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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용산불법음악회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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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이 준 크리스마스 선물

 

 

2004년 노무현 정부는 파견법 개악안과 기간제 고용법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국회에 열린우리당을 통해서 입법발의를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비정규직 대표자들이 9월16일 열린우리당 이부영 당의장실을 점거하여 일주일간 단식농성을 했었지요.

그 때 저도 함께 했었는데 세월도 무심하지 벌써 햇수로 6년째가 되는군요.

그로 인해서 현장은 비정규직으로 넘쳐나고 노동자들의 절규가 끊이질 않습니다.

100일을 단식투쟁을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이놈의 망할놈의 정부

이에 그 때 당시 발표했던 성명서를 아래에 싣습니다.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명서>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우롱하지 마라!
- 비정규 개악안 저지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해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에 돌입하며 -



IMF 경제위기 이후 온갖 착취와 차별의 설움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금 노무현 정권은 ‘파견법 개악과 기간제고용법’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던지고 있다.

지난 11일 노동부에서 입법예고 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은 한마디로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확대하는 법안이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남용이 정당하다는 면죄부를 안겨주는 법안이다.

정부·여당은 파견법을 개정하면서

▲파견법 전업종으로 확장

▲파견허용기간 3년까지 연장

▲직접고용 간주조항 삭제라는 초특급 개악안을 내놓았다.

98년 파견법 도입 이후 벌어졌던 중간착취와 주기적 해고의 이중 고통을 전 업종의 노동자들로 확대하면서 사실상 무제한 파견노동자로 만들 수 있는 절망적인 내용일 뿐 아니라,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년간 투쟁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해왔던 토대 자체를 무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여당은 기간제법안을 제정하면서

▲근로계약한도 3년으로 연장

▲기간제 고용 사유 대폭 확장

▲3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 해고 무제한 자유화 및 3년이 지나야만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심사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법안을 내놓았다.

수년간 투쟁을 통해 노동자성 인정과 근로기준법 적용을 외쳐온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아예 일언반구조차 없다.

이는 비정규노동자에게 눈물과 고통만을 안겨주는 ‘노예제도의 합법화’ 이자 대다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노예제도의 대중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로써 민주노총을 비롯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며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결국 노동조합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기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없애겠다”고 했던 약속의 결말이 결국 이같은 노예제도의 합법화·대중화였는가? 말로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외치면서, 과연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와 한번 만나기라도 했는가?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했느냐 말이다!

우리 비정규직노조들은 지난 5년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근로기준법 적용 및 노동3권을 보장하라!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질 사용주인 원청 사용자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라!
상시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그를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정규직 전환을 실시하라!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대선 후보시절 천사백만 노동자를 상대로 공약하지 않았던가!

대선 당시의 약속은 정녕 천사백만 노동자를 우롱하는 대형사기행각이었던 것인가?

요즘이 IMF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는 말이 신문 지상에 오르고 있다.

그 동안 끊임없이 착취당해온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래도 “사회적 약자와 비정규직을 우선 보호하겠다”는 말을 수차례나 반복해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묵살하며 오히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좀더 편하게 부려먹을 개악안을 내놓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노무현 정부의 기만적인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이에 우리 전국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은 오늘부터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농성에 돌입하며 정부·여당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파견법 개악안 및 기간제 법안을 즉각 철회하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한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을 실현하라!

하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보장하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질 사용주인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라!

상시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뽑아왔던 파견법을 즉각 철폐하라!

하나,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비정규직 대표자들과의 대화에 즉각 나서라!

이상의 요구 관철을 위해 우리는 희생을 무릅쓰고 당사 점거농성을 지속할 것이다.

우리 대표자들의 어깨 위에는 800만 비정규직과 1,400만 노동자의 고통이 놓여 있다.

우리 노동자들의 요구가 묵살될 경우 정부와 여당이 어떠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인지 우리는 행동으로 말해줄 것이다.


2004. 9. 16.

비정규 개악안 저지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전국비정규노조 대표자 농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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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선사한 크리스마스 선물

 

2007년 대선 끝나고 인수위 시절에 그린 만평입니다.

어떻습니까?

현재 자본에겐 천국이고 노동에겐 지옥이 되어있지 않나요?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노무현씨가 죽었네요.

그림처럼 이명박이 잡아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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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9일 민중대회로 총 집결하자!

