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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경제학 해부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 <뉴레프트 리뷰> 2000년 5/6월호

원 제목 = (Anatomy of Clintonomics)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경제학과 교수 로버트 폴린의 이 글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전해 듣고 있는 클린턴 시절 미국 경제에 대한 평가를 모두 뒤집는 주목할 논문입니다. 클린턴 시절 미국 경제가 전후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답은 아니오. 컴퓨터 기술 덕분에 놀라운 생산성 향상을 이뤘다? 답은 역시 아니오. 미국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졌다? 답은 당연히 아니오. 왜 그런지는 논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딱딱하고 긴 글이지만, 꼭 한번씩 읽어보십시오. 이른바 신경제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이기는 데 이 글은 더없이 좋은 실증적인 참고서가 될 겁니다. 이 논문이 공개된 지 1년만에 부산대 대학원에 다니시는 구본욱님께서 이 글을 번역해주셨습니다.

 


클린턴 경제학 해부 (ANATOMY OF CLINTONOMICS)

<뉴레프트 리뷰> 3호 2000년 5/6월호

 

로버트 폴린 (Robert Pollin),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경제학과 교수

 

 

클린턴 집권 7년 전 기간동안 미국 경제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이전의 경제 추세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클린턴 집권하에서 였다. 특히 세 가지 점이 두드러진다. 연방 정부의 균형예산 달성과 재정흑자 달성, 주류 경제이론의 예상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현상인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동반 하락, 역사적으로 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주식시장 호황이 그것이다. 1 ) 클린턴 행정부와 지지자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경제 정책의 새로운 방향 전환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며, 클린턴 자신은 이 새로운 방향 전환을 '정부를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정부를 해결사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의 '제3의 길'이라 말한다. 여기서 정부는 더 작아져야 하고 덜 관료적이어야 하며, 재정 운영에 있어 엄격한 원칙이 있어야 하며, 새로운 사고를 촉진하는 구실에 중점을 두는 '정보 시대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 2)

 

물론 레이건, 새처(대처)의 유산과 (한때 미국에서 자유주의로 불린)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의 유산 사이의 '제3의 길'을 발견한 것에 대해 자부하는 정치 세력이 클린턴 추종자들(Clintonites)만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영국 블레어 추종자들에서부터 브라질 카르도수(Cardoso)에 이르기까지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제3의 길의 주요한 이론적 발전이 앤서니 기든스의 작업을 통해 영국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제3의 길을 주장할 수 있는 명백한 실증을 제시하는 예로 종종 간주되는 것이 미국 경제의 실재 성과다. 클린턴 시기의 경제 정책과 경제 운용은 실제적으로는 제3의 길의 이념적 이미지와는 매우 상이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중도우파적 의제를 대표하는 것이었고, - 클린턴 자신이 한때 말했듯이 - 탈냉전시대류의 '아이젠하워 공화당'의 기조에 가까운 것이었다. 3 ) 클린턴 행정부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전면적인 정부 지출 감소, 자유 무역에 대한 사실상 무조건적인 열의, 금융시장 탈규제, 단지 미온적이고 일관성 없는 노동시장 조정노력이라고.

 

클린턴 시기의 미국 경제운용은 그의 '제3의 길'을 지지하는 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혼합되어 있다. 국내총생산 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이전 집권기의 성과를 능가하지 못한다. 더구나 컴퓨터 기술이 성장에 기여한 것을 추정해 정부 회계의 통계치를 상향 조정해도 그렇다. 또 1996년 이래의 본격적인 고속 성장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모두 하락하였지만, 그것은 대체로 노동시장이 지속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확보 능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기의 실재적 경제 성과는 취약한 기반 곧 역사상 유래 없는 폭등을 기록한 주식시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개인 소비지출의 엄청난 팽창을 불러왔다. 하지만 가계수입은 금융자산의 가치 상승에 전혀 미치지 못하기에, 이러한 무절제한 소비는 전래 없는 빚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클린턴 시기의 경제 도약은, 빚내서 쓰는 (debt-financed) 민간 소비를 불러온 주식시장의 급등에 기인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과 의제를 언급함에 있어 나는 마치 이 정책과 의제들이 완전히 대통령 자신이나 그의 고문들의 보고서에서 나온 것처럼 쓰고 있다. 물론, 클린턴 시기에 흔들림없이 수행된 정책 추진에는 사실 월가와 의회, 워싱턴 로비지역에 모여든 일단의 또 다른 세력도 관여했다. 마가렛 새처의 용어를 빌자면 클린턴은 '확신형' 정치가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조화형(consensus)' 정치가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수행한 정책은 그 자신이나, 또는 종종 그러하듯이, 어떤 누군가의 독자적인 확신이라기보다는 워싱턴 정가의 전반적 동의를 반영한다. 그러나 분명히 집행부의 수장인 클린턴은 그런 정책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진다. 물론 그러한 책임은 그가 '신 민주당원' (New Democrat) 으로서 애써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I. 클린턴 시기의 경제정책

통상정책 (Trade policy)

클린턴 행정부의 통상에 대한 태도는 이전의 공화당 행정부와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서, 자유 무역의 보편적 미덕을 주장하면서 자유 무역 촉진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으로 소위 '무수정 일괄승인(fast track)' 협정을 시도할 수 있게 추진하고 동시에 정상적인 입법부의 심의를 회피하는 것이었다. 노동이나 환경에 관한 관심 표명은 거의 전적으로 내용이 없는 것이다. 시애틀 시위자들에게 한 유화적 발언이 좋은 예다. 4 ) 통상에 대한 정부의 실제 태도는 98년 대통령 경제보고서에 충분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시장 개방의 이익'이라는 제목 아래,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표준적인 신고전 이론을 되풀이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생산성을 증대시킴에 따라 전문화를 통한 효율성 획득을 주장하는 헤크셔-오린 (Hecksher-Ohlin) 모델 말이다. 놀랄 것도 없이 헤크셔-오린 모델이 가정하는 전제 - 특히 완전 고용과 무역 당사자간의 비교 가능한 기술에 대한 전제 - 에 대한 오래 계속 되어온 비판들은 무시되었다. 이러한 가정 없이는 그 정통 모델 자체로부터 모든 나라가 통상 개방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없다. 일례로 자유화가 실업률을 상승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5 ) 설사 그러한 가정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통상 개방은 이득을 얻는 쪽만큼 손실을 보는 쪽을 만든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다. 헤크셔-오린 모델 자체는 새로운 상품교역자들 사이의 요소가격 균등화의 경향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례로 미국과 멕시코같이) 고임금 국가와 저임금 국가간의 통상이 개방될 때 고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이 임금 하락 압력을 느낄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런 이론 틀 내에서 통상이 공평하고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파레토기준 (minimal Pareto standards)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자유화로 인해 손실을 보는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손실을 보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비록 북미자유무역협정이나 다른 단일 무역협정이 미국 노동자 일반의 노동과 임금에 미치는 충격을 정확히 추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미사여구를 빼고 나면 무역 정책으로 인해 임금과 직업 안정성을 상실한 노동자들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는 사실상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다. 6 ) 오히려 98 대통령 경제보고서는 미국 노동자 대부분의 장기 임금정체 및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간의 임금격차 상승의 주된 책임이 무역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계속 반복한다. 대신에 이 보고서는 노동력의 임금격차 상승의 원인을 '기술 편향적인 생산 기술의 변화'에 두고 있다. 즉, 컴퓨터에 기반한 새로운 노동 과정의 도입으로 새로운 노동 과정에 적응할 수 없는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드는데 반해 적응 가능한 노동자들에게는 특별 임금이 주어지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웰 (David Howell)은 임금격차 상승이 기술 변화라기보다 실제로는 사회적, 제도적 변화, 특히 미국 노동조합의 지속적 약화와 노동 대중의 이해 관계에 대한 미국 노동법의 적대성 점증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보고서 관점의 근본적 결함을 예증했다. 7 ) 비록 클린턴 행정부가 자신의 통상 정책으로 발생하는 미국 노동자의 손실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노동시장 정책과 소득 재분배 조처를 통해 노동자의 손실을 여전히 보상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럼 이 분야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실적은 어떠한가?

