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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10
    <SeLEF>, L-shorts
    하노이
  2. 2007/06/08
    [트린 T 민하 기획전] <A tail of love>
    하노이
  3. 2007/06/08
    [사진] Pride parade,(3)
    하노이
  4. 2007/06/07
    친절? 희생?(1)
    하노이
  5. 2007/06/05
    ( )에게 쓰는 편지,
    하노이

<SeLEF>, L-shorts

 

*

 

토요일 1시 '반' !



 


그녀의 기억  In Memory Of Me
Feature / USA  / 2006 / 22m /Super 16mm
Director:  Samantha Lavin
Cast:  Maryfrances Careccia, Tasha Ames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고교 시절에 깊은 관계를 맺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과 화해하려 노력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후회에 대한 것, 내 삶을 바꿀 수 있었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하나는 섹슈얼리티 그리고 타인과 내 안의 호모포비아에 그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에 대한 것이다. 감독은 복잡한 개인의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가진 두려움, 열망, 선택을 다루는 것이 동성애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영화에 의미를 부여했다.

 


Un/going Home
Documentary / Korea / 2007 / 34m / DV
Director: 김영란

암스텔담에서 날아온 혜진은 입양인,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성노동자 그 어떤 이름 하나만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 때로는 통쾌하고 때로는 밉살스럽기도 한 혜진. 퀴어문화축제에서의 즐거운 시간과 성별전환 법개정에 대한 토론회, 그리고 그 밖에 한국에서 보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는 과연 집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또 다시 집을 찾아 떠나야 할까?

 


친구니까 말할게 Because You’re My Friend
Documentary / Korea / 2007 / 16m / DV
Director: 다이포(Dyke On Focus)

험한 세상에서 레즈비언인 나 자신을 드러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다르니까. 그래서 우리는 커밍아웃을 했다. 용감한 레즈비언들의 든든한 이성애자 친구들의 이야기. <친구니까 말할게>는 레즈비언 영상제작집단 다이포의 첫 공동작업으로, 여자친구들끼리의 수다라는 형식을 빌어 이성애자-동성애자 간의 오해, 이해, 그리고 소통의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는 유쾌한 다큐멘터리다.

 



우리 결혼해요 Marry Me
Feature / Korea / 2007 / 18m / HDV
Director: 로운

하은은 레즈비언이다. 그녀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으며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친하지만 엄마에게 차마 레즈비언임을 말할 수는 없다. 하은의 엄마는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부담을 주고, 그것을 보고 있던 그녀의 여자친구 세연은 자신의 게이 친구 지훈을 소개시켜준다. 그리고 하은과 지훈의 결혼이 진행되면서 그녀와 세연 사이에도 갈등이 깊어 간다. 현재 한국 동성애자 담론 중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동성혼에 대한 솔직한 고민이 담겨있는 작품.

 


오버 더 레즈보우 Over the Lezbow
Feature / Korea / 2007 / 19m / DV
Director: 최진영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20대 여성. 그녀는 우연히 한 점술가로부터 자신에 대한 예언과 유리조각 하나를 얻게 된다. 이 유리조각은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레즈비언 욕망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유리. 과연 그녀는 유리조각을 통해 어떤 것들과 조우하게 될까? 그리고 그러한 마법은 그녀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 무성영화 양식을 통해 레즈비언의 욕망과 정체성에 대한 말 건네기를 시도하는 유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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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린 T 민하 기획전] <A tail of love>

 

 

*

 

보고 싶었던 <그녀 이름은 베트남>을 놓치고 나서,

섭섭 아쉬운 마음으로,  

그래도 하나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향한 홍대 아이공.

 

좋아라 하는 친구와 함께 한

지갑 사정을 무시한 채 될대로 되라식의 호화 저녁식사와

담배와 바삭거리는 과자와 흐르는 수다는 좋았지만,

정작 영화는...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를 반복하며, 깨어있을 때 조차도 눈꺼풀과의 투쟁에 집중하느라

영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_-...