 

MB당선 2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기고] 12월19일 이명박 2년 심판 민중대회에 부쳐
강철구 (반MB공투본 상황실 활동가)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이 당선된 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우파들의 환호성과 조중동의 만세삼창, 부자들의 게걸스런 탐욕의 축가가 쏟아진 날이다.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행복하게 만들겠다”며 “국민성공시대”를 공언한 대통령의 당선 연설을 들은 지 2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을 부자들의 천국, 부자성공시대로 만들기 위한 이명박 불도저에 용산 철거민들이 깔려 죽었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짓뭉개진 2년이다.

환경을 위한다며 4대강을 파괴하고,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짓누르고, “세계 평화” 명분으로 파병을 밀어붙이고, ‘언론 다양성 보장’ 핑계로 자본의 언론 지배를 강화하는 분통터지는 거짓과 위선의 2년이다.

언론자유지수 64위, 국민행복지수 72위, 가계소득 감소율 사상 최대, OECD 복지지출 최하위, 실질 실업률 10퍼센트, 빈곤층 1천만 명 시대, 유례없는 노동탄압, 인권 후퇴…. 이명박 통치 2년의 부끄러운 성적표다.

지난 1월 용산에서 불탄 시신이 또다시 겨울을 맞이했는데도 아직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차디찬 영안실에 있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쌀값 대란에 농민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도 대북 쌀 지원 요구를 외면하고, 등록금 걱정에 취업 걱정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절박한 외침도 외면하는 정부다.

그러나 지난 2년은 또한 이명박에 맞선 저항의 나날들이기도 하다.

인수위 시절부터 정신없이 쏟아져나오는 이명박의 노골적인 강부자 정책은 집권한 지 2개월여만에 1987년 이후 최대 규모의 저항 운동을 불러왔다.
촛불이 도시를 휘감자 서울은 마법에 빠졌고 정부는 일순간 마비됐다.

전투에서는 이겨도 전쟁에서는 지고 있는 MB

이명박은 가까스로 촛불을 짓밟았지만, 언제 점화될지 모르는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10년만의 언론 노동자 파업, 용산 참사 항의 투쟁, 화물연대 투쟁, 쌍용차 점거 파업 등 이명박에 맞선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투쟁들과 더불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표출된 거대한 反 이명박 정서와 6월 10일 10만 명이 운집한 시청 광장 집회는 결국 이명박이 “친서민 중도 실용”이라는 어울리지 않은 가면을 쓰고 매우 기만적이고 조삼모사식인 양보책들을 내놓게 했다.
물론 그런 거짓에 속지 않고 위선을 폭로하며 계속 투쟁을 전개하는 진보 진영을 향해서는 탄압의 고삐를 풀지 않았지만 말이다.

서민이 빠진 “친서민 정책”과 전혀 중도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중도 실용 노선”이 어찌 효과를 내겠는가.
민중은 여전히 정부를 강하게 불신하고 있고, 재벌과 부자들만 느끼는 ‘경제 회복’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소외감과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명박은 본인이 감당 못할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세종시 문제 하나도 버거운데 4대 강 사업과 교육 개혁, 행정구역 개편, 공기업 개혁, 노조 문제에서부터 개헌 문제까지 모든 문제로 전선을 확대하다 보니 어디 하나에 전력투구할 수 없는 것이다.
곳곳에서 소리만 요란할 뿐 뭐 하나 될성부른 게 없다.”며 걱정할 정도다.

<조선일보>는 아예 “여기서 후퇴하면 큰 상처를 입”는 것을 감수하고 세종시 문제를 이쯤해서 “정리할 줄 아는 용기”를 발휘하라며 이명박에게 충고했다.

경제적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이명박 자신이 12월 3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인정했듯이 “(한국 경제가) 내수나 민간투자 부문에서 아직 불안요인이 많다.”

더군다나 지배자들의 분열과 암투 속에서 터져나오는 부패 문제는 정권 자체를 막다른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도곡동 땅은 이명박의 무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대규모 베를루스코니 총리 퇴진 시위를 촉발한 것도 총리의 부패 문제였다.

