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한국

-스톱크랙다운밴드를 통해 본 이주노동자 이야기


최지수(서울,취재2기)


스톱크랙다운 밴드를 아십니까?


 4 월 26일. 자그마한 호프 집 ‘슘’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비가 쏟아지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모인 이들은 서로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이들은 모두 MWTV에서 주최한 이주 노동자 후원의 밤에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피부색, 말투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가족을 만난 것처럼 얼싸안거나 환한 얼굴로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마다 고단한 일주일을 마감하는 토요일임에도 모인 사람들은 지친 기색 없이 즐겁기만 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주 노동자 밴드입니다.”

 유 창한 한국말의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랜 시간 술과 음식으로 회포를 풀던 사람들은 큰 소리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이윽고 음악 소리가 울렸다. 지금껏 자리를 지키던 이들은 모두 기립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진정 흥을 낼 수 있는 무대가 펼쳐졌다. 절박한 이들을 음악으로 보듬은 건 스톱크랙다운밴드의 몫이자 역할이었다. 노래가 시작 되었다. 그것은 네팔 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된 노래였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자국의 언어가 들리지 않아도 스톱크랙다운밴드면 모두가 즐거운듯 했다. 좁은 공간은 금세 열기로 가득 찼고, 이주노동자의 밤은 지금까지의 서러움을 알기라도 하는 듯 화려한 시간으로 물들었다. 오직 열정 뿐 인 밤이었다.

 <이주노동자의 밤>

 

  스 톱크랙다운밴드는 각각 네팔, 미얀마, 인도네시아, 한국 출신의 기타, 보컬, 드럼, 베이스, 키보드로 이루어진 다국적 이주노동자밴드다. 최초 이주노동자 밴드였던 유레카 밴드의 소모뚜와 강라이와 미누의 미누가 합쳐 만든 밴드로서 꾸준한 앨범발표와 공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언더 뿐 아니라 메이저에서도 음악성을 인정받아 행사와 콘서트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입니다.”

 무대에 있을 때만큼은 노동의 고통도 힘겨움도 잠시 잊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그들, 유명세만큼이나 다양한 사건들도 많았지만 그 전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이기에 음악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자꾸만 무대가 줄어들어요. 현실적 어려움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설 곳이 점점 없어지고 당연히 저희도 한가해지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공장 사장님들이 단체 활동 싫어한다고 많이  탈퇴 하더라구요.“

 스 톱크랙다운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소모뚜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무리 권리와 인권이 있어도 결국 남의 집 살이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누릴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음악가이기 전에 작은 소화기 공장의 노동자였고, 체류자였기에 진실을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꾸준히 활동 중인 스톱크랙다운밴드>

 

 4 월 27일, 종각역 앞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인정 관련으로 최저 임금법 통과 농성회가 열렸다. 누구보다 3D업종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은 각종 위험과 재난에 노출 된 상태에서도 최저 임금법에 훨씬 못 미치는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단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처사들이 타당하게 이루어졌다. 누구보다 세계화에 발맞추자는 우리로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좀 지나면 더 좋아 지겠죠.”

 소모뚜는 기타를 챙겨 쓸쓸히 연습실을 나섰다. 이제 가리봉에 자리 잡은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내일 8시까지 출근하려면 괜히 마음이 바빴다. 한국의 삶이 나아지리란 기대, 일말의 희망도 빡빡한 시간 안에서 꿈꾸기엔 벅찼다.

 이주 14년 째, 한국은 여전히 냉담했지만 소모뚜는 정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갈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최저 임금법 농성회, 종각역에 모인 이주 노동자들>

소모뚜의 일상

 아 침 7시, 소모뚜의 하루는 바쁘게 시작 된다. 집 근처에 있는 공장까지 8시 안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작업 때문에 늦게 끝나는 날이었다. 월 11만원,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던 소모뚜는 한쪽 구석으로 이불을 걷어 놓고 두 세 벌 안되는 옷을 뒤적였다. 어떤 식이든 절약해야 생활 유지가 가능하다던 그의 월급은 딱 최저 임금 수준.

