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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19
    생각난 김에(1)
    화수분
  2. 2004/08/19
    문득 좋은 친구 푸른살이가 생각나서...(1)
    화수분
  3. 2004/08/19
    나는 댐일까? 파도일까?
    화수분
  4. 2004/08/15
    우울한 일요일
    화수분
  5. 2004/08/08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보다 문득
    화수분
  6. 2004/08/05
    이런 젠장...(1)
    화수분

생각난 김에

외우고 있는 시가 달랑 하나인데...

 

 

인생

 

백기완

 

보일락 할때가

눈이 어두워 질때라

 

온 몸으로 보거라

눈을 감어도

보일때까지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이러고 보니 내 잡기장이 온통 시로 채워지는군.

누가보면 시랑 무지하게 친한 줄 알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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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좋은 친구 푸른살이가 생각나서...

나는 댐일까? 파도일까?

댐을 보며

 

신경림

 

강물이 힘차게 달려와서는
댐에 와 부딪쳐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다시 파도를 이루어 헐떡이며 달려오지만
또 댐에 부딪쳐 맥없이 깨어진다.
깨어진 물살들은 댐 아래를 맴돌며 운다.
흐르지 못하는 답답함으로
댐을 뛰어넘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소리내어 운다.

 

댐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어디 강물 뿐이랴,
강물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댐을 뛰어넘자고 깨어부수자고 달려온
그들 자신이 어느새 댐이 되어 서 있다는 것을.
파도를 이루어 뒤쫓아오는 강물을
댐이 되어 온몸으로 막고 있다는 것을.
강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이제 저 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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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일요일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보다 문득

시인 신동엽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외침이 생각났다.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時代는 있었다.

 

백제의 달밤이 지나갔다,
고구려의 치맛자락이 지나갔다,

 

王은,
百姓들의 가슴에 단
꽃.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문지기.

 

앞마을 뒷마을은
한 식구,
두레로 노동을 교환하고
쌀과 떡, 무명과 꽃밭
아침 저녁 나누었다.

 

가을이면 迎鼓, 舞天,
겨울이면 씨름, 윷놀이,
오, 지금도 살아 있는 그 흥겨운
農樂이여.

 

시집가고 싶을 때
들국화 꽂고 꽃가마,
장가가고 싶을 때
정히 쓴 이슬마당에서
맨발로 아가씨를 맞았다.

 

아들을 낳으면
온 마을의 경사
딸을 낳으면
이웃마을까지의 기쁨,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
꽃밭처럼,
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
고실고실한 쌀밥처럼
마을들은 자라났다.

 

地主도 없었고
官吏도, 銀行主도,
특권층도 없었었다.

 

半島는,
평등한 勞動과 평등한 分配,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分配,
그 위에 百姓들의
祝祭가 자라났다.

 

늙으면 마을사람들에 싸여
웃으며 눈감고
양지바른 뒷동산에 누워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半島는
평화한 두레와 평등한 分配의
무정부 마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分配,
그 위에 靑春들의
祝祭가 자라났다.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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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주시오. 그리고
열 사람만 나와 주시오
역적이 되고 싶은,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열사람만 나와주시오,

 

문을 흔듭시다,
주먹으로 두드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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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너무나 더운 어제 오후 사무실에서 친구가 구워 준 CD를 열씸히 봤다.

제목은 "화씨 911"이라고 했다.

2시간 넘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고 났더니

젠장할 제목이 9/11이었다.

 

9/11 사건 당시 미국의 소방관들이 정말 헌신적을 구조작업을 펼쳤고

미국인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선은 화가 났다.

영화를 잘못 받아 준 친구에게...

발빠르게 이런 영화를 만들어 올린 미국정부(?)에게...(물론 영화에서는 소방관 다큐를 찍다가 우연히 사건을 기록하게 되었다고 감독이 말한다.)

그리고 끝까지 본 나에게...

 

하지만 어떠한 의도도 참혹한 현장의 기록 그 자체에서 오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건 사실이니,

"화씨 911"을 보고자 하시는 분들은 유사품에 주의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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