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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2/25
    지독히도 외로운 크리스마스-
    물고기-1
  2. 2005/12/25
    한겨레) 학벌주의에 포박당한 사회/ 박노자
    물고기-1
  3. 2005/12/19
    어느 물고기 이야기(1)
    물고기-1
  4. 2005/12/19
    내가 오늘 했던 생각들(from 작은나무)(1)
    물고기-1
  5. 2005/12/19
    블로깅 시작하다
    물고기-1

지독히도 외로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 홀로 있다.

그저 평범한 일요일 밤인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오는지.

라디오가 유일한 위안이지만, 이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않는다. 하하

 

혼자 있으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게 되는데 하는 거라고는 고작 메일 확인하기, 카페에서 글 확인하기 같은 것들. '정보의 바다'속에서 홀로 표류하다가 누군가 와서 손내밀어주기를 바라다가 결국엔 혼자만의 주절거림으로 끝나고 만다.

 

이 크리스마스가 지독히도 외로운건,

내가 19인치 작은 화면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냥 착각하면서. 

진공상자에 갇혀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외쳐대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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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학벌주의에 포박당한 사회/ 박노자

 

학벌주의에 포박당한 사회/ 박노자


오래 전 필자가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통역과 관광안내를 아르바이트로 할 때다. 한 번은 한국에서 온 한 대학 총장에게 통역을 해준 적이 있었다. 필자와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 유학생이 우연찮게 바로 그 총장의 동향인이자 집안끼리도 조금 아는 사이였다. 고향에서 “인사해라”라는 연락을 받은 그는 당장 총장이 묵고 있는 호텔로 달려갔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한국 사회의 통념상 당연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호텔로 찾아간 그에게 ‘높으신 분’이 반갑게 내뱉은 첫 인사는 “에스(S)대 나왔다고 했지”였다. 그 순간 그는 당혹함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아닙니다. 케이(K)대를 나왔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범죄인이 자백을 하듯 기어들어갔다. 갑자기 ‘이거 아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총장은 그에게 보인 호감을 끊고 동행인과 대화에 열중했다. ‘떳떳한 인간’이 아닌 것이 밝혀진 그는 감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부정한 ‘높으신 분’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계급전쟁’에서 패배한 자신의 ‘무능력’을 원통히 여겼을 뿐이다. 그는 총장의 냉대에 대해 격분하기보다는 한없는 열등의식과 자책감에 잠겼다.

 

이처럼 한 인간을 쉽게 무시해버린 그 ‘높으신 분’은 우리가 통상 이야기하는 ‘꼴보수’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그 총장은 오히려 비교적 합리적인 고급 관료로 평판이 나있다. 그가 보여준 지독한 학벌주의 의식은 사회 일파만의 문제도 아니고 가해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피해자들도 대학간의 서열이라는 것이 그 출신들의 능력과 정비례한다는 학벌주의의 중심적 도그마를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 학벌주의라는 허위의식이 전 사회를 한 포승줄로 묶고 있는 것이다. 계급적 차원에서 보면 학벌주의 이상으로 계급지배 관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에 없을 것이다.

 

학벌주의 중심의 도그마가 전혀 사실이 아님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는가 수능 점수가 높은 학생이 반드시 가장 재능이 많거나 창조적인 사람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문대를 그 어마어마한 위치에 올린 것은, 그 출신들의 인맥이 일찌감치 얻은 사회적 지분과, 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영구화를 위해 꾸며 놓은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사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학벌차별 구조는 마치 구미(歐美) 사회의 인종주의적, 비(非)서구 차별주의적 구조와 닮은꼴이다. 일단 한 번 비(非)백인이나 이슬람 가정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사람이 그 외모나 문화적 배경을 쉽게 바꿀 수 없듯이, ‘노예문서’로 불리는 ‘비(非)명문대’의 학적을 가진 한국인에게 ‘면천’(免賤: 천한 신분의 탈피)의 길이란 거의 없다. 구미 지역의 우익이 인종·문화차별의 근거로 ‘열등한 그들’의 낮은 학력이나 사회적응력의 부족 등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차별의 이유라기보다 결과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비명문대의 교육의 질 등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명문대에 대한 편향 지원을 일삼으면서 사립재단들의 사기와 전횡을 방관해 온 국가의 책임일 뿐, 졸업생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적어도 구미 지역에서는 호소할 수 있는 인종차별 방지 법률과 각종 지원단체 등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유학생처럼 차별을 당하는 한국인은 어디에 호소할 수 있는가

