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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양극화 해법, 그 논쟁의 진실

왜곡된 ‘양극화 해법’, 그 논쟁의 진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4년차에 접어들면서 남은 임기 동안 최우선 국정운영 과제로 ‘양극화 해소’와 ‘한미FTA 협정 체결’에 힘을 쓰겠다고 한다. 그런데 소위 사회양극화, 그 중에서도 특히 소득 및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층의 증가가 그 원인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양극화’란 용어 자체가 노동자계층의 빈곤화, 빈곤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증가 등을 은폐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소득 양극화를 언급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이, 즉 노동자내부의 소득양극화를 언급하는 내용은 많지만 노동과 자본사이의 양극화를 얘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연평균 경제성장율은 5.6%였지만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0.3%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기업은 연평균 62.6%에 달하는 실질소득 증가율을 기록했다. 삼성 등 대기업 등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 임금이나 각종 급여는 상대적으로 줄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노동자서민의 체감경기가 여전히 불황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이에 기인한다.   


‘양극화’란 용어에 담긴 은폐 효과와 마찬가지로, 양극화 해소를 말하면서 그것의 원인이 되고 있는 자유무역의 확대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청와대의 정책실장이란 사람은 이런 모순된 이야기를 ‘양날개론’이라는 말로 합리화한다. 그는 양극화해소를 위해서는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른쪽 날개는 시장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가진 자 들의 소비를 진작시켜야 함을 말함이며, 왼쪽 날개는 직업, 교육, 사회 영역에서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을 말함이다. 여기에서 서비스 산업의 육성이란 ‘의료산업화’라고 표현되는 바와 같이 의료, 교육 등의 서비스 산업에서 시장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미FTA협정에서의 가장 중요한 쟁점도 의료를 비롯한 서비스, 방송을 비롯한 문화영역, 그리고 에너지 관련된 분야, 농업 등의 개방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은폐와 모순’의 전략을 현 정부는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과 경총, 전경련을 비롯한 소위 ‘친기업’ 세력들은 ‘분배위주의 좌파 정책’이라고 왜곡되고 거짓말인 저질의 비난을 정책, 이념논쟁이랍시고 퍼붓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규제를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경제가 성장하고, 그래서 이른바 엷어지고 있는 중산층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그 따뜻한 열기가 여전히 냉랭한 빈민층의 호주머니에까지 퍼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양극화 해소방법은 그들 스스로도 사실이 아님을 이미 폭로한 바가 있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란 언급이 그것이다.