 

노동정책 (Labour policy)

간단히 답한다면 클린턴 행정부는 조직 노동자나 노동 대중의 이익을 전반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사실상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노동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데이비드 모버그 (David Moberg)가 말했듯이, '아마도 클린턴은 금세기의 어떤 민주당 대통령보다 조직 노동자와 동화하지 못했다'. 8 ) 물론 미국노동총연맹-산별노조 (AFL-CIO)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영원한 지지자이므로 공화당의 태도처럼 노동총연맹의 관심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클린턴은 96~97년 최저 임금을 4.25달러에서 현재의 5.15달러 수준으로 두 단계 인상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런 상당한 인상도 최저 임금 실질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전혀 역전시킬 수 없었다. 1996년의 4.25달러 임금률의 실질가치는 구매력에 있어 1968년과 비교하여 40% 이상 밑도는 것이다. 1997년 9월에 설정된 5.15달러의 최저 임금률은, 경제의 생산성이 지난 30여년동안 50% 이상 상승했음에도, 실질 가치에 있어 여전히 1968년에 비해 30% 이상 밑도는 것이다. 9 )

 

행정부는 1993년 8월에 제정된 가족 및 의료휴가법 (Family and Medical Leave Act)을 주요 실적으로 내세운다. 그 법은 75마일 범위안에서 50명 이상을 고용한 고용주는, 전년도에 1250시간 이상 일한 직원에게 요양, 출산, 입양, 가족 병간호 등을 위해 연 12주의 무급 휴가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사유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으며 고용자가 피고용자에게 부가할 여지가 있는 고용조건 - 고용자는 피고용자들에게 이 법의 혜택을 누리기 전에 병가와 휴가일을 다 쓸 것을 요구할 여지가 있다. - 에 대한 규정 또한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혜택을 전부 누리면서 시간제 근로를 할 수 있는지, 휴가를 몇 시간 단위로 쓸 수 있는지 등등). 직업훈련 분야에 있어, '국민을 우선하라 (Put People First)'라는 클린턴 공약의 핵심 항목으로 법안 제출된 1998년 8월의 노동력투자법 (the Workforce Investment Act of August 1998)은 40여개의 연방 직업훈련프로그램을 통합하고, 노동자들이 사설 훈련 비용 지불용으로 쓸 수 있는 인환권 (vouchers)을 도입하였으며 전국적인 직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1993년 3월에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한 파업노동자대체법 (Striker Replacement Act)은 회사로 하여금 근로 조건 때문에 파업중인 노동자를 영구히 대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일시적 노동자 대체와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법안은 부시 때 제출됐던 유사한 법안보다 훨씬 적은 표를 상원에서 얻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형식적인 정치행동의 가장 좋은 예로는 95년 3월 클린턴이 파업노동자를 영구대체한 기업들을 10만달러 이상의 연방 사업계약에서 제외하도록 대통령령으로 명한 것이다. 처음에는 상원이 집행을 봉쇄하기 위해 위협을 하였으나 결국 단념했다. 아마 실제 어떤 주요 기업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행정부의 보고에 설득된 결과일 것이다. 그 명령은 96년 2월 워싱턴시 순회항소법원에 의해 거부되었고 명령의 공표는 무효가 되었다. 그 명령이 명목적으로 유효했던 그 해에 그 명령에 의해 취소된 계약이 전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클린턴은 국가노동관계위원회 (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와 직업안전 및 보건행정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에 대한 자금지원 삭감에 거부권을 행사함은 물론 어용노조(company union)를 사실상 합법화할 수 있는 법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국가노동관계위원회의 위원을 임명함에 있어 전보다 더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인사를 배치했는데, 특히 최고고문 (general counsel)에 프레드릭 파인슈타인 (Feederick Feinstein)을 임명했다. 그러나 노동문제에 관한 행정부의 전체적 기록은 비교적 눈에 띄게 저조한데 특히 노동의 이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자유무역에 대한 무제한적인 지원이 그러하다. 클린턴 임기동안에 발생한 충격은 조직 노동자의 운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조직 노동자의 오랜 쇠퇴에서 회복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노동조합 조합원은 클린턴 집권동안 더 많이 줄었다. 98년 조합원은 전체 노동자의 13.9% 였는데 이것은 레이건 집권 마지막해인 88년에 16.8%로 떨어진 조합원 비율보다 거의 3%포인트 낮은 것이었다.

 

세입정책 (Fiscal Policy)

클린턴의 조세정책은 레이건-부시 집권기의 대단히 퇴행적인 조처들을 완화시켰는데,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조세정책을 80년대 공화당의 정책원칙보다 나은 대안을 대표하는 주요 항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5년 동안 세금을 2404억 달러 인상시킨 93년 총괄예산조정법 (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은 14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30%에서 36%로 인상하였으며 25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10%의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했다. 이 법은 가솔린에 대한 세금과 소득에 대한 의료부조 병원보험세 (Medicare hospital insurance tax)를 올렸으며, 근로소득세액공제 (Earned Income Tax Credit [EITC])와 저소득자에 대한 직접 소득보조 (direct income supplements)를 상당히 확충했다. 클린턴이 입법한 두 번째 주요한 법은 10년간 2900억 달러의 세금을 줄인 97년 납세자구제법 (Taxpayer Relief Act)으로 93년 총괄예산조정법에 의해 계획되었던 세수 증가분을 반으로 줄였다. 새로이 제정된 이 법은 상속 및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을 낮추어 줌과 동시에 일련의 자녀 및 교육세액공제를 통합시켰다. 조세정의시민모임 (Citizens for Tax Justice)이 계산한 것으로 보면, 97년의 법은 소득 상위 60%에 속하는 납세자의 세금을 감면하는 효과를 가지며 대부분의 혜택은 상위 20%에 주어진다고 추정된다.

 

미쉘 (Mishel), 번슈타인 (Bernstein), 슈미트 (Schmitt)는 77~98년 사이의 주요 세법을 적용하여 98년 소득수준에서 가계의 연방세율을 분석함으로써 클린턴과 레이건 시기 세제개편의 전반적인 영향을 비교했다. 표1에 주요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

 


표 1: 1998년의 소득을 기준으로 주요 세법을 적용해 추정한 연방세율
(Estimated effective Federal tax rates on 1998 income under prevailing tax law)

소득군 (Income Group)
백분율 변화 (Percentage-point change)
 
1977-89
1989-98

하위 80%
+0.5
-1.6
하위 20%
+0.2
-4.6
21-40%
+1.3
-1.8
41-60%
+0.4
-0.3
61-80%
0.0
+0.4

상위 20%
-0.3
+1.4
81-95%
-0.3
+0.6
96-99%
-1.9
+2.8
상위 1%
-13.4
+7.7

전체
+0.1
-1.0


자료: Mishel, Bernstein and Schmitt (1998)

 

표1에 나타나듯이 하위 80% 가계의 납세의무가 77~89년 기간에 0.5% 소폭 인상되었고 89~98년 기간에는 1.6%의 다소 큰폭 감소했다. 대부분의 세금 감축은 4.6%의 재정부담 감소 혜택을 본 빈곤한 하위 20%의 가계에 집중되었는데, 대부분 근로세액공제의 변동에 따른 것이다. 유사하게 상위 20% 가계의 세율이 77~89년 기간에 1.3%(0.3%의 오기: 역자) 소폭 감소한 반면 89~98년 기간에는 반전되어 1.4% 상승되었다. 여기서 가장 큰 변동를 보여주는 것은 상위 1% 집단인데 77~89년 사이에는 13.4%의 세금감면을 받은 반면 89~98년 기간에는 7.7%의 세금인상을 겪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는 80년대에 상실했던 조세제도의 진보적 성격 일부를 복원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표1에서는 주식시장의 호황과 그에 따른 금융소득세 증대가, 국고수입이 늘어 97년의 균형예산을 달성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92~97년 기간동안 금융소득 증가에 따라 얻은 세입이 1267억 달러에서 3620억 달러로 상승하면서 국고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에서 5.0%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상세히 다룰 주제인 클린턴의 경제운용실적이 월가의 운명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가지 지표에 불과하다.

 

세출정책 (Expenditure policy)

클린턴 행정부의 우선적인 목표는 적자재정 감축이라는 더 넓은 거시경제 우선정책과 병행하여 정부지출을 감축하는 것이었다. 표2는 정부지출의 감축정도를 작성한 것으로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해인 92년부터 99년까지 연방정부의 지출 양태를 보여준다. 92~99년 기간동안 총연방지출은 국내총생산 대비 21.9%에서 18.6%로 14.9% 줄었다. 가장 크게 감축한 분야는 국방지출로써 국내총생산 대비 4.7%에서 3.0%로 36.7% 감소했다. 하지만 교육지원(-9.2%), 과학(-19.1%), 교통(-11.2%), 소득보장(-16.0%) 등의 분야에서도 큰 폭의 삭감이 있었다.

 

물론 국방비 삭감은 냉전종식을 반영한 것이고 평화분담금의 보편화로 인해 기대되던 결과였다. 국방비 삭감이 상당한 정도이지만, 더욱 두드러진 점은 냉전 시대의 엄청난 군비경쟁의 정당성이 사라졌음에도 연간 국방예산이 3000억 달러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국방지출이 연방교육지출의 4.6배를 유지했는데, 이것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국내총생산이 역사적으로 적었던 1930년대 - 세계대전과 냉전 이전의 마지막 10년간 - 국방예산의 3배 규모이다. 결국 클린턴이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여겨진 교육의 질 향상, 노동자교육 향상, 빈곤 완화 등의 사업에 대한 연방의 지원이 증대했다기보다 냉전 종식으로 평화분담금이 생기면서 삭감된 군비 범위에서 연방정부의 예산이 준 것이다.

