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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

대추리 공소에서는 수요일마다 기도 모임이 있다.

노인정에서 점심밥을 얻어 먹고, 공소에 가서 묵주 기도를 하다가 불현듯이 메이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빈집을 청소하러 가기로 한걸 까맣게 잊고 기도 모임에 왔던 것이다.

성모님께는 죄송했지만 허둥지둥 공소 밖으로 나왔다.

빈집에 이르러서 메이를 찾는데, 문은 잠겨 있고, 아무도 안보인다.

전화를 걸었더니 4반 쪽을 순찰 중이라고 한다. 곧 청소를 하러 올거라는데..

10여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염없이 황새울을 바라보다가...

영농단 옆집 위로 정지 비행을 하는 커다란 새 한마리를 발견했다.

'황조롱이다!'

황조롱이가 틀림없었다. 정공 비행을 하다가 깃발같은 갈색 날개를 접으면서 집 마당에 내려 앉았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지만...

황조롱이는 이내 훌쩍 날아오르더니 소나무가 자라는 언덕을 맴돌다가 미군기지 너머로 사라졌다.

그 큰 날개로 아주 유유하게...

 

촛불행사를 오가면서 자주 밤하늘을 본다.

여기서는 뭘 봐도, 심지어는 첫눈을 봐도 심드렁할 뿐인데 밤하늘 만큼은 정말 예쁘게 보인다.

철조망도 없고, 국가도 없고, 군대도 없고, 그리고...

별들은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서 움직이고, 공전 궤도를 늘이겠다며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으니까..

 

급하게 글을 쓰는 지금도 군용 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냄비에서는 옆집 민의 아저씨가 평화 바람과 지킴이들의 보신을 위해서 갖다 주신 닭이 오가피와 함께 삶아지고 있다.

가스불을 낮추고, 다시 순찰을 나가야 겠다.

닭백숙도 먹고 순찰도 돌고 빈집 청소도 같이 할 이주민의 출현을 고대하며, 오늘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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