 

두 달 뒤 대통령을 뽑아야 할 우리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학벌주의 청산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 어떨까 후보들의 공약을 유심히 살펴보자. 대학간의 평준화, 학벌차별 금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한 후보를 뽑아야 학벌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겨레 칼럼 2002. 11.14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한국학

 

 

 

 이 글에서의 '두 달 뒤 대통령을 뽑아야 할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의 임기가 곧 끝나간다. 고2 끝자락의 일이었는데. 나는 언제쯤 투표를 할 수 있을까하고 아쉬워했던 때가.

아, 세상이 어지럽다. 나도 빙빙 돌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에서 빙빙-

 

(도그마 : 본래 그리스도의 교도를 이르는 말이 었으나, '독단'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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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고기 이야기

 

동해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녀석은 인어공주 책을 너무 읽었던 탓인지, 늘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뭍으로 가면 얼마나 멋진 세상이 펼쳐질까?"

어느날, 물고기 장수가 동해바다에 찾아왔습니다.
"자~ 뭍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뭍구경 해보고 싶지 않아요, 물고기양?"
잠시 망설이던 물고기는 흔쾌히 대답했죠.
"네! 좋아요~ 저를 어서 데려가 주세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물고기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붕붕~ 물고기 장수의 차를 타고 뭍으로 가던 물고기.
아차, 두고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저씨, 어쩌죠. 비늘을 두고 왔어요.. 엉엉"
"괜찮아요,물고기양. 뭍으로 직접 가지는 않는다우, 수족관속에서 구경만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전 꼭 비늘이 필요해요. 엉엉. 그건 우리 엄마가 직접 짜준거란 말이에요.엉엉"

아저씨는 몇날 며칠을 설득했지만, 물고기는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처음 데려올 때 물고기양의 반짝이는 눈빛이 맘에 들었던 아저씨는, 더이상 우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물고기양을 내려주기로 합니다.
"자, 여기는 동해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춘천이라는 곳이다. 여기 내려줄테니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거라"
뭍으로의 여정을 포기하는게 가슴 아팠지만, 물고기에게는 비늘이 더 없이 소중했습니다.
"네,아저씨.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해서 동해바다 근처 춘천에 내려진 물고기는,
아이쿠머니나! 그만 낚시줄에 걸려 또 다른 물고기 장수를 만나게 됩니다!
"아저씨, 전 비늘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어요. 제발 놓아주세요.흑흑"
"안된다! 넌 안양으로 가게 될거야~ 어차피 뭍에 내리진 않을테니 비늘은 필요없어!"
"엉엉. 전 비늘이 꼭 필요하단말이에요. 엄마가 짜주신 거란 말이에요."
물고기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장수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펑펑 울었던 나머지 잠이 들었던 물고기.
깨어나보니 수족관 속의 자신을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네요!
"자, 동해바다 근처 춘천(?) 에서 방금 잡아올린 물고기가 왔어요~ 싱싱한 물고기"
물고기는 속으로 빌었습니다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구해주세요"
잠시후, 어디선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저기, 방금 잠에서 깨어난 물고기 있죠~ 그거 주세요"
"자, 여기있습니다. 요녀석이 어찌나 고집이 센지. 참! 비늘이 없어서 손질은 편할거에요~"
팔려가는게 분명했지만, 물고기는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도착한 곳에는 지우,지상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펄떡이는 물고기를 무서워 하는 편인데,
두 아이는 저를 톡, 건드려 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물고기야, 넌 어디서 왔니?"
"우리 엄마가 어떤 물고기를 아는데, 너랑 그 물고기랑 닮아보여서 너를 사오셨대"
물고기는 의아해합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구? 난 한번도 뭍으로 나온 적이 없는대.. 누구일까?"

