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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한가지 쟁점일 뿐이며, 진짜 쟁점은 자본의 힘이다

윌리엄 탭(William K. Tabb)

<먼슬리 리뷰> 1997년 6월호

원 제목 = Globalization is an issue, the power of capital is the issue.

 

이 글은 세계화는 100년전이 지금보다 더 진전됐었다는 것을 통계를 바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자본이 세계화를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쓰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계화 가설은, 개별 국가경제간 경제적 관계의 본질이 최근 급격하게 바뀌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개별 국가경제가 자국 독자적인 개발을 추진하다는 목소리를 낼 힘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개별 국가의 경제운용 전략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제화는, 기술과 막강한 시장세력이 전세계 체제를 누구도 감히 변화시킬 수 없는 강력한 체제로 만드는 과정이다. 다국적 기업들과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지구의 친구들 인터뷰 참조 : 번역자 ) 같은 국제기구는 모든 나라에 획일성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급진적인 대안이 불가능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마가렛 새처의 유명한 말처럼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국제 경제의 중요성이 최근 몇십년동안 계속 커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볼 때, 수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60년 10% 이하에서 90년 20% 이상으로 배 이상 늘었다. 국제적인 은행들의 대출은 80년 경제협력기구 국내총생산의 4%에서 90년 44%로 크게 늘었다. 1조달러에 달하는 국제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 규모에 비하면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공장이 문을 닫아 직장을 잃을 것이라는 걱정은 노동자들에게 엄연한 현실이고, "세계화"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핑계가 됐다.

 

하지만 국제경제가 한 국가 수준의 각종 과정을 주변적인 요소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를 강요하는 '강한 세계화 테제'와, 한 국가의 정책과 정책시행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핵심을 경제세력이 아니라 정치에 두는 '완화된 관점',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두번째 관점은 현재의 변화를 장기적인 역사 전망에서 본다. 또 이 변화가 분명하기는 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출현으로 이어져야 할 필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첫번째 시각이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신화는 패배주의라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복잡한 과정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근거로 한 것도 아니다.1) 그래서 세계화는 두단계로 나눠서 논의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좌파의 힘을 약화시키는 '강한 세계화 테제'에 대한 비판이다. 이 글의 목적도 바로 이 점이다. 두번째 단계는 현재의 국면에서 새로운 것이 과연 뭔지를 주의깊게 분석하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은 계속 변화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변화, 발전의 본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다뤄야할 것은 냉혹한 세계경제 헤게모니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패배주의 문제다.

 

미국 노동운동 진영 대부분은 강한 세계화 테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제3세계로 빠져나가는 일자리 문제와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이 미국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자본은 가장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를 떠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아무리 잘봐줘도 지나친 단순화일 뿐이다. 이런 생각은 다국적 기업의 실제 투자양태를 오해하고 있다. 미국에 근거를 둔 다국적 기업의 해외 투자와 해외 생산량의 75%는 서유럽, 캐나다와 기타 선진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투자 대부분은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제3국으로 수출하거나 미국으로 역수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자본이 떠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해외투자 역조국이라는 사실이다.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 미국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수지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 것은 빚을 얻어 외국 물건을 소비하는 미국의 행태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제3세계 수출품의 절반을 소비한다. 미국 기업들은 바로 이점 곧, 대중들이 국가복지와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혼동하고 있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전세계 산업생산의 85%가 각 개별국가안에 있는 일반 기업들이 생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이 비중이 15%나 되기 때문이다. 좌파 세력 대부분이 저임금을 찾아 제3세계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다국적 기업들은 저임금 생산기지를 기피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대략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외국인 투자와는 전혀 무관한 상태로 살고 있다.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세계인구 대부분이 주변부화하는 데 원인이 있다.2) 국제연합 자료에 따르면 70에서 100개 나라가 지난 80년보다 더 가난해졌다. 이른바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들의 경제가 반드시 지속적으로 국제경제에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 10여년전 경제개발 관련 잡지들은 너나할 것없이 신흥개도국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한국을 특집으로 다뤘다. 그러나 요즘 이들은 한국경제의 위험한 상황과 빚이 과다한 재벌들의 도산을 다루고 있다. 통제가 안되는 경쟁은 체질약화를 부르고 이는 종종 온세상 노동자들의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확실성은 피할 길이 없다.