 “이번 공장에서 일한지는 4년째예요. 여기 사장님이 좋아서 무리한 잔업은 잘 안 시키죠. 지난번 8년 일한 공장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매일 피곤했어요.”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말에 조금의 차별을 감수 하면 된다고 덧붙였지만, 그의 표정은 짐짓 밝았다. 잦은 상처에 마음조차 굳은살이 되어 단단해져 버린 것일까? 소모뚜는 그래도 일 할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힘찬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을 알렸다.  

<출근 중인 소모뚜, 공장 들어 가기 전>

  가산 디지털 단지 내 자리한 스탠다드 엔지니어링, 소모뚜는 이 곳에서 소화기 압력계 제조하는 일을 한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 없어 수월하게 일 하게 된 공장, 꽤 오랫동안 식구로 있어서인지 처음에 편견을 가지던 공장 사람들도 이제는 동생처럼 대해 준단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소 모뚜의 비자는 망명, 체류는 합법이지만 노동은 불법이었다. 그의 나라가 안정 될 때까지 한국에서 신분을 보호 해주겠다는 망명 각서는 그에게 있어서 선악과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뜻인데, 그것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해 모순적 문제점을 제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일 하지 않으면 밥 먹고 살 수 없는데 한국 법은 좀 이상하죠?”

 애 매하게 웃던 그의 얼굴은 곧 굳어버렸다. 웃으면서 말하기에 자신의 처지는 한국의 법만큼이나 모순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체류 허가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소모뚜의 고향, 즉 미얀마가 안정 될 때까지 무기한의 체류를 허가 한다는, 그렇지만 체류 기간 내 노동은 허가 외  항목이었기에 그의 처지 또한 안전한 건 아니었다. 소모뚜의 억지웃음은 그만큼 힘겨운 사항을 대변하는 듯 우울했다. 그래서 그런지 불법 체류자 단속이 올 때면 간이 콩알만 해 지는 건 둘째 치더라도 공장 사장님부터 걱정이라는 것이다.

 “제가 목 잡혀서 끌려가는 건 상관없는데 사장님한테 많이 미안하죠. 괜히 일 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떼 쓴 건 저니까요.”

 그는 결국 씁쓸한 얼굴로 공장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저녁처럼 홀연한 발걸음 뒤로는 어두운 삶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일 을 하다 보면 어느 새 하루가 다 간다. 완연히 땅거미가 지고서야 소모뚜는 집으로 돌아온다. 대문도 없는 현관문에 달랑 하나 걸려 있는 자물쇠를 풀고 나면 좁고 어두운 그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3평 남짓한 월 11만원 짜리 방, 부엌도 욕실도 없지만 그래도 집이 최고라는 소모뚜는 대충 세수를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기 바빴다. 그동안 미뤄 온 작곡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음악을 대 할 때면 번쩍 정신이 든다던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는지 소모뚜는 다른 때보다 열심히 몰두 했다.

 <소모뚜의 집>

 

 

하 루 중 자는 시간이 제일 좋다던 소모뚜의 이불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바닥에 깔렸다. 비닐로 막아 둔 창문 너머 희끄무레하게 달이 걸리고 나서야 그는 노곤한 몸을 이불 속에 누였다. 정신 없이란 표현이 딱 어울렸다. 소모뚜는 피곤에 절인 파김치처럼 잠든다. 불규칙하게 내 쉬는 숨은 집, 공장, 일, 공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구성 된 그의 일상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아가기   

 

