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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기업권력에 대한 지구적 저항을 말하다

<소셜리스트 워커> 2000년 5월호 노엄 촘스키 교수가 영국의 <소셜리스트 워커>와 한 인터뷰입니다. 촘스키는 시애틀에서 시작된 지구화 반대 운동, 세계화라고 불리는 기업 주도의 국제적 통합, 코소보전쟁, 20세기 초, 중반 제국주의의 유산인 제3세계의 비극, 미국의 외교정책 등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현재 세계질서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촘스키 교수의 혜안이 돋보입니다. 이 글은 류석원님께서 번역해주신 겁니다.



노엄 촘스키가 기업권력에 대한 지구적 저항을 말하다.

<사회주의 노동자>(Socialist Worker) 1696호 (2000년 5월 13일)

 


 

노엄 촘스키는 오늘날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반제국주의 활동가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언론의 구실 및 코소보에서의 나토의 전쟁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글을 써왔다. 그는 점점 커지고 있는 반자본주의 정서에 대해 '사회주의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노(사회주의 노동자) : 세계무역기구에 대항한 시애틀의, 그리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맞선 워싱턴의 저항은 얼마나 중요했나?

 

촘스키 : 매우 중요했다. 나는 그와 같은 어떤 일도 떠올릴 수 없다. 그간 매우 많은 사람들 - 아마도 세계 인구의 대다수 - 에게 피해를 입혀온 기업 주도의 특정한 국제 통합 양식이며, 세계화라고 잘못 불리운 것에 대한 분명한 저항들이 오랫동안 있었다. 이것(세계화)은 특정한 사안들에 대한 지역적 저항들을 야기해왔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그러한 저항들은 서로 통합되었다. 우리는 그에 관한 많은 실례들을 보아왔다. 다자간 투자협정(the 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을 무너뜨린 국제적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행동들은 사실상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시애틀 시위는 주요한 저항이었고, 주류 기관들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똑같은 일이 워싱턴에서도 반복되었다. 이 저항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다양성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저항은 예전에는 서로 별로 관련이 없었던 철강노동자들과 동성애 활동가들, 환경운동가들을 끌어들였다. 이 투쟁들은 브라질의 땅 없는 노동자들의 운동, 인도의 농민운동과 미국의 근로민중들을 한 데 모으는 국제적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사·노 : 워싱턴에서 있었던 운동은 심화되고 더욱 정치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연대했다.

 

촘스키 : 그렇다. 저항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 저항들을 개량적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개혁은, 그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면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좋다. 그러나 또한 개혁이 제한될 때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촉진되며, 이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그러한 사안에 대해 조금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그리고 나서 그들은 철벽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그들은 철벽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묻게 되고, 세계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보게 된다. 이 때, 더 많은 억압들, 때로는 더 많은 반동들이 존재하게 된다. 저항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저항하는 이들을 교육시켜내는 것이다. 지배기구들이 어느 지점에서 양보하며, 또 양보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사람들은 배우게 된다. 그것은 다음 단계를 위해 저항하는 이들을 단련시킨다.

 

사·노 : 투쟁하는 이들 중에서는 기업들이 세계 곳곳의 삶을 옥죄는 방식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의 전망에 대해 정교한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촘스키 : 그들 중 일부는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기업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게된 사람들이 다수이다. 사람들은 주주총회에 참여하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투자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아주 작은 변화를 이뤄낼 순 있어도, 그다지 멀리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왜 할 수 없는지를 묻게 되고, 당신이 묘사한 것(정교한 이해 : 역주)에 이르게 된다.

 

사·노 : 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과 분쟁의 종식을 뜻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날 세계 현실에 그 말은 얼마나 들어맞는가?

 

촘스키 : 소련 제국이 붕괴되자 유고슬라비아 같은 다른 여러 지역들이 무너졌다. 전체주의 국가들과 같이 제국주의 체제들은 내부의 분쟁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붕괴가 일어났을 때 폭력적인 민족분규가 일어나게 되었다. 영국 제국이 무너졌을 때에는 오늘날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보다 훨씬 더 심한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다.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대규모 전쟁이 있었고, 50년 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제국이 무너졌을 때, 아프리카의 전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1970년대 중반 포르투갈 제국이 무너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생독립국을 약화시키고자 애쓰는 미국과 영국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앞잡이 노릇을 수행했던 아프리카에서는 커다란 전쟁들이 벌어졌다. 포르투갈이 소제국을 건설했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했던 노릇을 이번에는 인도네시아가 수행했다는 점만 빼고는. 동티모르에서 있었던 잔학한 행위들은 지난해까지도 계속 되었다. 소련 제국이 무너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르완다 사태처럼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분쟁들은 벨기에, 독일, 프랑스 제국주의 체제들의 붕괴로 인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결과물이다.

 

사·노 : 미국의 외교, 군사정책은 이 그림의 어디에 들어 맞는가?

