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뒤메닐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1/23
    좌파는 재건되어야 한다[뒤메닐&비데]
    재영

좌파는 재건되어야 한다[뒤메닐&비데]

좌파는 반드시 재건되어야 한다

 

제라르 뒤메닐 & 자크 비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글자 크기

프랑스사회는 “안정될” 것이고, 사회파트너들이 대화한 다음 상호화합의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식의 농담들이 언론을 타고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아무하고나 모든 것을,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토론”이 ─ 거의 절대적으로 ─ 대단히 유행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좌파 패배의) 충격이 그 자체로 “어떤 협의”에서 질식시킬 것 같지만, 감소시킬 수 없는 이익을 위한 프로젝트들과 아이디어에 계속 결합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역사의 거대한 분절(分節)들을 분석할 때, 이러한 접근법의 우수성이 곧바로 나타난다. 어떻게 하나의 사회계급이 그의 지배를 강제하는가? 실패할 경우에는 누구와 동맹하는가? 칼 마르크스의 영감으로, 좌파의 지배적 분석은 혁명이 제도들과 소유관계들이 “지배계급의 역할을 가장 오랫동안 충족할 수 없게 된”(1848년 공산당선언) 사회그룹에 봉사할 때마다 혁명의 돌발 사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부르주아는 기업과 이익의 자유를 요구했다 ; 부르주아는 그 때 귀족과 성직자와 동맹한 봉건적 절대왕정과 충돌해야만 했다 ; 부르주아는 그 때 프롤레타리아와의 (일시적) 동맹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농민대중과 도시시민과 동맹한 프랑스 부르주아의 모습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다. 다른 지역의 부르주아들은 가난한 농민들과 프롤레타리아의 운명에 그들의 운명을 섞어 넣기를(혼합해 가기를) 거부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베르 소불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가 민중이 부르주아에게 계속 종속될 것이라는 조건에서만 귀족계급과 대항하는 민중과의 동맹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가 되었다면, 부르주아는 19세기의 독일처럼, (민중과의) 동맹을 너무나 위험하다는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소한 이탈리아에서도 동맹을 분명히 포기했을 것이다.”(프랑스 대혁명, PUF, 1965)

왜냐하면,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 다시 말하면 정치활동에 도시빈민들의 개입을 (오늘의 베네수엘라와 같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의 모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이것은 바로 부르주아와 토지귀족이 연합한 영국혁명의 모델이다. 영국에서는 역시 선택에서 개인적인 취향이나 또는 이념적 토론과 일찍이 생산자와 도매업에 크게 연관된 거의 모두의 이익에 관해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 귀족은 ─ 보다 더 기생충과 같았던 프랑스의 귀족과는 정반대로 ─ 맹아상태로 떠오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투쟁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3자의 게임에 있어서, 역사의 흐름은 드디어 때를 만난 부르주아가 인민과 같이 권력을 잡고 귀족과 화합해서 역사를 전진시켰다.

좌파는 오랫동안 “노동대중”의 우위를 부르짖고 자본주의에 반대해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동원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사회세력의 교체를 위해 노동대중을 이끌어 가려고 고심했다. 때때로 노동대중 역시 ─ 프랑스의 인민전선정부 기간(1930년대 후반), 농민들과 비(非)조합원 노동자들과 나중에는 엔지니어와 중간간부들과 동맹을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국정전반을 좌파가 장악할 수 있었다. 30년 전부터 사회주의자 또는 노동자를 위한 교육의 전망이 전도되고 있다. “중산계층”에게 특전이 주어지고 인민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신민주주의자들”, 영국의 “새로운 노동자들” 그리고 대부분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사회의 중심을 다시 잡으려는 현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5년 전, 프랑스의 전(前) 사회주의 재무장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현재 드골파 사르코지 대통령의 주선으로 IMF총재가 되었다 ─ 역주)은 왕년의 낡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소멸을 이론화했다:“제일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서 불행하게도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조용한 참여를 기대할 수 없다. 역사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참여가 때때로 폭력을 표출하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썼다. 칸은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분석은 너무 단순하고 실제적인 분석”은 “무효화” 되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중간계급”에 모든 미덕을 부여했다:“임금생활자의 저축이 늘어남에 따라 노동수입과 자본의 수입간 기능적 차이점은 봉급으로 사는 개인들과 자본의 이익으로 사는 사람간의 구별이 많은 유사성과 함께 이 이상 더 발견되지 않게 되었다”<불꽃과 재, 글라세 출판사, 파리, 2002>

