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새벽에, 술이 깨기를 기다리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기가 두려워 술을 마셨는데, 다시 모니터 앞에서 뭘 해야 좋을지를 찾고 있다.
처음 건담이 79년이고 이게 85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화가 자유로운 사유의 표현이라면 자유는 무엇인가? 자본의 자유인가, 자본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이렇게 새벽에, 술이 깨기를 기다리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기가 두려워 술을 마셨는데, 다시 모니터 앞에서 뭘 해야 좋을지를 찾고 있다.
처음 건담이 79년이고 이게 85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화가 자유로운 사유의 표현이라면 자유는 무엇인가? 자본의 자유인가, 자본으로부터의 자유인가?
랄프 깁슨의 사진들
추상은 구체적인 대상이 지닌 사물의 본성의 다른 이름이다
[학교의 돌계단]
들이나 산에서, 혹은 도로변 길가에 핀 진짜 꽃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런데, 그림 속 이 꽃들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들뢰즈를 따라 생각해보면 애초 우리의 시각은 효용성에 따라 사물을 판별하고 수용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내가 보고 싶은 만큼, 그래서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지각의 도식적 틀에 맞추어 대상을 수용하기 때문이리라. 그림 속 꽃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나의 자연적 지각의 틀이 부서지고 나와 세계의 경계가 점점 엷어지기 때문일까. 무한한 사물의 상태 그 자체에 가까워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예술은 나를 버리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의 표현일까. 나와 세계가 결국 하나가 되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