 

촘스키 : 마찬가지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지표는 무기 이전이다.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얻고 있는 주요국가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이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무기를 얻고 있다. 그것은 중동의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관련이 있다. 터키 역시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이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며 냉전시기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하지만 무기 이전의 수준은 매우 일정했으며, 1984년까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후 그 수치는 훨씬 더 높아졌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정점이었던 해는 1997년이었다. 그 한 해에만 터키는 1950년에서 1984년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무기를 받았다. 이는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을 분쇄하기 위해 많은 양의 미국산 무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터키 남동부의 거대한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을 위해 미국산 무기들이 마구 퍼부어졌다. 1998년에 터키는 쿠르드족 운동을 제압했고, 이에 따라 무기 거래량은 감소되었다. 그때까지 터키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보다 미국산 무기를 훨씬 더 많이 수입하는 국가였다. 이는 1999년에 콜롬비아로 대체되었다. 콜롬비아는 1990년대를 통틀어 서반구에서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였다. 또한 이 나라는 1990년대 최악의 인권기록 중 하나를 갖고 있다. 왜인가? 콜롬비아에는 정부가 분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게릴라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노 : 작년에 있었던 나토의 발칸 폭격은 어떻게 배치되는가?

 

촘스키 : 나토가 유고를 폭격했던 것은 인권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인권문제는 그들에겐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나토는 세르비아가 규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밀로세비치가 전쟁범죄자이자 깡패(gangster)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전쟁범죄자, 폭력범을 지원하는 데 개의치 않으며 항상 그러하다. 사담 후세인의 경우를 보자. 토니 블레어와 미국은 후세인을 대중학살용 무기를 개발해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국민에게도 이를 사용해온 역사상 유일무이한 괴물(the only monster in history)로 지칭해왔다. 단지 다음 문장을 빠뜨렸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국민에게 대중학살용 무기를 사용해 왔지요. 미국과 영국의 '지원'하에서요." 그들이 사담 후세인을 잡으려 했던 진짜 이유는 후세인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건 범죄가 되었다. '네가 원한다면, 너는 쿠르드족에게 화학무기를 쓸 수 있다. - 우리는 그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 - 다만, 명령에 불복해서는 안 된다!' 이게 강대국들이 행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그 방식으로 일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공격견이나 다름없는 구실을 하고 있는 영국 역시 그러하다. 러시아 역시 체첸에 대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사·노 : 대기업들은 이 그림에 어떻게 끼어 들어가는가?

 

촘스키 : 국가는 어느 정도까지는 독립적인 행위자이다. 하지만 국가는 압도적으로 그들 내부의 권력 집중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현대 산업국가 내부의 집중된 힘은 집중된 기업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미국에서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국제적인 - 비록 거대 기업들이 그들 자신의 국가에 뿌리를 두고 깊이 의존하더라도 - 힘이기도 하다. 지난 25년간 이루어진, 세계화라고 불리는 발전 과정은 집중화된 기업권력의 일부, 그리고 그와 연계된 국가들 간의 실제적인 권력게임(power play)이다. 그들은 금융기관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 특정한 형태의 국제적 연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민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경제적 성장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난 25년동안 경제적 지표가 얼마나 놀라웠는지에 대해 흥분된 어조로 논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건 말도 안된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동안 산업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절반 가량 감소하였다.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임금은 동결되거나 줄어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미국에서 그러하다. 노동시간은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으며 혜택은 줄어들고 있다. 성장속도가 둔화되었음에도, 이윤은 고도로 집중되었다. 제3세계에서 1990년대의 성장률은 1970년대 성장률의 약 절반수준이다. 그것은 금융자유화의 실제 지수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세계화라는 한 특정 양식이 낳은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25년간 있었던 이러한 변화들은 국제경제에 역효과를 낳았다. 국제경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부와 권력을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시키고 민주주의적 절차들을 파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를 보자. 유럽연합의 가장 핵심적인 구실 가운데 하나는, 책임을 지지 않는 중앙은행들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공격이다. 사실 그것은 너무 심한 조치여서, 심지어 미국의 보수파에게도 충격을 던져주었다.

 

사·노 : 미래의 전망은 어떤가? 미국의 노동자 계급 내에서 변화되고 있는 게 존재하는가?

 

촘스키 : 이제 미국에서의 평균 임금은 아마도 20년 전의 수준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성장이 계속되던 때에조차 평균 임금이 동결 또는 감소되었던 지난 20년은 아마도 전에 볼 수 없던 기간일 것이다. 미국 노동자들은 산업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몇 년 전에 일본을 넘어섰다(일본 노동자들의 노동량을 넘어섰다는 뜻 : 역주). 미국에서 한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족 중 두 명은 일자리를 가져야만 한다. 미국은 탁아제도가 구축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은 계속 자녀를 돌볼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그것은 노동자 가족에게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며, 엄청난 짐이 된다. 이것의 결과일지도 모르는, 이와 관련된 요소는, 아동학대와 같은 일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회지표조사에 의하면, 미국은 1970년대 중반 이래로 퇴보하고 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 문제에 대해 느끼지만, 그들은 그것을 집단적으로도 느끼기 시작했다. 단지 산업노동자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 영역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가난한 농부들은 타격을 입고 있으며, 소규모 상점 주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극소수 영역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들이 함께 발생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애틀 시위에서 눈에 띈 것 가운데 하나다. 미래에도 갈등과 투쟁은 항상 계속될 것이다. 이건 절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원문: www.socialistworker.co.uk/1696/sw169613.htm

번역: 류석원

2004/07/19 17:42 2004/07/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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