 


표 2: 1992~99년 분야별 연방 지출 (Federal expenditures by function 1992-99)

  국내 총생산 대비 백분율 백분율 변화
  1992 1999 1992-99

총계 21.87 18.62 -14.9
국방 4.72 2.99 -36.7
국제 0.25 0.16 -36.1
과학 0.25 0.20 -19.1
천연자원 0.32 0.26 -18.3
농업 0.24 0.23 -4.6
교통 0.52 0.46 -11.2
교육 0.71 0.65 -9.2
건강 1.41 1.54 9.4
의료부조(Medicare) 1.88 2.21 17.3
소득보장(Income Security) 3.12 2.62 -16.0
사회보장 4.56 4.24 -7.0
제대 군인(Veterans) 0.54 0.47 -11.8
치안(Justice) 0.22 0.26 16.8
이자 3.15 2.45 -22.3


자료: OMB, 미국 예산, 연대기적 통계표 (Budget of the United States, Historical Tables)

 

행정부의 근로소득세액공제 확대시행은 행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빈곤퇴치정책이었다. 이는 75년 포드 공화당 행정부 때 도입되었으며 그때 당시 620만 가구가 평균 609달러(1998년 달러 기준)의 공제혜택을 받았다. 근로소득세액공제는 카터, 레이건, 부시 집권기 (1978, 1984, 1986, 1990)에 확대 시행되었다.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해인 92년까지 1410만 가구가 평균 1076달러(1998년 달러기준)의 공제혜택을 받았으며, 클린턴 행정부의 확대 정책으로 97년엔 약 1950만 가구가 평균 약 1600달러의 혜택을 받았다. 근로소득세액공제 확대와는 대조적으로 복지 원조 프로그램 곧 아동부양 가정 부조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 AFDC)는 해체되어 지금은 빈곤가정 일시부조 (Temporary Assistance for Needy Families, TANF)로 변경되었다. 근로소득세액공제 지출액은 92~98년 기간동안 147억 달러(1998년 달러기준)가 증가하여 85억 달러에서 232억 달러로 늘었다. 반면 '가족지원' 지출액은 20억 달러 감소하여 175억 달러에서 155억 달러로 줄었다. 클린턴 시기에 축소된 복지영역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식권과 영양부조 지출이 92~98년 기간동안 43억 달러 감소하여 378억 달러에서 335억 달러로 줄었는데, 이 지출감소는 소득수준이 부조를 받을 만큼 낮지만 식량 지원을 받지 않는 가정의 비율이 늘었음을 반영한다. 95~97년 기간동안 식권 배급을 받는 사람이 440만명 줄었다. 이 인원은 빈곤인구 감소 규모의 5배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설무료급식소의 부담이 극적으로 늘었다.

 

클린턴 시기의 공적인 식량 부조가 줄어든 이유가 확연하지는 않지만, 일차적 원인은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의미의 복지'를 종결시킬 것을 주장한 클린턴의 선거유세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조 의존에 대한 공식적인 공격은 공적 부조의 수혜를 더욱 모욕적인 것으로 만들고 식권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클린턴 이전의 복지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을 때는 높은 비율의 수혜자들이 식권과 더불어 현금 부조를 받았다. 10 ) 클린턴의 정책은 모든 공적 부조와 식권 부조 사업의 지출을 92년과 98년 모두 국내총생산의 1.3% 수준으로 정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클린턴 옹호자들은 좋지 못한 복지프로그램을 좋은 복지프로그램으로 바꾸었다고 응수할 것이다. 근로소득세액공제가 근로 동기를 유발하면서 부모의 가족단위생활 유지 의지를 줄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소득세액공제가 이전의 복지체계가 지닌 문제의 일부를 교정한다 할지라도 새로운 심각한 문제들을 적지않게 야기한다. 가난하고 기술이 없는 여성들을 복지에서 노동시장으로 옮기는 것은 임금 하락을 부르고, 최저임금이 여전히 너무 낮아 단 한 명의 자녀를 둔 전일근무 노동자조차 공식적인 빈곤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여성들은 소득을 보충하는 근로소득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육아비용을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하고 식권부조 프로그램의 지원은 더 줄어들었다. 구조적으로 낮은 최저임금과 확대된 근로소득세액공제의 상호작용은 기업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아주 낮은 임금을 제공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반면 전일근무 노동자를 포함한 빈곤층의 빈곤완화 비용을 납세자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의 빈곤퇴치프로그램은 빈곤층에 대한 소득이전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증가시키지 않았다. 미국의 궁핍한 가정 대부분의 전반적 삶의 조건은 육아비용 증가로 인해 클린턴 행정부 때에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거시경제 및 규제 정책 (Macroeconomic and regulatory policies)

전반적으로 클린턴 집권기의 우선적인 경제 목표는 적자감축에 있었다. 처음에 행정부는 엄격한 연방지출 통제가 이자율을 하락시키는 조건이 되며 이러한 이자율 하락은 그 자체로 민간 부문의 투자를 자극하고 그럼으로써 전반적인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런 정책추구가 야기한 지출삭감의 전형을 보고 있다. 97년에 균형예산이 달성된 이후에조차 클린턴은 지출 삭감 압력을 가했는데 지금은 미지불 연방채무를 줄여 없앨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실업률 하락에 대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그린스펀은 볼커 (Volcker) 보다 더 관대하여, 느슨한 통화정책을 펴고 있지만 임금상승 압력에 대한 경계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자율은 역대 이자율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반면 금융시장은 노동시장보다 더 관대하게 다뤄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와 재무부는 멕시코, 아시아, 롱텀캐피털 메니지먼트사의 위기를 맞은 투자자들에게 긴급구조를 관대하게 지원하였다. 이러한 개입은 사설 신용시장의 급격한 붕괴를 막고 주요 자산소유자의 이윤을 보장하는 데 성공하였다.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파국으로 치달았을 투기적 행위를 보호함으로써, 긴급구조는 도덕적 해이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물론이고 이후의 더 심각한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무절제를 조장했다. 그러나 이런 관대한 조처는 크게는 행정부의 금융규제에 대한 태도와 일치한다. 클린턴 행정부의 또 다른 획기적 조처는 대공황 시절부터 적용해온 글래스-스티걸 (Glass-Steagall) 법을 폐지한 것이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및 주 경계를 넘어서는 은행업에 대한 금지는 세계 통합의 조건하에서 실재 더 이상 금융 안정성 또는 광범한 신용대출을 위한 유효한 도구가 되지 못했다. 이 법은 안정화와 재분배를 위해 투기적 거래에 세금을 부가함과 동시에 생산적 투자에 대한 대출의 지불준비금을 낮추어 주는 등 연계 조처를 취했는데 클린턴 행정부는 이런 목적을 위한 현대적 수단을 강구하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11 ) 오히려 그 시도들은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상징적으로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은 이 법 철폐를 관장한 뒤 워싱턴을 떠났는데, 이 법 아래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을 상업은행인 시티코프와 투자회사인 트래블러스의 통합으로, 새로 합병된 복합금융기업 시티그룹의 공동의장이 됨으로서 글래스-스티걸 법 철폐의 혜택을 누린 최초의 사람들에 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클린턴 행정부는 금융 시장의 규제 철폐와 위험성이 낮은 재무부채권의 12 ) 공급을 줄임으로써 과도한 투기활동을 부추기는 데 많이 기여했다.

 

II. 클린턴 시기의 경제실적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실적은 확실히 성공한 것으로 널리 칭송되고 있다. 13 ) 그러나 표3~6에 나타나 있듯이 비교역사적 관점에서 몇가지 기본적인 지표를 보면 실적이 매우 복합되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역사적 추세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의 중도우파적 정책을 감안할 때 변화의 수혜가 부유층에 기울어져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실제 클린턴 집권기의 모든 경제적 성취는 매우 취약한 금융구조를 발생시킨 주식 시장의 비정상적인 실적과 연계되어 있었다.