 

기회가 되면 자료를 더 찾아보고.. 그나마 기억나는 장면들을 다시 떠올려 봐야지;;

 

 

 

사랑의 동화 (A Tale of Love, 102min, 1995)

 

 

"women make movies"의 소개페이지 - http://www.wmm.com/filmcatalog/pages/c60.shtml



‘하나의 사고방식,
하나의 생활방식을 강요하는 사회는 인간사회가 아니다’
-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 중 - 인터뷰자 투반

이주. 자본주의, 신자유화로 인해 제3세계라 일컫는 곳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그 이동은 제1세계의 새로운 값싼 노동인력의 필요성과 강대국과의 치열한 몸부림에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동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업을 위한 전쟁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역사책에서 이 이동은 쉽게 얘기되지 않는다. 주류역사는 이미 비주류의 삶을 의미있는 역사로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본주의로 무장한 강대국에 의해 신식민화 되고 있는 전세계의 신자본화 되지 나라들.
강대국이 주체로 읽혀지는 수많은 텍스트의 나열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타자의 위치에서 텍스트를 읽는 데 익숙해졌고, 강대국과 자본주의화가 삶의 꿈과 이상인양 떠들어대는 주류미디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중심은 인간존엄이 아닌 ‘자본’이 되었다. 식민화를 ‘탈’한다는 것. 탈식민주의는 비주류의 역사와 사람을 중심으로 놓는다. 신자본주의, 신자유화가 제1세계의 새로운 꿈과 희망이 될지언정, 그들의 꿈과 희망으로 인해 또 다른 세계는 억압과 착취를 근간으로 한 새로운 노예제도가 새롭게 재탄생하게 된다.

트린T민하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 그녀는 공부를 한다. 아시아에서 여성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시기는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주여성이 하류직업이라 일컫는 또 다른 여성직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그 과정에서 그녀가 공부와 영상작업을 하기까지 그리고 인정받기까지, 녹녹치 않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녀는 베트남과 제3세계를 카메라에 담는다. 베트남을 통해 아시아의 유교주의와 남성중심사회를 비판하고, 영상 글쓰기를 통해 주체와 타자의 간극을 실험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아나간 그녀의 작품들. 영상예술에 새로운 예술세계를 선사한 예술가에게 헌정하는 상인 마야데렌 상을 받고, 끊임없이 작품과 연구물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만들고 있는 트린T민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화두를 던져주는 작가 중 한명일 것이다.

이번 기획전에서 소개되는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 <리아쌍블라쥬> 등의 작품에서는 글쓰기의 혼란함과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자 하는 고집 쎈 자아를 갖고 있는 강단있는 여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리아쌍블라쥬>, <벌거벗은 공간: 지속되는 삶> 등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공간인 아프리카를 통해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의 삶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영성을 느끼게 해준다. <밤의 동화>,<4차원>,<밤의 여로>를 통해 그녀만의 언어로 영상 언어를 만들고, 생산하고 있는 현재의 그녀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항상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담아내는 자로서의 주체적인 자아, 담고있는 자로서의 주체적인 화자. 화면구성의 액자구성이 아닌, 화자구성의 액자구성은 국내에서 소개된 다양한 다큐멘터리, 극영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상문법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주체로 인식하고, 만끽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프로그래머 김연호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

트린T민하(Trinh T Minh_ha) 소개

베트남 출생.
현재까지 최근 작품 <밤의 여로> 외 여섯 편의 영화, <디지털 필름 이벤트>(2005)외 여덟 권의 책, 세번의 설치작업을 해왔다. 현재까지 진행된 서른 여섯번의 회고전을 통해서도 그녀의 작품이 전세계의 작가와 관객들에게 의미있는 화두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안영상작가 겸 여성주의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AFI가 독립영화 감독에게 수여하는 'Maya Deren Award',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에 수여하는 'Best Cinematography Award'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현재도 자신만의 영상문법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몇 안되는 대안영상 작가 중 한명이다.


