대를 나와서 광주시내에 있는 내과 의원에 취직해서 곧잘 다녔었다. 우리 엄마도 몇 번 그 병원에서 친구 빽으로 치료도 받으셨으니까. 그러던 홍숙이는 어느날 수녀가 되겠다며 떠났다. 수녀복을 입은 홍숙이가 참 예쁠거라는 생각을 했고,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

 

또 내 친구 지숙이. 털털했지만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살았던 지숙이는 오빠 네 명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컸다. 우리는 늘 지숙이 집에 가서 비틀즈며 듀란듀란이며 조이며 마이클잭슨이며 신디로퍼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우리들 중 전축이 있는 집은 지숙이네 뿐이었으니까. 대학가자마자 연애한다고 법석이더니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한다해서 광주까지 내려갔다. 없는 돈에 멋진 액자를 사고 축하카드가지 끼워넣었다. 식장에 도착해서야 신랑은 엊그제까지 연애하던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황급히 포장을 풀어 카드를 빼냈다. 나도 몇 번 본 그 남자친구 이름을 지숙이라는 이름과 나란히 카드에 썼기 때문이다. 아이도 낳았다던데 잘 살고 있는지... 

 

진. 진이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그러더니 대학교에 가자마자 자신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듯 했다. 영어학원도 다니고,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하고.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진이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예뻐지더니 느닷없이 울며 나타났다. 사귀던 오빠한테 아이가 있다는 거다. 아직 어렸던 우리에게는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 일로 한동안 괴로워하던 진이는 어느날부터 다시 자신감을 찾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10년쯤 전, 진이가 호주에서 잠깐 들어왔는데, 광주 내려갔다가 금방 다시 호주로 나가야 한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다. 그때 난 신문 마감하는 날이라서 힘들다 했고, 그 뒤로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은숙이는 영등포 목화예식장에서 결혼을 했다. 은숙이는 대학 가자마자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다 졸업하던 해에 선을 봐서 몇달만에 결혼식을 한다는 거다. 결혼식 간 것도 모자라 심지어 은숙이 신혼여행을 배웅하러 공항까지 따라갔다. 예의 풍선 달린 우스꽝스러운 승용차에 신랑 신부와 함께 타고. 가잔다고 어떻게 그렇게 난짝 따라나섰던고...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수원으로 이사왔다고 놀러오라는 전화가 몇 번 걸려왔고, 그때마다 난 바쁘다했고 이젠 연락이 없다.

 

360도 가운데 1도만 고개를 틀어도 세상은 많이 달라진다.

고개 숙이고 영등포 거리만 걸어다니는 것과

가끔 고개 들고 걸으며 한블록만 더 지나쳐 보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영등포를 비껴 다른 곳으로 나서거나 숨는다면 많이, 무척 많이 다를 것이다.

오늘도 간만의 산책이 옛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는가.

해가 저문 뒤에 여의도공원을 걸어 사무실로 돌아올 때도 나름대로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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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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