잠시후, 지우지상의 엄마가 물고기의 곁으로 다가옵니다.
"물곡양,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저를 아시나요?"
"아니, 왜 나를 몰라보죠? 흑흑. 내가 낭랑한 목소리로 수업할 때마다 꾸벅꾸벅 졸더니
결국 이런거였군요. 흑흑"
"어,어. 제가 수업..을 받아요? 전 물 속에서만 평생 살아온 걸요.."
"자신의 과거조차도 잊게 되다니.. 흑흑"
"지우지상아, 어서 이 물고기 언니가 정신을 차리도록...
너희들의 만담으로 언니를 깨워주렴!"
"네, 엄마! 언니는 바보! 어떻게 우리 엄마를 몰라보세요, 흥흥"

"언니는 바보"
"언니는 멍게, 해삼, 말미잘"
"있잖아요, 언니~ 내가 유치원엘 다니는데 글쎄 날 너무 따라다니는 아이때문에 귀찮아 죽겠어요. 그렇게 말이엥묘하$#%&*&(%&@!%!#^%&&^&*$#^#$^@............"
지우,지상 자매의 만담 공격 물고기는 급기야 정신을 잃고 맙니다.
"엄마,엄마.. 나 어떻게 하죠. 엄마....."


잠에서 깨어난 물고기.
정신도 들겸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갑니다.
성큼성큼. 걷고 있네요.
거울을 봅니다.
어마낫! 사람이 되었어요!
.
.
.
.
.
.
.
푸른 잎새님의 따듯한 손길과, 지우지상 자매의 입심이 물고기양을 사람으로 살아나게 한 것입니다!(웃음)
얼른 뵙고 싶은 마음에, 짤막한 이야기 하나 써 보았어요^^;;
꼭, 보고싶습니다!

 

 

(2005. 1. 21)

 

 이런 글도 썼었더랬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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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했던 생각들(from 작은나무)

 

# 지식, 교육, 전문가, 권력, 자본 : 결국 '나'를 조종하려 드는 것들에 대한 성찰 없이는 자유를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 

 

# 뭔가 의미 있는 소통을 하려거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그런 감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는 사실. 부끄러움을 두려워하며 늘 부끄러운 짓을 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 

 

# 이 세상 누구에게도 배울 건 있지만, 이 세상 누구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 뼈저리게 느낌. 

 

# 비염 수술은 언제할 것인가? 손목인대는 언제 치료할 것인가? 공부방 형광등이 고장난 지 두어 달이 지났는데? 식탁 전등 갓이 깨진 지는 서너 달은 족히 된 것 같은데... 밤 늦게 라면은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지는 오 년쯤 지난 것 같다. 근데 오늘도 먹었다.  

 

# 괴롭고 힘든 술자리에서 "오늘은 나 먼저 일어 날게"하며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갖자,고 다짐한 것은 십년 쯤 된 것 같다.  

 

# 오늘은 차가운 비가 내렸고, 배가 고팠고, 푸른잎새가 아팠고, 모처럼만에 오랜 시간 책을 들여다 보았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아이들과 재롱재롱 놀았으며, 내 홈페이지를 이렇게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한 날이다.

 

(출처 : http://www.littletree.pe.kr)

 

 

 

덧) 글을 쓰고 싶은데, 좀처럼 되지가 않는다. 필력이 바닥나버린 모양이다. 달콤한 미사여구 말고, 녹차티백 우러나오듯 솔직 담백한 그런말 하고 싶은데 잘 되지가 않는다.

 

 

(2005 .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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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 시작하다

 

'인생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입니다'

작가 이외수가 우리 학교에 있을 때, 총장선생님께서 남긴 말씀이라고 한다.

저 말이 담긴 책을 처음 읽었던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저 말에 담긴 의미를 잘 몰랐다.

지나고 나면 금방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와 미래, 그 순간들은 바람처럼 물처럼 내 곁을 스치고 가면 그만인줄 알았다.

 

이제 어느덧 스물 하고도 하나.

대학교 들어와 지난 2년 동안, 나는 저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있던 그 순간들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는 결코 부정할 수도 지울수도 없는 삶의 조각들이 되어 '나'라고 하는 퍼즐을 완성해 간다는 것을.

 

내 삶의 조각들을 보다 꼼꼼하게, 마음을 다해 만들기 위한 과정.

블로깅,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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