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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새로운 사람을 살자-원주선언30주년

원주선언 30주년 기념미사 강론 2006년 1월 23일 오후 4시 원주 원동성당 문정현 신부 70년대를 산 사람 중 작고하신 지학순 주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원주교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 원동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주 원동성당은 반 군사독재, 반 유신헌법 운동의 산실입니다. 원주교구 교구장 지학순 주교님은 철통같은 박정희 군사독제정권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원주는 76년 원주선언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한 주교님의 힘이 그렇게 막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모든이들이 지학순 주교님을 기대했습니다. 덤으로 한국교회 주교단과 사제단에 대한 기대도 적지않았습니다. 한국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등, 종교와 사회단체를 아우르는 넓은 품이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으로 떠 올랐습니다. 한국교회의의 대표는 물론 주교단입니다. 주교단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특히 윤리, 도덕, 신앙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주교단의 공동체적 판단은 전 교회공동체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 판단에 따라 교회 멤버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더 강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않으면 각자의 소신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박홍 신부의 발언은 개인적 입장일 뿐입니다. 주교단의 판단이 없어 사회가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 혼란이 가중됩니다. 주교단의 판단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혼란은 더 커집니다. 주교단이 옳다고 판단한 것을 꼭 천주교 공식기구만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옳은 일이 교회에만 특허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주장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같은 편입니다. 주교단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공유하면서 복음정신에 일치해야 합니다. 일치된 지침도 없이 비공인이라는 이유로 교회 활동가들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이름사용조차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활동가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활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단체와도 연대해야 합니다. 공인 비공인을 과도하게 따지다가 성령의 숨결이 죽을 수 있습니다. 정의구현 사제단과 이른 바 비공인 단체에게 무슨 과오가 있습니까? 세상이 다 아는 기념비적 활동을 해 왔을 뿐입니다. 주교단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을 따라 산다는 활동가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군사독제정권이 몰락하고 연이어 민간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꿀따러 간 것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한자리씩 해먹네!’말짱한 정신으로는 말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남의 마음을 찌르는 송곳이기 때문입니다. 30년 동안 민주화의 전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성은 아닙니다. 앞 길이 창창합니다. 거짓과 포장을 걷어치우고 전진해야 할 오늘입니다. 민통련 20년, 사제단 30년에 이어 원주선언 30년을 마지했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는 아직 먼 발치에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도 가난한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 가운데 서서 진정한 민주화의 완성을 향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가도 끔쩍하지 않는 사회는 곧 지옥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울음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 곳입니다. 30년 동안의 기백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타갑습니다. 지율 스님이 지금 사경을 헤메고 있습니다. 부산 APEC 반대투쟁에 3만명의 노동자 농민이 모였습니다. 쌀 수입 개방 저지투쟁에서 두 농민이 경찰의 방패에 찍혀 희생되었습니다. 천5백명이 무리를 지어 홍콩 WTO까지 원정하여 투쟁하다 거의 전원이 연행되고 급기야 11명이 기소되었습니다. 홍콩의 한 주교님께서 이들을 대변해주셨습니다. 평택쌀이 생산되는 349만평이 미군기지로 확장됩니다. 우리 정부는 땅을 빼앗아 미군에게 공짜로 주고, 시설비를 감당하고, 이사비용까지 대줍니다. 정부는 강제수용을 선포하여 팽성주민을 철거민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은 “단 한 평도 빼앗길 수 없다.”고 만 3년을 외치고 있습니다. 평택 팽성주민들의 절규입니다. 사실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종속이냐 자주냐 중대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7.80년대의 가톨릭 농민회를 기억하십니까? 열사들을 기억하십니까? 89년 사제단의 평양방문을 기억하십니까? 민중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한 오늘 이 기념행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과시를 위한 행사로 전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과거를 기억하며 반성하여 새로운 마음(회개)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날의 삶을 밑거름삼아 거듭 거듭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오늘같은 행사가 교회의 안과 밖에서 종종 치러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창하게 호화로운 장소에서 행사를 치루기도 합니다. 30년 전에는 그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잔치하 듯, 보라는 듯 행사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범람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우리의 앞길은 아직도 창창합니다. 과거 일을 들추어 뽐내지맙시다! 순교정신을 말하면서 순교에 임하지 않는 것은 순교자를 팔아먹는 일밖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지하던 정권이라 할지라도 잘못하면 나무라야 합니다. 한 통속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정권을 넘어 엄하게 판단하고 가난하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소리쳐야 합니다. 그렇지못한다면 주교단이 말하기 전에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떼어버려야 합니다. 과거가 오늘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처럼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세상을 더 달라졌을 것이고 앞으로도 진정한 희망을 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주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당국자들은 곧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예수님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십니다. 그물을 던지는 어부를 붙들어(마르 1:16b,마르 1:19b)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십니다.(마르 1:17). "사람 낚는 어부", 이 어부는 영혼만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다. 주님께서는 어부를 시켜 불의한 자들을 낙아 처단하십니다(예레 16:16). 갈고리, 작살로 부당한 부자(아모 4:2)와 힘 있는 자(에제키엘 29:4)들을 작살내십니다. 불림을 받은 이들의 임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질서를 위해 보통의 사람을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들 앞에서 처형을 당하시면서 희망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후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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