이명박은 개별 전투에서는 힘겹게 이겼는지 몰라도 갈수록 상처를 안고 있고, 그의 앞 길에는 곳곳에 폭탄이 높여 있다.
결국 이명박은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을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 탄압, 4대강, 아프간 파병이 이명박의 당선 2년 기념 선물

당선 2년을 맞아 정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명박은 노동 탄압으로 미쳐 날뛰고 있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철도 파업에 대한 대응을 보라. 공무원노조 전교조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이 나라를 정권과 자본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전임자임금지급금지로 민주노조 운동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 뿐인가.
이 정부는 노동 탄압과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파병동의안 제출과 복지 예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4대강 예산안 통과를 당선 2년 종합선물세트로 내놓고 있다.

당선 2년이 되는 날인 12월 19일 전국 곳곳에서 2년간 이명박의 악행을 규탄하고 노동 탄압, 아프가니스탄 파병, 4대강 예산안 통과 시도에 맞서 거리로 나서자.

이명박 정권의 광적인 탄압은 이명박 정부의 강력함이 아니라 의기 의식의 반영이다.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탄압 뚫고 하이킥’을 해 이명박이 “나쁜 결말”을 맞이하게 해야 한다.

12월 19일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반전평화 실현! 이명박 심판 전국민중대회’에 참여하자.

<강철구 (반MB공투본 상황실 활동가) >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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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았지만 용산은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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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았지만 용산은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기고] 사선을 넘었다 돌아온 문규현 신부의 편지

문규현 신부
 
사랑과 기도, 염려와 정성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늦은 인사드립니다.

문규현 신부

문규현 신부ⓒ 민중의소리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 간단한 인사말로 숱한 고마움에 어찌 답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데 먼 길 달려와 가족들과 함께 안타까워해준 분들, 기고로 댓글로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수많은 네티즌들, 면회도 안 되는 병실 문 밖에 서성이며 말없이 힘주고 가신 분들, 기도시간마다 미사 때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에도 마음을 다해 문 신부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려주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 분들 모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부족하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인사나마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다 하느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이면 언제 어느 때라도 세상 떠날 수 있다고 큰소리쳐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죽음에서 돌아와 새 삶을 누리는 이 시간, 모든 것들이 한편 낯설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완벽한 무의식, 완벽한 무력함의 시간이었습니다. 숨 쉬고 먹고 배설에 이르기까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던 기막힌 시간들이었습니다.

의사, 간호사, 온갖 첨단 의료기기, 가족들, 그리고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 그렇게 외부의 도움과 손길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었던 완전한 의탁과 항복의 시간, 그곳에 존재한 것은 완전한 사랑 완전한 은총이었습니다.

오체투지 순례길을 가면서 ‘이보다 낮은 자세라면 죽음밖에 없을 터...’라고 중얼거렸건만, 정말 그 지경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그냥 ‘다녀오기만’ 했음은, 신께서 여러분의 간절하고 간절한 애원과 기도를 외면하실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제게 제일 궁금해 하는 질문이 ‘천국 봤냐?’입니다.

못 봤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처럼’을 외치다 갔던 그 길이어서인지, 천국문은 제게 열리지 않았고 천국에 관한 그럴싸한 풍경도 기억에 없습니다.

혹할만한 이야기 한 자락 지어낼 넉살도 없기에 미안하게도 저는 천국을 증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단연코 증언할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 그냥 폼 나게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그렇습니다. 절 보세요. 산 증인입니다.

오늘이 영원이고 영원이 오늘입니다.

내가 알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오늘이고, 지금 이 순간입니다.

세상 떠날 시간, 세상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내가 정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나누고, 미안하다 용서한다 말할 수 있는 순간도 오직 지금입니다.

내 욕망 내 명예 내 재산도 죽음 앞에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 생애 가장 확신할 수 있고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넘치는 사랑과 기도로 저는 소생했습니다.

죽음도 이기고 극심한 고통의 시간도 이겨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 함께 마음 모으고 함께 이겨가는 힘이 절망을 넘어서게 했습니다.

1퍼센트 가망성도 100퍼센트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기적의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2010년 새해입니다.

충격과 놀라움으로 주체할 수 없었던 그 날 새벽,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일 년이 바로 눈앞입니다.

