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03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31
    heesoo
  2. 2005/03/29
    사보 농성장에서
    heesoo
  3. 2005/03/27
    봄날(2)
    heesoo
  4. 2005/03/26
    어떤 투쟁(2)
    heesoo

내 주변엔 시를 쓰는 사람이 몇 명 있다. 투쟁과 삶과 사람과 사랑이 얽혀있는 시.

4년 전에 어떤 사람이 너는 시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좋아하는 시도 있고 안좋아하는 시도 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씩 나도 시 비슷한 걸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전철 안에서 한강을 내다보며 떠올릴 노래가사 같은... 오후 2~3시쯤 당산역으로 향하는 열차가 어느 순간 짠 하고 햇빛에 반사되는 한강물을 내게 보여줄 때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처럼.

  

  

-그대를 참는 일

 

이제 금방 돌아 나왔는데,

간신히 그대를 참는 기술

저만치로 돌아오며 배웠는데,

아직도 견딤은 늦은 출근길 같아.

입에 넣은 빵을 오물거리며 대문을 박차고 나올 때처럼

부산한 살이 틈에 끼어 잊었다가도
몸이 정지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 이름 석 자가 틈입해 오지.

간신히 견딘 건 효력도 없어 무방비로 끝장이 나지

잠시 어디론가 가는 버스 안, 먼저 와서 기다리는 약속시간,
샤프심이 부러진 그 짧은 찰나에도

만원버스가 뱉고 간 셀러리맨처럼
녹초가 되고 물처럼 쏟아져 내려 금방 모퉁이를 돌아 나왔는데

다시 저만치로 더 둘러 둘러 가야 할 꾹꾹 참아야 할,
그대

 

(남규빈)

 

가만히 다시 읽다보니...시는 단지 시일 뿐이로구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보 농성장에서

해방광장을 지나 회전문을 들어서니 익숙한 붉은조끼가 공단 로비를 드문드문 메우고 있다.

낮에는 지역에서 올라온 800여명의 조합원이 집회를 마치고 흩어졌다고 한다. 순환파업이 시작되고 공단 로비는 해고자들의 농성장이 되었다.   

 

15층 쟁대위 회의는 쓸데없이 길어지고 사람들은 무리지어 퇴근한다. 높은 천장에 설치된 4개의 CCTV를 통해 로비를 지켜보던 노무관리팀에서 나를 궁금해한다. 신입 조합원이면 표적감시 대상이다. 도청장치가 설치되있다는 것을 복직된 어느 조합원이 비밀스럽게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해고자들은 허공에 대고 소리높여 "이사장 이성재 개새끼!"라고 몇번을 고함치고는 웃는다.

 

상무와 몇몇 임원들은 아직까지도 해고자들에게 반가운척 인사를 한다. 노조에 대한 극랄한 탄압 이면에 조합원에 대한 두려움이 잔존해있다.  그것의 진원은 00년 파업.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상무와 임원진을 무릎꿇리던 그 투쟁, 조합원들의 집단적 분노에 호되게 당했던 끔찍한 기억때문이다. 공단은 이전과 다르게 대응력을 갖춰가는데 노조는 갈수록 후퇴한다. 

 

운동을 시작한 이래 '현장권력'이라는 단어를 전국회의 사이트에서 한 번, 이전 사보파업에서 한 번 들었다. 현장권력의 탈환은 허황된 꿈이 되버린 현실, 당장 탄압으로부터 노조를 방어하는 것조차도 힘든 지금, 해고자들의 눈빛은 자신감 반 피로함 반이다. 적어도 요즘 어딜가나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패배감에 찌들어 지도부 비판에만 입놀리는 활동가들에 비하면 믿음직한 모습이다.    

 

얼마전 농성장이 침탈당했다가 오늘 다시 복구하였다. 침탈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상급인 구사대들이 물러가고 공단에 의해 억지로 동원된, 대부분이 고령자들이 경비원들과의 몸싸움이 있었다. 그 중 다섯명은 며칠 전 해고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 짓은 더이상 못하겠다면서.

생존권 앞에서 서로 대립하는 위치에 선 노동자들을 강요받는다. 한쪽이 양심선언하고 물러서던가 혹은 상대를 때려눕히던가, 아니면 하나로 뭉쳐 싸우던가. 

