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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길 위의 선언

팔당 떼잔차질에 같이 가신다고 연락을 주신 이채님 블로그에서 퍼왔다.

(설마 동명이인은 아니겠지요? ㅎㅎ)

홍은택은 아직 안 읽었는데, 일단은 그냥 이채의 글이 좋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봐요. ^^

 

페달을 밟은 만큼만 움직이며 사는 삶 … 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무엇보다 자동차는 공존의 문화를 파괴한다. … 자동차에 올라타면 사람들은 자동차가 된다. 옆으로 지나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다. 그래서 서로 부딪히고 나서 보니 안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식이다."

정말이지, 좀 이상하다. 길을 걸을 때 누군가 내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을 때 앞질러가면서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적으로 몸을 들이미나? 함께 걷는 사람이 걸음이 좀 서툴다고 해서 "집에 처박혀 있으라!"고 윽박지르나? 그렇게까진 하지 않을 것 같다. 일례로 산을 오를 때 누군가 힘에 겨워 걸음이 느려지면 생판 초면이어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며 격려한다. 물도 나눠주고 힘내라고 박수도 쳐준다.
도로에서 그런 광경은 보기 힘들다. 기이한 일이다. 산에 다니는 사람과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애초에 다른 사람들인가? 그럴 리가 없다. 산 타는 사람은 산만 타고 차 타는 사람은 차만 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오가는 길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속도는 속도를 만들어내고 사람은 제가 만들어낸 속도에 당하지 못한다. 우울한 결말이다. 더 우울한 결말은 자기가 그렇게 사는 게 억울하고 분해서 남들까지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거다. 그렇게 미친 급류에 휩쓸려 휘둘리다가 제게 주어진 생이 다했을 때야 '내가 무얼 위해 살았던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눈물이나 흘린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는 길 위의 선언이 바로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이겠냐만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쓴 홍은택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80일동안 혼자 자전거를 타고 미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달린 그는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의미가 욕심 감량이었다고 말한다. 바리바리 싸왔던 짐을 돌려보내거나 나눠주면서, 다른 라이더의 잘못된 조언으로 길을 한참 에둘러 달리면서, 바퀴의 펑크를 메우는 등 자전거를 직접 손보면서 그는 빨리 달리고 싶고 쉽게 가고 싶고 많은 걸 소유하고 싶은 마음들을 버린다


그가 자전거 위에서 그랬듯 나도, 좀 버리고 싶다. 무언가를 빨리 성취하고픈 조급함,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물욕, 겉보기에 그럴듯한 사람이 되고픈 허세…. 대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내 두 발로 움직인 만큼만 전진하는 삶을 상상해 본다. 느리게 조금씩, 포기하지만 않으면 돼. 그걸로 충분해, 다독다독. 어깨죽지가 조금 가벼워지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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