저는 살았는데 용산은 아직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저를 살려냈던 그 간절하고 간절한 마음들은 이미 용산의 아픔을 보듬고 있던 따뜻한 연민과 연대의 마음임을, 어떤 암담한 상황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굴하지 않는 희망의 불씨들임을. 그 마음, 그 불씨들이 용산참사 현장도 부활과 기적의 현장으로 살려낼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지해야 하고, 다른 이의 조력과 지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이 귀한 시간만이 오로지 내 것이라면, 더 많이 나누고 더 열심히 사랑하는데 써야 할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보듬는데 더 많이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 숨겨진 숱한 기적의 비법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영원으로 빚고 영원을 오늘 속에 가져오는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딱딱한 허리 보조기구를 착용한 채 움직여야 하고 진통제를 먹어야 밤잠도 제대로 잡니다. 심장에 박은 보조 장치는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전처럼 살 순 없는 거라고 쐐기 박듯 매번 일깨우고 시위합니다.

허나 이것들은 동시에 여러분이 주신 사랑과 기도가 만든 기적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이 불편함마저 고맙고, 이 불편함이 여러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게 합니다.

불의하고 부당한 각종 현실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들이 도리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이 사랑했고, 더 많이 용기를 내었으며, 더 많이 기쁘고 뿌듯했노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희망과 기적의 창조자들 속에 바로 내가 있노라고 자부심 가득하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제 보답이라곤 어떤 육신적 불편함 속에서도 계속 더불어 가리리라는 다짐과 기도뿐입니다.

함께 하는 여정, 그래도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2009년 12월 16일 문규현 신부 드림

※ 이 기고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동시게재 됩니다.

<문규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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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아저씨들의 조촐한 송년회

 

시외버스 아저씨들의 조촐한 송년회

Posted at 2009/12/16 00:26// Posted in 뜀박질 !
운수노동자 협의회 사무실에서 조촐하게 열린 송년회에 다녀왔습니다. 비번인 분들도 있고, 운전을 나가시는 분들도 있고 하기에, 2시부터 저녁까지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해놓고, 오가면서 드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셨더군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노조에 맞서, 복수노조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노동조합을 한 번 제대로 만들어가보겠단 마음이 크셨던 만큼. 최근에 있었던 복수노조 유예안에 대해 아쉬움이 크셨지 싶은데. 그래도 실망보단,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들이 느껴졌습니다.  

오징어 순대, 오징어 두루치기, 과메기, 수육 등 푸짐한 먹거리^-^



나이로만 따지면, 아버지뻘인 분들도 많으신 곳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나이"를 떠나 스스럼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엊 저녁엔, "사무국장님, A4 용지 한 장에 글자 하나씩 큼지막하게 출력하는거, 그거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묻는 전화가 왔더군요. 덤으로 "종이를 옆으로 눕히는 방법"도 물어보시더군요. 오늘 행사를 준비하면서, 작은 사무실 한 켠에 "운수노협 송년회"란 글자를 붙이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글자가 그렇게까지 커지지 않는다며 답답해 하시더군요. 한글 좀 만질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정돈 어렵지도 않은 일이어서 쉽게 쉽게 설명해 드렸더니, 오늘 사무실 벽 한 켠엔 "운수노협 송년회"란 글자가 자리잡고 있더군요. 

 
정당하게 지급받아야 할 수당을 불법적으로 축소 지급받아왔던 사실을 폭로하고, 재판에서 승소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원래 그러했던 "사실"을 알리는 것을 "기자회견", "전단지"로 알리는데 도움을 드리면서 시작된 운수노협 분들과의 인연. 앞으로도 튼튼하게 이어가야겠습니다.  

 
_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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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범대위 박래군 위원장, NCCK인권상 수상

 
용산참사범대위 박래군 위원장, NCCK 인권상 수상
 

박래군 위원장, NCCK 인권상 수상    

2009년 12월 12일 (토) 12:53:49 최유라 수습기자  77paper@newscj.com  


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상에 박래군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하 위원장)이 선정됐다.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10일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2009년 제23회 인권상 시상식’에서 현재 수배 중인 박래군 위원장을 대신해 홍성만 대변인이 인권상을 받았다.

박 위원장은 용산참사 관련 불법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활동에 제약이 가해져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홍성만 대변인은 미리 받은 박래군 위원장의 수상 소감문을 대신 낭독했다.