 “채불 임금과 산업 재해에 관해 실질적으로 일 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보상 받기가 힘듭니다. 바꾸자는 목소리는 커져 가는데 정작 바뀌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소 모뚜는 현 이주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에 대해 이 두 가지를 꼽았다. 실로 이주노동자 단체 모임에 가면 사고를 당한 이들이 꽤 많고, 그들은 무지하고 순박해 보상은  커녕 당연히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줄 안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국은 선진국인데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오겠다고 택한 이유도 같은 아시아권이라서가 아니라 잘 사는 나라라는 느낌이 강해서 인데, 이 나라 사람이 아니면 소용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더 불어 그는 불법 체류자 단속 중 끌려가지 않게 위해 옥상에서 뛰어 내린다거나 차도로 뛰어들어 사고가 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그런 사상자들을 보면 자신도 고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고민하기도 한다고. 동료의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 하고도 남아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잘 살고 싶다는 굳은 심지만 아니라면 벌써 몇 번이고 숨 가빴을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채 불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월급은 몇 달이고 밀리기 일쑤, 그러나 일부 업주들은 미안한 기색하나 없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두, 세달 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해고당하는 경우도 허다한 건 한국인들이 모르는 그들의 일상적 현실이었다. 소모뚜는 막 한국에 들어 왔을 10여년 전,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듯 굳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 정 들었어요.”


  비 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그를 다시 만났다. 다른 때보다 들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내일 있을 공연 때문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으며, 연습 때문에 휴가 허락 까지 받았다는 것. 오랜만의 주말 휴가라 그런지 소모뚜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날씨만 아니라면 팔짝팔짝 뛰어다녔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는 그에게 행복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나라 같은데, 한국은 내가 자기 나라 사람 같지 않나 봐요. 나는 정말 한국이 좋은데…”

 말 끝을 흐리는 그에게 아니라는 대답을 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구름처럼 흐릿한 미소도 잠시, 그는 빠르게 지하철에 올랐다. 목적지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 여성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행진 행사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로 더욱 흥분된다는 그는 도착하자마자 멤버들과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거의 2~3주 만에 얼굴을 본다던 멤버들은 반가운 기색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역력했다. 열광적인 무대를 만들어 보겠다는 스톱크랙다운밴드, 그리고 소모뚜. 보기만 해도 끈끈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 됐습니까!”

 보 컬 담당 미누가 목소리를 높이자 주변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운동에 앞서 공연을 즐기려던 참가자들은 앞 다투어 대답하며 스톱크랙다운밴드의 무대를 환호했다. 타이틀 월급날과 박노해 시인의 시를 가사로 쓴 손무덤, 2곡을 부른 그들의 무대는 대낮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다.

<공연 중인 스톱크랙다운밴드>

 

 

 소 모뚜는 무대 소감을 묻는 말에 막무가내로 좋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활짝 웃는 모습에서 이주노동자로서 힘겨운 삶을 영위해가는 단면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오직 관객을 위해서 노래하고 기타를 친다던 그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위해 노래하는 음악인일 뿐이었다.

 5 시, 공연을 마친 그는 멤버들과 아쉬운 인사를 하고 쓸쓸히 전철에 올랐다. 가산디지털단지 까지 저녁 전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즐거운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그의 어깨는 유난히 무겁고 쓸쓸해 보였다. 내일이면 다시 이주노동자의 하루를 시작해야 하기에 더욱 그런 지도 몰랐다.

 “ 하루 빨리 저희도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정부도 점차 변하고 있어요. 변하는 김에 더욱 빨리 변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아시아 화합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사업이나 국립전당사업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정부가 아시아에 두는 관심의 첫 걸음 같은 거요. 훌륭하게 완성 돼서 저희 스톱크랙다운밴드도 무대에 설 수 있길 바랍니다.”

 소 망을 묻는 말에 소모뚜는 그다운 소박함이 묻어나는 대답을 했다. 그의 바람대로 한국 정부도 이주노동자 인권에 점차 귀 기울이고, 교류 사업 확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스톱크랙다운밴드의 무대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소모뚜의 얼굴에 진정한 웃음이 번지는 날이 머지 않았으면하고 희망하면서 말이다. <취재 기간 4월 22일부터 5월 1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9 01:26 2009/05/29 01:26
Tag //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lovehuman/trackback/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