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외국 학자가 본 '남한 정치 투쟁 상황'

아메리카 좌파 경제학자인 마틴 하트-랜즈버그가 지난 8월15일 먼슬리리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엠아르진(MR Zine)에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교적 길지 않은 글을 썼는데, 이 글의 후속편으로 '남한: 정치 투쟁 상황'이라는 글을 얼마전에 다시 엠아르진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이 글은 우리로서는 지극히 평이한 수준의 글입니다. 하지만 외국 학자의 우리 상황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 판단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볼만 할 겁니다. 또 혹시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측면이 담겨 있을 지도 모릅니다. 길지 않기에 번역해봤습니다.

 

동북아시아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하트-랜즈버그는 우리에게 비교적 알려진 인물입니다. 3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100년의 역사를 아메리카의 개입과 관련지어서 정리한 책인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당대, 2000) 폴 버캣과 함께 쓴 논문을 모아놓은 <일본경제 들여다보기> (미토, 2005), 역시 버캣과 함께 쓴 것으로 중국의 경제체제가 사실상 자본주의라고 비판한 책인 <중국과 사회주의> (한울, 2005)가 국내에 출판된 책들입니다. 하트-랜즈버그는 얼마전에는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남한: 정치 투쟁 상황
(South Korea: The State of Political Struggle)
마틴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

먼슬리리뷰진 2005년 9월5일 (원문 mrzine.monthlyreview.org/hartlandsberg150905.html)

 

외환 위기 이후 남한 경제의 경로는 일하는 이들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남한 노동운동과 좌파운동은 진행중인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편을 격퇴하기 위한 아주 힘든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운동이 직면한 도전 몇가지를 논할 것이다. 이는 전세계 노동자와 활동가들도 점점 더 이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의 투쟁에 대해 알고, 그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집단적 지혜를 연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점은 특히 남한의 경우가 더 그런데, 지당한 것이지만 남한 운동은 용기와 전투성으로 아주 유명하기 때문이다.

 

투쟁의 지형(Terrain of Struggle)

남한의 외환 위기 이후(1997-98년) 경제 구조 개편은 외국인 투자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아주 높였다. 남한 재벌들이 경제 위기로 약화된 정도인 데 반해, 중소기업은 최대 시련을 겪었다. 예를 들어 많은 재벌들은 외국 기업들과 연합을 형성했고 이는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줬다. 남한 국내외 경제 지도자들이 최우선 순위로 삼은 것 한가지가 노동 운동 약화이다. 그들은 “노동시장 개혁”이 없다면 투자와 생산을 중국으로 옮겨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 노동계 인사로 여겨졌음에도, 이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면, 정부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걸 더 자유롭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경제 위기 이전의 42%에서 현재 54%로 급격하게 늘었다. 그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53%에 불과하다. 아주 실제적인 자본 이탈 위협과 함께 이런 조처들은 거대 제조업체들이 노동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높일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이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성장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이는 정부로 하여금 기업에 더 양보하도록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미 저임금과 불평등 및 빈곤 확대, 불안 심화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어두운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KCTU)

한국의 주도적인 노조 총연맹인 민주노총은 (더 보수적인 노총이 하나 더 있다)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확대를 위한 새로운 법률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날로 늘어나는 이주 노동자의 노조설립 권리와 그들에 대한 보호를 지지하며, 공공부문 노조의 완전한 권한 쟁취를 위해서 싸웠다. 최근에는 노동부 관련 모든 자문 위원회에서 탈퇴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노력은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뒀다. 그리고 최근 노조 가입률이 11%까지 떨어지면서 정치적 비중도 줄고 있다. 노조 활동가들이 다음 단계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그들이 직면한 주요 쟁점이 두가지 있다. 민주노총 내부 조직 문제와 정치적 지향 문제다.

 

구조적 쟁점들:

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들의 더 넓은 관심사로부터 날로 고립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주된 이유는 남한 노조가 기업별 노조라는 점이다. 그리고 노조조직률은 기업의 규모와 연관되어 있다. 노동자 1000명 이상의 거대 사업장들은 노조가 있는 전체 기업의 2.7%를 차지하는 반면, 이들 기업 노동자들이 전체 노조 조합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1.2%에 달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조합원 대다수는 거대 제조업체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에 비해 더 많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향유한다.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지위에 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점점 더 적대적이 되어가는 노동 환경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하청을 통해 인력 감축을 달성하고 있다. 임금과 각종 혜택의 감축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이런 행위에 저항하려 시도할 뿐 아니라 노동현장 내 권한 강화도 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투자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이 노조는 성과급 분배에 발언권을 요구하면서 압박 수단으로 경고 파업을 선언했다. 기아차 노조는 이사회 참여와 인사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투쟁들이긴 해도, 이들 노조가 개입하고 있는 쟁점들은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생존에 관련된 쟁점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들이다.

 

기업별 노조체제는 중소기업 노조 조직률을 높이려는 민주노총의 노력도 저해한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활발한 조직화 활동 또는 노조 활동을 유지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없다. 민주노총 자체도 이들을 도울 여력이 없다. 노총은 자원이 제한되어 있고 대기업 노조들은 자신들 소속 조합원의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활동을 위해 노조기금을 공유하기를 꺼린다.

