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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흉한 손에서 나오는 사랑은 노동이다 - 기사

흉한 손에서 나오는 사랑은 노동이다!
[인터뷰] ‘아이들과 행복을 나누는’ 보육노동자 이상미 씨
오도엽 기자 odol@jinbo.net
하얀 가디건 밖으로 파란 바탕의 브라우스 깃을 꺼내 입은 그를 세종문화회관 뒤편 공원에서 만났다. 생머리를 분홍방울이 달린 줄로 묶고 나온 그를 보고 오늘 만나기로 한 노동자가 보육교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분홍방울은 어린이집 아이한테 선물을 받지 않았을까?

이상미 씨의 손
하지만 분홍방울에 갔던 내 눈은 그의 손에 이르러 고정되고 말았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 손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상 미. 그는 보육교사이자 노동자다. 보육교사의 어깨에 고스란히 짊어지게 한 짐. 헌신, 희생, 봉사의 굴레에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는 사라졌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이름 지어진 보육교사.

이상미 씨의 입을 통하여 내 눈길이 왜 손에 멈춰야했는지를 찾아간다.

분홍방울로 묶은 생머리

“아이들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껏 내가 일하는 일터에 교사들이 쓸 화장실이 없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았으니까요. 아이들의 변기에 일을 보면서 한 번도 이상하게 느낀 적이 없었거든요.”

보육교사가 점심을 먹는 시간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자료에 보면 11.1분이라고 나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11.1분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 밥 챙겨주는 짬을 이용하여 밥을 먹는다.

“제대로 앉아 밥을 한 공기 다 비워본 적이 없어요. 밥을 다 챙겨주고 나서, 내 밥그릇에 밥을 퍼서 한 숟갈 떠요. 채 밥알이 목에 넘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이 달려듭니다. ‘국 주세요’하면 얼른 퍼주고 나서 또 한 숟갈 뜨면 다른 아이가 ‘선생님’하고 부르죠. 정말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모르지요.”

허리병이 없는 보육교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시설의 모든 것이 아이들의 키 높이에 맞혀져 있으니 교사들의 하루 생활은 늘 허리를 굽히며 생활해야 한다. 유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다보면 자연히 허리에 무리가 가고 병이 생긴다. 무릎관절과 허리병은 보육교사라면 훈장처럼 달고 살아야 한다.



허리병은 보육교사의 훈장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시설에서 보내려면, 이곳에서 일을 하는 보육교사가 먼저 행복해야 해요. 교사가 피곤해지면 자연히 아이들한테 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어요. 사명감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이들이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죠. 저도 끊임없이 반성을 하지만 교사도 사람이라 한계를 느끼거든요.”

보육노동자 이상미 씨

오후가 되면 아이들에 대한 집중도 떨어진다. 아이들이 뭘 해달라고 하면 오전에는 ‘아 그래 내가 해줄 게’ 한다. 오후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 ‘니가 해보렴’하다가 조금 더 지나면 목소리도 약간 딱딱해지며 ‘할 수 있잖아’로 바뀐다.

“어제 오후도 네 살 먹은 아이가 앞치마를 가지고 와서 ‘이것 좀 묶어주세요’하는 거예요. ‘니가 해봐’했죠. 그랬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못하면 그만 두고, 못하면 어쩔 수 없잖아’하는 거예요.”

이상미 씨는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저 아이의 말이 내가 쓰던 말이구나.’ 지치지 않고 하루 종일 애들과 뛰어놀아야 하는데, 순간 순간의 생각은 육체의 피로에 지배당하고 만다.

마음은 현실에 지배당하고

꾸밈없는 그의 용모처럼 말을 이어가는 이상미 씨의 목소리에는 진실 된 힘이 배어 있다.

한 주일에 44시간 일을 하는 보육노동자는 10%에 불과하다.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율은 66%에 이른다. 하루 평균 10.5시간, 잔업 2.5시간이 평균 노동시간이다. 보육노동자에게는 식사시간이나 휴게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쉬지 않고 10시간 이상을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초인적인 힘을 요구한다.

보육노동자가 1년 이내에 이직을 하려는 이유는 ‘수입이 적어서’ 다음으로 ‘장시간 근무’라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보육교사가 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보육교사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아이들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바치기에는 보육교사의 현실은 너무 열악해요.”

정성을 다하기에는 너무나 먼

이상미 씨가 보육교사가 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스무 살을 공장에 묻어야 했다. 힘든 날도 희망찬 날도 있었다. 하지만 공장은 문을 닫고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나야 했다.

