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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 대수술, 일본이 타산지석이다 [하종강 펌]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각료회의에서 의결했다.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일이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등록형 파견’이 금지되고, 26개 전문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 노동자를 상시 고용해야 한다.
계약 기간 2개월 이하 파견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 파견도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장기 고용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언론이 이를 두고 “24년만의 파견법 대수술로 일본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에서 파견법이 제정되던 90년대 후반에 벌어졌던 일이 떠오른다.
그 무렵 열렸던 파견법 관련 공청회에 일본의 파견법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일본 법학자가 참여했다.
그 노학자는 “일본은 노동자 파견법을 졸속으로 도입한 뒤 큰 후회를 하고 있다.
한국은 그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이 졸속으로 도입했다던 파견법 제정을 논의한 기간이 무려 15년이다.
우리나라는 파견법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지 3-4 년만에 “선진국에 다 있는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면서 서둘러 법을 제정했다.

당시 한 법률가 단체가 국회에 제출할 파견법 제정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과제가 우리 연구소에 맡겨지는 바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국 노동자 파견 제도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살펴보니 선진국에서 제정한 파견법의 취지는 대부분 기업의 노동자 파견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거나 파견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었고 거의 유일하게 일본의 파견법이 노동자 파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 재계와 정부는 일본의 법 체제를 모방해 도입하면서 “선진국에도 다 있는 제도”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 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학자들은 꾸준히 “고용 증대를 위해 파견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파견업종 확대가 마치 당연한 순리인양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세계화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90년대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확대했던 많은 나라들이 2천 년대에 들어서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은 애써 외면했다.

일본의 파견법 대수술 역시 과거 공동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내부에서 논의돼왔던 것들이다.
노동자를 파견하는 회사 뿐 아니라 파견 노동자가 일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고용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파견 계약 만료 이전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다시 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을 준비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에 호응하는 한편 독자적 파견법 개정안을 추진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파견법 제정 뒤 파견 가능 대상 업종을 점차 확대하다가 1999년에 이르러 파견을 원칙적으로 자유화했다.
그 뒤 파견 노동자가 크게 늘어 2002년 43만 명에서 2008년에는 140만 명이나 됐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하토야마 정부는 이번 법 개정으로 고이즈미 내각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뒤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여전히 과거의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파견 규제를 완화하고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견 노동 확대가 실업 해소 및 고령자와 여성의 취업에 기여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기업 인건비 줄이자고 노예 노동을 합법화할 수는 없다. 나라 경제와 기업경쟁력에도 해로운 일이다.
“파견법 시행 12년, 인신매매 12년”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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