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거짓말
노먼 솔로몬(By Norman Solomon)
<엑스트라> 1997년 1/2월호
원 제목= (Snow Job) -- 제도 언론은 미국정보국을 위해 피해 관리를 떠맡는다. (The Establishment's Papers Do Damage Control for the CIA)
미국의 권위있는 신문들이라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어떻게 중앙정보국(CIA)에 협조하는지를 언론비평 단체 '페어(FAIR)'가 폭로합니다.
과정이 주의깊게 진행되지 않으면 정확하게 수행할 수 없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잘못됐다는 느낌과 죄책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거짓말을 믿으며 교묘하게 거짓말하기, 불편한 사실은 잊기, 그리고 다시 필요할 때는 필요한 기간만큼만 망각에서 불러내기, 객관적인 존재를 부인하기, 사람들이 부인하는 것을 의식하기, 이 모든 것은 필요불가결한 것들이다. --조지오웰, "1984"에서.
미국정보국이 지원하는 니카라과 콘트라반군이 로스엔젤레스의 가난한 흑인거주 지역에 유입된 코카인과 연계됐다고 폭로한 연재기사를 <산호세 머큐리뉴스>가 지난해(96년) 8월 보도한 뒤 몇주동안, 주요 신문들은 이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9월초,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3대 신문이 갑자기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이들이 유발한 소란은 아직도 채 가시지 않고 있다.
96년 9월21일 <뉴욕타임스>의 첫 보도는 전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콘트라반군의 코카인이 미국에 판매됐다는 보도에 대한 조사명령이 내려졌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정보국장 존 더치와 익명의 "전직 정보국 고위인사들"의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치는 "나는 이 혐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들은 정보국의 진취적인 정신의 본질 및 순결성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니카라과 마약밀매업자 오스카 다닐로 블란돈, 노르빈 메네세스와 "정보국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치뿐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콘트라와 관련된 일을 했던 전직 정보국 고위 관계자들이 이번주에 두 사람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고 이 주장을 재확인하는 보도를 했다. 이 기사 어디에도 정보국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듯한 기미가 없다. 정보국의 내부 조사가 이 사건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가 된다는 고정관념은 그 뒤에도 자주 반복해서 나타난다.
게리 웹 기자가 쓴 머큐리뉴스 기사에 대한 논란은 계속 커졌다. 정보국의 부인은 격분한 대중, 특히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항의시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까지 이어졌고, 정당의 흑인 간부들은 연방 차원의 조사를 요구했다.
10월이 되자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매서운 반격이 시작됐다.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맹공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은 것이다. 언론이 흔히 쓰는 판에 박은 듯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뉴스위크는 11월11일 "지난달 머큐리가 동료들에게 된통당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차례대로 이 기사의 헛점을 집요하고도 잔인하게 파고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내부 심의, 비판가인 하워드 커츠는 게리 웹에 대해 수없이 많은 비평을 해댔다. 이 비평은 갈수록 경멸적이 됐는데, 10월28일에 실린 "음모의 웹(webb, 거미줄이란 뜻의 web과 같은 발음 : 번역자) "이라는 글은 이런 말로 끝이 난다. "올리버 스톤씨, 당신의 음성녹음을 확인해보세요."(스톤은 캐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등 음모론을 즐기는 영화감독이다. : 번역자) 포스트의 자유주의 기고가 매리 맥그로리는 10월27일의 글에서 "산호세의 기사는 포스트를 포함해 주요 매체의 불신을 받고 있다"고 언론의 상황을 전하는 식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11월 기사에 유행하는 구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연재기사의 많은 결론이 의심받고 있다" (포스트 11월6일치) "언론비평가와 다른 신문들이 머큐리뉴스의 보도에 의문을 품고 있다"(뉴욕타임스의 AP통신 인용보도, 11월7일치) 뉴욕타임스 11월16일 "정보국장이 코카인 음모론을 부인하다"는 제목의 기사 다음 구절을 보면, 유명한 언론들 또한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보국 관리들은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언론들도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문은 계속 번지고 있으며 그칠줄 모른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도드는 이렇게 썼다. "더치 국장과 몇몇 유력신문의 조사자들은, 정보국이 미국내 도시에 코카인을 퍼뜨리는 데 구실을 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머큐리뉴스의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의심스러운 취재원들
그러나 "주요 신문"들이 반박한 것은 엄밀하게 무엇인가? 제도 언론들은 머큐리뉴스의 폭로에 대한 중앙정보국의 당연한 부인에만 의존하고 있다. 언론인 마크 쿠퍼가 주간지 뉴타임스로스앤젤레스에서 지적했듯 "중앙정보국이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의심이 가는 취재원(중앙정보국 : 번역자)의 주장을 그대로 믿으라고 강요받고 있다."
