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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 앉아 있기가 싫어서 밤산책을 나갔다.

이미 하루를 마친 햇발은 찜질방의 훈기를 도시에 남기고 갔나보다. 여전히 후텁지근한 것이 영 끈끈하다.

주택가에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마뜩찮아 다른 길로 접어 들었더니, 큰 길로 나오게 되었다. 늦은 밤, 하늘만 밤이지 거리 가로등이며 네온사인은 아직 밤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도시라는 이 공간은 하루 중 단 한 순간도, 단 한 군데도 진정한 '밤'과 '진정한 '침묵'을 제공하지 않는다...지겹다...지겨워...

 

조금 걸었을까....

큰 길 옆 전봇대 뒷 쪽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였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더 많은...

흔히 일컫는 몸빼바지에...

반팔 흰 티셔츠를 입고....

시장표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피곤하신듯 전봇대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앞에는 분홍색 보자기를 펼쳐 놓은 채, 상추며, 강낭콩이며, 양상추를 얹어 놓고 팔고 있다.

 

이 시간에, 여기서....

 

걸어 가면서 자꾸 뒤돌아 보았다...아니, 자꾸 뒤돌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팔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온 삶일까? 살아갈 삶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지금이라는 삶일까?

 

심심해서 나온 것일 거라고...말도 안될 것 같은 상상으로 무거운 마음을 변명하면서...*같은 세상이라고 혼자 화풀이해본다...

 

그래도 할머니는 행복해 할 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딱 한 마디만 하겠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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