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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18
    삶의 전쟁, 전쟁의 삶
    화수분

삶의 전쟁, 전쟁의 삶

삶의 전쟁, 전쟁의 삶

문강형준
서울문화이론소 연구원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이라크에서는 무장단체에 의한 한국인의 피랍사건이 일어났다. 한국군이 파병을 철회하지 않으면 참수하겠다는 무장단체의 선언 앞에서 이라크 미군에 납품을 하던 한국인 노동자는 카메라에 대고 공포에 질려 파병을 철회하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총과 칼을 든 무장단체 앞에서 애원 외에는 할 것이 없는 인질의 안타까운 모습과 결국 시간이 지나 살해되는 인질들의 모습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시작된 이후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다. 자동소총과 탱크를 앞세운 합법적 무장단체 미군은 물론 이보다 훨씬 더한 살상을 저질러 오고 있고, 이라크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수많은 이라크 민중들이 죽었고 죽어가고 있다. 전쟁을 결정한 당사자는 저 멀리 안전한 워싱턴과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서 때로는 여유 있게 때로는 자못 비장하게 잘 살고 있고,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외치며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는 당사자는 역시 저 멀리 안전한 서울에서, 촛불에 의해 부활까지 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아무 죄없는 미국과 한국의 노동자와 이라크의 민중들은 총과 칼과 폭탄 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전쟁은 이런 것이다. 언제나 가장 먼저 죽는 것은 맨 앞에 선 보병이고, 힘없는 민중들이고, 가장 나중까지 살아남아 과실을 챙기는 자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이다. 칼과 총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극단적인 신념을 앞세우면서 빈 손의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일이 일상화되는 것, 전쟁은 이런 것이다.

‘자본’이라는 무기

서울에서도 이미 전쟁은 일상이 되었다. 아침 8시 반, 신도림역은 전쟁터다. 청량리행 열차가 신도림에 서면 열차문이 열리자마자 출근길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와서는 2호선으로 갈아타는 지하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를 밀쳐내고, 그 와중에 멈칫멈칫하다가는 자칫하다 밟힐지도 모른다. 2호선 열차가 들어서면 우르르 내려선 사람들을 다시 비집고 들어가야만 한다. 각자의 노동현장으로 제발 늦지 않게 가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를 밀쳐낸다. 빠르지 않고, 힘이 세지 않으면 그 출근 전쟁터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 출근길 전쟁에서 ‘병사’들은 진격하고, 싸우고, 밀려난다. 역시나 싸우는 ‘병사’들은 다 힘없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을 이토록 뛰고 싸우게 만든 장본인들은 이 곳에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어딘가에서 유유히 또다른 전쟁을 구상하며 사령부로 가고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전쟁에서 몇대째 패배한 어떤 사람들은 ‘비닐하우스’ 달동네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1970년대부터 서울시 소유 체비지에 살아왔던 비닐하우스 주민들은 그들이 이 땅을 시효취득하는 것을 막으려고 서울시가 90년부터 물린 변상금 폭탄을 맞고 있다. 이미 그 중 한 명은 군대 간 두 아들에게 5천만원 가까운 빚만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무기는 자본이다. 일단 자본이라는 무기가 없으면, 교육을 제대로 못받아서 지식이라는 무기도 못갖추게 되고, 그렇다고 얼굴이나 몸매라는 무기마저도 없다면 거의 백전백파라고 보면 된다. 이 무기들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는데, 그래서 ‘합리성’이라는 신념이 진리처럼 자리잡고 있는 이 전쟁터에서는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는 이상한 비합리성이 판을 치기도 한다. 자본이나 지식 등의 최강무기를 제대로 갖춰서 약삭빠르게 살아남은 20% 정도의 사람들을 ‘상류층’이라고 하고, 최강무기는 하나도 없고 오직 몸뚱이 하나로 육탄전을 벌이는 20%의 사람들을 ‘하류층’ 혹은 ‘빈곤층’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이 둘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고만 있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5.7배에 달하는 등 무기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삶의 격차는 벌어지고, 한번 빈곤층에 속하게 되면 그 수렁에서 탈출할 확률은 6%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KDI 보고서도 나왔다.

패잔병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신봉하는 전쟁광들이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있는 오늘날 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가 벌어지고 빈곤층이 수렁에서 탈출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없는 사실이다. 이미 막강한 무기를 점유한 상류층은 영양상태에서도 월등하여, 이제 육탄전에서마저도 이들을 이길 수 없다. <한겨레>의 식생활에 관한 기획기사에 따르면, 빈곤층의 먹거리는 곡류와 채소를 중심으로 3-6종에 그치고, 열량의 8-90%를 탄수화물로만 때우고 있지만, 중산층과 상류층에서는 매일 먹는 것이 바람직한 다섯 가지 기초식품군을 고루 섭취하고 음식 가짓수도 12-17종류에 이른다고 한다. 한달 총수입이 600만원인 상류층이 한번 외식에 10-15만원을 쓸 때, 한달 수입 23만원인 빈곤층 노인부부는 한 달 내내 식품비로 15만원을 쓰는 것이다. 문명이 정점에 달한 이 ‘위대한’ 시대에, 자본이 없으면 이제 영양실조로 죽을 일만 남았다.