경제학자 제랄 뒤메닐과 자크 비데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확실한 토대들에 관해서 토론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계급의 역사적 역할을 흐리게 하거나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에게 민족 그리고 세계차원에서 새로운 동맹들을 기획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아마도 ─ 유리한 입장을 다시 잡기 위해 필요한 토론을.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위한 또 하나의 다른 마르크스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풍 속에서, 좌파는 쇠퇴기에 들어가고 있다. 세계화의 예외국가로 평가된 프랑스도 앞으로 이러한 일반적 국제정세의 대열에 줄서게 되었다:정치적 라이벌들의 주장들 간의 역사적 약화(弱化)현상. 니콜라 사르코지씨는 반동적 우파의 연설들과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주도함으로써 가장 취약한 민중계층이 잘 알아듣게 말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그 자신만이 좌파가 구상했던 여러 희망들을 실현할 수단을 가졌다고 설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좌파의 이념들에 동조하면서 동시에 좌파의 선도자들을 제압했다. 사르코지의 최후의 집중공격이 “마지막 투쟁”에서도 이길 것인가?

수십 년간, 정치투쟁으로 점철된 좌파의 권력에 대한 도전은 2차 세계대전 종전을 계기로 중앙에서부터 주변부까지 복합적 다원주의에 따른 “사회민주주의의 대타협”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자본주의는 반식민지 전쟁과정에서도 계속 전개되었지만, 자본주의적 소유의 특권들은 약화되었다 ; 실질 금리의 완화, 배당금 분배의 취약성, 비(非)금융부문의 우세, 증권시장의 약한 상승세. 그리고 민족적 산업, 공공서비스, 사회보장제도(세큐리테 소시알), 고용정책, 그리고 경제발전 등을 구축했다. 좌파정치 세력에 의해 때때로 운전된, 완전히 “사회화된” 역동성은 1968년에 그 정점(頂点)을 기록했다.

갑자기 이 도약이 부러지고 말았다. 1970년대 말, 자본주의자들은 공격능력을 재발견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역사적 사이클에 참여한 것이다. 30년 후, 전반적 정세는 긍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족적(足跡)을 남긴 길에는 귀로(歸路)가 없다. 좌파이념 자체에서, 좌파 프로젝트들의 실현가능성 뿐만 아니라 좌파의 표상(表象)인 미래까지도 의문이 자리를 잡았다. 신념을 잃은 것과 같은 공허한 감성과 음험한 절망이 마비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산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좌파의 상승기부터 역사적 쇠퇴기에 이르기까지 ─ 좌파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만일 이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를 예정하는 조치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좌파에게 과연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 앞에서 벌어진 가면 시위 모습
  •  
  •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 앞에서 벌어진 가면 시위 모습
  • 사진 더 보기

우리가 칼 마르크스에게 모든 것을 요구함으로써, 우리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라는 사실을 옹호한다. 왜냐하면 공동의 문화 속에서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의 2개 진영이 분열하는데 공헌한 것이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르크스주의 창설자의 신화는 허위의 논리에 도달하게 된다.

현대의 사회질서는 하나가 아니라 2개의 지배적 사회세력들을 구성하고 있다:“자본주의자들”의 세계 외에 또 하나의 다른, 조직자, 사적 그리고 공적 경영자들, 모든 부문의 전문가들 ─ 능력을 갖춘 유능한 간부들 ─ 의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이 2개의 세력들은 “근본적 인민계급”의 총체와 갈등과 연계로서 대립되고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과거의) 2계급이 아니라 3계급들의 게임인 현대적인 계급투쟁을 이해하게 된다.