 

표3은 국내총생산 성장, 생산성,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 몇가지 기본적인 거시통계 항목을 보여준다. 표3의 A는 대통령 임기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케네디-존슨, 닉슨-포드, 레이건-부시는 연결되어 있고 카터와 클린턴은 따로 되어 있다. 표3의 B는 대통령 임기별 구분이 경제추세의 척도로 신뢰성이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같은 항목을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순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14 )

 


표 3: 거시 실적 지표 (Macro Performance Indicators)

A. 대통령 임기별 비교(단위 %)
  1961-68
케네디-
존슨
1969-76
닉슨-
포드
19777-80
카터
1981-92
레이건-
부시
1993-99
클린턴

국내총생산
실질 성장률
4.8 2.7 3.4 2.9 3.7
생산성 증가율
(농가 제외)
3.4 2.1 0.7 1.7 1.8
실업률 4.8 5.8 6.5 7.1 5.6
소비자물가 상승률 2.3 6.5 10.3 4.3 2.5

B.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순환평균에 따른 비교 (단위 %)(Performance by NBER Business Cycle Averages)
  1960-69 1970-79 1980-90 1991-99

국내총생산
실질 성장률
4.4 3.2 2.9 3.2
생산성 증가율
(농가 제외)
2.9 2.0 1.4 2.0
실업률 4.8 6.2 7.1 5.8
소비자물가 상승률 2.5 7.5 5.3 2.7


자료: 노동통계국 국립 소득 및 생산 계정 (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s, NIPA; Bureau of Labor Statistics)

 

이 지표들은 적어도 99년까지 클린턴의 집권기간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성공을 거둔 해라고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가장 두드러지게는 클린턴 집권기간이 케네디-존슨 시기에 비해 국내총생산 (3.7% 대 4.8%)과 생산성 증가율(1.8% 대 3.4%)에서 매우 낮고, 평균실업률(5.6% 대 4.8%)은 상당히 높은 등 거시실적에서 미치지 못했다. 클린턴 기간의 지표들은 2000년이 포함된다면 더 증가할 것이지만 경제실적이 좋았던 2000년을 포함한다 할지라도 클린턴의 실적은 국내총생산 성장, 생산성 및 실업률에 있어 케네디-존슨 시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클린턴 시기의 물가상승률은 케네디-존슨 시기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억제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고 있다. 반면에 존슨 임기 말에는 물가가 베트남 전쟁의 비용상승으로 인해 급상승했다. 물론 물가의 하락 그 자체는 누구에게 이득이 돌아갈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물가의 하락은 임금 노동자에게 혜택이 가지 않는 노동시장의 부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60년대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다면 클린턴 기간의 거시경제기록은 닉슨-포드, 카터, 레이건-부시 때보다 양호하다. 국내총생산 성장은 더 높았으며 실업과 물가는 둘다 더 낮았다. 생산성 증가율은 여전히 낮았는데 그것은 닉슨-포드 시기와 비교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전반적 실적은 비록 극적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더 나아졌다. 물론 클린턴 임기동안에는 어떠한 경기후퇴도 발생하지 않은 덕을 봤다. 15 ) 만약 우리가 91~98년의 전체 경기순환속에서 상대적인 경제실적을 고려해본다면 90년대는 경기순환이 순조롭지 못했던 70년대나 80~90년의 기간에 비해 두드러진 점이 없으며 60~69년의 기간과 비교하면 더욱 좋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90년대의 미국 경제는 우리가 90~91년의 경기 후퇴를 계산에 넣는다면 특별히 성공적이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물론 클린턴의 지지자들은 93년 이래로 경기 후퇴를 피한 클린턴의 능력은 그 자체로 탁월한 업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국내총생산의 구성 변화

표4는 국내총생산을 소비, 정부, 투자, 순수출의 지출 범주로 구분하여 나타내고 있으며, 클린턴 시기의 거시경제 기록에 대한 더 많은 관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표4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첫번째(A)에는 정부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18.2%로 급격히 축소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전 대통령의 어떤 기간보다 낮은 것이다. 또한 표4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공공지출 감소에 의해 발생된 부진이 민간 소비의 급격한 증가에 의해 흡수되었는데, 민간 소비는 케네디-존슨의 경기호황 시기보다 5%포인트 더 높은 국내총생산의 67%에 달했다. 이들 수치들은 클린턴 시기에 있어 총수요의 추진력이 소비 지출의 상승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전반적 성장의 침체를 야기하지 않고 정부 지출을 감소할 수 있게 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성장을 지속시킨 요인을 알기 위해서는 민간 소비를 팽창시킨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클린턴 기간에 있어 금융 시장의 수행 실적은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표 4: 국내 총생산 구성 (단위 %)

A. 대통령 임기별 비교
  1961-68
케네디-
존슨
1969-76
닉슨-
포드
1977-80
카터
1981-92
레이건-
부시
1993-99
클린턴

소비 61.7 62.2 62.6 64.9 67.0
정부 22.4 21.9 20.0 20.6 18.2
투자 15.5 15.9 18.2 16.1 16.3
순 수출 0.4 -0.05 -0.9 -1.6 -1.5

B.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순환 평균에 따른 비교

  1960-69 1970-79 1980-90 1991-99

소비 61.8 62.4 64.4 66.9
정부 22.4 21.2 20.6 18.7
투자 15.5 16.7 16.7 15.7
순 수출 0.3 -0.3 -1.7 -1.3


자료: 국민 소득 및 생산 계정, 이코노매직 웹페이지 (NIPA; Economagic web page)
주: B의 경우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는 정점과 다음번 정점 사이(peak-to-peak basis) 를 한 단위로 묶었다. 간결하게 하기 위해 2개의 순환기 곧 70-73/74-79년과 80-81/82-90년을 하나로 합쳤다.

 

금융시장 행태 (Financial market behaviour)

클린턴 집권기의 가장 극적인 경제적 변화는 주식거품과 그와 연관된 변동에 의한 전국적인 금융 구조의 전환이었다. 표5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몇가지 지표를 통해 보여준다. 케네디-존슨 및 레이건-부시 시기동안 미국 경제의 상위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주가지수는 연간 6.2%의 빠른 비율로 성장했다. 닉슨-포드 및 카터 시기동안 이 지수는 사실상 실질적인 하락을 기록했다. 클린턴 시기동안 이 지수는 역사상 유례없는 연간 17.6%의 성장을 기록했다.

 

클린턴 시기의 주식시장은 각각의 대통령 임기동안의 국내총생산 대비로 측정될 때 더욱 놀라운 실적을 나타냈다. 이론적으로 전체 경기순환 기간동안의 주식가격 변동은 기저의 실물경제 수행을 반영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에스앤드피500과 국내총생산의 성장률 차이를 측정함으로써 주식시장이 실질경제 발전에 반응하는 정도를 관찰할 수 있다. 이점에서도 클린턴 시기는 유래없는 경험을 했다. 93년 이래로 주식시장은 실물경제 성장보다 13.9% 더 성장했다. 경제 정책이 자본, 특히 금융 자본에 압도적인 특혜를 베풀었던 레이건과 부시 시기에조차 주식가격은 국내총생산보다 단지 3.3% 더 상승했다.

 

표5는 클린턴 호황기의 가계금융 양태의 변화에 대한 몇가지 수치를 제시해준다. 3째줄은 소비 호황이 어느 정도까지 부채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계부채는 - 주택자금 융자 및 소비자 부채 포함 - 클린턴 기간동안 후퇴없이 극적으로 상승하여 가처분소득의 94.2%에 달했다. 레이건-부시 시기는 그 이전의 시기와 비교해볼 때, 선례가 없을 정도의 수준인 77.8%였는데 클린턴 시기는 이보다도 훨씬 높다. 다음 줄은 총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어떻게 부채가 소득이 아닌 자산가치 상승과 병행하여 팽창했는지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미국 가계의 부채/자산 비율이 부채/소득 비율이 급증했을 때조차도 클린턴 시기동안 전혀 상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계 자산의 구성은 명백히 변했다. 전통적으로 자산 소유자들은 그들 소유의 일정 부분을 예금보장이 된 은행 예금과 채무 불이행의 위험이 없는 재무부 채권에 할애했는데 클린턴 시기 이전에는 약 25%~27%에 해당했다. 클린턴 시기동안 이 안전자산 비율이 17.8%로 떨어졌는데 이전의 양태와는 상당한 격차를 나타냈다. 16 )

 


표 5: 금융시장 지표

A. 대통령 임기별 비교(단위 %)
  1961-68
케네디-
존슨
1969-76
닉슨-
포드
1977-80
카터
1981-92
레이건-
부시
1993-99
클린턴

S&P 500 실질 연평균 성장률 6.2 -3.6 -2.8 6.2 17.6
S&P 500 실질 연평균 성장률 -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차이) +1.4 -6.3 -6.2 +3.3 +13.9
총 가구부채 / 가처분 개인 소득 65.8 64.3 70.0 77.8 94.2
총 가구부채 /금융자산 17.1 19.1 22.2 23.0 21.8
(가구 예금 + 국채) /총 금융자산 25.1 25.4 26.6 26.0 17.8
실질 이자율 (소비자물가 지수를 반영한 10년만기 재무부채권) 2.2 0.6 -1.2 5.5 3.7

B.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순환 평균에 따른 비교(단위 %)

  1960-69 1970-79 1980-90 1991-99

S&P 500 실질 연평균 성장률 2.9 -3.5 5.7 15.9
S&P 500 실질 연평균 성장률 -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1.5 -6.7 +2.8 +12.7
총 가구부채 / 가처분 개인 소득 65.1 65.8 75.7 92.3
총 가구부채 /금융자산 17.0 20.2 22.7 22.2
(가구 예금 + 국채) /총 금융자산 23.2 26.1 26.6 18.5
실질 이자율 (소비자물가 지수를 반영한 10년만기 재무부채권) 2.1 0.0 5.1 3.9


자료: 국민 소득 및 생산 계정, 이코노매직 웹페이지 (NIPA; Economagic web page)
주: B의 경우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는 정점과 다음번 정점 사이(peak-to-peak basis) 를 한 단위로 묶었다. 간결하게 하기 위해 2개의 순환기 곧 70-73/74-79년과 80-81/82-90년을 하나로 합쳤다.