“공장이 문을 닫자 많이 방황했죠. 어떻게 살 것인가도 고민했고. 그 때 지역 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는 탁아소가 있었어요. 누가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탁아소에서 아이들과 보내며 새로운 매력에 폭 빠지게 된다. 아이들과 있으면 힘들었던 과거도 지워지고, 고민과 갈등도 사라졌다.

“아이들의 거짓 없는 모습에 폭 빠졌어요. 순수함이 너무나 좋았어요.”

아이들에게 힘을 얻은 그는 보육교사 교육을 받으며, 평생의 직업이 된 보육노동자가 되었다. 지금도 힘들 때면 처음 보육교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떠올린다.

아이들의 눈에 빠지다

“보육노조에 가입하고, 보육노동자 처우 개선을 외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돈 많이 벌고 편안하게 일하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내게 삶의 희망을 준 우리의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죠."

부모와 떨어져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부모님이 주지 못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이상미 씨는 말한다.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부모와 있는 시간보다 많을 거예요. 내가 초능력자가 되지 못하는 한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어요."

보육노동자의 8시간 노동을 이야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바로 우리 아이에게 더 많은 행복을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의 바짝 마른 몸매처럼 그에게는 욕심이라고는 어느 한 곳에도 없는 것 같다. 더 많은 사랑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이상미 씨. 보육노동자의 처우가 곧 우리 아이의 행복과 비례한다는 말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상미 씨에게는 아홉 살, 다섯 살이 된 두 아이가 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생활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과 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큰 애가 그래요, 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어.”

보통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찾아간다. 보육교사는 보통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어린이집에 출근해야 하고, 퇴근을 해서 아이들을 찾아가야 퇴근을 한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이상미 씨의 막내도 어린이집에 다닌다. 하지만 엄마가 데리러 가지 못한다. 어린이집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에게 맡겨져야 한다. 엄마는 근무 중이다.

보육교사는 빵점 엄마

“막상 제 아이들은 세세한 것까지 받아주지 못해요. 집에 오면 내 몸이 파김치가 되니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기는커녕 짜증이 앞서요. 제 자식에게는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요.”

깡마른 이상미 씨가 참 강하게 느껴졌는데, 순간 내 판단을 흐리게 한다. 보육교사가 직업인데, 자기 자식에게는 사랑을 나눠줄 기력조차 빼앗기는 현실이 듣는 내 마음마저 아프게 한다.

보육교사에게 주어진 희생, 봉사, 헌신을 보육교사의 자녀들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하다니. 보육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일이고, 또한 보육노동자의 자식들에게도 부모를 찾아주는 일은 아닐까.

“아파도 쉬지 못하고, 병원 갈 짬도, 은행에 갈 시간도 없는 게 보육노동자에요. 현실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에요. 좀 더 보육노동자도 노동자답게 사람답게 부모답게 살고 싶은 것이고, 아이들의 행복을 키워주기 위해 교사가 행복을 깨닫고 싶은 거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행복을 전할 수 있는 거잖아요.”

보육노동자의 현실을 알고 싶어 만났지만, 이상미 씨는 말을 너무 아낀다. 어려운 현실을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 게 유쾌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 인터뷰는 실패한 것이다. 보육노동자의 현실을 구석구석 들춰내지 못했으니.

실패한 인터뷰

서둘러 내가 인터뷰를 끝내자고 했다. 보육노동자의 현실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보육노동자의 마음을 이상미 씨에게 훔쳤기 때문이다. 어떤 고발보다 진실 된 보육노동자의 희망을 보았기에 더 이상의 인터뷰는 거절했다. 솔직히 내 좁은 마음으로는 보육노동자 이상미 씨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기에는 너무 벅찼다.

당신의 손을 누가 잡아줘야 하는가

인터뷰 내내 내 눈길을 잡았던 그의 손을 보여 달라고 했다. 손을 감춘다. 손 가득 습진이다. 꺼칠한 그의 손을 만지는 순간 보육교사에 감춰진 노동을 보고 말았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노동자라면 손에 물마를 날이 없으니까요.”

이상미 씨의 손에서 그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바친 사랑을 본다. 이 까칠한 손을 이제 나라가 나서 꼭 쥐어줘야 할 때이다. 보육은 국가의 몫이고, 아이들의 행복은 겨레의 미래를 좌우하는 일이니.

너무 흉해 가슴 시리게 아프게 하는 보육노동자 이상미의 손이 못난 내 가슴을 까칠하게 깨우고 있다.

“당신의 손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문자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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