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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승환 경희대 법대 교수는 국제법적 시각에서 쇠고기 고시의 위헌성을 분석했다. 최 교수는 한미 쇠고기 합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생명권/신터에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헌법 제10조, 제12조 1항, 제37조 1항), 건강권/보건권(36조 3항)등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조약이라고 말했다. 또한 위생검역 주권을 포가한 한미 쇠고기 합의는 헌법 제60조 1항 상의 ‘중대한 조약’에 해당함으로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정부의 고시 강행은 헌법상의 절차적 요건이 결여되었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쇠고기 고시가 위헌이라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오동석 아주대 법대 교수는 정부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가축방역 및 공중위생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 고시할 수 있다”라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제 34조 2항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 교수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은 법의 목적 자체가 가축의 전염성질병을 예방하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과 소 사이에 전염이 우려되는 인수공통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 사안인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를 마치 식중독 문제정도로 취급하여 검역주권을 포기하는 장관 고시를 강행하는 것이 오히려 정부가 말하는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약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절실히 필요
최재천 전 의원은 “국내 법률의 비율은 37%인데 비해 조약은 63%로 월등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약 체결에 관한 사항이 외교통상부에만 맡겨져 있다. 의회를 거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조약이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만큼 민의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통한 통제가 필요한데 외교통상부가 이를 계속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7월 1일 한미FTA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국회로 보내자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17대 국회에서 충분히 심의했기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는 전원위원회로 보내자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헌법상 회기불계속이 원칙이고, 국회법 상 외통위로 보내기로 되어있는데 정부 여당에서 이처럼 위헌적인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그렇게 유치한 동맹이었나?”
청중에서 “정부에서는 우리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에게 보복조치를 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최승환 교수는 WTO체제에서 미국 정부가 무역보복조치를 즉시,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도 지리한 절차를 거쳐 WTO산하 분쟁해결기구로부터 사전승인을 받고, 또 이를 우리 정부가 시정하지 않아야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최승환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미국 정부가 WTO 제소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WTO 위생검역협정(SPS)상의 검역주권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재천 전 의원은 “여기서 잘못하면 저기서 보복 받고, 이것 하나를 퍼주면 저것을 받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위험하다”며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서 우리가 미국에 양보한 대가로 한미FTA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이라크 파병의 대가로 북핵문제의 주도권을 우리 정부가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역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미동맹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복을 염려해야 하는 그렇게 유치한 동맹이냐고 정부에 되물었다.
촛불문화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불법을 운운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미 쇠고기 합의와 고시 강행의 과정에서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위헌과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로 인해 법치주의는 오히려 위기는 맞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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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위탁중단 |
양해각서 |
자체기업화 |
위탁실시협약 |
기본협약 |
비 고 |
|
계 |
4 |
1 |
1 |
11 |
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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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1 (공사화) |
보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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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광역시 |
1 |
베올리아와 연구용역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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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
삼척시 |
평창군, 태백시, 고성군, 홍천군, 정선군, 철원군, 춘천시 |