 

끝으로 표5는 10년 만기 재무부 채권의 실질 이자율에 대한 수치를 제공한다. 클린턴 시기의 이자율은 레이건-부시 시기와 비교할 때 평균 5.5%에서 3.7%로 떨어졌다. 그러나 클린턴 시기의 이자율 3.7%는 이전의 어떤 대통령 시기보다 여전히 더 높은 수준이다. 참으로 47-79년의 전후 전기간동안 재무부 채권의 평균 실질이자율은 클린턴 기간의 3분의 1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1.2%였다. 17 ) 이 수치는 급격한 가계부채 증가가 낮은 이자율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기 곤란하게 한다. 사실 클린턴 시기의 이 수치는 레이건-부시 시기의 선례 없이 높은 이자율에 비해서 약간 낮은 정도다. 레이건-부시 시기의 이 수치는 역사상 그 어떤 수치보다 높은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연방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데 열중하면 신용에 대한 수요가 줄 것이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좀더 느슨한 화폐정책을 쓸 수 있게 되며 그래서 이자율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재정적자 해소 시도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자율이 실제로 연방 재정적자가 급증했던 레이건-부시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재정 균형이 달성되었음에도 이자율은 여전히 역사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80년대 이래의 높은 실질 이자율이 정부 재정적자 한가지 때문이라는 주장은 분명히 재고될 필요가 있다.

 

노동자와 빈민의 상황

마지막으로 클린턴 시기동안 노동자와 빈민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표6은 그들의 운명에 대한 몇가지 수치를 제공한다. 그 수치들은 클린턴에게 매우 불리한 것이다. 거시 실적은 상대적으로 강했지만 - 주식시장 호황은 말할 것도 없이 - 관리직 아래의 노동자와 임금 분포 최하위 10분위의 소득자들의 평균 임금은 닉슨-포드와 카터 행정부 때보다 낮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레이건-부시 기간보다도 더 낮았다. 더군다나 임금 불평등은 - 상위 10분위를 하위 10분위로 나누어 측정할 때 - 클린턴 재임 기간동안 급격히 상승했는데 80년대 공화당 전성기와 비교해도 더 높다.

 

레이건-부시 시기와 비교해도 클린턴 기간동안 빈곤이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만약 낮은 실업률이 90년대의 긍정적인 특징이었다면 빈민의 전반적 조건은 연방 복지프로그램이 해체됨에 따라 클린턴 임기의 마지막 기간동안 더욱 악화된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짙다. 자료가 대통령 임기별이 아닌 경기순환으로 구분되더라도 이러한 형태는 차이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노동자와 빈민의 복지가, 경기후퇴 시기에는 실업률이 상승하고 임금이 떨어짐에 따라 감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경기 후퇴를 포함하는 91-98년의 수치들은 클린턴 재임기간 보다 낮은 임금률과 높은 빈곤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그가 경기 후퇴에 직면했더라면 기록은 더욱 심각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표 6: 노동자와 빈민의 복지 척도 (달러는 1998년 기준)

A. 대통령 임기별 비교
  1961-68
케네디-
존슨
1969-76
닉슨-
포드
1977-80
카터
1981-92
레이건-
부시
1993-99
클린턴

관리직 미만 노동자 평균 임금 $11.53 $13.17 $13.51 $12.82 $12.37
최하층 10%의 평균 임금 - $6.14 $6.32 $5.68 $5.52
최상위 10% /최하위 10% 임금 비율 - 3.7 3.6 4.1 4.4
개인빈곤율(%) 17.5 11.9 11.9 14.0 13.8

B.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순환에 따른 비교

  1960-69 1970-79 1980-90 1991-99

관리직 미만 노동자 평균 임금 $11.54 $13.36 $12.95 $12.35
최하층 10%의 평균 임금 - $6.24 $5.73 $5.54
최상위 10% /최하위 10% 임금 비율 - 3.6 4.1 4.3
개인빈곤율(%) 17.5 11.8 13.8 14.0


자료: 노동통계국; Mishel, Bernstein and Schmitt (1999).
주: 임금의 10분위별 자료는 73년에 처음 나왔다. 99년 자료 가운데 일부를 구할 수 없어 98년 자료까지만 비교했다. B의 경우 전미 경제조사국 경기는 정점과 다음번 정점 사이(peak-to-peak basis) 를 한 단위로 묶었다. 간결하게 하기 위해 2개의 순환기 곧 70-73/74-79년과 80-81/82-90년을 하나로 합쳤다.

 

III. 클린턴 시기의 엄청난 발전 (Extraordinary Developments Under Clinton)

 

클린턴 집권기의 거시경제 실적을 어떻게 말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실업률과 물가의 동반 하락은 사실상 모든 정통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99년의 실업률은 약 4.2%이며 물가 상승률은 98년의 1.6%보다 높은 2.4% 정도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65년 이래 단 2년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것이다. 70년대 초기 이후 지배적이었던, 물가 상승을 가속화시키지 않는 실업률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을 자연실업률로 신봉하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4%의 실업률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도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책 결정자들이 실업률을 물가 상승을 유도하지 않을 만큼 높은 상태로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실업률이 대체로 6% 정도 이상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간의 상충관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간의 상충 관계의 극적 변동의 원인은 무엇이며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변동 유발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되어 있는가? 몇몇 지도적인 경제학자들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동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명인 로버트 고든 (Robert Gordon)은 과거 20년간의 광범위한 계량 분석으로부터, 예를 들어 90년의 6.2%에서 96년 중반의 5.6%로 변한 것처럼, 이 실업률 (NAIRU)이 '시간 변화에 따라' 하락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18 ) 더글러스 스타이거 (Douglas Staiger), 제임스 스톡 (James Stock), 마크 왓슨 (Mark Watson)은 97년의 이 실업률이 5.5%에서 5.9% 사이였음을 발견하고는 80년대 초반보다 1%포인트 하락했음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들은 또한 이 실업률 추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정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19 ) 그들의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 추정은 시간 추이에 따라 변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시간대에서도 변동폭이 크다.

 

광범한 계량적 발견들이 밀어붙이는 일반적 추동력은 충분히 견고해 보인다. 정말 계량적 발견들은 매우 광범위해서 정확히 논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전적으로 배율추정 (point estimates), 신뢰구간 (confidence intervals), 시간대별 편차 (variation over time)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결과들 너머의 근본적인 질문을 간과하고 있다 - 즉, 시간 변화에 따라 변하는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의 변동은 무엇이 최초 원인인가? 이 실업률 추정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바쳤던 지도적 경제학자들이 이 질문을 거의 완전히 소홀히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 이유에 대한 조금의 암시들이 부수적으로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고든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에서 특별히 큰 두가지 변화는 60년대 초기와 후기 사이의 증가와 90년대의 감소이다. 60년대 후반은 노동 계급의 전투적 성향, 비교적 강력한 노동조합, 비교적 높은 최저임금, 뚜렷이 상승한 국민소득 대비 노동분배 몫의 시대였다. 90년대는 평화로운 노사 관계, 비교적 약한 노동조합, 비교적 낮은 최저임금, 약간 감소한 노동분배 몫을 보인 시대였다. 20 )

 

