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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치와 아옌데

  1993년에 그 자신 전에는 사제(司祭)였기도 했던 호이나키는 일리치의조언을 받아들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천킬로미터에 이르는 순례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스페인의 도시는 9세기 이래 유럽의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주요 목적지였다. 일리치는 그러한 친구의 결정을 축하하여 자신의 벽장에서 오래된 튼튼한 보행용(步行用) 신발 한 켤레를 꺼내어서 그것을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일리치가 그 신발을 샀던 것은 1973년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살해된 날이었다. "내가 아옌데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우리가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아옌데에게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야 한다고 하였고,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으며,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집무실에서 살해되는 것보다 자전거에서 살해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하고 대답했지요."

 

  일리치가 그 신발을 샀던 날,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의 임기는 종식되었다. 아옌데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던 것이다.

 

  20년 동안 아주 드물게 사용되었던 그 신발은 호이나키에게 썩 잘 맞았다. 그러나 순례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시험하는 일이다. 맨 첫날 호이나키는 깎아지른 산길이 아직 눈에 뒤덮여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고사하고 그 산길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바위에 기댄 채, 이미 이 지점을 지나간 수천, 아마도 수백만의 사람들을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이 순례자들을 북부 스페인으로 이끌었던 신앙의 위대한 신비와 자기자신을 거기로 이끌었던 우정(友情)의 위대한 신비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호이나키는 그때 자신이 의식을 잃었던 게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그 산길로 올라가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의식이 깨어났을 때는 그가 산의 저편으로 걸어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 지금까지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신비로 남아있다.

 

- 마릴린 스넬, 이반 일리치-상투성과 기계에 맞서는 현인 중, 녹색평론 

 

 

아옌데와 일리치가 급박한 시기에 다른 할 얘기도 많았을텐데, 자전거 출퇴근을 두고 논쟁을 했다는 사실이 재밌다.

 

아옌데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는데...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대통령 경호대까지 외부로 내보내고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소총을 들고 쿠데타군에게 최후까지 저항하다 살해당했다고 한다.

 

아옌데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고할 것.

<새로운 인간, 그가 아옌데였다>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

 

또 하나 알게된 사실은 아옌데가 대통령이 될 때 후보단일화를 위해 양보했던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가 시인 파블로 네루다라는 것.

<파블로 네루다>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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