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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겨레신문 독자투고란 "왜냐면"에 실었던 글]

 

   고등학교에서 독서를 가르치는 교사다. 지난달 19일치 〈조선일보〉가 “편향된 가치관을 세뇌교육”했다며 ‘문제 교사’로 몰아간 당사자다. 문제의 기사는 진실을 교묘하고도 철저하게 왜곡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빨갱이 이데올로기’에 갇힌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목의 특성상, 다양한 관점의 글들을 접하게 된다. 기존의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과는 다른 관점, 즉 이 사회의 기득권층의 관점과 논리뿐만 아니라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관점도 있음을 접한다. 학생들 역시 다양한 관점들을 접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교사는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청소년들에게 이른바 ‘편향된’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있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에 청소년들은 ‘교련’ 과목 등을 통해 군사주의, 국가주의, 폭력, 명령, 복종 등의 가치관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상업자본과 남성가부장 문화 속에서 ‘날씬함’이 여성다움의 잣대가 되어버려 자신의 정체성을 날씬함에서 찾으려는, 왜곡된 가치관이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두발규제, 체벌 등의 폭력 앞에서 힘의 논리가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조폭들의 의리와 폭력이 미화되는 상업영화 속에서 남성가부장 문화와 폭력이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조작된 마구잡이식 ‘월드컵 애국주의’에 청소년들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집단주의와 전체주의가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남성, 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가진 자 중심의 가부장 문화 속에서 여성, 어린이, 청소년, 빈민 등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사회 현실이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편향된’ 가치관을 교육하고 주입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이며, 조선일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편향교육이며 세뇌교육인가? 경쟁과 이윤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음에도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이야기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시혜를 베풀고 도와주는 척하면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증스러운 집단적 행태야말로 편향교육이자 세뇌교육이 아닐까?

 

   인간이 지금만큼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관점에 대한 부정과 폭력을 극복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함이 인정되고, 또 그것이 교실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을 때 이 사회는 더욱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교실은 차이에 따른 차별을 부정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진보의 공간이어야 한다.

 

이용석 /경기 부천시 상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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