 

어떤 경우든, 직접 노동비용은 대부분 상품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건비가 제조업자들에게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의류업이나 전자제품 조립처럼 인건비가 결정적인 산업도 있다.) 제조업의 일자리를 줄이는 핵심 요소는 기술 변화다. 미국 국내 제조업 총생산은 50년대의 5배가 됐다. 하지만 제조업 노동자수는 도리어 줄었다. 이것은 제조업의 해외 이전 때문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개발된 때문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첨단산업에 노조가 없는 점이 전체 노동세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식의 성장은 미국 경제의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기도 하다.3)

 

장기전망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언제나 범세계적인 체제였다. 물론 세계경제가 특정한 지역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식은 계속 바뀌지만 말이다. 경제역사가들은 우리에게 이런 관점에서 현재를 보도록 주문한다. 세계 정치경제의 세계화가 100년이나 150년보다 더 심화한 것은 아니다. 공산당선언을 다시 읽어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부르조아는 세계시장 착취를 통해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세계화(cosmopolitan)하고 있다... 옛날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던 지역에서 이제는 모든 측면에서 상호연관과 국가간 상호 의존이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부르조아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런 통합은 대륙간 바다밑 전신망이 세계시장을 서로 연결하고 증기선이 목선을 대체하기 이전에도 분명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기술혁신이 1세기 뒤에 등장한 항공기나 컨테이너 기술에 비하면 세계 생산양식의 변화에 끼친 영향이 훨씬 큰 데도 그렇다. 이런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다음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 "세계화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공유하는 시장들이 서로 얽혀서 형성되는 세계 경제는 197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1870년대에 이미 시작됐다."4) 컴퓨터단말기 단추만 누르면 엄청난 돈이 세계를 오고가는 시대라고 할지 모르지만, 경제사학자들은 지금보다 1차세계대전 전의 20세기 초가 자본흐름이 훨씬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학자들이 1875년과 1975년을 비교 연구한 결과, 자유화는 한치도 진전되지 않았고 도리어 자본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봅 제빈(Bob Zevin)이 자료들을 검토한 뒤에 내린 결론은 이런 것이다. "국경간 주식거래와 외국인의 주식보유율은 실제로 현재보다 1차 대전 이전에 더 높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금융시장에 대한 모든 기록을 보면, 당시 금융시장이 그 이전이나 이후 언제와 비교해도 훨씬 더 통합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5) 한 나라 안에서 소비되는 서비스(정부 부문 포함)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함께, 무역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다국적 제조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며, 20세기 초반에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두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때문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20세기에 관한 자신의 짧은 책에서 표현했듯이, 경제 국제화 시대가 쇠퇴한 틈 사이로 국가경제 시대가 생겼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에서 완전히 회복한 뒤에 나타난 것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그 전 추세(경제 세계화)로 돌아가는 현상이다. 자본흐름이 개발에 미치는 영향은 19세기말보다 지금이 훨씬 적다. 또 세상이 1세기전보다 더 세계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지금을 50년전과 비교하면 기본적인 것에서 차이가 나며, 오늘날 논의는 이 차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전쟁과 대공황 이후 등장한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정치경제학이 오늘날 쇠퇴했고 그래서 우리는 케인즈경제학 이전의 시대로, 자유방임 이념의 헤게모니로 되돌아 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전후 국가주의 정치경제학

