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비영리 단체를 위한 ...
- 진보넷!
- 12/20
-
- 집회갔더니 인터넷도 ...
- 진보넷!
- 12/11
-
- 똑똑.. 안전한 집회를...
- 진보넷!
- 12/06
-
- [가취가욥]진보넷도! ...
- 진보넷!
- 09/27
오병일 활동가가 Weekly 수유너머에 기고한 글. 기술 발전과 통제능력의 강화
지난 2008년, 검찰은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 대상자 100여 명의 최장 7년치 전자우편을 통째로 압수해 열어보았다고 한다. 편지라는 극히 사적인 대화 조차도 한번 기록된 이상, 절대적인 보호를 보장받을 수 없다. 아예 전자우편 기록 자체가 없었다면 압수수색 영장인들 의미가 없었을 것을. 오늘날 정보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기록된다. 그리고 기록된 모든 것은 사후에 추적, 열람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하면, 통제 가능해진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욕망한다.
잠재적 범죄자
지난 4월 2일 방송통신위원회는 2009년 하반기 감청 통계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자못 충격적인데, 2009년 하반기에 통신사에서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사실확인자료(통신을 한 전화번호나 인터넷 IP주소 등 '통화내역'이라고 보면 된다) 건수가 무려 15,778,887건으로 전년도 대비 67배(6,564% 증가)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그동안 압수수색 방식으로 이루어진 기지국 수사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방식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방통위는 2009년 하반기에만 1,257건의 기지국 수사가 이루어졌으며, 한 수사당 통상 1만 2천개의 전화번호가 제공되었다고 밝혔다. 기지국 수사란 특정 시간에 기지국에서 잡히는 휴대전화번호를 모두 압수하거나 제공받는 방식의 수사를 의미한다. 문제는 그것이 압수수색 방식으로 이루어졌든,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방식으로 이루어졌든 특정 시간에 범죄 현장에서 통화를 한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로서 용의선 상에 오른다는 것.
기지국 수사뿐이 아니다. 전화, 이동전화, 인터넷 등을 통한 모든 통신 기록은 통신서비스 업체의 서버에 기록된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오로지 범죄 수사를 위해' 통신 기록을 '일정 기간'(예컨데, 통화기록은 12개월, 인터넷 로그기록은 3개월) 보관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행 통비법은 시행령에서 이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의무보관 기간 및 처벌조항을 법률에 규정하려는 통비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모든 행위와 대화가 기록되는 정보사회에서 그것은 범죄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며, 무죄추정의 원칙은 무력화 된다. 내가 왜 범인인지 수사기관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정당한지를 내가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내가 비록 그 범죄 현장 근처에 있기는 했지만, 나는 어떠어떠한 이유에서 그 자리에 있었으며 범죄와는 전혀 무관함을 변명해야 하는 것이다. 살인, 강도와 같은 심각한 범죄와 관련해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CCTV에 찍힌, 나와 같이 있던 그 남자가 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변명해야 할 수도 있으며, 회사 컴퓨터로 접속한 사이트가 업무와 연관된 것임을 입증해야 할 수도 있다. 근무 중 한 시간에 다섯번이나 화장실에 간 것에 대해서는 '배탈이 나서'라는 답변을 준비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모니터링 될 수 있다는 것을 내면화한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통상적인 룰(그것이 법이든 통념이든)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하게 된다.
통제 능력
지난 해 12월 29일에는 (예산안 날치기 통과 문제에 가려 묻혀버렸지만) 범죄자 유전자 DB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유죄가 확정된 사람뿐만 아니라, 피의자, 소년범, 범행 현장에서 입수한 시료(우연히 범죄 현장에 머물렀던 사람) 등도 입력 대상이 된다. 이미 경찰은 2004년부터 장기미아(미아 부모뿐만 아니라, 치매 노인 등의 유전자도 포함)에 대한 유전자 DB를 구축, 운영해오고 있다. 계속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유전자 DB가 전 국민으로 확대되지 말란 법은 없다. 범죄자 유전자 DB를 앞서 구축했던 영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한국은 전 국민 지문날인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아닌가. 전 국민의 유전자 DB가 구축되면,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흘리고 다니는 자신의 흔적들(예컨데, 머리카락, 컵에 남은 입술자국, 타액이나 정액 등)은 모두 수집 가능한 개인정보 조각이 된다. 아마도 (유전자 분석 비용이 충분히 저렴해진다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에 대해 집으로 과태료가 날라올 지도 모른다.
기술은 통제 능력을 강화한다. 실질적인 통제는 통제자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보다 현대의 민주적인 정부가 보다 세심한 통제를 할 수 있는 통제 능력을 갖고 있다.
지 난 해에는 국정원이 집이나 사무실에 설치된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청해온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이 2008년 6월부터 2개월 동안 집과 사무실의 인터넷 이용 내역 및 핸드폰의 모든 통화, 문자 송수신 내역을 국정원에 의해 감청당한 것이다. 이를 '패킷 감청'이라고 하는데, 메일, 메신저, 웹서핑 등 당사자의 모든 인터넷 이용 행위를 (암호화되어 있지 않다면) 원격에서 그대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상 명시적으로는 허용하고 있지 않은 '실시간 위치추적'도 편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수사기관들은 '미래의 통신사실확인자료'(원래 통신사실확인자료란 과거의 통신내역이다)를 요청하는 방법으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해왔는데, 이동통신사업자가 매 10분 또는 30분 간격으로 단말기와 통신하는 기지국의 위치정보를 담당 수사관의 휴대전화 SMS 문자메시지로 실시간 발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변재일 의원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에만 9,647건에 이르며, 2년 반 동안 4만 건이 넘었다. 우리 사회에서 추적당하지 않고 숨어살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감시의 자발적 수용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원격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화한다. 이를 조금 극단화시킨다면, 텔레파시를 통해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하는 양 당사자의 권력 관계가 불평등하다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내 눈빛만 봐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해보자.) 이는 권력자의 통제 능력의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권력자는 국가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사회의 모든 미시적 권력 관계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직원들의 이메일, 메신저, 웹서핑 내역을 모니터링하는 회사에서부터 쓰레기 무단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집 앞에 CCTV를 설치하는 사람이나 핸드폰 위치추적을 통해 자녀들의 이동 경로를 모니터링하는 부모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문제는 시민들 스스로 감시 시스템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감시 시스템은 '당신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위험한 유전자를 지닌 타인의 범죄를 예방하고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도입된다. 범죄 예방 CCTV 의 도입 여부를 묻는 설문에 시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오히려 더 많이 도입할 것을 요구한다. 자녀들의 지문 수집이나 위치 추적 서비스에 기꺼이 가입한다. 항공기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알몸 수색기'는 당연히 감수해야할 것이 되고, 흉악한 범죄자를 통제할 수 있다니 유전자 DB나 전자팔찌의 도입에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감시 시스템/정책들의 효과가 업체나 정부에 의해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을지언정, '안전에 대한 욕망' 자체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감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공동체가 그것을 보장해주리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길거리를 지날 때,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CCTV가 더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