<행사개요>

□ 행사명
□ 주 최
□ 기 간
□ 장 소
□ 티 켓
□ 문 의
□ 예 매
□ 홈페이지
□ 배 급
트린 T 민하 기획전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2007. 5.17(Thu) ~ 5. 30(Wed)
미디어극장 아이공
일반 5,000원, 장애인/학생/단체(20인 이상) 3,000원
TEL. (02)337-2870, igong@igong.org
예매는 현장에서만 구매 가능
http://www.igong.org
WMM (Women Make Movies)

 

 

-

 

 

 

 

사랑의 동화 (A Tale of Love, 102min, 1995)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누드모델을 하는 베트남 이민자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주인공이 베트남 신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해석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기억, 꿈, 현실의 공간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아름다운 촬영기법으로 96년 선댄스 영화제 촬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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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ride parade,

 

 

제8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프리게이허그



 

존 카메론 미첼 씨를 무려 직접 보고 ,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초감격 T_T♡

 

 

존카메론미첼_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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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희생?

 

 

"친절하긴 친절한데, 그냥 친절한 게 아니라 뭔가 의도가 있는 친절같아."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내 단점이라며 이렇게 은근슬쩍(사실은 대놓고) 말해주었다.

 누군가에게서 내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것도 직접 해준다면 감사한거지. (라고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 점차 정말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그래도 기분은 좀 나빴는데 요즘엔 그냥 더 듣고 싶어서 궁금해질 뿐...)

 

아무튼 궁금해졌다. 내 어떤 행동에서 이렇게 느낀다는 건지. 알듯 모를듯.

 

'그냥 친절한 거'랑 '의도가 있는 친절'이랑 뭐가 다른 건지도 궁금하고..

 

내게 친절한 행동에 대한 의도가 있다면,

(사실 스스로는 내가 친절하다고 생각해본적 없다. 단지 소심할 뿐-_-.. 물론 나 스스로도 내가 내 마음 쓰는 게 괴로워서 날 위해 하는 행동들이 '친절'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건 불현듯 깨달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겐 사소한 문제가 아닌 일들이라 신경쓰는 건데 마치 내가 더 '착해서'라거나 '친절'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혹은 희생해서 하는 일이라 여겨질 때도 있어서.. )

그냥, 얘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 정도?  이런 것두 뭔가를 '바라는' 일이니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가?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딱히 좌절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좋아해주지 않으면 아닌거지. 그렇다고 내가 또다시 원망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더 소원해져야 하는 것도 아닐텐데.

암튼 잘 모르겠다. 나중에 더 물어봤는데 다른 말 하는 듯 해서 ..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말해달라고 부탁해봐야지 하는 생각.

 

그냥 드는 생각인데 친절과 희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를 들어,

'엄마가 베푸는 친절', 이란 건 상상할 수 있나?

친절한 엄마. (친절한 금자씨 식의 그런 반어적 형용사의 뜻으로 말고....)

누군가는 엄마가 '희생'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그게 엄마의 '본래 마음(모성)'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야"란 말은 어디선가 들을 수 있어도,

"우리 엄마는 참 친절한 사람이야"라는 말은 어색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엄마라는 사람들은 '원래' 그래야 하는 사람 같거든. 대체 왜?

 

원래 그래야 하는 엄마이지만 동시에 또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대체 왜 그러고 살어, 란 느낌. 대체 왜 희생하는 거야, 하는 느낌.

본인들도 자기가 하고 싶어 그랬는지,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는지는 모르지 않을까.

그런 류의 구분이 스스로에게 필요한가?

 

이전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 하는 아빠' 라는 말의 괄호에다가

술 마시는 아빠

담배 피는 아빠

때리는 아빠 

하는 말을 넣는 것과

 

술 마시는 엄마

담배 피는 엄마 

때리는 엄마

라는 말을 넣는 것은 미묘하게 어감이 다르다고.

 

 

<내 남자의 여자> 드라마를 보다가 준표(김상중)가 지수(배종옥)에게

"당신은 너무 과잉친절이야. 그거 폭력이라고."라는 류의 이야기를 하는 걸 봤었다.

준표는 화영과도 이런 류의 이야기를 나눈다.