노조반발로 기본협약 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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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
동두천시 |
의왕시, 양주시, 포천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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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
마산칠서 |
사천시, 거제시 |
진해시, 밀양시, 함안군, 고성군 |
|||
|
경북도 |
안동시 |
예천군, 고령군 |
포항시, 영천군, 청도군, 문경시, 영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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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도 |
나주시 |
여수시, 장흥군, 고흥군, 함평군, 담양군, 보성군, 무안군 |
||||
|
전북도 |
전주시 |
정읍시 |
완주군, 남원시, 임실군 |
남원 주민반대로 보류 |
||
|
충남도 |
논산시, 서산시, 천안시(공업), 금산군 |
보령시, 홍성군, 부여군, 당진군, 공주시, 청양군 |
부여, 당진 주민반대로 보류 |
|||
|
충북도 |
진천군, 단양군 |
진천 주민반대로 보류 |
|
나라 |
지역 |
연도 |
결과 |
결정과정 |
|
폴란드 |
로즈 |
1994 |
민영화 거부 |
주민투표 |
|
스웨덴 |
말뫼 |
1995 |
민영화 거부 |
지방정부 결정 |
|
온두라스 |
온두라스 |
1995 |
민영화 거부 |
정부 결정 |
|
헝가리 |
데브레켄 |
1995 |
민영화 거부 |
지방정부 결정 |
|
미국 |
워싱턴 DC |
1996 |
민영화 거부 |
지방정부 결정 |
|
아르헨티나 |
투쿠만 |
1998 |
민영화 폐기 |
주민투표 |
|
독일 |
뮌헨 |
1998 |
민영화 거부 |
지방정부 결정 |
|
브라질 |
리우데자네이루 |
1999 |
민영화 거부 |
법원 결정 |
|
캐나다 |
몬트리올 |
1999 |
민영화 거부 |
지방정부 결정 |
|
파나마 |
전 지역 |
1999 |
민영화 거부 |
국민투표 |
|
볼리비아 |
코차밤바 |
2000 |
민영화 폐기 |
정부결정 |
|
독일 |
포츠담 |
2000 |
민영화 폐기 |
지방정부 결정 |
|
모리셔스 |
전 지역 |
2000 |
민영화 거부 |
국민투표 |
|
미국 |
버밍햄 |
2000 |
민영화 폐기 |
지방정부 결정 |
|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아이레스 |
2002 |
민영화 폐기 |
- |
|
프랑스 |
그르노블 |
2001 |
민영화 폐기 |
지방정부 결정 |
|
파라과이 |
전 지역 |
2002 |
민영화 거부 |
의회 결정 |
|
폴란드 |
포즈난 |
2002 |
민영화 거부 |
지방정부 결정 |
|
브라질 |
전 지역 |
2002 |
민영화 폐기 |
국민투표 |
|
남아공 |
은콘코베 |
2002 |
민영화 폐기 |
법원 결정 |
|
태국 |
전 지역 |
2002 |
민영화 폐기 |
정부 결정 |
|
미국 |
아틀랜타 |
2003 |
민영화 폐기 |
지방정부 결정 |
(자료: 전공노특위, 정부 물산업육성 정책과 상수도 민간위탁.기업화의 문제점)
<표3> 물 사유화 관련 정부, 시민사회, 노동운동 진영 토론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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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작성자 |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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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14 |
산업자원부, 환경부, 건설교통부 |
『정부의 물산업 육성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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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11 |
장재연(수돗물시민회의) |
수도산업 발전안, 무엇이 문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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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16 |
환경부 |
『물산업육성 5개년 세부추진기획』
|
|
2007.7.24 |
박하순(공동행동) |
물 사유화에 맞선 전략과 대안 토론회
|
|
2007.8.30 |
(1)송유나(공동행동) |
물산업 육성정책과 물 공공성에 관한 대국민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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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5~6 |
정영섭(공동행동*) |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세계 노동장 민중 국제 심포지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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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 |
전공노 민영화저지특위 |
물산업 육성정책과 상수도 위탁, 기업화의 문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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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25 |
이태기(전공노특위) |
이명박정부 공공부문 사유화에 대한 대응방안 토론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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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29 |
행정안전부 |
『지방상수도 전문기관 통합 관리계획』
|
|
2008.5.21~23 |
이태기(전공노특위) |
시장화, 사유화를 넘어, 사회공공성 대안 찾기 사회공공성 포럼
|
주) * 공동행동은 물 사유화 저지.사회 공공성 강화 공동행동
** 전공노특위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영화 저지 특별위원회
6월 8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에서는 민간위탁을 실시한 13개 지자체와
해외 사례 등을 통해 물 사유화가 가져올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음
MBC 시사매거진 2580 다시 보기


참여사회연구소는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좌표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2강에 대한 강의노트로 자원활동가 박소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3강은 5월 28일 '식민지 경제는 대한민국을 근대화시켰는가?'라는 주제로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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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
