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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9
    1015 산업은행 앞 집회
    재영
  2. 2009/10/18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존 드로리언
    재영

1015 산업은행 앞 집회

 

 

GM CEO 프리츠 핸더슨이 지엠대우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산업은행을 방문했다.

노동자의 피와 땀을 환투기로 빼돌린 GM과 그것을 묵인하고 이제와서 난리법석인 산업은행에 대한 규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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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존 드로리언

조선일보 기사지만 교양 차원에서 펌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존 드로리언

  • 박상원 자동차 칼럼니스트

혁신 없는 GM 몰락… 30년 전 그는 예견했다
 

2009년 6월 1일, 한때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다음 날 지역 일간지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의 칼럼니스트 탐 월시는 디트로이트 인근 트로이(Troy)시에 있는 한 묘지를 찾아 존 재커리 드로리언(John Zachary DeLorean)이라고 적힌 묘비 앞에 섰다. "존,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왔소."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말했다. "GM이 어제 파산 신청을 했소."

월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30여년 전, GM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드로리언이 이런 날이 올 것임을 누구보다도 먼저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1982년 10월 26일, LA 국제공항 인근 셰러턴 호텔 501호에서 한 남자가 약 2400만달러(약 312억원)어치 코카인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GM의 최연소 브랜드 부문장과 총괄 부사장을 역임한 천재 자동차 엔지니어로, 유력한 사장 후보로 평가받다 갑자기 회사를 나온 인물. 1985년 영화 '백 투더 퓨처'에 선보였던 '드로리언 DMC-12'의 개발자 존 드로리언이었기 때문이다.

존 드로리언과 그가 GM에서 나간 뒤 개발한 자동차 '드로리언 DMC-12'.
영화 백투더퓨처의 드로리언.

그는 1925년 디트로이트에서 루마니아 이민자 아버지와 헝가리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포드 노조간부로 일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싸웠고, 드로리언이 17세 때 이혼했다. 가정환경은 불우했지만 학교에선 뛰어났다. 공학석사와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패커드 자동차회사에 취직한 뒤 그의 경력은 탄탄대로였다. 4년 만에 개발 책임자가 됐고, GM에 스카우트돼 폰티액(Pontiac)의 차석 엔지니어가 됐다. 수많은 특허를 출원했고, 36세에 수석 엔지니어가 됐다. 미국인들이 그를 기억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미국의 첫 머슬카(muscle car·출력을 중시하는 근육질 스포츠카)인 폰티액 GTO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이미지였던 폰티액 브랜드는 이후 돈 있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여 성공했다.

드로리언은 폰티액 총괄 책임자가 된 이후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파이어버드·그랑프리 등 성공작을 내놓았고, GM 브랜드 중 가장 큰 시보레(Chevrolet) 부문장으로 영전한 뒤에도 히트작을 쏟아냈다. 이후엔 GM 그룹의 자동차·트럭 생산총괄 부사장까지 올랐다. 사장도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1973년 48세 나이로 "사회적인 일에 더 신경 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GM을 떠난다.

1979년 그는 비즈니스위크 전직 기자와 함께 자서전 '맑은 날에는 GM의 본사를 볼 수 있다(On a Clear Day You Can See General Motors)'를 출간, 그가 20년간 경험했던 GM의 무능한 관료체제를 신랄히 비판했다. "GM의 경직된 시스템이 독창력을 질식시킨다" "이대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GM은 오랫동안 누구보다 차를 많이 팔아 어느 자동차 회사보다도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자기들 길만 옳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며 GM 파산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GM에 밉보였기 때문인지, GM에서 나온 이후 그의 진로는 순탄치 못했다. 1975년 자신이 세운 자동차 회사 DMC(Delorean Motor Company)가 개발한 'DMC-12'라는 스테인리스 스틸 차체로 된 2도어 스포츠카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크게 호평받았지만, 1981~1982년 심각한 판매난에 빠졌다. 그는 회생 자금을 급히 구하는 과정에서 FBI의 마약 함정수사에 빠지게 됐고, 그는 이것이 GM을 비판한 데에 따른 보복이라고 믿게 됐다. 이후 연방법원에서는 함정수사의 불법성을 들어 그에게 무죄선고를 내렸지만, 결국 그는 DMC 투자가들의 투자금 반환 소송 때문에 1999년 개인파산을 했다. 노년에 재기를 꾀했지만, 2005년 80세 나이로 굵고 화려한 인생을 마쳤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성서 구절처럼 드로리언의 GM 파산 예견은 그의 사망 4년 뒤 현실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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