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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중심이 되는 것

'보리밭에 흔드는 바람'과 '뮌헨'을 봤다.

'보리밭은' 차비 들여 돈 주고 시간내면서 봤고,

'뮌헨'은 HD 동호회에서 다운 받아 2개월 만에 봤다.

용량이 장난이 아니라 그냥 지워버릴까 하는 유혹을 참아가며 기어코는 보고 만 것이다.

영화를 보게되는 주기가 몰아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이번엔 어찌 어찌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 가장 가까이 자신의 중심을 지켜가는 두 거장의

작품을 알현한 것.

 

국제사회주의자인 켄 로치에게 자신의 조국에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그 시기 민중의 투쟁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전달자로서 켄 로치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고 또 뛰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본 영화에서는 그 의미가 가슴 속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피 한방울 나지 않은체, 어설프게 쓰러져도 눈을 감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여전했지만

(크리스를 처형할때 갑자기 내리는 비....)

켄 로치 영화의 백미인 민중들의 대화씬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

기억한다. '빵과 장미'에서 늙은 멕시칸 여인이 반장으로부터 해고 당하는 씬을...

그리고 '명멸하는 불빛'에서 누구보다는 밝은 눈빛으로 열변을 토하는

백발의 늙은 노동자들을..

형제라는 기본적인 신파가 작동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법정씬을 빼고는 드라마로서의  내러티브가 상대적으로 많이 강조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변한거겠지. 켄 로치는 여전히 노동자계급 투쟁의 유의미성과

역사 속에서의 발견에 게을리 하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 나의 영화적 관계로만 보자면 켄 로치 보다는 스필버그가 더 길고 질기다.

돈만 만들어 내는 감독이라는 비아냥을 아직도 하는 인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필버그는 한 20년전부터 영화적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다시한번 그 사실을 이번 작품을 통해 확인했다.

좋았던 거는 스스로의 한계라고 인지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이념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과

그 벗어나는 만큼 영화적 표현의 수위는 점점 더 완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티유 카소비츠가 죽고 정보책인 루이를 만나는 쇼윈도우 씬은 잊혀지지 않는다.

걱정되는 건 원래의 장기인 유아적 환타지로 귀환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

피터팬이나 ET같은 작품은 더 이상 만들지 않을 거 같은 안타까움...

헤리포터따위보다는 ET가 훨씬 좋은데... 뭐 이런 것이다.

아니... 스필버그에게 환타지를 기대하는 거 보다 역사 속의 민중과

점점 더 잔인해져 가는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조금씩)기대하는 것이 더 쉽고 재밌겠다.

 

그리고 우연찮게 본...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상 스왈로우(이기영)의 소감.

'좋은 음악은 스스로 중심이 될거라 믿었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이 두 거장은 스스로 중심이 되어서,

출발선은 다르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을

각자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지켜나간다.

 

또 하나, 엔딩 크레딧의 길이.

나의 영화에서 나오는 엔딩 크레딧보다 켄 로치 영화에서 나오는 엔딩 크래딧이 한 10배는 길다.

그리고 켄 로치 영화에서 나오는 엔딩 크래딧보다 스필버그 영화에서 나오는 엔딩 크래딧이

한 5배는 길다.

 

벗어나고픈 현실이자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휘파람 - 허클베리핀(S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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