이 논란에 대한 10월21일치 뉴욕타임스의 전면 기사에서, 팀 골든 기자는 익명의 취재원들과 한 인터뷰 내용을 독점게재했다. 익명의 취재원이란 "정보국 보고서를 접할 수 있는 정부 관리"라는 식이다. "전, 현직 콘트라반군과 중앙정보국 관리, 마약단속반원 수십명, 마약 거래와 관련된 행정관료와 전문가"식의 익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블란돈을 전혀 모른다는 중앙정보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역력하다. 이런 식이다. "블란돈이 수천파운드의 마약을 남캘리포니아의 최대 마약업자에게 제공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블란돈이 머큐리뉴스의 기사에 핵심인물로 묘사되기 전까지는 블란돈에 대한 기록이 중앙정보국에는 전혀 없었다고 정보국 관리는 밝혔다." 똑같은 주장이 등장하는 9월21일치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도 정보국의 부인이 자기변명적일 뿐이라는 기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3회에 걸친 연재기사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중앙정보국 관리들은 메네세스와 블란돈이 콘트라반군 지도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고 이 신문은 10월21일 전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관리 가운데는 빈센트 카니스트라로도 있는데, 기사에서는 "전직 정보국 관리"라고만 나온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기사에서 이 인물에 대해 독자들이 눈치챌 만한 단서를 주지 않았지만, 카니스트라로는 80년대 초반 미국 중앙정보국의 콘트라 관련 업무를 책임진 인물이다. 그는 84년 국가안보회의로 자리를 옮긴 뒤에, 아프카니스탄 무자헤딘 게릴라를 비밀리에 돕는 일을 감독했다. 마약 거래에 손을 대고 있는 이 게릴라들에 대한 지원 때문에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전세계 최대 헤로인 공급국으로 떠올랐다.(더 네이션 88년 11월14일치, 더 네이션은 미국의 진보적인 월간지임 : 번역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이런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기때문에, 독자들은 중앙정보국이 결백하다는 카니스트라로의 주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니스트라로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마약거래를 눈감아주려는 성향이라고는 없다. 이것은 너무 민감한 사안이다.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그늘진 구석도 아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카니스트라로의 신분을 위장해서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공격하는 데 써먹은 것은, 점잖지 못한 언론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우익신문인 워싱턴포스트는 9월12일 기사에서 "폭로 기사는 출처가 전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카니스트라로의 말을 인용했다. 전직 워싱턴타임스(통일교 소유의 극우신문 : 번역자) 기자 마이클 헤지는 스크립스하워드 뉴스서비스의 기사에서 카니스트라로를 "반테러 행위와 남미 전문의 전직 정보국 요원"이라고 기술했다. 그는 또 "나는 중앙정보국이 블란돈과 메네세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머큐리뉴스가 제기한 혐의는 완전히 엉터리다."는 그의 말도 인용했다.
머큐리뉴스에 대한 언론의 반박 기사에는 이 신문이 제시한 명시적인 증거에 대한 반박은 거의 없다. 오직 있다면 중앙정보국의 부인뿐이다. 머큐리뉴스가 제시한 증거에는 메네세스와 블란돈이 연방정부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법률서류와 블란돈 자신의 증언도 포함되어있다.
누구의 군대인가?
머큐리뉴스의 기사가 틀렸다고 본 유력한 언론비평가들은 종종 웹 기자가 쓰지도 않은 내용을 갖고 증거가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는 10월4일치 기사에서, 웹 기자가 스스로 인정한 점 곧 마약거래를 알면서도 묵인한 정보국 관리가 누군지는 모른다는 점에 대한 규명에만 몰두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엉뚱하게 콘트라반군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군대라고 웹 기자가 언급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한 예로 워싱턴포스트의 커츠는 10월2일치 기사에서 "웹이 `정보국의 군대'라는 말을 계속 쓰는 것은 중앙정보국이 이 일에 관련된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것임이 명백하다"고 불평을 늘어놨다. 사실 니카라과민주군(FDN)을 미국 중앙정보국의 군대라고 한 것은 언론 특유의 표현이다. 이 표현은 본질적으로 사실에 부합하는 관계를 강조해 보여준다. 이 군대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선동해 구성했다. 우두머리를 뽑고 월급을 준 것도 미국 중앙정보국이다. 게다가 정보국 관리들은 그날그날 전장의 전략까지 관장했다. 전직 콘트라반군인 에드가 캐모로는 "우두머리들은 단지 미국 중앙정보국의 명령에 따르는 하수인이다"고 밝혔다.(니카라과: 개입의 대가, 피터 코른블러 지음. 엑스트라의 87년 10월11일치 캐모로 인터뷰기사 참조)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신문사 편집국 분위기는 계속 강해졌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의 마크 피셔는 11월7일치 기사에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 미국 중앙정보국과 콘트라의 연관 문제에 대해서까지 이의를 제기했다. "중앙정보국과 콘트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몇주동안 거론했던 대담프로그램 진행자 존 매디슨이 기가 죽어버렸다"는 식이다.
