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추운 겨울.
서울시 성공회 성당 앞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와 전면 합법화 요구 농성장.
버마, 네팔,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민지원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래된 친구들을 내쫓지 말라고
소리 높였다.

나도 공장에서 나와 농성장에 참여했다.
우리의 주장은 우리는 한국경제의 필요한 밑바탕 역할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해 왔고
97년도 외환위기 때도 한국을 떠나가지 않았고 한국 경제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왔고
2002년도 월드컵 때도 한국 축구팀을 무조건 힘찬 응원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함께 했었던 진정한 친구 역할을 했었는데
이렇게 정을 끊고 눈을 감아 무조건 내쫓는 것보다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현대판 노예제도인 산업연수제도를 폐쇄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요구한 것이었다.

농성이 시작하자 우리들이 외친 구호들은
“스톱크랙다운(강제 추방 증단)
노동권리 보장.
우리는 노동자
노동자는 하나다.”
이었다.

우리는 농성장 내에서도 밖에서도 그 구호들을 수십 번 외쳤다.
나는 그러다가 지루하겠다고 생각이 들어 구호들을 노래로 만들어 줬다.
노래의 제목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였다.
노래가 신나고 쉽기 때문에 농성 동안 우리는 여러 번 즐겁게 부르면서 우리의 요구를 외쳤다.
요즘도 서울지역을 포함해 지방 이주민 인권 쟁취 요구 집회 때도 이 노래를 꾸준히 틀러 부르고 있다.
얼마 전 아시아 지역 NGO활동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도 이 노래를 좋아해서 열심히 외워 공연도 해 주셨다.
노래가 신나다는 것 보다 노랫말이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노동자의 권리요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농성을 함께 하는 음악인 이주민들과 함께 “스톱크랙다운”밴드를 결성해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들을 계속 만들어서 농성장 내 이주민들에게 희망을 향한 힘을 함께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들을 농성장 주말 문화제 때 시민 단체들의 행사 때 공연을 했었다.

농성 중 어느 날.
농성단 대표가 우리밴드에게 하루 안에 녹음을 다해서 음반을 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음반을 하루 안에 녹음을 다하자는 것이 음악 하는 나에게는 반가운 일은 아니다.
마음에 들 때 까지 녹음을 꼼꼼히 해서 질 좋은 음반을 내고 싶은 게 음악인들의 욕심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음악적 욕심이 우선이 아니라
우리의 음반을 통해 우리들의 세련 된 문화적 이주운동에서 얻은 효율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안에 녹음을 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료로 녹음해줄 스튜디오는 아주 바빠 꽉 찬 일정 속에서 하루를 비워 주겠다고 하는데
그 날이 지금부터 8일째 날 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7일 동안 음반에 들어 갈 노래들을 작곡, 작사와 연습까지 다 완성해서
8일째 날에 녹음을 하루 안에 다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현실주의자인 우리는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를 확인해 봤다.

모든 멤버들이 가능하다. 해보자고 자신 있게 답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 이주민지원센터 지하 쉼터에 있는 작은 방에 드럼과 각종 음향들을 이동해 7일 동안 아침부터 새벽까지 작곡, 작사와 연습을 미친 듯이 했었다. 나는 대부분 노래들을 작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과 불안, 책임을 아주 무겁게 들어 노력했었다. 몰론 한국어를 아주 잘 하는 미누형(보컬)이 작사를 해주고 맴버들의 적극적 의견들이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8일째 날.
우리는 녹음실로 가는 길에서도 계속 노래가사를 수정했다.
우리는 그날 오전10시부터 새벽1시 까지 점심과 저녁 밥 먹는 시간 외에 쉬지 않고 녹음을 했었다.
녹음이 끝난 새벽1시.
원래 기타 주자인 내가 드럼을 하루 종일 치게 되어 허리가 심하게 아팠지만
특별한 사고가 없이 녹음이 잘 끝내게 되어 아주 기뻤다.
하루 종인 쉬지도 않고 녹음을 해서 힘이 들어도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밴드 멤버들이 그리 당당할 수 있었다는 이유는 우리들의 희망이 담긴 노래들에서 얻은 힘 이였다.
녹음이 끝나자마자 스튜디오 내 모든 엔지니어분들이 모여서 믹싱을 급히 했었다.
새벽 3시에 드디어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긴 첫 음반이 탄생했다.
그 음반의 이름은 “친구여 잘 가시오”이였다.
강제추방 공포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게 된 이주민들에게 잘 가시라는 뜻이었고
세월이 흘러가도 그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헌신한 것을 잊지 말라는 이유로 음반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여기서 더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바로 녹음실 주인의 이야기다.
그날이 아내 생일 이였는데 우리의 음반을 위해 아내와 함께 보낼 시간을 포기하셨다.
하지만 그는 아내에게 남들과 다른 아주 소중한 선물을 주셨다.
그것이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희망하는 음반을 함께 만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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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18:04 2010/10/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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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에겐 ‘어깨동무’ 절실해요

