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신체다

일상 2012/09/05 19:26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자조적인 말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제자리 걸음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하게 냉소적인 자기 경멸이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플라톤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서양철학이란 플라톤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고 영문학이란 셰익스피어를 변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는데, 어떤 점에서 이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랑의 기능이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한다면, 모든 사람은 신체나 영혼을 통해서 임신을 하고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그 본성에 따라 낳기를 욕망한다. 그런데 추한 것 안에서는 낳을 수가 없고, 아름다운 것 안에서만 낳을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낳는 일, 즉 임신과 출산은 신적인 것이며, 가사자적인 생명 안에 들어있는 불사적인 것이다. 이런 일은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추한 것은 신적인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은 조화를 이룬다. ... 또한 에로스가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아름다움 속에서의 생식과 출산이다. 젊은이에게 있어서 생식이 왜 사랑의 대상이 되는가? 생식이야말로 가사적인 자를 영원히 살게 하여 불사적인 것에 가장 가깝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서서 동의한 것이 옳다면 사랑이란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고, 그러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좋은 것과 함께 불멸성을 필연적으로 욕망하게 된다. 이러한 논의에서 역시 사랑의 대상은 불멸성이라는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플라톤의 <향연>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9/05 19:26 2012/09/05 19:26
http://blog.jinbo.net/greenparty/trackback/273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