고든은 또한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의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무심코 생산물과 노동 시장에서의 강화된 세계 경쟁과 비숙련 노동자의 미국유입 증가를 언급한다. 비록 이런 시각들이 고든의 논문에서 단지 부차적인 것이다. 전체적인 주안점은 분명하다.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을 감소시킨 주요 추진력은 자본과 노동간 세력균형의 변화와, 미국의 세계경제 통합 증가이다 - 이것은 미국 기업이 가격을 올리거나 미국 노동자들이 임금을 인상시키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고든의 일반적인 예감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캐러 론 (Cara Lown)과 로버트 리치 (Robert Rich)가 실시한 계량분석 결과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은 90년에서 95년 동안 임금과 근로후생이 정체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실업률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21 ) 두 사람의 연구대상 기간은 95년까지이다. 그때 이후로 추가적인 요소들이 인플레이션 감소에 기여했다. 그중 하나로 에너지 가격이 97~98년에 걸쳐 상당히 하락했다. 게다가 동아시아 금융 위기는 해당 지역의 통화가치 평가 절하를 야기하여 미국의 제품 수입 가격을 더욱 낮추었다. 노동자들로서는 - 특히 컴퓨터 산업에 종사하는 - 점차 그들 고용주의 뒤를 따라 총보수의 일부로써 주식매수 청구권(스톡옵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다. 비록 미국인의 단지 21%만이 퇴직기금 배당몫 외에 별도로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것은 임금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론 슈퍼마켓이 아니라 주식거래시장에서라면 우리는 이번 경기순환기동안 극적인 가격 상승을 명확히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사실은 클린턴 호황 기간의 임금 소득은 다른 어떤 팽창기보다 낮으며 완전 고용에 가까운 기간과 비교하면 더욱 낮다. 99년 12월 비즈니스 위크은 이러한 기저의 사실을 포착하여 미국 시민의 대다수가 경제 상황의 다양한 징후에 상당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도했다. 예를 들어 인터뷰에 응한 미국 노동자의 51%가 그들이 '고용주로부터 속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잡지가 명명한 `현재의 생산성 호황' (current productivity boom)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질문 받았을 때, 63%가 호황이 그들의 수입을 높이지 않았으며, 62%가 호황이 그들의 직업 안정성을 향상시키지 않았다고 답했다. 22 ) 대중의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클린턴 경제를 비교할 수 없는 번영의 시대로 언론들이 계속해서 묘사하던 당시 상황에서 볼 때 매우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반응 이면에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간의 상충 관계의 붕괴에 대한 주요 설명이 놓여있는데, 앨런 그린스펀은 97년 7월 반년마다 실시하는 정기적 의회증언에서 이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그해의 경제 수행을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찬사를 보내면서 이러한 탁월한 성취에 기여한 주요 요인은 '고조된 직업 불안정감과 그에 따라 완화된 임금'에 있다고 말했다. 23 )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적 유산은 이러한 '고조된 직업 불안정감' (heightened sense of job insecurity) 에 기초하고 있다.

 

주식시장 호황

주식시장 거품은 클린턴 집권기와 연관된 또 다른 특별한 발전이었다. 그것이 특별한 이유는 주식시장 거품이 월가 밖의 미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딘 베이커 (Dean Baker)는 주식시장 거품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국내총생산 성장을 초과하는 주식가치 상승은 지난 9년 동안 금융자산 가치를 8조 달러 이상 증가시켰다. 전통적 경험치로는 주식가치 1달러는 소비를 3센트 상승시킨다. 이런 계산에 의하면 지난 9년간 8조 달러의 과도한 주식시장 축적이, 국내총생산과 주식시장이 보조를 맞추었을 때와 비교할 때 소비를 2400억 달러어치 더 늘렸음을 암시한다. 이런 추가적인 소비는 이 기간 동안의 저축률 하락치인 4.5%포인트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24 )

 

빚을 얻어 이뤄진 소비의 증가로, 정부 지출이 감소하고 무역 적자가 늘어났음에도 미국 경제의 총수요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동시에 이미 보았듯이 연방 정부는 97년에 92년보다 거의 500억 달러를 더 금융소득세로 징수했는데, 이것은 어떤 세원에서 확보한 것보다 큰 비율의 증가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식시장 호황은 클린턴 시기의 흑자 예산을 창출함과 동시에, 자산가치 주도의 소비 증가를 통해 흑자 예산의 총수요 감소 효과를 상쇄시키는 데 핵심요소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호황은 기업들이 수입을 퇴직기금으로 이전시키는 대신 증권투자 명세표 (portfolio) 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연금기금 의무를 충족시킬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내부 유보금을 주주 배당금 분배 또는 신규 자본 투자로 쓸 수 있게 했다. 주식가격 상승은 기업들로 하여금 현금 대출이나 현금 지불이 아닌 주식 양도를 통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합병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거품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은,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기술의 빠른 진보를 높이 산다. 그러나 클린턴 시기의 생산성은, 컴퓨터 주도의 생산성 향상을 고려하여 국가 계정을 상향 조종한다 하더라도 예외적인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93-95년의 미미한 0.8%에 비해 96년과 99년 사이의 연평균 2.6%의 급성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산성 수치는 클린턴 시기 주식호황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케네디-존슨 시기에 연간 생산성 성장은 이보다 훨씬 높은 3.4%였지만 이러한 무절제한 투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신 연구는 최근의 급성장 그 자체의 규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25 ) 물론 미래에 인터넷 주도에 의한 생산성 도약의 전망은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러한 가능성은 여전히 현재의 주식가격 인플레이션 규모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그 헨우드 (Doug Henwood)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난해 내내 (투기)매니아의 주목을 가장 크게 받았던 인터넷 주식들은 과거 미국 금융 역사에 없던 것이다. 웹에서 항공권을 팔아 미미한 수익을 올리던 프라이스라인닷컴 (Priceline.com)의 증시 자본가치는 해당 주식의 가치가 가장 높았던 4월초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두배였으며 아메리칸 항공과는 근소한 차이밖에 없었다. 아메리칸 온라인은 디즈니와 타임워너를 합한 것과 거의 비슷한 가치를 가졌으며, 제너럴모터스와 포드를 합한 것보다는 더 가치가 컸다. 야후의 가치는 보잉보다 3분의 1 컸으며 이베이는 콜롬비아방송 (CBS)과 거의 비슷했다. 전성기때 아메리칸 온라인은 주가/수익 비율이 720이었으며 야후는 1,468, 이베이는 9,571이었다... 열광자들은 좋았어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이것은 화려한 미래에 대한 도박이다. 그러나 이전의 어떤 세계전환기적 성과도 결코 이처럼 자본을 증식시키지 못했다... 알시에이 (RCA)의 최고치는 29년 73 P/E였다. 제록스는 61년 123 P/E에 거래되었다. 애플은 80년에 150 P/E 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들 회사들은 꽤 빠르게 흑자로 돌아섰으며, 그 경우 이들 회사의 성장률은 급격히 올라갔었다. 70년대 초기의 소위 잘 나가는 50대 기업 시대에 시장을 주도한 50개의 대형 주식들은 40에서 50 P/E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장 평가는 한때 과대 평가에 대한 전설이었다. 26 )

 

거품의 원인들

90년대 거품의 역사적 독특성을 고려할 때 그 원인을 명확히 밝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리고 여전히 어느 정도는 불확실함속에서의 추정이지만, 우리는 5가지 중요한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1. 금융 탈규제. 킨들버거 (Kindleberger)와 몇몇은 금융 시장에서 투기 매니아들이 역사적으로 재생되는 방식을 충분하게 입증했다. 27 ) 29년의 월가 붕괴와 30년대의 침체 이후, 전후 모든 주요 자본주의 경제 국가의 정부들은 파괴적인 투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광범한 금융 규제를 설정했다. 그 결과 2차대전 이후 25년간 주식시장은 비교적 평화로왔다. 이러한 경험은 클린턴 호황에 대한 하나의 간명한 설명을 제시해 준다. 곧 유효한 규제가 부재할 때는 정확히 어떻게 거품이 발생되고 전개되는지를 결코 미리 알 수 없지만, 과도한 투기가 금융시장에 불가피하게 발생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산 인플레이션은 클린턴 행정부가 자산 인플레이션의 전개를 막기 위해 충분한 통제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90년대에 모든 경계를 무너뜨렸다.

 

2. 불평등의 심화와 높아진 이윤가능성. 우리가 보아왔듯이 클린턴 시기의 경제 성장의 수혜는 더욱 더 부유한 자들에게 돌아갔다. 국내총생산과 생산성이 상승했음에도 대부분 노동자의 임금은 계속적으로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임금이 저하되어 있는 상태에서 산출과 생산성이 향상됨에 따라 이윤은 불가피하게 늘어난다. 클린턴 시기에 이윤이 30년 기간중 최고에 달했다. 97년에 총 기업 수입에 대한 이윤의 비율이 21.6%였는데, 닉슨 시절 경기 정점의(1973) 18.0%, 카터 시절(1979) 17.4%, 레이건 시절(1989) 18.4%와 대조적이다. 28 ) 백악관에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관계없이 정치 시스템이 부자들의 이해 관계에 더욱 우호적으로 지속되는 한 클린턴 시기의 이윤 상승은 이윤 확대 기대감을 더욱 키운다. 비록 클린턴의 조세 정책이 레이건 때보다 덜 퇴행적이었지만, 닉슨 때보다는 더 퇴행적이었다. 반면 통상, 금융, 심지어 노동시장 부문에 있어 클린턴 행정부는 대단히 기업친화적 경향을 보였다.