박 위원장은 인권참사가 발생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개탄하면서 “수배생활 후에 감옥으로 가더라도 용산참사 피해자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상은 지금도 묵묵히 인권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더 이상 인권운동이 필요 없는 날이 올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최 측은 박 위원장에게 인권상을 수여하는 이유를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가해진 국가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인권옹호에 직접 헌신했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문제에 위기가 왔음을 지속적으로 알려낸 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래군 위원장은 지난 7일 올해의 NCCK 인권상 수상자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이 글의 출처  :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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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박래군님의 안해가 석방 탄원을 위해 쓰신 글을 여기 옮겨봅니다.
2009년, 박래군님의 가족은 다시금 그의 수배가 풀리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출처 : www.gyuhang.net
2006/04/10 15:06
다시, 박래군

김규항 글

박래군과 통화하다가 길어져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했더니 “대추리에 들어와 있는데 내일 아침엔 크게 싸울 것 같아 통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몸조심해”하고 끊었는데 다음날 그는 연행되었고 결국 구속되었다.

박래군 아내가 쓴 탄원서. 그 동안 뭘 쫌 써보려 몇차례 시도했지만 이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글.


탄원서

판사님. 이 사건의 판결을 맡으신 용 판사 님께서는 판사 님의 가치관이나 삶과 퍽 다르게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일지라도 가슴에 담아 읽으실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길 바라면서 탄원서를 씁니다.

저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된 인권활동가 박래군의 아내입니다.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지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고 한마음으로 더불어 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저희 남편은 평생을 낮은 곳에서 인권을 일궈내고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 왔습니다.

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외치다 억울한 옥살이를 1년이나 했고, 부모님도 모르는 사이에 군대에 강제 징집을 당했고, 자기 몸에 불을 붙여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 항거했던 동생의 시커멓게 탄 몸뚱이를, 꺼져가는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숱한 슬픔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그 고난의 길을 피해 따뜻한 안식처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아온 것은 내가 편안하고 배부르게 살 때, 내 곁에서 힘들게 고통받고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착하고 올곧은 심성의 소유자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어릴 적 아주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머슴살이로 시작해 농토를 일구어 삼형제를 가르쳐야 했던 집안이었으니까요.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집까지 뛰어와 끼니를 때우고, 등잔불도 아끼시는 할머니 때문에 밤에는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도 읽을 수 없었답니다.

악착같이 농사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과일이며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것도 모자라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는 뻥튀기 구르마를 끌고 다니며 장 바닥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삼형제는 너무도 착해 학교에서 돌아와 밤늦도록 농사일을 돕고 그 추운 겨울에도 뻥튀기 구르마를 따라나서 하루 종일 시커먼 연기를 뒤집어쓰고 부모님을 도왔답니다.

가슴 절절한 시를 많이 썼던 동생이 남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자갈논 한 자리나마 가지고 싶다
밤낮없이 새경을 모으고
살 에이는 겨울길
뻥튀기 구르마를 끌던 아버지
국민학교 6학년 어린 나이로
구르마 쫓아다니던
큰 형님이 가여워
밤마다 베갯잎을 적시던 엄니
양회포 한 포대 얻자고
이장한테 삿대질하다가
퍼렇게 멍든 아버지 얼굴 보고
여보
우리도 한 번 보란듯이 삽시다
울며울며
자식새끼들 끌어안으시던
엄니

시에 나오는, 등골이 휘도록 힘들게 살아온 부모님을, 부모님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편은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잊지 않았습니다.

연세대 국문과를 나온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귀를 막고 쳐다보지 않고 살았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처럼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남편은 인권의 불모지인 이 땅에 인권의 싹을 심고 키웠습니다.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적 소수자, 노숙자, 양심수, 구속 수감자, 복지 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당하고, 멸시받고, 차별받는 곳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찾고 고민하고, 그들이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갔습니다.

반인권과 부패로 얼룩진 사회복지설이었던 에바다 농아원을 정상화하기 위한 싸움에선 비리재단 측에서 퍼부은 똥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말 못하는 이들의 귀와 입이 되어 주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문후유증을 앓던 선배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했고, 폭력적인 수용 시설에 억울하게 끌려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았던 수용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수용 시설에서 나왔던 한 사람은 10년이나 인연을 맺고 있었는데 그는 고아여서 가족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의 형제나 되는 듯 그 사람이 이사를 하면 이삿짐을 손수 날라 주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교도소에 있는데 얼마 전 석방 날짜가 연기된 줄도 모르고 사무실 총회를 밤 새워 하고 새벽에 춘천까지 차를 몰아 그를 맞이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가는 길엔 왜 이렇게 슬픔과 어려움과 시련이 많을까요.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 가진 자들과의 싸움, 폭력과의 싸움, 권력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움, 편견과의 싸움... 끝도 없는 싸움이 계속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늘 씩씩하게 웃고 다닙니다.