“영광의 30년” 을 지배한 “사회민주주의의 대타협”에서, 사회당 또는 공산당을 수시로 대표했던 근본적 인민계급과 유능한 간부계층 간에 동맹이 실현되었다. 근본적 계급들은 중간간부들과 주동인물로 엔진세력을 형성했다. 이들 2개의 사회구성체에서 많은 영감(靈感)이 나왔다. 민족국가는 사회적 국가가 되었다. 기업과 정치의 경영은 자본보유자들을 광범위하게 피하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경제(混合經濟) 모델이라고 불렀다. 이제 어떤 조건에서 그것이 사라졌는지를 이해하고 이 대상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 남았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재출발하자. 그의 핵심이념은 현대세계에서 계급구조가 사람의 자연적 우월성의 요구를 구시대의 세계처럼, 이전(移轉)하지 않지만, 시장경제가 부여한 대로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평등을 확인해 주는데 있다. 마르크스가 설명하기를, 이 시스템은 노동자 자신이 개발할 수 있는 상품을 제조하는 조건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가 바로 자본주의이며, 이는 상품만은 아니다. 시장은 그 자체로 계급관계는 아니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제조업의 것이 된다. 시장은 사적(私的) 소유권자에게 생산수단을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말하기를, 이러한 상품의 모태(母胎)에서 끝장을 내야만 하며, 바로 이 상품의 모태가 나머지 모든 것의 조건을 결정지우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첨언하기를, 현대기업의 한 가운데서 사회차원으로 일반화된 다음 시장으로 대체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통합조정의 합리적 원칙이 뜨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조직화”, 최우선적인 균형유지, 그리고 이 이상 더 생산의 귀납적 결론은 없다. 노동계급은 넘치는 힘을 여기서 얻는다:임금노동자는 기업에 잘 적응하고 말 것이다:혁명은 자유노동자와 평등노동자들 간의 협의기구를 기초로 하는 후기상품시대를 개막하게 될 것이다.
이 “위대한 이야기”는 영웅적 혁명으로, 세계의 운명을 바꾼 해방을 위한 투쟁들과 개혁들로 점철된 20세기의 핵심적 유토피아를 요약해 주고 있다. 근본이론을 참고하면, 여하튼간에 그것은 애매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직이 시장에 따라서, 계급의 한 요소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다른 요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회의 현대적 형태는 이러한 2개의 기둥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계급의 지배는 상대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2개의 세력들이 교대하고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소유권을 통해서 실시하고 또 하나의 세력은 ─ 경제조직, 행정기구, 문화를 확보하는1) ─ ‘능력’을 통해서 집행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제안한 계급구조의 분석법상 중요한 수정을 의미한다. 그는 이에 대해 왜 사회학에 등록되고 일반상식으로 알 수 있는 이러한 이중적 지배를 피하는지를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왜 이념은 조직 속에서 계급의 한 요소임을 확인하지 않고, 병리학(病理學)처럼, 관료를 다루는 접근에서 생소하게 되는 것인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직면해서 능력을 갖춘 유능한 간부계층과 민중계급 간에 다소간 은폐되어 있는 전술적 절충을 위한 연설을 통해 역사적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현존 사회주의”든 또는 “자본주의 속의 사회주의”이든 간에, “노동운동”의 공식적 독트린을 구성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노동계급”과 경제적 문화적 규제의 중심과의 타협이 계속 거부되면서도, 지향하는 양면적 계급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모든 것들과의(“노동자들의 협회”, 공식적 목적) 협력은 정도의 차이는 조금 있지만, 공공기관의 보호 아래 조직화된 경제의 형태를 취한다. 모든 권력은 조직자들의 권력을 동일화하게 된다.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는 권력의 최고지도부에서 2개의 사회적 지배세력들이 교대로 지배했다. 1933년까지(미국의 뉴딜정책 초기까지) “금융자본”이 지배했다. 그 다음 1970년대까지는 조직화된 유능한 간부계급이, 마지막에는 새로운 “금융자본”이 주도했다. 금융자본이 승리했을 때, 그의 자신의 것인 사회적 변화의 역동성을 조직자들에게 강제했다. 조직의 상층부가 지배적일 때는, 그는 금융에 대항해서 민중계급과 동맹을 맺었다.

이러한 역사읽기의 일람표는 자본주의와 병행하는 현존사회주의의 잡다한 운명들을 밝혀주었다. 이것은 기업들과 거대한 사회와 국가들 수준에서 검증할 수 있는 서방진영의 “경영권력”의 강력한 부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유일한 지배계급으로 승격한 조직자들의 손에 집중된 권력을 재빨리 방임해 버린 동방진영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시하도록 유도했다. 이 현상들의 평행선은 깊고도 천부적으로 구조화 된 결집력이 현대적 사회형태로 대체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시스템의 집중력과 여기서 저기로의 이행(移行)은 언제나 토론의 대상이다.