 

3. 미국인의 재산보유 유형의 변화. 우리는 미국의 가계들이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자산을 위험이 적은 은행예치 또는 재무부채권에서 더욱 위험한 자산 - 특히 주식 -으로 옮기는지를 보아왔다. 주식 소유와 연계된 위험을 분신시키는 뮤추얼 펀드와 파생상품 시장의 확대가 이러한 변화에 확실히 기여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자산 소유자들이 역사상 어느때보다 지금이 주식의 위험이 적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9 ) 투자자들의 이러한 마음 상태를 조성한 데 대한 책임은 분명히 클린턴 행정부에만 있지 않다. 부분적으로 그러한 사고는 이윤의 증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적절한 수익이라는 긍정적인 반응 효과에서 유래한다. 앨런 그린스펀은 반복해서 자산 소유자들 사이의 그런 만연된 비합리성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와 클린턴 행정부가 금융 시장 탈규제를 추진하였던 열정은 그린스펀의 강력한 완화설득 노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30 )

 

4. 외국인의 재산보유 유형의 변동. 89년부터 미국내 외국인 소유 자산이 해외의 미국인 소유 자산을 초과함으로써 미국은 순채무국이 되었다. 90년대에 외국인 재산 소유자들은 미국 금융 시장에서 달러표시 자산의 매입을 계속 증가시켜왔다. 98년 말까지 해외 부채의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8%에 해당하는 1조5천억 달러에 달했다. 24개월 동안 규모가 3배로 는 것이다. 31 ) 해외 저축의 유입은 물론 지속적인 미국 적자의 이면을 보여준다. 정말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달러로 돈을 받기를 원하고 달러표시 자산에 투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이외의 세계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은 미국 자산을 결정적으로 선호하게 만들었다. 월가 거품과 무관하게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뿐만 아니라 미국 채권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이들의 수익률이 항상 매우 높기 때문이 아니라 위험 조정을 위한 선택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98년의 미국내 외국인 소유 자산이 증가한 주 요인은 순신규 보유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인이 소유한 외국 자산의 가격에 비해 외국인이 소유한 미국 자산의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금융 시장내의 해외 저축은 미국 유가증권에 대한 총수요를 증가시켰으며,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증권 가격을 높였다. 이점에서의 효과는 간접적이었는데, 그것은 미국 주식시장의 총자산가치 중 외국인 소유 비율은 90년대를 통틀어 약 8%로 상당히 일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인 다리스타 (Jane D'Arista)가 주장하듯이 외국인들의 미국 채권 구입 증가는 채권 가격을 상승하게 하고 수익을 낮추었기 때문에, 이것은 미국내 투자자들을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고무시켰다. '미국 주식시장은 커다란 자본 유입에 의해 발생한 대체효과 이득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32 )

 

5. 연방준비제도의 능숙한 정책. 연방준비제도는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 강경파들이 말했던 적절한 수준보다 훨씬 낮게 실업률이 하락하는 것을 용인한 데 대해 찬사를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 왔듯이 그린스펀은, 직업 불안정성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인력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조차 과거처럼 임금 인상 압박을 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린턴 집권기 동안 그의 실제 업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주식시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금융 시장의 유동성을 유지할 필요성과, 외국인 저축이 미국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이자율을 충분히 높이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서로 반작용하는 시장 압력이 커졌음에도 확실히 균형을 잘 유지해 왔다. 더구나 그린스펀과 루빈이 멕시코, 동아시아, 헤지펀드인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사의 연속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성공적인 구제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들 충격의 누적된 영향이 세계 금융시장을 관통함에 따라 미국 주식시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33 ) 내가 '성공적인' 구제라고 하는 것은, 상호간의 부채 디플레이션을 막고 동시에 미국 투자자들의 부를 보호했던 경제운용을 말한다. 그렇지 않더라면 상당한 손실이 미국 거품을 거의 확실히 터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클린턴노믹스 실적은 어떻게 요약되는가? 클린턴에 우호적인 유럽 이론가들의 완화된 기준에 의해서조차도 클린턴 행정부가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훌륭한 전통을 새롭게 한 '제3의 길'을 선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우스운 것이다. 이것은 클린턴의 정책들이 부시나 레이건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선거 시장의 생산 차별화 요구 일반은, 어떤 민주당 대통령도 비슷한 류의 공화당 적수보다 조금이라도 사회적 양보를 더 해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선거민의 반이 투표를 거부할 정도로 견해가 유사한 정치체제는 두 당간의 미세한 차이를 유지함으로써 당의 정통성을 구분한다. 그러나 정책 방향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체제이지 체제의 구성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체제의 무게 중심은 지난 세대동안 지속적으로 우익으로 옮겨졌다. 우리가 자료를 통해 계속해서 보아왔듯이, 한 시기의 집권 공화당원은 다음 시기의 민주당원보다 덜 보수적이기 쉬운 것이다 - 닉슨은 클린턴보다 더 높은 임금과 낮은 빈곤의 시기 대통령이었다. 이들 구조적 좌표가 미국 정치의 변수를 규정한다. 그러나 집권 당시의 대통령들의 책임이 구조적 좌표에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의 재임 기간이 끝나감에 따라 자유주의적인 매체들은 그의 재임기간의 실적에 진지한 찬사를 보내면서 빛바랜 지도자로서의 신임을 회복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현실은 이런 장미빛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클린턴 프로그램의 핵심은 노동 시장의 형평과 금융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 장치를 둔 전 지구적 경제 통합이었다.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몸짓은 미세하고 우회적인 것이었던 반면 대다수 국민의 임금은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반면에 최상층의 부는 급증했다. 그러나 주식 가격의 엄청난 상승과 빚으로 유지한 과잉 소비는 담보부 부채를 유산으로 남긴다. 클린턴은 그의 후임자에게 전후 시기의 가장 위험스런 금융피라미드를 넘겨줄 것이다.

 

<주석>

- 1 - 뛰어난 능력으로 본 연구를 조력한 아머건 게치니 (Armagan Gezici)와 조쉬 메이슨 (Josh Mason), 그리고 본 연구에 대한 건설적인 논평을 해준 제리 엡슈타인 (Jerry Epstein)과 앤드류 글린 (Andrew Glyn)에게 감사 드린다.

 

- 2 - 백악관 웹사이트에 있는 1998년 2월 9일의 사회보장에 대한 클린턴 연설을 보라.

 

- 3 - Bob Woodward, The Agenda, New York 1994, p.165를 보라.

 

- 4 - 1999년 12월 3일자 뉴욕타임스의 Steven Greenhouse와 Joseph Kahn에 따르면 클린턴은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 (Seattle Post-Intelligencer)와 한 인터뷰에서 세계무역기구가 핵심적인 노동권을 전세계에 강제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발언은 '대표단들은 물론 자국의 협상가들을 놀라게 했다'. (According to Steven Greenhouse and Joseph Kahn of the New York Times , 3 December 1999, Clinton's interview with the Seattle Post-Intelligencer , in which he suggested that the WTO might employ sanctions to enforce core labour rights around the world,' stunned the delegates,and even his own negotiators'.)

 

- 5 - Neheree Larudee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아래 통합과 소득 분배: 멕시코의 경험 (Integration and Income Distribution Under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the Experience in Mexico)에서 이 모형을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적용하였는데, 이 문제에 관한 흥미있는 토론으로는 Dean Baker, Gerald Epstein, Robert Pollin, eds, 지구화화 진보적 경제정책 (Globalization and Progressive Economic Policy), Cambridge 1998을 보라. (See the interesting discussion of these issues as they apply to NAFTA by Meheree Larudee, 'Integration and Income Distribution under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the Experience in Mexico', in Dean Baker, Gerald Epstein and Robert Pollin, eds, Globalization and Progressive Economic Policy, Cambridge 1998.)

 

- 6 - 1998 대통령 경제보고서는 행정부가 '현재의 통상조정 보조 프로그램의 중대 개혁을 우선하고 있다'고 했지만 현실에서 이들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최소한을 유지하고 있다. (The ERP for 1998 states that the Administration has 'made significant reform of the existing trade adjustment assistance programme a priority'; in reality, these programmes remain minimal.)

 

- 7 - David Howell, `이론이 주도한 사실과 소득 불균형의 확대' (Theory-Driven Facts and the Growth in Earnings Inequality),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Winter 1999, pp. 54-86.

 

- 8 - 1999년 조쉬 메이슨(Josh Mason)이 한 모버그 (Moberg) 인터뷰.

 

- 9 - 최저임금의 역사적 경향에 대한 토론으로는 Robert Pollin and Stephanie Luce, The Living Wage: Building a Fair Economy, New York 1998을 보라.