우울하거나 비관하는 법이 없고, 좌절하지도 않고, 고난 앞에 무릎을 꿇지도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갑니다.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자기 말을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들어 주었던 그의 곁엔 언제나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남편은 바깥 일로 늘 바쁘게 살지만 가정에도 충실한 책임감 있는 가장입니다.

아내를 존중하고 아낄 줄 아는 남편이고, 아이들로부터는 정신적 지주란 믿음을 얻고 있는 아빠입니다.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원고를 쓰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여 가정의 경제도 책임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을 무책임하게 돌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가족들을 보살핍니다.

넓적하고 그을린 투박한 얼굴과는 달리 집에서는 아주 섬세하게 가족을 챙깁니다.

아이들이 엄마인 저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이해해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빠는 좋은 분이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 옆집 아주머니는 저희 집 아이들은 엄마가 오면 엄마하고 큰 소리로 나와 부르지 않는데 아빠가 오면 맨발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반기며 안긴다고 애들이 아빠를 참 좋아한다고, 무슨 아빠가 애들을 그렇게 이뻐하냐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저희 남편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경기도 화성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늙으신 부모님에겐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여느 농민처럼 당신의 목숨처럼 땅을 아끼시며 한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분이십니다. 제가 결혼하던 해 고관절을 앓으시고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셔서 목발을 짚고 다니시지만 농사일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 서 있을 수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으셔서 땅바닥을 기어다니시고 스티로폼으로 만든 방석을 끌고 다니면서도 밭일을 하십니다.

다들 왜 그렇게 사시냐면서 농사일을 그만두시라고 만류하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농사를 지으시겠답니다.

만류하는 가족도 있지만 저희 남편은 아버님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존중해 드리고, 아버님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습니다.

토요일도 나가 일하고 돌아와 일요일엔 쉬어야 하는데 달려갑니다. 땅을 갈아 곡식과 채소를 심을 수 있게 해 드리고, 두둑을 만들고, 고추 말뚝을 박고, 거름을 져 나르고, 농약을 주고, 포도를 따고, 포도를 갖다 팔고,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캐고, 깨를 털고, 농기계를 수리하고... 쓰려면 다 쓸 수도 없는 고된 농사일을 불평 없이 하고 돌아옵니다.

막내아들을 그렇게 먼저 보낸 부모님이 찢긴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롭게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한평생 좋은 일도 없이 자식을 다 떠나보내고 병든 몸으로 외롭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께 차마 남편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실까, 참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빠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은 몹시 슬퍼하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빠 같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왜 구속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엄마와 아빠 모두 힘내시라고 오히려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판사 님께 비굴하게 빌지 말고 당당하게 부모님의 뜻을 말씀 드리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그와 수많은 인권활동가들의 행동은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의 인간다운 삶, 자유롭고 평등하고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는, 존엄한 삶을 위한 고귀한 실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인권활동가의 노력으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만들어진 것이고 국민들도 인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권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경찰 대학에 가서 인권 교육을 하고 법조인이 인권 교육을 받기도 하는 세상이니 인권의 싹이 크긴 큰 모양입니다.

그러나 인권은 아직 커다란 나무로 자라지 못했고 숲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권활동가가 구속되고, 평생 살아온 땅에서 옷이 벗겨진 채 처참하게 끌려가는 농민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는 진실의 편에 서 있었고 그의 외침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지금 구속되어 철창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또한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나선 것입니다.

이 땅을 미군에게 내어 주어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 않으며 평생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음은 당연한 마음이고 지키려는 싸움은 정당한 싸움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 추진 중 일어난 충돌은 주민과 국민의 충분한 협의와 동의 과정 없이 일부는 돈으로 회유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땅은 강제로 빼앗으려 는 일련의 과정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공무집행방해라는 실정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땅의 평화이고 농민들의 생존권입니다.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땅을 강제로 파헤치는 일을 공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했다면 그렇게 반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공무를 방해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악이 그것에 저항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몸부림 끝에 뒤바뀌었는지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전쟁기지로 내어 주고 농민을 내쫓은 일도 부끄러운 역사가 되리라는 것을, 실정법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용기 있게 지켜내려 했던 실천이 옳았음을 재판 과정에서 밝힐 것입니다.