1960-80년대 |
1990년대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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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주체 |
측근, 정부 |
저널리스트, 관련자 |
언론계, 학계 |
|
관점과 대체적 내용, 저술동기와목적 |
활동․업적 찬양 일색의 홍보물 |
노선․활동․업적에 대한 비판과 옹호. 본격적 연구의 개시 |
사상․노선․활동․업적에 대한 재평가. 본격적인 인물 연구 |
|
외화형태 |
전기 및 홍보물 |
전기, 사론, 실록 |
기사, 사론, 전시, 전기, 논문, 저서 |
|
필자 |
양우정, 서정주, 김광섭, 한철영, 박성하, 올리버 등, 공보처 |
리챠드 알렌, 이원순, 허정, 실록편찬회, 송건호, 김도현, 손세일 |
서중석, (이한우, 조갑제), 유영익, 이정식, 고정휴, 정병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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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용자료 |
관찰기, 회고, 전기류, 왕복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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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측 외교, 정보 문서 + 이화장 문서 |



1. 자유주의의 빈곤 - 뉴라이트 등장의 토양
1) 해방 이전
우리 사회는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의 맹아를 틔우기도 전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으면서, 일본의 식민자본주의가 들어온 거죠. 바로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은 반근대적이면서 반제국주의적인 정서를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화에 저항하고, 근대에 휩쓸리지 않았던 기층 민중들에게 반일이라는 것은 반근대성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또한 우리를 침략했던 제국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은 반자본주의적 정서와도 맞물립니다. 즉, 반제국주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일 수 밖에 없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학문을 수학해 근대화의 세례를 많이 받았다면 그만큼 자유주의적 성향과 개인주의적 성격이 생기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근대학문이라는 것이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수학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는 제국주의 중에서 가장 후진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천황을 섬기는 봉건적 성격과 군국적 성격, 그리고 ‘천황의 신민’이란 집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자각한 개인들이 모여 민족이란 단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민족이란 집단이 먼저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질 토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그나마 자유주의적 성향의 지식인들도 전쟁수행에 강제 동원되거나 협력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자발성이냐, 강제 동원이냐라는 정도의 차이 혹은 딜레마가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존경받을만한 우파마저 거의 소멸됩니다.
2) 해방- 전쟁 - 학살
해방 이후, 미군정이 성립되면서 친일파가 득세해 제대로 된 과거 청산에 실패하게 됩니다. 아니, 친일 청산을 주장했던 민족적 세력이 오히려 친일파에게서 청산당하는 아이러니(반민특위, 백범 김구의 암살 등)까지 일어나죠. ‘조선의 몸, 황국신민의 마음, 미국 옷’이란 말은 그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후 친일 정권이 수립되었고, 분단이 되었고, 전쟁이 발발했고, 학살이 있었습니다. 관용이라는 것이 없는, 거의 멸균실 수준의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보도연맹사건 등 사실상 좌익과 무관한 민간인마저도 학살당하였는데, 이러한 민간인 학살은 친일파들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말이 필요없는 시대, 담론이 없는 시대가 1950년대였습니다.
3) 군사독재
휴전 7년만에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4.19혁명이 있었습니다만 5.16 군사 반란으로 그마저도 꺾입니다. 4.19에서 주장되었던 것은 (북은 청산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남한의 잘못에 대한 지적과 통일이었습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통일의 열기에서 친일파와 군대들은 위기감을 느꼈고, 그래서 결국 군사반란과 군사 독재가 시작된 것입니다. 군사독재 시기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었습니다. 반공이라는 것. 이건 제대로된 이념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살아남은 친일 세력들이 ‘반공’이란 개념을 사용한건이죠.
저는 식민치하에서 생계형 친일을 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 친일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하지만, 용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말 용서하지 못 할 친일파는, 독립운동 하던 사람을 밀고·체포·학살한 주체. 즉, 고등경찰들입니다. 그러나 고등경찰이 반공을 무기로 살아남았습니다. 친일에 대해선 가급적 입을 다물고 반공·경제성장을 두 축으로 나라를 운영하였던 겁니다. 체육관 선거가 정당화된 나라에서 자유가 설 자리가 어디 있었습니까. 게다가 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가 주장되면서 외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 한국현대사에서 보수와 진보의 단순 이분법 가능한가?
1) 한국의 진보
진보진영의 정신적 지주들은 과연 진보적이었을까요? 김구, 장준하, 함석헌, 계훈제, 문익환, 김수영, 이영희 등의 사상이나 이념의 성격은 사실상 보수주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지 양심적이었던 것이 진보적이었던 시절에, 양심적이었을 뿐입니다.