민중계급과 “능력있는 유능한 간부계층”의 동맹은 1960~1970년대에 한층 강화되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이 동맹은 제3세계의 자본주의와의 전투에서, 라틴 ─ 아메리카의 혁명세력의 상승기와 세계차원의 학생 ─ 노동자들의 운동에서 결정적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를 말하면, 학위가 사회적 지위를 이미 보장하고 있는 모든 부유한 청년 학생들이 전통적 우파세력이 그들의 계급의 힘을 지탱해주고 있던 낡은 문화적 배경들을 1968년에 진동시켰다. 이러한 충격에 자극을 받은 노동계급이 하늘을 향해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다:다소간 전국적으로 40일에 걸친 대파업이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왜 그 때부터 역사가 다른 길을 취했으며, 금융의 갑작스런 복귀는 무엇을 낳았는가?

사회민주주의의 대타협에서 금융소득과 권력의 제방(堤防)이 알 수 없는 상항에서 진행되었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부터 밀턴 프리드만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계급의 이론가들은 처음부터 국가차원이든 세계차원이든 계획과 아울러 프로세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금융이 호전성(好戰性)을 재발견함으로써(1929년의 기억이 흐릿해지다), 금융권력이 특히 중앙은행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유럽시장의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출현에 따라 재건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의 타협의 도정에서 부닥친 암초는 ─ 1970년대 초 달러위기부터 시작해서 ─ 근본부터 약화시켰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 특히 인플레이션의 비등에서 보인 타협주도세력의 무능은 노동계급의 저항에 대해 “철권”의 결단으로 대결한 마거리트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을 구현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권력의 등장을 촉진했다. 1979년 금리는 소득이 최저로 급락한 자본가계급을 위해 참신한 바람을 불어 준 전례가 없는 (고금리) 수준을 유지시켰다. 제3세계의 부채상환은 위기였다. 새로운 규율이 노동자들과 경영인들에게 강제되어 부담을 주었다.
무역과 금융세계화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경향은 구시대 사회질서가 경제발전정책에 순응하게 됨으로써, 어떤 분야의 기술발전으로 새로운 조건들이 생기면서 우위에 서게 되었다. 세계화는 그 성격을 바꾸었다. 세계화는 식민지적 착취를 다시 기도하고,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을 격렬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미국의 패권아래 세계차원의 노동의 새로운 분업을 강요했다. 중국의 기적이 라틴아메리카의 상처들을 은폐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능력있는 유능한 간부계층은 금융을 다시 장악했다. 사태의 주도능력을 박탈당하고 민족국가의 국면에서 그들 자신의 것이었던 목표들이 왜곡됨으로써, 이 계층은 유럽에서와 같이, 대륙의 계획으로서의 논리를 다시 세울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대타협에서 신자유주의 대타협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들은 프랑스보다는 미국과 영국에 더 충성을 보이면서 기꺼이 (신자유주의에) 다소간 가담하게 되었다.

유능한 간부들의 정치적 대표들이 신자유주의적 옵션에 가담했을 때, 개인적 배신은 없었다. 모호한 커리어와는 달리, 사회민주주의와의 대타협의 노출을 유도했던 역사적 조건들은 사라졌다. 좌파에게 불이 붙었다! 그리고 질문이 근본적 (인민)계급들에게 제기되고 있다:어떻게 정치적 주도권을 다시 잡을 수 있는가?

해답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2번째 관점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3자 게임을 하나의 2자 게임으로 이행시키는가? 어떻게 계급들의 3자의 도식을 정치무대를 지배하는 양자의 형태로(좌-우파의) 구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가? 다수결원칙 정부의 민주주의적 도식에서, 좌파는 근본적 계급들과 유능한 간부계층 간의 동맹의 불확실한 정치현실을 구성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의 혁명적, 또는 개혁적인 전환기에는, 임금노동자들이 역사적 역동성에서 유능한 간부들과 문화인들의 “유능한” 사회계층들을 향해 눈을 돌릴 때, 좌파가 역사적으로 부상했다. 그 때는 지식인들과 모든 분야의 조직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운동”의 전위(前衛)가 되어서 스스로 자리매김함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좌파”는 유능한 간부계층이 좌파에서 사회민주주의와 타협하거나 또는 우파와 타협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서 내용이 흔들려 불안정한 사물을 지칭하는 명목상의 좌파일 뿐이다. 거대한 좌파, “좌파중의 좌파”는 자연적으로 보장되는 체제가 아니다. 이것은 민중의 조류(潮流)가 민중 자체의 여망인 해방의 역동성 속에 유능한 간부들을 가담하게 할 때 일어나는 하나의 사변(事變)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배적 계급의 2개의 구성체들의 연합은 늘어나며, 꽉 조여졌던 나사는 대부분 풀어진다.
오늘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노동의 세계는 동력요소가 되었던 생산에서 전략적 거점인 중앙집중력을 상실했다. 유능한 간부계층과의 동맹은 의문시되고 있다. 근본적 계급들은 역사적 곤경에 처해 있다.