제가 길게 저희 남편의 어린시절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한 것은 저희 남편은 비겁하게 도주하지 않을 것이며, 재판을 성실하게 받고 진실을 밝히려 애쓸 사람이라는 것을 판사님께서 알아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구속이 필요하다고 상당히 의심된다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검사 님의 소견일 뿐입니다.

이렇게 충돌되는 사안은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쪽의 주장을 듣고 재판을 통해 진실을 가리면 됩니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불구속 수사와 재판으로도 얼마든지 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죄가 있다고 상당히 의심되지도 않거니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인권활동가를 구속하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합니다.

현 정부는 형사소송절차에서 피의자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집행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개적으로 활동해 온 저희 남편은 왜 구속되어야 하나요?

아빠의 구속을 아이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판사 님, 부디 불구속수사 원칙이라도 지켜진 속에서 남편이 진실의 법정에 설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판사 님, 아이들 아빠를 풀어 주십시오.

남편이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게, 그가 이 세상 그늘진 곳에서 햇볕을 드리우는 소중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박래군 아내 정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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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에게 우측통행은 죽음의 통행 [메디컬투데이 펌]

 




 

 
 
"지하철을 타면 살아서 돌아가는 게 감사하다…. 발 한 자국만 더 디뎠으면 레일 밖으로 떨어질 뻔 했다"

지하철역 내 우측통행이 시행됐지만 시각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이뤄지지 않아 시각장애인은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 돼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국토해양부는 '우측통행'를 대대적으로 시행했지만 '에스컬레이터'의 바뀐 방향에 대한 시각장애인 대책 마련에는 팔짱만 끼고 있다.

시각장애인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이상재 교수는 "얼마 전 동대문운동장역 안전유도블록을 따라 걷다 역 레일 밖으로 떨어질 뻔 했다"며 "우측통행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지하철 통행은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방향이 바뀐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아닌 에스컬레이터도 있어 이젠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불안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시각 장애인들은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잡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 방향이 바뀌면 지팡이를 왼손으로 옮겨 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또한 대안으로 이용하라는 엘리베이터는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버튼을 찾는데서부터 몇 층에 내려야 하는지 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실정이다.

위치도 역사마다 달라 엘리베이터는 에스컬레이터보다 못하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정부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점자 안내 블록도 인식을 하기엔 점이 작아 실효성이 크지 않다.

점자를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른데 경우의 수를 따져보지 않고 작은 점자를 만든 것이 문제다.

특히 에스컬레이터 운행은 아직 전부 우측통행으로 바뀌지 않아 뒤죽박죽이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1~4호선에 설치돼 있는 52대는 운행 방향을 바꾸기 힘든 구형이라 지금도 좌측통행을 유지하고 있다.

5~8호선 27대는 교체 계획이 잡혀 있지도 않다.

27대는 까치산역 4대, 여의나루역 2대, 왕십리역 4대, 불광역 4대, 노원역 2대, 고속터미널역 3대, 대림역 4대, 남구로역 4대 등으로 각각 혼잡한 역으로 정상인은 우측통행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은 습관적으로 우측통행을 해 사고 위험에 노출 돼 있다.

교체 예정이 없는 27대의 에스컬레이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표시도 없다.
실제로 본지 기자가 11일 3호선 고속터미널 역사에 가본 결과 에스컬레이터는 여전히 좌측통행 중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우측통행으로 착각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 밑으로 내려오는 사람과 접촉 사고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음성 안내나 기타 표시는 마련돼있지 않았으며 복잡한 역사 안에 안내원 또한 부재했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은종근 팀장은 "장애인을 위한 안내인은 역내 1명 이하며 점검을 해본다고 말한지 두 달 째인데 국토해양부와 지하철 운영측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 소장은 "지하철의 우측보행은 장애인의 보행권과 이동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시범 사업이다"고 꼬집으며 "장애인에게 통행 방향이 바뀌는 일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인만큼 공청회 등의 절차를 통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했지만 국토해양부는 그러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서울 메트로와 국토해양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메트로 김정환 차장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책은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다"며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 만큼 시민에게 그 부담을 전가할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국토해양부 교통안전과 신재영 사무관은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엘리베이터로 많이 간다"며 "최대한 안내원을 배치 하려 노력 중이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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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마라 병원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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