대공황과 세계대전은 시장체제를 불신하게 했고 국가계획 경제와 정부가 자원의 분배에서 주도권을 쥐는 체제를 받아들이게 했다. 중도좌파 사민주의 정권과 자유주의 정권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노동연합이 지배적인 현상이었다. 자본이 노조와 정부의 경제안정 기능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계급간 타협이 지배했던 것이다. 이는 유럽, 일본에서 전쟁복구라는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구조를 만든 동시에 미국이 세계적인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마샬플랜과 군사동맹을 통해 미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와 프랑스, 이탈리아의 대중 공산주의 운동을 억제했다. 비자본주의 정권은 냉전시대의 군사대치속에 고립됐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세력에 대한 양보가 이뤄졌다. 독립을 쟁취한 옛 식민지에서는 부르조아 정권이 과거 식민통치자들이 누리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했고, 민족주의적인 교묘한 수사와 사회주의적 개발에 대한 비뚤어진 강조를 통해 대중을 소외시켰다. 이런 사회주의적 개발에 대한 비뚤어진 강조는 현실적으로는 대중의 힘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부 엘리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70년대 경제혼란기에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하자, 제3세계 엘리트들은 다국적 자본주의에 협력하는 것으로 살길을 모색했다. 사유화와 수출주도 경제개발이, 수입대체 정책과 민족주의,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에 부닥친 각종 정책을 대신했다. 내수시장이라는 것도 극심한 빈부격차를 유발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선진국에서도 전후 복구가 완료되고 시설과잉과 경쟁 격화가 나타나자, 저임금 전략이 소득증가와 정부의 지출확대로 시장을 형성하는 케인즈주의 전략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국적 자본이 서로 상대방의 시장에 침투하고 생산개발비가 높아지고 제품수명이 짧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시장에 대한 압력이 커지자, 세계화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중심이 한 국가 위주의 케인즈주의에서 세계적인 성격을 띤 신고전 경제학으로 옮겨가는 것은, 두 세계대전 사이에 자본에 가해졌던 규제의 밑바탕이 허물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런 규제는 자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논리구조에서 보호하는 것으로 발전해왔다. 누구보다도 칼 폴라니(Karl Polanyi)와 조지 소로스가 지적했듯이, 진정한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누구도 견딜 수 없는 불안정, 불안과 다름없다. 이 불안정은 결국 체제 재생산 능력을 갉아먹는다. 30년대 미국 경제를 안정시켰던 개혁은 지금 사면초가 상태다. 이 개혁은 사회보장, 은행과 증권시장 규제, 노동법(초과근무에 대해 1.5배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규정 따위)와 독점규제법 등이다.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새로운 승리

사회 모든 영역에 대한 자본주의 논리의 공격은, 시민들을 자본주의 축적형태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정부의 정당화 기능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약화시킨다. 모든 것을 시장을 통해 처리하라는 (대학등록금을 정부가 보조하지 말고, 공적 보조를 폐지하고, 공공주택사업을 중단하고, 의료보호를 시장을 통해 공급하라는) 요구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공격을 뜻한다. 그러나 공공성이 있는 공간 개념과 개인주의적 가치에 대한 시장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할 안식처를 연대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공격할 때 갖는 시장주의자들의 자기확신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 서비스 공급의 주체를 연방정부에서 주 정부 또는 지방정부로 내려보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지불능력이 있는 개인만 이용할 수 있게 유료화하는 추세는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제한적인 연대의식마저 약화하고 있다. 이런 과정은 세계화와는 무관하다. 이는 노동에 대한 자분의 승리와 그에 따른 시민권의 손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에 못미친 것이 30년동안이나 계속됐는데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우두머리가 고용불안이 줄어들고 있어서 이제는 경제성장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시대 자본의 승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6) 진실은 이것이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 91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이윤이 50%나 늘었지만 직원을 해고하고 대신 새로 뽑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진보적인 사회정책의 패배와 노조 힘의 약화는 미국 자본주의가 임금을 올리지 않고 실업률을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아도, 새로운 일자리 대부분은 그전보다 임금이 적은 나쁜 것들이다. 해고된 뒤 새 일자리를 얻은 사람의 평균 수입은 14%나 줄었다.

 

93년에 미국 노동자의 27%는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았다. 또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을 약간 넘는 이들만이 고용주가 보조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보고 있다. 문제는 고도로 위장된 실업과 시간제 노동의 증가만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 또한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는 더 일을 많이 하면서도 수준이하의 집에 살며, 의료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20%는 퇴직금도 못받고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상태다. 임시직과 시간제 노동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한편, 기업 회장의 평균 수입은, 지난 60년에 공장노동자의 40배였지만 93년에는 149배가 됐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 돌아가는 복지혜택은 지난 70년 3인 가족 최저생계비의 71% 수준이었는데, 92년에는 40%로 떨어졌고 지금은 더 줄었다. 94년 최저임금의 실질 가치는 지난 50년보다 낮아졌다. 미국의 시간당 실질임금도 지난 68년보다 94년이 낮다. 미국 가정 가운데 가장 잘사는 1%의 재산은 못사는 90%의 재산과 같은 액수다. 77년에서 89년 사이 가장 잘사는 1%는 세금을 뺀 전체 국가 소득의 60%를 차지했다.