[미디어 현장]소모뚜 MWTV 대표

2010년 09월 29일 (수)

 

안녕하세요.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대표 소모뚜입니다. 저는 버마사람입니다. 저는 1995년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들어왔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주노동자 농성을 통해 2005년 만들어진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MWTV는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만들어 가는 방송입니다. MWTV 이주노동자의 방송은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 이주민(이주노동자, 결혼 이주민가족, 이주아동, 난민)들의 삶과 목소리를 영상과 텍스트 기사로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사람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합니다. 차이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한국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농성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정말 절실히 필요하고,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카메라 한 대 없이, 더구나 촬영방법도 모른 채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였습니다. 다행히 시민방송 RTV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장비와 기술, 장소, 모든 것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주민들의 모든 모습을 담아내려 전국 방방곡곡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 어떤 내용 불문하고 달려 나갔습니다. 시민방송 RTV를 통해서 무려 11개 나라말로 ‘이주민 뉴스’를 만들어 방송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이주노동자 자신이 카메라에 담고, 방송하고, 들었습니다. 이 땅의 방송국과 신문사의 펜과 카메라에서 사라지던 우리들의 비명, 외침, 웃음을 이제 우리 스스로 만든 방송을 통해 알린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시련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하나 둘 강제단속, 표적단속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도 안 되면 회사에서 해고당했습니다. 출구 없는 방에 갇힌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미디어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알리려는 이주민 미디어 활동가들을 키우는 것이지요. 떠난 사람들의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사람들을요. 이주민 미디어 교육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슴속 꽉 찬 할 말들이 그들을 그리도 열심히 하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지원했던 미디액트가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결국 미디어 교육은 4기로 끝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의 동반자 시민방송 RTV도 정부지원이 끊겨 재정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들의 미디어 활동도 위기 상황에 빠졌습니다.

아시듯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르는 법이죠. 아직도 우리는 할 말이 많아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정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우리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기꺼이 지지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자신들의 생활비를 쪼개어 후원금을 내주셨기에 우리는 다시 살아났고 우리들의 목소리는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힘을 얻어 우리는 한 발 더 내딛기로 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인원과 재정이지만 영화제라는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주민, 이주노동자가 만드는 영화를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이 여는 영화제를 통해 외쳐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 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우리들의 소리. 이주노동자 영화제를 치러낸 그 감격스러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영화제를 벌써 5회째 열고 있습니다. 영화제에 참여한 이주민 한분이 “이런 활동들이 있어서 더 이상 우리들의 삶이 외롭지 않고, 우리들의 목소리도 헛되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느낌”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들이 요구하는 인간다운 삶, 평등한 삶을 한국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꿈이 현실이 되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간절히 빕니다.
 

지금까지의 발걸음은 한국사회, 한국 사람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이후로의 발걸음에도 바로 한국 사람들의 어깨동무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밍굴라바(축복받으세요라는 미얀마 인사말)’ 축복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밍굴라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기사링크......>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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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17:48 2010/10/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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