이들 ‘은폐와 모순’ 대 ‘거짓의 철면피’ 간의 왜곡된 대립과 논쟁은 더욱 더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러한 논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감세냐 증세냐’하는 것이다. 이 논쟁은 노무현 정부가 올해 초 새해연설을 하면서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조세개혁이 필요하다고 천명하면서 촉발되었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월급쟁이의 유리지갑만 털려고 한다’라느니 하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증세가 아니라 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서민의 부담을 늘리는 더 이상의 세금 증가는 없고 ‘공평과세’와 재정의 효율적 집행이 우선이라는 집권여당의 언급으로 이 논쟁은 일시적으로 수면 밑으로 수그러 들었지만 향후 정치일정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노동당은 직접적으로 부자들의 세금을 늘려야 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의제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를 빈곤층이라고 알려진 500만명 정도까지 확대하는 일, 저출산대책을 위해 필요한 보육, 육아에 대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일, 건강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건강보험보장성을 80%정도까지 확대하고 공공의료를 30%정도까지 확대하는 일,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권리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행하는 일 등등에 상당한 재정이 소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 집권세력은 적자인 재정상태를 핑계로 이러한 정책대안을 실현시키는 데에 미온적이었으며, 항상 뒷전으로 미뤄온 것이 현실이다. 재정확충의 방안으로 조세개혁은 일단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의 방향이 과세기반을 확대한다는 명분하에 저소득(임금)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에 부담을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조세개혁의 방향은 무엇보다 ‘가진 자’의 것을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재분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것은 법인세나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을 증대시키고, 누진세를 확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세’ 주장은 이것에 역행하는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주장이다. 물론 이러할 때 기득권자의 격렬한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과연 이러한 저항에 대해 이를 무마시킬 수 있는 의지와 수단을 현 정부가 갖고 있을까? 의심스럽다. 더군다나 ‘감세’를 부르짖고 있는 강력한 세력이 그들의 의회권력의 파트너로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증세냐 감세냐’하는 논란의 귀결점이 결국 노동자, 서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취할 방향은 상당수 현재 세금면제기준에 해당하는 소득을 지닌 저소득임금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에게 세금을 부과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미 정부는 직접적인 증세논쟁을 피해가면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과세의 형평성이라는 명분하에 근로소득 면세의 혜택을 줄이고 기준을 낮춘다든지 하는 조치가 그것이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메꾸는 방식’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없는 이들끼리 나누는 것이 아무리 우리 사회 전통의 고유한 미덕일지라도, 정부정책마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대표적인 한 예가 ‘일하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인 EITC(근로소득보전세제)의 도입과 관련한 것이다. 정부는 올해 내로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제도가 목표로 하고 있는 노동시장유인효과 및 소득보전효과와 그것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많이 지적되어 온 바가 있다. 저임금으로 일자리를 기피하거나, 일정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노동시장으로의 편입을 용인하게 하려는 이 제도는 소득을 보전하는 데에도 미흡하고,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자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는 효과도 불투명한 반면에, 오히려 최저임금을 하락시키거나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시장 구조를 더욱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 필요한 재정을, 예를 들어 과세기준을 낮춘 데서 확충된 재정으로 확충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없는 사람의 '간'을 빼내어, 없는 사람의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 되는 꼴이다. 

현재 재정수준에서도 사회복지관련 지출은 OECD국가에서도 최저수준이다. 이는 재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와 전략의 부재가 더 큰 요인이라는 것의 반증이다. 재정부족상황에서도 법인세는 1%인하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조세개혁이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쟁의 씨앗으로만 작용할 지, 기간의 과정을 보면 후자로 기울어질 게 눈에 보이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 할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사회양극화의 핵심문제인 노동의 불안정화, 사회적 빈곤의 원인인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세계화 전략에 대한 방향 전환이 없이 어떠한 획기적인 정책과 대안을 실행하더라도 이는 원인해결 없는 미봉책과 일시적 완화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위험을 '유예'하거나 지연시킬 뿐, 그 위험을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양극화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한국은행총재의 지적은 이런 면에서 솔직한 편이다. 즉 신자유주의를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전제로 하고 양극화해소를 부르짖는 것은 위선이자 기만이거나, 실제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부는 의료산업화 정책의 핵심인 영리법인 도입과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중에 있으며, 보육료 자율화, 자립형 고교 확대, 사회복지시설에 있어 BTL 사업 확대 등 의료, 교육, 보욕, 사회복지시설 정책 전반에 대해 시장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뿐더러 이를 더욱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일부 운동진영에서까지 광범위하게 합의되고 있는 양극화해소 방법의 하나가 ‘일자리 창출’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는 간병, 보육, 교육, 의료 등의 사회적 서비스와 관련된 일자리를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만들려는 시도를 은폐한다. 지금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양극화’와 관련되어 왜곡되고 은폐되고 있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의 문제를, 노동권, 생활권, 사회권 확보의 관점에서 제기하고 직접적인 사회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현 보수정치세력간의 잘못된 논쟁구도를 타파하는 데에 우선적으로 가져야 하는 관점이다.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대등한 ‘사회적 합의’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허망한 관념에 얽매어 있는 것을 타파하는 것 또한 왜곡된 논쟁구도에서 벗어나는 일차적 지름길이다.  ('일터' 칼럼, 200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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