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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죽어가는 노동자들 (박래군-경향신문 칼럼 펌)

 

 

 

 

 

 

 

 

소리 한번 지르지도 못하고, 유서도 남기지도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죽음들이 벌써 스물두 번째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장 점거 옥쇄파업에 들어간 지 닷새가 지난 2009년 5월, 40대 초반의 엄씨는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해고돼야 한다는 점에 많이 힘들어하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죽었다.

조합 간부의 아내였던 30대 초반의 박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으니까 잠깐이라도 왔다가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경찰과 용역이 막고 있어 회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남편은 결국 아내가 죽은 뒤에야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었다.

77일의 파업 기간 중에 5명이 죽어갔다.

 

 
 

 

 

2012년에 들어와서도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해고 칼바람을 비켜가지 못했던 중증장애인 40세의 황씨는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맸고, 36세의 김씨는 차에 연탄불을 피웠다.

조합원의 아내 최씨는 남편에게 보고 싶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을 한 뒤 집에 온 남편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졌다.

2011년 1월, 서씨는 거제도에서 용접일로 근근이 버티고 살다 자가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세상을 하직했다.

이혼했던 그의 뒤로 두 아이가 남았다.

무급휴직자 임씨는 잠자다 돌연사했고, 열다섯 번째 희생자인 강씨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죽었다.

그해 5월11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던 김진숙씨는 “질병으로 15명이 죽어갔다면 원인도 찾고 처방도 찾아내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누군가가 15명을 연쇄 살인했다면 온 국민이 나서서 범인을 잡아 법정에 세웠을 것이다.

원인도 알고 범인도 아는 살인에 대한 거대한 묵계”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가수 박혜경과 방송인 김제동도 나서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했다.

사람들은 돈도 모으고, 마음도 모았다. 한동안 죽음의 행렬은 끊어졌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투쟁에 연대했고, 재능과 유성기업 노동조합의 투쟁에도 힘을 보탰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연대에 그들은 늘 앞장섰다.

2011년 10월부터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았던 이들마저 죽음의 길을 택했다.

희망퇴직 후 대인기피증을 보이던 김씨가 집에서 목을 맸다.

그의 휴대폰에는 자신의 사진 2장과 친구 한 명의 전화번호만 있었다.

19번째 죽음은 정리해고자 아내의 죽음이었다.

그 뒤 ‘희망의 텐트’가, ‘희망 뚜벅이’가 이어졌다.

2012년이 되었다.

1월20일, 회사의 요청으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강씨는 재해고된 뒤 심적 고통을 겪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리고 지난 3월30일 77일의 파업 투쟁을 같이했던 올해 만 36세의 정리해고자 이씨는 쌍용자동차 출신이라는 낙인 끝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자신이 살던 김포의 임대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다.

이렇게 조용히 그들은 죽어갔다.

누구보다 살고 싶었을 그들이었고, 그들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정리해고자 2646명, 징계해고자 44명, 징계자 72명, 비정규직 노동자 19명 등. 그들은 단 한 명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복직 약속은커녕 블랙리스트를 돌려 해고자들의 전업조차 가로막는 잔인함,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과 냉대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분향소가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오는 22일이면 “함께 살자”며 옥쇄파업에 돌입한 지 3년, 1095일이 된다.

3년이 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분들은 대한문 앞으로 오시라. 11일에는 김제동, 변영주, 김진숙, 심보선, 진은영, 김선우, 송경동, 박재동 등이 함께하는 콘서트와 정태춘·박은옥, 김여진, 김미화, 정지영 등 수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바자회가 열린다.

18일에는 4대 종단이 스물두 번째 죽어간 이씨의 49재를 지내고, 19일에는 추모대회가 열린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곁에 서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자. 그리고 정부와 회사가 책임지라고 분명히 말하자. 조용히 죽어가는 이들이 더 이상 없게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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