2) 한국의 보수
우리나라의 속성은 사실 보수적이라고 봅니다. 왕조의 지속성을 봐도, 유교문화의 전통을 봐도 그렇습니다. 200~300년만에 지배층이 완전히 교체되던 중국과 비교해 보아도, 신라부터 대한민국까지 지배층이 완전히 물갈이 되는 경우가 없었지요. 그런데 현대에 오면서 한국의 진짜 보수는 다 사라지고 가짜 보수, 친일파가 득세했습니다. 분단이란 특수상황에서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담론을 형성하지도 않았고 형성할 필요도 없었던 거지요. 담론생산 능력이 결여된 극우세력은 전향한 진보로부터 많은 것을 빌려옵니다. 4.19세대, 6.3세대들이 정권에 복속합니다. 류근일, 조갑제, 송복, 김진홍, 이석연,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등 지금은 수구지만 사실, 진보의 총아였던 자들 아닙니까? 이들은 개별적으로 수구에 충원되어갔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우리는 2002년에 ‘뉴라이트’라는, 과거 주사파였던 자들의 집단적인 전향을 목격하게 됩니다.
3. 2004년 뉴라이트 등장
1) 2002년 대선과 노무현 정권 출범의 의의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승리는 수구 세력도 납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외환위기에, 군사독재 등 장기집권 30년에 대한 국민적 염증에, 김영삼-김현철 부자의 실정이 있었죠, 그리고 DJP연합으로 지역구도도 탈출했지요. 여기에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도 한 몫했으며 500만표를 가져갔던 이인제 효과도 있었습니다. 하나만으로도 대선 결과가 바뀔만한 중대요인이 여러 개 중첩되었던 것이죠. 수구 세력도 패배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노무현의 승리는, 수구세력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구세력이 탄핵을 통해 반격을 합니다만 탄핵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수구의 위기로 이어졌던거죠. 그 때 사실 진보개혁진영이 제 역할을 못함으로써 수구 세력을 분리수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바로 수구의 헤게모니를 깰 수 있는 호기를 놓치게 됩니다. 민변출신 대통령·국정원장·원내대표·법무부장관과, 여당 단독과반수, 그리고 덤으로 민노당 10석을 가지고도 국가보안법을 폐지못했지요. 이른바 4대개혁입법을 가지고 정치적 야합을 하는 와중에 민심은 진보 진영에서 떠나게 됩니다.
2) 뉴라이트 등장 요인
2004년 하반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대법원과 헌재의 판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과거청산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노무현 정권의 과거청산(친일/민간인 학살/군사독재) 작업에 대한 뉴라이트의 위기의식이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2004년 가을. 뉴라이트는 수구좌파와 수구우파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정당성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집권세력에 의해 의문시되면서 국가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며 결집하기 시작하엿습니다.
여기에 수구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 수구세력의 충원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뉴라이트 세력은 집단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에 수구측은 자신들의 주장이 과거 운동권 전술을 통해 관철되기를 기대하였고, 실제로 그들의 투쟁력도 증강되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을 두고 ‘좌파 정권’ 재창출을 저지할 필요성을 느껴 보수층이 총집결합니다.
4. 뉴라이트의 문제점과 미래
1) 약점과 문제점
뉴라이트들에게는 사상적 깊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로 독재정권으로부타,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도 억압받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반공교육을 가장 철저히 받은 세대가 가장 극렬한 운동권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이 바로 주사파 집단입니다.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는 사실 그 주사파 집단 출신들입니다. 20대에는 좌익 소아병을 앓더니 40대가 되어서는 극우 소아병을 앓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죠. 이들이 수구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있지만, 뉴라이트의 출현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보수집단이 출현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겁니다.
5.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인식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연구 그 자체가 투쟁이고 운동이었습니다. 80년 광주를 겪으며 8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글을 쓰는 것도, 자료를 구하는 것도 투쟁이었던 시대였지요. 젊은 연구자들 중심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씌어졌습니다. 그런데 뉴라이트 집단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펴냅니다. 그 책의 1권은 ‘탈민족’집단이 함께 저술했는데 책이 나온 후에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를 펴내 탈근대적 입장에서 뉴라이트와 민중사관을 함께 비판했습니다. 민중사관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일하는 민중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지배세력 중에서도 친일 세력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면서 자신들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뉴라이트의 한국근현대사 인식을 짚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세력에 빚진 게 없기 때문에 과거청산에 적극적일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이후 과거 청산이 본격화됩니다. 그런데 수구세력들은 이 과거청산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자학사관’입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력이 사실 친일파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학사관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학사관’이란 말은 일본의 ‘새역모’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어디 빌려올 게 없어서 일본 침략사를 정당화하는 ‘새역모’의 용어를 빌려옵니까. 이 비판이 제기되자 최근에는 ‘자해사관’이란 용어를 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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