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속의 외침

from 읽기 2010/03/19 02:07

在細雨中呼喊

 

오전에 [또] 누워 자던 중...전화가 와서 벌떡 일어나다가 물컵을 엎어서 빌려놓은 책들이 젖었다 ;ㅁ;

인생은 닦아 놓으니 멀쩡한데 가랑비 속의 외침은 앞부분이 꽤 젖었다.

도서관에 변상...한다고 하고 그냥 살까 싶다... 잘됐다.. (잘됐긴;) 갖고 싶었는데.. (돈이 없잖니-_-)

갖거나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선물하고 무슨 말을 들을 진 모르겠지만...ㅎㅎ

 

인생을 읽고 그냥 오기 뭐해서 이 아이도 빌려 왔는데 그날 밤 잠깐만 본다는 것이 꼬박 밤새 읽어버렸다.

하루에 소설을 두권이나 읽다니; 재밌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읽고나니 이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들어버렸다.. 인생도 괜찮았지만 이 아이는 정말, 반했다..ㅎ

몇 번 더 읽고 정리하고 싶지만 일단 첫빠를 남겨둬야지..

 

한자로 된 제목은 재세우중호함..

난 호성인가 하다가 찾아보니 호함... 그래서 다시 고함? 하다가...아, 그냥 호함이구나 했다.

그래, 주인공 광림은 절대 고함을 지르지 않을 아이다.

그가 빗속에서 부르는 그 소리는 그 모습은 파장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조용히 나직히 그렇지만 또렷하게 오랫동안 울리도록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랑했던 친구 소우를?

후레자식 아버지를? 무기력한 형을? 죽은 양아버지를?  떠나버린 양엄마를?

교활했지만 불쌍했던 할아버지를? 침묵하는, 그러나 어느 순간엔 와글거리는 마을 사람들을?

분신 같았던 노노를? 짝사랑했던 여자애를?

 

가랑비 내리던 밤 여인의 울음 소리를 듣고 공포에 떨던 기억, 죽은 사람을 본 기억,

그리고 다음은 고향인 남문을 떠나 입양보내지던 기억이다. 그 다음은 고향으로 돌아온 기억..

그 다음부터는 무순...이라고 해야할까... 떠오르는대로 말 하듯이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적는다.

어떨 때는 자기 기억이 아닌 남의 기억도 적는다... 묘사는 정확하다.

광림이 관찰을 많이하고 생각을 많이하는 아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들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기 기억과 같이 기술한다.

특히 소우가 죽던 날 아침의 묘사는..... 몇번이고 죽은 소우의 마음을 떠올려보고 소우가 되어보고 했을 것이 상상될만큼 또렷하게 이야기한다. 담담하게.

 

어떤 가족 구성원하고도 친밀함을 느낄 수 없었고 마을의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는 광림.

그 큰 외로움과 고독을 인정하지도 않고 삼키면서 화내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광림..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광림.. 늘 지켜만 보는 아이..

그런 광림이 손내밀어 잡았던 것은 따뜻한 소우와 어리지만 당돌한 노노... 정도?

소우는 광림에게 먼저 다가와주었고 노노에게는 광림이 먼저 다가간다..

결국 그들도 그 곁에 오래 남지는 않았지만...

남문의 흙탕길과 바람, 강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추억은 남아있다.

아름다운 추억과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모욕과 수치의 기억, 혐오스러운 것들, 물리적으로 변화한 현실..

그런 것들을 좋다고 싫다고 아팠다고 어쨌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줄줄줄....적는다.

읽고 있는 내가 다 아프다..

 

책을 읽으면서 풋- 하고 웃을 수 있었던 장면은 딱 한 장면이었다.

 

 "할 말이 있어."

 달빛이 비추는 가운데 나는 소우를 바라보았다. 소우는 말을 곧 잇지 못하고는 얼굴을 쳐들었고,

나 역시 머리를 들었다. 나는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구름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고요히 떠다니는 달을 지켜보았다. 구름에 접근하자 어두웠던 끝자락이 빛나기 시작했고 이내 달은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소우가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네게 한 말, 여자를 껴안았을 때의 느낌 말이야."

 소우의 얼굴은 어두 때문에 잘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음성은 분명했다. 달이 구름을 뚫고 나오자 순식간에 또렷해졌고 순간 말을 멈추고는 얼굴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달이 또 다른 구름에 접근해갔고, 다시 구름을 벗어나자 소우는 말을 이었다.

 "사실 정량의 어깨가 아니라 네 어깨를 안을 때의 느낌이었어. 그때 그런 느낌이 들었어."

 소우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고, 달빛은 생동하는 소우의 미소를 내게 전해주었다. 소우의 미소와 멋쩍어하는 음성은 달빛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반복하던 그날 밤, 오랫동안 내게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아... 므흣하다. 따뜻하고.. 하지만 이 이상은 별로 없다;

입양되었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이야기도 조금 발랄하긴 하지만..전체적으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이 너무 커서 대부분 비극적인 느낌이다.. 재가한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국경이, 자유롭고 멋진 형을 황달 간염으로 잃게 되는 류소청..

하지만 차라리 이들과 함께였다면 광림의 살아온 날들은 덜 고달팠을지도 모른다.

양부모를 잃은 광림이 류소청과 국경이의 도움으로 고향 남문에 다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 길고 지난한 시간의 시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림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가족에 대한, 고향 남문에 대한 애정이 보인다면 확대해석인걸까... 애정이 아니라면 연민 정도일까... 그냥 뗄 수 없는 정 같은 것일까..

사실은 형과 친해지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읽다보면 문득 들 때가 있었다.

모르겠다. 마을 사람들..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침묵하거나 수군대거나... 특별히 광림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인생>에서도 보면 푸구이가 흙을 좋아하고 농사일을 즐기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는 거의 없다.

마을 사람들은 벙어리 딸 펑샤를 놀리거나 하는 정도의 사람들이다...

뭘까....

나는 어떨까. 나는 마을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어떤 마을이냐에 따라 다를까?

적어도 지금 있는 마을에서는 관계맺고 싶지 않다 ;;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부터 7살때까지 살았고 이후로도 자주 왔던 곳이고, 집을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는 가끔 집에 들르면 좋은 정도였지만...

이렇게 살러(?) 들어오니 좀 묘하다. 가능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편이다...

이래서야 어디 촌에 가서 살겠다는 건지 앞날이 막막하기도 하지만 -_- ; 일단은 그렇다.. 다른 동네는 좀 낫지 않을까 하면서..ㅋㅋ

아무튼 ... 그때 가서 생각하고..

 

오늘 밤에는 광림이 꿈을 꾸려나..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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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02:07 2010/03/1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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