머큐리뉴스를 공격하는 일련의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는 10월21일 기사에서는 중앙정보국의 군대와 중앙정보국을 분리하는 의미론적 시도까지 벌였다. 이 신문은 "메네세스와 블란돈이 콘트라군 사령관 엔리케 베르무데즈를 만나기 위해 혼두라스에 간 적이 있다"는 점은 밝혔지만, 곧 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콘트라 지도자들처럼 베르무데즈도 미국 중앙정보국의 돈을 받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은 아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말장난이다. 이 점은 컬럼니스트 머레이 켐트폰이 뉴스데이 10월23일치 글에서도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들을 구별하려는 것은 정보국이 혼동을 유발하기 위해 시도하는 교묘한 수법 가운데 하나다. 정보국은 외국의 고위직 고용원을 `요원'이라고 하지않고 `정보제공자'라고 표현한다." 이런 혼동은 많은 기자들이 머큐리뉴스의 기사가 틀렸고 중앙정보국은 부당하게 혐의를 뒤집어썼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의심스러운 폭로
제도 언론의 공격 가운데 가장 타격을 줄만한 것은 웹 기자가 마약 거래로 번 돈을 과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웹은 이 액수를 수백만달러라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행정관료들에 따르면 블란돈은 3만~6만달러 어치의 코카인을 두번에 걸쳐 판 뒤 판매대금을 메네세스에게 줘 콘트라군에 보내도록 했다"고 10월4일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0월21일 "메네세스가 콘트라군의 재정지원자이기는 했지만 그가 기부한 돈은 5만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그를 알던 두 사람의 말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런 추산치는 순식간에 언론적인 의미에서 신성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진보적인 잡지 : 번역자) 더 네이션의 데이비드 콘이 사설에서 블랜돈과 메네세스가 제공한 돈은 "5만달러 정도 일것"이라고 씀으로써 이 잡지조차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추정치를 높게 잡은 머큐리뉴스의 주장이 이들의 주장보다는 훨씬 신빙성이 크다. 머큐리뉴스는 대배심과 법원에서 수백만달러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증언까지 해야했지만, 너무나 대조적으로 워싱턴포스트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정부 관료"(워싱턴포스트 10월4일치) 또는 "블란돈과 함께 마약을 판 동업자와 콘트라 지지자"(로스앤젤레스타임스 10월20일치) 또는 "로스앤젤레스의 마약거래 관계자"(로스앤젤레스타임스 10월21일치) 식의 익명의 취재원이라는 취약한 근거만으로 5만달러라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는 마약판매대금이 콘트라에 흘러들어간 것은 80년대 초반의 일이라고 주장했으나 모두 근거가 약하다. 머큐리뉴스가 스스로 실시한 보도 내용 검증 작업을 담당한 피트 케리는 훨씬 많은 근거자료를 제시했다. "블란돈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했던 로스앤젤레스 보안관의 진술서에는 콘트라와 연계됐던 것이 적어도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다고 나온다. 86년의 진술서에서 3명의 비밀 정보원은 블란돈이 아직도 돈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제도 언론이 정설이라고 여기는 것에는, 블란돈의 마약을 받아 판매한 "프리웨이" 리키 로스가 마약이 크게 확산되는 데 별로 기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포함된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4일치와 12일치 기사에서 "로스가 활동한 것과 마약이 급속히 퍼진 것은 우연의 일치"라는 구절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료를 보면 "마약이 급속도로 번진 것은 수많은 나라출신의 여러명 때문이다"라고도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10월21일 "마약거래 전문가 몇명은 로스가 마약계의 거물이지만, 이런 거물은 아주 많다"고 결론냈다.