 

철농을 해야하는 6명의 해고자 동지들을 남겨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일은 자보풀칠과 스프레이로 로비 대리석벽을 도배하겠다는 해고자들 앞에서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던 나이든 경비들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봄날

검은 자켓이 무안할만큼 날이 따듯해졌다. 이런 날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지금 생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신문사를 나와 현장에 들어가면...운동을 그만두면..." 딱 두가지의 길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주변환경에 의해 하루에도 수십번씩 뒤바뀌는 기분을 가지고 한가롭게 장난치는 것도 이제는 재미가 없다. 요즘에는 생각이 과거로 과거로 되감기는 것도, 너무 빠르게 앞서가는 것도 둘다 공허할 뿐더러 현재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마저도 불충분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마치 그네타며 괴성을 지르고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아이들이 순간순간을 즐기고 그 기분에 충실하며 사는 것처럼 그렇게 맘 편하게 지내고 싶다가도,

크게 굴곡 없었던 지난날들을 배신할 무언가가 곧 닥칠 것 같다는 괜한 근심걱정이 머릿속을 하얗게 뒤덮는다. 기회가 찾아오고 그것을 잡고 위기를 피해가고 이 모든 것이 우연처럼 펼쳐진 불과 몇 년전. 이젠 주위의 불안정함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그 필요한 것을 찾은 경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의 욕망과 필연성이

그를 인도하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떤 투쟁

3.21 서대문에 도착했을 때 지상에서는 소복입은 여성노동자들의 비명이 울리고 허공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플랑과 세명의 노동자가 매달려 있었다. 집회 중간중간 노동자들은 웅크려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

'여성'에 악센트가 찍힌 여성노동자란 지칭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선 '연약한' 등의 불필요한 수사어를 동반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성노동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투쟁을 특수하게 인식하는 것이 과연 어떤 운동적 의미를 지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전에는 자본주의에서 여성노동의 성격과 성구별에 따른 노동착취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물음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노동운동에서 특정한 운동전략을 요구하는 것인가의 문제(노힘 기관지에 노동운동에서의 여성주의 전략이란 글이 실렸다)와 그렇다면 여성운동과의 관련성 경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투쟁조끼에 쓰여진 조직명칭이 길어서 한참을 보았다. 화장실 갔다 만난 조합원 두명과 얘기를 나눴다.

"노조는 설립된지 얼마안됬나 봐요."

-네 작년에 만들어졌어요

"동지들이 요구하는 특별기능직은 뭔가요, 정규직화인가요?"

-아뇨 지금도 정규직이에요, 사람들이 비정규직의로 오해를 많이해요.

"올라간 동지들은 간부들인가요"

-한명은 부위원장, 지부장들이에요.

"전국공무원노조랑은 별개의 조직인가봐요?"

-네 다른거에요. 경찰청에서 노조만든데는 우리가 첨이예요.

 

올라가는 내내 낙사할 것만 같은 공포를 감수하고 거기에 올라간 이유는?

'똑똑히 잘 보라고, 우리의 투쟁을'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기 때문에 오른다.

 

수많은 사회 이슈가 날마다 팡팡 터지는 속에서 작은 투쟁들은 대중들에게 쉽게 알려지지 않고 또 결과와 무관하게 잊혀지고 더러는 매장된다. 2,3년 전에 특히 비제조업 분야에서 봇물터지듯 크고 작은 비정규직의 노조결성과 투쟁의 물결이 일었다. 허약한 노조들은 거의 해체됐고 그나마 제대로 싸운 투쟁은 주체 몇명이 활동가로 남았다. 대부분이 계약해지와 부당한 재계약에 맞선 투쟁이었고 거의가 한번쯤은 고공농성같은 이슈투쟁을 전개했다. 싸우는 자본이 크던 취약하던 해결될 기미가 안보이면 이슈화와 사회쟁점화를 위한 전술을 고안하고 본사빌딩에 매달리고 단식을 하는 등  결사적 의지를 보여주는 투쟁으로 사측을 압박했다.  

 

세명의 노동자들은 11시간만에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옆에 있던 한 동지는 '노조관료들이 계급투쟁의 완충장치로 기능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 투쟁'이라며 분개했다. 나도 도착해서 투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내려올 시점과 명분을 저울질 하느라 연맹관료들이 벌인 브로커 짓을 같이 보았기에 맞는 말이라고 끄덕였는데 문득 우리에게는 관료들에 의해 접힌 투쟁이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막 투쟁하기 시작한 경찰청 고용직 동지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3명의 동지들이 내려왔을때 조합원들의 반응을 놓쳤지만 그리고 연맹관료들의 영향력이 물리적 의식적으로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그 동지들의 판단과 결정이 아예 배제된 투쟁이 아니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모든 투쟁의 경험이 노동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투쟁이라도 노동자들을 단련시킬수도 패배감에 찌들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끝까지 미는가 아닌가, 많이 따냈는가 아닌가라는 문제라기 보다 투쟁을 둘러싼 전반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실제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 목적성을 띤 투쟁임에도 결국은 주체들의 기억 속에 그 투쟁이 어떻게 남겨지냐가 더 큰 문제일 수있다. 그래서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평가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