"마누라로는 딱인데, 재미없지?"

 

언젠가 강연에서 세상의 여러 게임의 룰은 여성이 어떻게 행동하든 욕먹을 수밖에 없도록, 혹은 질 수밖에 없도록 '누군가에게만' 유리하도록 짜여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나 부인이 친절(희생)하지 않으면, 애들이 삐뚤어지고, 남편은 바람나지만(여자가 사근사근한 맛이 없어서)

엄마나 부인이 친절(희생)해버리면, 애들은 삐뚤어지고(엄마가 너무 애를 감싸고 돌아서), 남편은 바람난다(부인이 귀찮아서, 구속해서).

 

내가 좋아서 한 일에 대해 내가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그렇지만 어느날 불현듯 내가 좋아서 하긴 했지만 내가 한 일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지 너무나 혼란스러울 때 나는 쉽사리 내가 희생한 거였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서 그런가. 덜 슬퍼서 그런가. 진짜 덜 슬픈가?

결국 나의 마음 혹은 나의 인성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내 주변의 관계와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내 행동,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을 다 주목해야 여러 의미들을 발굴해내고 읽어낼 수 있을텐데

 

'엄마'같은 것처럼

주변에 많은 것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버리는 거...

답답하다 어엄청.

 

내가 내 엄마란 사람에게 '당연시'하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장난아니다.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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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게 쓰는 편지,

 

 

있잖아, 너를 만나기 이전의 일인데, 나는 사람에 대한 조급증에 시달렸던 때가 있어.

사람이 제일 신기하고, 사람이 제일 고마워서, 바로 지금 내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과 가능하면 자주자주 만나서 함께 시간 보내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몰랐어. 하루에 밥은 어째서 3끼밖에 먹지 않는 걸까, 사람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계속해서 밥 약속을 잡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좋을텐데. 하루에 왜 24시간 밖에는 없는 걸까. 나는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시간도 많아야 하는데.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면, 지금 이 사람과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 이야기를 모두 다 하고 싶어 어쩔 줄을 몰랐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서, 내가 지치지 않는 건 아니었어. 사람들을 만나서 계속해서 시간을 신경쓰고, 이야기들을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그나마 지금 꼭 말해야 하는 것들을 골라내 보려고 하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 하나의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했지. 홀로 있을 때조차도 누군가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움직이게 했지.  

 

그런데 있잖아, 그때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면, 늘 내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던 걸지도 몰라. 내 조급증에 오히려 사람들이 가려졌을지도 몰라. 조급함과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너무 컸던 나는, 점점 버거워졌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사람도.. 만나고 싶은데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되잖아. 만났을 때,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드러낸다는 거, 마음대로 잘 안되잖아. 매번 아쉬워하고 아쉬워했지. 그래서 점점 더 두려워지는거야. 버거워지는 거야.

그때 난 왜 그리 조급했을까.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을 그리워했고, 그리워하면 할수록 아쉬움은 쌓여만 갔을까.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사람에 대한 아쉬움만큼이나 타인들에 대한 원망도 함께 쌓여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서는, 놀랐어. 어쩌면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내가 나 자신은 단 한 번도 찾아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나를 찾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고, 만나고 있어. 하지만 나는 또, 내 안의 여러 ‘나’들과 다투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화해를 모색해보려고 하면서, 이전처럼 없는 척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조급증도 조금은 가라앉아서,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급한 마음이 오히려 사람을 멀리 하도록 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

 

가끔 내가, 너에게 집착을 갖지 않는 것 같아서 너를 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실망하지는 말아. 그래, 어쩌면 지금 나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여러 '나'들이, 불현듯 찾아와준 '나'로 인해 자기들 이야기를 너무나 시끄럽게 해대는 바람에, 혼자 있을 때도 쉬이 지치는 그런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서 내 주위에 대해 이전보다 더 둔해보일지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이제는 내가 타인들을 다르게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기도 했거든.  그 어떤 수식어로도 규정되지 않는, 나 그리고 너, 우리들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 그러니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노력해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본다면, 변화란 것은, 내게도 네게도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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