전쟁에서 져서 싸울 무기마저도 없는 패잔병들은 소위 ‘노숙자’라고 불린다. 전쟁에서 진 사람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듯, 노숙자들 역시 인간대접을 못 받는다. 지금까지는 노숙자가 병에 걸려서 (그 중 대부분은 병에 걸린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지만, 다행히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입원비와 치료비에 대한 시의 지원이 있었지만, 이제 서울시가 ‘노숙인 의료구호비로 통원 치료비만 지원하고 입원, 수술비는 제외한다’는 공문을 공공병원에 내려 보내면서 지원이 끊겼다. 또, 얼마 전에는 노숙자들이 길거리 벤취에서 자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벤취 가운데 팔걸이를 놓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던 서울시다. ‘하이 서울’을 위해 시청 앞 광장에는 수억을 들여 잔디를 깔아놓고 집회라도 할라치면 ‘잔디를 살려야 한다’며 거부하고 있는 서울시는 상류층 전사의 1년 연봉도 안되는 노숙자 의료구호비 1년 예산 8억원도 아까워 인간은 죽이고 있다. 잔디만도 못한 것이 이 시대 패잔병 노숙자의 생명인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자본과 지식을 갖고 ‘중산층’에서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다수의 삶도 언제나 폭격직전이다. 이 전쟁터에서 각개전투를 하지 않고 대규모 부대에 들어가서 전투를 치르는 많은 병사들은 정규군과 비정규군으로 나뉜다. 비정규군으로 편성이 되면 그 병사에게는 보험혜택도 없고, 월급도 정규군의 70%대이며, 언제 어느 때건 무기가 압수되고 부대에서 쫓겨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대규모 부대를 창설하고 운영하는 소위 ‘자본가’라 불리는 전쟁광들은 부대유지에 드는 비용을 줄여서 자기가 챙길 자본을 극대화시키기 원하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챙겨줘야 하는 정규군 대신에 비정규군의 규모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이미 한국 전체 노동전사들 중에 비정규군의 규모는 70%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인터넷 부대에서 비정규군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 하나는 자신이 지금껏 일해 온 1년 동안 자신에게 지급된 월급이 ‘인건비’가 아니라 ‘컨텐츠 비용’에서 나오고 있으며, 처음에 비정규군으로 들어올 때는 계약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재계약을 맺은 이번 달부터 퇴직금이 산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미 인간이 아닌 ‘컨텐츠’ 취급을 받고 있는 이 친구는 아예 이번 달부터는 정규군과 같이 쓰던 화려한 고층막사에서 밀려나 비정규군만 모아놓은 음침한 막사로 쫓겨났다. 그래도 부대를 벗어나 각개전투를 하기엔 이 도시의 삶이 너무 힘에 부치기 때문에 친구는 모든 걸 참으면서 오늘도 야간전투에 임하고 있다. 물론, 친구가 야간전투를 해서 벌어들이는 자본은 ‘비정규 자본’ 대우를 받지 않고, 부대로 고스란히 들어가 쌓인다.

전쟁과 전쟁하기

이쯤 되면 가히 전쟁은 전쟁이다. 이라크에서 미군 비행기는 마을을 폭격해서 쑥대밭을 만들고, 남자들을 붙잡아 교도소에서 고문하고, 이 광경을 지켜 본 이라크인들은 항전을 다짐하고, 무장세력은 인질을 납치해서 참수하고, 이 광경을 지켜 본 미군들은 다시 마을을 폭격하는 이 전쟁. 서울에서 사람들은 입시와 졸업을 통과하여 비정규직 취업을 하고, 사장은 노동자의 실적이 안좋으면 바로 해고시키고, 해고된 사람은 노숙자가 되고, 노숙자는 병에 걸려 죽고, 남은 가족은 빈곤층이 되고 영양결핍에 시달리다 자살하고, 사장은 고층 아파트에서 호화롭게 살다가 손자는 미국에서 낳고 유산은 탈세하고, 언론은 사장을 ‘리더’로 만들고,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그런 ‘리더’로 만들려고 입시지옥에 몰아넣으며 과외를 시키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신도림역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을 밀치고 뛰어가는 이 전쟁.

한쪽에서는 전쟁이 삶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이 전쟁이다. 사는 게 본질인 ‘삶’과 죽이는 게 본질인 ‘전쟁’이 이렇게 같이 가는 모순을 끊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살면서 죽고 죽이면서 사는 이 전쟁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반대’를 외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부정이 없이는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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