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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더 낫다.

명진 스님, 간만에 도심 복판에

[윤재석의 '쾌도난마']<44> '수박은 수박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살자'

윤재석 언론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2-24 오후 5:09:05

신랄한 비판으로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다, 조계종 총무원의 압력에 따라 서울 삼성동 소재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난 명진(明盡) 스님이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나타났다. 23일 저녁 7시 경향신문 별관 4층 금속노조 강당.

근저(近著)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북 콘서트를 위해 전국을 유랑하고 있는 그가 도심에 나타난 건, 문화다양성포럼과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이 공동 주최한 사랑방좌담회 특강을 위한 것.

명진은 '수박은 수박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살자'를 화두로 한 한 시간여에 걸친 특강에서 특유의 거침없는 독설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다음은 명진 스님의 법문 요지.

제가 말을 심하게 한다, 독하게 한다는 말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내 태생이 거칠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서울공고를 다녔는데, 그 때 철조망 클럽의 일원이었다. 나중에 레인보 클럽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지금의 일진회라고 보면 된다. 거기서 잔뼈가 굵었기에 거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 중이다. 거둬 먹일 처자식이 없다. 눈에 뵈는 게 없다. 임진왜란 때 중이 가장 용맹스럽게 싸운 것도 홀몸이었기에 가능했다.

MB가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는데, 난 MB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다. 물론 그렇게 하면 난 하나님으로부터 천벌을 받을 거다. 왜 그런 인간을 봉헌했느냐고.

반포대교를 지날 때마다 나는 분노한다. 이른바 '세빛 둥둥섬'. 그건 서울시민 세금 쳐들여 만든, 아무 실효성 없는 그야말로 '세금 둥둥섬'이다. 어느 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 세금둥둥섬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앨커트래즈 같은 교도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시설을 잘 정비해서 세금 포탈한 자, 세금 마구 낭비한 자들을 가둬 두는 그런 교도소 말이다.

불교 일화 얘기하겠다.
당(唐) 현종(玄宗) 때 단하(丹霞)라는 고승이 계셨다. 객승으로 운수행각(雲水行脚)하던 중 어느 추운 겨울 밤 낙양 혜림사(慧林寺)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됐다. 그런데 요사채에 난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단하는 불전(佛殿)의 목불을 가져다 불을 피웠다.
이를 본 원주(院主)가 벌컥 화를 내자, 단하가 막대기로 아궁이를 쑤시며 하는 말.
"사리(舍利)를 찾으려고."
원주가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소!"하자, 단하 왈 "사리도 안 나오는 부처가 무슨 부처, 생불 따습게 하는 게 더 낫지."
참부처를 찾는 화두로 빈번히 쓰이는 사례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명품, 화장 등으로 위장스스로를 돋보이려 하지만 그게 자신의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호박이 수박보다 훨씬 유용한 식물인데도 우리 호박들은 자꾸만 수박처럼 보이기 위해 줄을 긋곤 한다. 모과 역시 마찬가지. 못생겼지만, 향기롭고 차로 끓여마시면 어느 과실보다 격조 높은 과실이다.

학력, 재력, 인맥으로 얽힌 우리 사회가 MB와 같은 전과자를 지도자로 뽑는 건 어느 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사회에선 오직 가진 자만이 득세할 수밖에.

MB정권 출범 2년이 됐을 때, 평화방송에서 그래도 정부에 대한 덕담 한 마디 해달라고 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어서 3년이 지나가기를…."

일전에 백지연과의 대담(tvn의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서 그래도 MB의 업적 좀 얘기해달라고 해서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확실하게 보여줘 20~30대의 투표의식을 높여준 것,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정직한 이들이 정치에 나설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은 MB의 큰 공로라고 했다.

"잘 살아 보세"라고만 했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없는 사회,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그러니 SK그룹 오너 형제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검찰에 불려가고, 삼성과 CJ간 재산싸움이 벌어지고, 한화 회장 김승연은 몽둥이 들고 설치고. 그렇게 해서 재벌들이 받은 형량이 27년인데 한 사람도 감옥 안 가고 등등.

어떻게 사는 게 과연 잘사는 걸까.
2012년은 모든 것이 바뀌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는 걸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단(異端ㆍheresy)이 되자!'란 말을 즐겨 쓴다. 이단 하면 나쁜 것으로, 특히 개신교에선 상종 못할 종자로 치부하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는 뜻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이 되자는 거다.

종교인들이 사기를 많이 친다. 사기가 달래 사기냐. 남을 속이면 사기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얘기를 해 보자. 신부, 목사, 중 공히 천국과 지옥을 내세워 곧잘 사기를 친다. 그리고 천국 가려면 헌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협박한다.

천국이 그렇게 좋다면 자기는 왜 안가나, 그 좋은 곳에. 모르니까 용감하게 사기 치는 거다.불교에서 해탈을 얘기한다. 근데 해탈이란 게 별 거 아니다. 단하 선사의 목불 태우기처럼 모든 고정관점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해탈이다. 내가 부처를 위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부처 나를 위한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맛있는 거 생기면 나부터 먹고 식구부터 챙겨라. 그게 이기적인 게 결코 아니다.

해탈을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 자아에 들어있는 불필요한 힘을 빼야한다. 무림 고수, 프로골프선수, 프로야구선수의 공통점은 팔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겸손해진다.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아는 게 없다는 거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고백은 그래서 진솔하게 다가온다. 모든 앎으로부터 해방된 자유, 그게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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