 

이런 상황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 많은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을 강화해 노총 차원의 노동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조직화 활동을 후원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 이 단계에 적합한 체제로서 산별 노조 구성을 요구한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구조가 가장 민주적이고 노동자들의 필요와 이익에 가장 잘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어떻게 하면 노동계급 대표성과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한 노조 형식과 목표에 대한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정치적 쟁점들:

다른 쟁점 하나는 반자본주의 운동 형성에 대한 민주노총의 자세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비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남한 경제의 급진적 구조 개편 운동을 전개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많은 면에서 이 점은 1990년대 초 노동 활동가들이 좌파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노조의 권한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기로 한 결정의 결과다. 이 결정은, 좌파에 대한 정부의 무자비한 공격과 소련의 붕괴, 북한과 미국의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 고조라는 상황에 대응해서 내려졌다. 1995년 마침내 민주노총이 출범했다.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3년 뒤인 1998년이지만 말이다. 경제가 확대되는 동안엔,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생활조건과 노동조건 개선 압력을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꽤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에서 노조가 경제 회생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조합원 문제에만 집중한 정책이 역효과를 낳았다.

 

많은 노동 활동가와 정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려 했으면 폭넓은 좌파 정치세력과 관계를 복원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이 좌파 정당의 창출을 지원하길 원한 것이다. 다른 이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 시도는 시기상조이고 자원과 활동을 노동운동에서 다른쪽으로 돌림으로써 민주노총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민중승리21을 구성해 199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고 이듬해 지방선거에 여러 후보를 출마시킴으로써 일을 추진해 나갔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지원은 제한적이었고 득표도 많지 않았다. 2000년 민주노총의 더 큰 지원을 받는 가운데 더 많은 활동가 집단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은 상당한 승리를 얻었다. 이 승리는 또 다른 문제들을 제기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이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정책 일반, 특히 노동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민주노동당(DLP)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의 목표를 “민중이 완전히 참여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보적인 정치적 힘”을 갖추고 확장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공약은 “사회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운데 “국가 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걸 추구한다고 선언한다.

 

선거에서 이 당이 거둔 성공의 상당 부분은 유권자가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얼마전 선거제도를 개혁한 덕분이다. 국회의 경우, 299석 가운데 243석은 지역구에서 직접 투표로 결정되고 46석은 정당명부제에 의한 투표 결과로 배정한다.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제 투표에서 13% 이상을 득표함으로써 8석을 확보했고 지역구에서는 2석을 얻었다. 두 주요 정당의 득표 차이가 적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의석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 이후 15-20%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제 국회내 논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새로 확보한 의회 내 대표권이 중요하긴 해도 활동가들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이 새로 확보한 영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와 개혁 관련 협상에 개입하는 걸 피하고 대중 운동의 목소리가 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적인 의제를 촉진할 수 있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주의 성향 집권당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무상 교육과 보편적 의료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하지만, 상당수는 노 대통령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북한 정책 결정을 지지한다.

 

민주노동당의 미래와 관련된 쟁점들:

민주노동당은 선거를 중요하게 보고 선거에서 힘을 강화하려고 시도해야 하나, 아니면 선거를 국회내 교두보를 유지하면서 정치 관련 논쟁을 날카롭게 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하나? 현재 이 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회원이 6만명이다. 구성으로 보면 45%는 산업 노동자들이고 35%는 사무직 노동자들이며 20%는 학생과 (소규모 농민 대표자들을 포함한) 기타 세력이다. 당은 내년까지 당원을 10만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을 당원으로 확보하는 데 민주노총에 의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적인 접근 통로를 구축해야 하나? 특정 사회 계층에서 당원을 확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나?

 

국회내 지위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정책 연구소를 지원할 국고 보조를 받고 있다. 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는 현재 전임 연구원 6명을 두고 있다. 연구소의 책임은 당이 “한국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사회, 정치, 경제 대안 모델을 제시하는” 걸 돕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사회 질서로 이행하는 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이 연구소는 (브라질에서 시행된 것과 같은) 주민참여 예산제도와 (아메리카에서 찾을 수 있는 것같은) 생활임금 조례 같은 대안적 사회 실험을 조사하고 있다. 이런 조사활동이 건설적인 정치 공약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반면 변화에 대한 개량주의적 시각을 강화할 위험도 있다.

 

위에서 주목한 과제와 문제들에 대한 단순한 답은 없다. 사실 이것들이 서로 얽혀있는 문제들이라는 특성은, 이 문제에 답하려 시도할 때는 전반적인 전략적 관점의 안내를 받아야 하되 이 전략적 관점은 대중적 투쟁에 계속 중요하게 참여하는 걸 통해서 형성하고 바꿔가야 한다는 걸 상기시킨다. 기대하건대, 한국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시하면 좋겠다.

 

마틴 하트-랜즈버그는 오레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루이스 앤드 클라크 칼리지 경제학과 교수다. 그의 저서로는 (개발을 향한 질주 -남한내 경제 변화와 정치 투쟁) (한국어판: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도서출판 당대, 2000)가 있다. 공저로는 (폴 버킷과 함께 쓴) (한국어판: 중국과 사회주의, 한울, 2005)가 있다. (이밖에 하트-랜즈버그가 폴 버킷과 함께 쓴 논문 세편을 번역한 <일본경제 들여다보기> (미토, 2005)도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

번역: 신기섭
2005/09/19 19:47 2005/09/19 19:47
2 댓글
  1. 미류 2005/09/22 18:08

    구조적 쟁점들 아래 두번째 단락에서 '저장'은 '저항'의 오타가 아닌가 싶습니다.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2. marishin 2005/09/22 18:46

    맞군요. 수정했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수정/삭제 |  댓글에 답장 |  댓글 고유 주소

트랙백0 트랙백
먼 댓글용 주소 :: http://blog.jinbo.net/marishin/trackback/155

앞으로 뒤로

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