로스의 마약이 콘트라와 연계된 밀매업자들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대중에 공개되기 2년전, 로스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94년 12월20일치 2400자짜리 장문의 기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 기사는 로스를 마약보급의 핵심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태풍의 눈이 있다면, 수십년간 이어진 마약세력의 중심이 있다면, 로스앤젤레스에 대량생산된 마약이 넘쳐나게 된 데 가장 책임이 큰 무법자 자본가가 있다면, 그의 이름은 프리웨이 릭이다." 그럼 이 기사의 제목은 과연 뭘까? "구속된 마약의 왕; 수감 5년만에 출옥하다. 이 마약판매상은 로스앤젤레스 마약 확산의 핵심인물이다."이다.
이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마약에 관한 한 "로스는 누구보다도 이를 민주화했다. 양을 늘리고 값을 폭락시키고,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만큼 병을 확산시켰다." 그는 "중남부의 첫번째 마약 백만장자가 됐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다른 거래상들이 시장의 밑바닥에서 애쓰고 있는 사이, 그의 전국적인 거대조직은 하루에 50만달러어치 이상씩 팔아치우면서 누구든지 단돈 몇푼이면 마약을 살 수 있는 충격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를 썼던 제시 캐츠는 정통론으로 굳은 주장(로스가 마약계의 최고실력자가 아니라는 주장 : 번역자)에 굴복해, 여론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듯한 내용의 기사를 96년 10월20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1면에 실었다. 이제 로스는 다른 마약거래자들과 비교해 난장이가 되어버렸다. 많은 "대체가능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로스는 마약이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게 된 것과 관련이 없다"고 캐츠는 썼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이 기자는 2년전의 자기 기사가 왜 그렇게 엉터리였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했다.
무시된 증거
머큐리뉴스의 연재기사가 종종 과장됐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엘리트 언론의 머큐리뉴스 기사에 대한 공격의 목적은 분명히 자신들의 콘트라-코카인 기사에 대한 엉터리 보도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 엉터리보도는 10년 이상 계속된 증거감추기와 관계가 있다.(엑스트라 87년6월호, 88년 3-4월호) 워싱턴포스트가 전형적이다. "브라이언 버거와 내가 85년 12월20일 AP통신을 통해 콘트라의 코카인 밀수에 대한 첫번째 기사를 썼는데, 워싱턴포스트는 1주일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이를 부인하는 주장을 붙여 이 기사를 전국뉴스면 맨끝에 한줄걸치듯 실었다"고 로버트 페리는 회상한다.
87년 미국의회 하원 마약위원회(위원장 찰스 랜절 공화당 의원)는 콘트라의 마약 관련 혐의를 조사한 뒤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7월22일 "의회 위원회, 콘트라가 마약거래와 관련됐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다"는 제목을 달아 사태를 왜곡했다. 랜절이 이에 대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이를 신문에 싣지도 않았다.(엑스트라 87년 11월12일치)
조금 뒤 타임지의 로렌 주커만이 한명의 사건조사 전문기자와 콘트라 마약 사건을 맡았다. 두 사람은 콘트라가 마약과 연관됐다는 중요한 증거를 발견했다. 하지만 주커만이 쓴 기사를 윗사람들이 제동을 걸었다.(엑스트라 91년 11-12월치) 편집간부가 주커만에게 "타임지는 회사차원에서 콘트라를 지원하고 있다. 만약 당신의 기사가 산디니스타(콘트라와 싸우는 니카라과 정부군으로 좌익임 : 번역자)가 마약에 연관됐다는 것이었다면 잡지에 싣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해줬다. 2년 뒤, 존 케리가 위원장인 상원 소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콘트라의 마약거래에 연루된 것을 강하게 비난하는 보고서를 냈다. 페리는 "이 중요한 보고서가 나온 것은 89년 4월이었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실을 700자 짜리 빈약한 기사로 20면에 처박아 넣어 사실을 축소했다"고 말했다.(더 컨소시엄 96년10월28일치; www.delve.com/consort.html) "게다가 마이클 이시코프가 쓴 이 기사는 조사결과 드러난 콘트라반군의 문제에 대해 다루는 대신 위원장 케리를 비난하는 공화당 위원들의 말을 주로 인용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제도 언론들은 이를 케리를 조롱하는 쪽이 안전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뉴스위크는 91년 8월5일치에서 케리를 "소란스러운 음모론 광"이라고 표현했다.