 

- 10 - 식권 사용감소에 대한 논의로는 Sharon Parrott and Stacy Dean, Food Stamps can help low-income families put food on the table, Centre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 (website), Washington DC 1999 ; and Andrew Revkin, A plunge in use of food stamps causes concern, New York Times 25 February 99를 보라.

 

- 11 - 그런 해결책에 대해서는 Robert Pollin, 'Financial Structures and Egalitarian Economic Policy' NLR(I) 214, November-December 1995, pp. 36-61를 보라.

 

- 12 - 재무부 채권은 독특한 증서였는데, 왜냐하면 비록 인플레이션에서의 시장 위험이 있긴 하지만 채무 불이행의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These are unique instruments because they are free of default risk - though still, of course, subject to market risk, especially in an inflationary environment.)

 

- 13 - 일례로 월 스트리트 저널은 클린턴이 그린스펀을 연방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재임명했을 때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미국 경제는 지금 한 세대가 넘는 기간중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최상의 실적을 향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듯이 현재와 같은 경제 호황이 2월까지 계속 지속된다면 그것은1960년대를 능가하여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긴 지속적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이다." 4 January 2000. (The Wall Street Journal , for example, announced on the occasion of Clinton's renomination of Greenspan as Chairman of the Federal Reserve: 'The US economy is enjoying its best performance in more than a generation with low unemployment and low inflation. If the current expansion lasts through February, something generally expected, it will surpass the 1960s as the longest period of uninterrupted economic growth in US history': 4 January 2000.)

 

- 14 - 경기순환 자료는 전미경제조사국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NBER])이 설정한 참조기간을 통해 순환의 정점간을 한 주기로 하는 원칙에 의해 작성되었다. 나는 조사국의 월별 정점에서 연별 정점을 도출했다. 정점에 해당하는 달이 해당 년의 1월에서 9월 사이에 해당할 경우 그 해가 경기 정점인 해가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해가 된다. 또한 나는 각각 두 기간의 경기순환기인 1970~73/1974~79 및 1980~81/1982~90을 각각 단일 경기순환으로 만들었다. (The cyclical data are organized on a peak-to-peak basis, through reference dates established by the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NBER). I have derived yearly peak dates from the NBER monthly peaks. When the NBER peak month falls between January and September of a given year, that year becomes the cyclical peak year; otherwise it is the following year. In addition, I have merged two sets of cycles into a single cycle - those for 1970-73/1974-79 and 1980-81/1982-90.)

 

- 15 - 기술적인 면을 더 상술하자면 인플레이션과 투자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을 개정할 경우 클린턴의 실적은 더 좋아진다. 새로운 통계의 문제점과 잠재적 편향들에 대한 논의로는 Dean Baker, 'What's New in the Nineties', typescript, Centre for Economic and Policy Analysis, Washington DC 1999를 보라. (On a more technical note, revisions in the methods used for measuring inflation and investment have also made the Clinton record look better. For a discussion of the problems and potential biases in the new statistics, see Dean Baker, 'What's New in the Nineties' typescript, Centre for Economic and Policy Analysis, Washington DC 1999.)

 

- 16 - 윈 고들리 (Wynne Godley)는 가계 부문의 이러한 금융패턴이 지속될 수 없음을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Seven Unsustainable Processes: Medium-Term Prospects and Policies for the United States and the World, Levy Institute, Annandale 1999를 보라. (Wynne Godley argues persuasively that these financial patterns in the household sector cannot last. See Seven Unsustainable Processes: Medium-Term Prospects and Policies for the United States and the World , Levy Institute, Annandale 1999.)

 

- 17 - 이자율의 연대기적 수치에 관해서는 Robert Pollin and Gary Dymski, The Costs and Benefits of Financial Instability: Big Government and the Minsky Paradox, in Dymski and Pollin, eds, New Perspectives in Monetary Macroeconomics, Ann Arbour 1994, pp.369~402를 보라.

 

- 18 - Robert Gordon, 'The Time-Varying NAIRU and its Implications for Economic Polic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1997, 11:1, pp. 11-32.

 

- 19 - Douglas Staiger, James Stock and Mark Watson, 'The NAIRU, Unemployment and Monetary Polic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1997, 11:1, pp. 33-50.

 

- 20 - 'The Time-Varying NAIRU', p. 30.

 

- 21 - Cara Lown and Robert Rich, 'Is there an Inflation Puzzle?'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Economic Policy Review, December 1997, pp. 51-69.

 

- 22 - Business Week 27 December 1999을 보라.

 

- 23 - 그린스펀의 증언은 www.bog.frb.fed.us.boarddocs/hh/1997/July/testimony.htm를 보라.

 

- 24 - 'What's New in the Nineties'.

 

- 25 - 예를 들어, 연방준비제도의 마르셀로 에스테보 (Marcello Estebo)와 솔 라크 (Saul Lach)는 제조업 부문의 공식 수치가 임시조력기관을 통한 파견직 임시 고용을 고려하면 0.5% 낮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Measuring Temporary Labour Outsourcing in US Manufacturing, NBER Working Paper 7421, October 1999를 보라. 하버드의 제임스 메도프 (James Medoff)와 그의 동료 앤드류 할리스 (Andrew Harless)는 Y2K 변환과 관련된 활동들이 최근의 생산성 수치를 크게 부풀렸다고 제시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노스웨스턴대학의 로버트 고든 (Robert Gordon)은 1995년 이래로 실제 모든 생산성 증가는 컴퓨터 하드웨어 제조부문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부문 이외의 '경제의 99%에서는 어떠한 생산성 상승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 대한 요약으로는 James Grant 'Wired Office, Same Workers', New York Times, 1 May 2000, p.A 27을 보라. (For example, Marcello Estev&alilde;o and Saul Lach of the Federal Reserve argue that official figures for the manufacturing sector should be deflated by 0.5 percent once the outsourcing of employment to temporary help agencies is taken into account. See 'Measuring Temporary Labour Outsourcing in US Manufacturing', NBER Working Paper 7421, October 1999. James Medoff of Harvard and his associate Andrew Harless suggest that activities related to the Y2K transition also greatly inflated recent productivity figures. In a similar vein, Robert Gordon of Northwestern contends that since 1995 virtually all increases in productivity have occurred in the manufacturing of computer hardware. He claims that 'there has been no productivity acceleration in the 99 per cent of the economy located outside' this sector. For a summary of these views, see James Grant 'Wired Office, Same Workers', New York Times, 1 May 2000, p. A 27.)

 

- 26 - 'The United States', Monthly Review, July 1999, p. 129.

 

- 27 - 특히 Charles Kindleberger, Manias, Crashes and Panics: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 New York 1977을 보라.

 

- 28 - Lawrence Mishel, Jared Bernstein and John Schmitt, The State of Working America 1998-1999, Ithaca 1999을 보라.

 

- 29 - 이런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최근의 경영 관련 서적으로는 Dow 36,000 by James Glassman and Kevin Hassert; Dow 40,000: Strategies for Profiting from the Greatest Bull Market in History by David Elias, and, not to be outdone, Dow 100,000: Fact or Fiction by Charles Kadlec and Ralph Acampora이 있다.

 

- 30 - 물론 로버트 루빈은 재무부에 있는 동안 명백하게 금융 탈규제 주도자였다. 현재의 재무부장관 로렌스 서머스는 그가 한때 경제학자로서 탈규제의 위험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기도 했었지만 루빈 못지 않은 열렬한 탈규제 추진자이다: Lawrence and Victoria Summers, 'When financial markets work too well: a cautious case for a securities transaction tax', Journal of Financial Services Research, 1989, no.3, pp.261~86을 보라. (Robert Rubin, of course, was an unequivocal champion of financial deregulation while at the Treasury. Current Treasury Secretary Lawrence Summers is no less fervent a promoter of deregulation, even though as an academic economist he once showed apprehension of its dangers: see Lawrence and Victoria Summers, 'When financial markets work too well: a cautious case for a securities transaction tax', Journal of Financial Services Research, 1989, no. 3, pp. 261-86.)

 

- 31 - Jane D'Arista, 'International Capital Flows and the US Capital Account', Capital Flows Monitor, 6 December 1999를 보라.

 

- 32 - 'International Capital Flows', p. 2.

 

- 33 - '확실히 (certainly)'라고 하지 않고 '아마도 (probably)'라고 한 것은 내가 해외시장의 여건 악화가 미국내 외국인 투자를 증가시킬 수도 있을 상반된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완전히 파산했다면 미국에서 '비합리적 과잉'의 거품이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In saying 'probably' as opposed to 'certainly', I am acknowledging the counter-vailing possibility that worsening conditions in overseas markets might have driven foreign investment in the US upwards. But it is still difficult to imagine that a full-scale bankruptcy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would not have burst the bubble of 'irrational exuberance' in America.)

 

원본: newleftreview.org/?view=2243

번역: 구본욱

2004/07/19 16:09 2004/07/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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