 

광고업계의 거인인 사치 앤드 사치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에게 "전통적인 대량소비-중산층 개념이 계속 허물어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티파니/월마트의 전략을 따르라고 밝혔다. 줄어들고 있는 중산층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가장 잘사는 1%의 수입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79년과 비교해 2배로 늘었지만, 이들의 세금부담 비율은 도리어 약간 줄었다. 비즈니스위크의 마이클 맨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전에 없던 성장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7) 주식시장의 호황은 상류층의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새로 판매되는 차의 절반 이상이 소득분포로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이 사는 것이다. 계급분리는 모든 곳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지만, 공식 경제학은 케인즈이전 정통 자유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이런 추세를 막을 힘이 없다는 주장이야말로 자본의 강력한 무기다. "셰계화"가 정부를 약화시켰다는 생각은 정부가 자본을 규제할 기술적 능력이 여전하다는 점을 무시한다. 돈이 면세천국의 금융센터로 빠져나가는 것은 핵심 국가들이 이를 허용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자본이동에 대한 과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행들을 처벌하면, 세금천국에 있는 은행 대부분은 문을 닫을 것이다. 세금천국이 생길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주도한 나라들이 바로 선진국이며 특히 미국과 영국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선택이었지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한 선택은 아니다.

 

미국은 노동자의 기본권을 주장하면서 임금을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실 이런 기본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일을 한 것이 바로 미국이지만) 미국이 자유무역이라는 미명하에 기본권 약화 경쟁을 유발한 것은 정치적인 선택이다. 연대와 사회정의의 헤게모니 전망은 전혀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한다. 힘을 세계화주의자들에게 넘겨준 것은 좌파의 이념적, 조직적 취약 때문이다. 미국 기업주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멕시코같은 나라로 옮기겠다고 일상적으로 협박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계속 협박하고 있으며 이런 협박은 현재 미국의 노동규제 상황에서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원래 국제무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무역이 이뤄지는 정치 환경에 있는 것이다.

 

로버트 블랙번은 그의 새책 '새 세계의 노예만들기'에서 1770년 영국 자본의 33%는 노예착취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체제하에서 노예들이 쌀, 커피, 설탕 등 많은 유럽인들의 생활수준 유지에 필수적인 제품들을 생산했다. 흥미있는 것은 세계화가 얼마나 세상을 바꿔놨는가가 아니라 자본가 정신과 자본가의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에릭 포너가 썼듯이, "제품을 실제로 생산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아랑곳 안하고 소비자들의 욕구와 기업가의 이윤추구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차이나타운 노동착취 공장과 어린이노동 착취를 일삼는 제3 공장이 제국주의 시대 노예제도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9) 일하는 이들은 언제나 이런 요구에 저항했다. 20세기말의 저항은, 우리를 무력화하려는 "세계화"의 허수아비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은 될 것이다. 체제는 변함없고, 논리도 변함없다. 세계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금은 이른바 "자유 시장"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계급의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의 기본 운동논리에 대한 비판을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할 때이다. 우리는 자본을 조절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경쟁력, 자유 시장, 세계화의 요구라고 주장하는 것 등 이념적 구조물에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경제가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석>

1) Paul Hirst and Grahame Thompson, Globalization in Question: The International Economy and the Possibilities of Governance(Cambridge:Polity Press 1996).

 

2) See Hirst and Thompson p. 68.

 

3) 지난해 실질 임금 상승분의 20~25%는 첨단기술 업종에서 이뤄졌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통신 첨단기술판매와 수리업 미디어 각종 정보기술같은 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 3년동안 첨단산업분야는 국내총생산의 28%를 차지했는데, 자동차는 단지 4%, 건축은 14%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술전문직 노동자의 소비는 다른 경제분야의 성장을 이끄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Michael J. Mandel "The New Business Cycle," Business Week, 97년 3월31일치.

 

4) Hirst and Thompson, pp. 9~10.

 

5) Robert Zevin, "Our World Financial Market is More Open? If so, Why nad wiht What Effect?" Tariq Banuri nad Juliet B. Schor, ed., Financial Openness nad National Autonomy; Opportunity nad Constraint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pp. 51-2.

 

6) 실제노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기업의 소형화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더 적은 다른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위시콘신 대학이 3개월마다 임의의 노동자들을 골라 "앞으로 12달 안에 직업을 잃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최근 조사에서는 평균 비율이 17.5%였다. 한해전에는 16%였다. Aaron Bernstein "Who Syas Job Anxiety is Easing?" Business Week, April 7, 1997 p. 38.

 

7) Michael J. Mandel "The High-Risk Society," Business Week, October 28, 1996 p. 86.

 

8) "NAFTA: A New Union-Busting Weapon?" Business Week, January 27, 1997, p.4.

 

9) Eric Foner "Plantation Profiteering," The Nation, March 31, 1997 p. 28.

 

번역: 신기섭

2004/07/18 19:19 2004/07/1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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