89년 7월 백악관의 탐정 올리버 노스, 국가안보 고문 존 포인덱스터, 주코스타리카 대사 루이스 탐스, 미국 중앙정보국 간부 조세프 페르난데스와 다른 콘트라게이트 관련 인물들이 코스타리카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것은 코스타리카 의회 마약거래조사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오스카 아리아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처였다. 이 위원회는 콘트라반군이 코스타리카에서 마약거래 조직을 재건했고, 이 조직을 백악관의 협력을 받은 노스가 강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엄청난 기사거리라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AP통신이 89년 7월22일 이 기사를 전송했지만 뉴욕타임스와 3대 텔레비전들은 이를 인용보도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기사를 뒷면에 단신으로 처리했다. `페어'(공정보도)의 스티브 렌달이 워싱턴포스트에 전화해 왜 단신으로 처리했냐며 항의했지만 월터 핀커스 기자는 사과하지 않았다. 이 기자는 나중에 96년 머큐리뉴스 기사를 공격하는 데 나선 기자 가운데 하나다. 이 기자는 "코스타리카 의회위원회가 무슨 주장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대꾸했다.
96년 하반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기사에 흐르는 기본 전제는 콘트라가 마약거래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80년대 내내 중요한 정보(콘트라의 마약거래 개입)를 무시하던 신문들이 이런 주장을 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옴부즈맨인 제네바 오버홀서는, 미국 정부와 마약밀매의 관계에 의문을 다시 제기하면서 3대 신문들이 "좀더 나은 대답을 찾기 위해 찾아다니는 대신 머큐리뉴스의 오류를 찾아다니는 데 더 열성적이다"고 지적해서 표적이 되고 말았다. 오버홀서는 "중앙정보국이 적어도 마약거래에 콘트라가 관련됐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로 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워싱턴포스트가 머큐리뉴스의 기사를 대한 태도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들이 이 사안에 큰 관심을 갖게된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워싱턴포스트와 여론은 지체없이 이 문제로 관심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언론의 보도를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패리는 정곡을 훨씬 더 정확히 찔렀다. 워싱턴포스트의 10월4일치 기사가 "콘트라가 마약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이 신문이 "오랫동안 콘트라가 마약에 관계됐다는 혐의를 조롱했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아이러니다.
더럽고 위험한 세상
이런 엘리트 언론들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콘트라군대가 마약거래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감추고 이 사실을 용감하게 보도한 언론을 공격했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이들이 콘트라 지원을 지지했다는 점이 부분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말 두 신문은 콘트라에 대한 군사지원을 승인했다. 물론 가끔은 마지못해 하기도 했지만. 88년 2월 워싱턴포스트의 콘트라 지지 사설 2건(88년 2월3일과 5일치)은 의회의 중요한 표결을 앞두고 "당근과 채찍의 조화가 산디니스타를 움직이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군사적 "채찍"이 니카라과 농촌지역 농부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위의 3개 신문에서 사주나 경영진의 태도는 신문의 논조를 결정하고 기자들의 일을 제약한다. 전직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인 데니스 맥두걸은 뉴타임스 로스앤젤레스 96년 9월19일치에서 편집인 셀비 코페이 3세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현상황을 지키려는 인물의 사전적 정의 그 자체다. 그는 폭로성 기사가 지배 엘리트들의 반발을 일으킬 것인가 여부를 판단한다. 반발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그 기사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실릴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국가 엘리트와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관계는 정보국 설립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진 것으로 유명한 칼 번스타인은 20년전인 77년 10월20일 롤링스톤지에 실은 중앙정보국과 언론에 관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중앙정보국 관리들 이야기로는 중앙정보국이 (뉴욕)타임스와 관계를 대언론 관련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1950년부터 1966년까지 대략 10명의 중앙정보국 관리가 타임스의 첫면을 제공받았다. 이것은 그전 발행인인 아더 헤이스 슐츠버거가 승인한 계약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슐츠버가가 만들어놓은 타임스의 중앙정보국 지원 정책의 하나다."
번스타인의 전 직장인 워싱턴포스트 또한 중앙정보국에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번스타인은 중앙정보국 관리가 워싱턴포스트의 그전 소유주이나 발행인에 대해 한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필 그래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발행인들의 후손들이 두 신문을 여전히 경영하고 있다. 비밀리에 중앙정보국을 도와야한다는 의무감 또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88년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주 캐더린 그래함(필 그래함의 부인)은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래함은 중앙정보국 고위 관리들에게 "우리는 더럽고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리가디스 매거진 90년1월호) 이런 말도 했다. "일반 대중이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정부는 비밀을 지키고 언론은 자신들이 알아낸 것을 신문에 실을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번성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독자들의 차례다. 이런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을 어느 정도 믿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번역: 신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