난관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소유의 주변화(周邊化)를 필요로 하는 권력이 스스로 존재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파트너와 동맹을 통해서 건설하고, 그러나 동시에 ─ 위로부터 전문가와 지도부의 특권에서 ─ 하나의 계급의 적수(敵手)가 남게 되는 사실에 있다. 왜냐하면 지배는 이중적이며 전투는 2개의 전선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 계급들이 스스로 분열하고 있는 분파들의 정치적 단결이 실현되는 조건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선천적 분파작용은 정치판에서 분산되어 흩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유계급”인 우파는 독립 노동자들과 제일 낮은 저임금 계층을 선호한다. “유능한 조직력이 강한” 좌파는 공공기관의 임금노동자들과 일반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길을 통해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희망하는 임금노동자들을 흡수하려고 한다.

이러한 긴장은 민중연합 프로그램의 요구들을 허실한 그림으로 만든다. 해방, 개혁 또는 혁명의 강력한 시대, 현대역사에 이정표를 세우는 것은 정치적 단결과 동맹이다. 유럽에서 세계차원까지 보다 지역적인 것에서 제일 광범한 영역까지, 발전하는 것 이외에 미래의 선택은 없다. 그리고 목표들을 급진화해야만 한다.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소득의 적절한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공동의 삶의 조건들, 다시 말해서 동시에 양성(兩性), 환경, 노동, 건강, 교육, 학문연구, 도시화 등에 있는 것이다. 이익과 추상적인 부(富)의 논리인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존재의 구체적 조건들과 사회생활의 생산에 대한 지배력을 위한 투쟁인 것이다.
근본적 계급들이 어떻게 다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까? 정치조직의 개혁과 다원주의 정당구조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총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주적이며 영속적이고 상황에 적응하는 운동의 다양성만이 2개 전선의 전투를 날마다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자본주의의 언제나 새로운 공격들과 민중투쟁의 결과인 이익을 우회시키는 “엘리트”의 관행. 그래서 자본주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거대한 좌파를 뜨게 할 정당들과 민중운동의 지성적, 도덕적, 정치적 합의, 즉 공생(共生)이 시급한 과제이다.

자본주의적 “세계시스템”은 계급의 구조를 전개시킨 민족국가의 생존양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중심부와 변두리에서 대립했다. 또 그것은 지배와 전쟁에 대해, 계급관계를 비대칭적 관계로 변모시켰다. 오늘날 유럽대륙에서 고전적 민족국가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생산과 정부의 현대적 논리를 보여주는 역사적 운동은 잉태중인 ‘세계-국가’의 형태 속에서 단기적으로 같은 모태(母胎)에서 재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으로 제국주의적이며 조직적인 세계화의 센터가 되어서, 현재 형성과정에 있는 글로벌 계급의 “국가화”를 지배하는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정도 목표에 도달하고 있다. 냉전과 삼각구도 ─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과 일본 ─ 그 자체의 2개의 세계의 대립에서 나머지 지구의 전역에 재수출을 명령하면서, 자본집중의 하나의 극점(極點), 유일 극점의 제국주의적이며 패권주의적인 계급구조로 대체되고 있다. 출현도상에 있는 세계차원의 권력집중의 새로운 형태에 대항해서, 계급과 인종과 인류의 투쟁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윤곽을 잡아서 투쟁과 저항을 위한 단결을 확립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몰락징조가 조명됨과 동시에, 모든 종류의 민족주의와 분파주의가 내포한 모순들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러한 인식은 매우 취약하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정치판을 아직은 준비할 수 없다.

이것은 기대할 만한 운동의 한 형태이긴 하다. 사회적 기초들, 그의 “세계성”, 그의 이념성을 역시 추구함으로서,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위한 또 하나의 다른 마르크스주의는 아직은 여전히 발견해야 할 미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제라르 뒤메닐 & 자크 비데 | 번역·주섭일 본지 상임고문

1) 알터마르크스주의(Altermarxisme)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위한 또 하나의 마르크스주의, 프랑스 대학출판사(PUF), 파리, 2007, 우리는 5~6장에서 자본주의사회의 계급구조에 대해 구별하면서도 아무튼 집중되는 2개의 이론화를 제시한다.
  • 기사입력: 2008-03-19 19:01:58
  • 최종편집: 2008-03-20 08:58:5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